【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봉사하는 삶 속에서 하루하루 보람 느껴요”
남양주 호평동에서 스타로 통하는 사람.?아파트 노인회 회장, 문화센터 노인웰빙대학 임원….
경기도 남양주 호평동에 사는 이순옥 씨(76세)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그녀는 76세라는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주인공이다. 왕성한 활동력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지역 민원 해결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이곳저곳 봉사활동 다니느라 하루해가 짧다.
그런 그녀가 왜 본지 지면에 등장했을까? 숨겨진 그녀의 또 다른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건강해 보이는 사람, 아직도 뽀얀 피부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
그러나 속사정은 많이 다르다. 웬만한 사람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비록 성장은 멈추었지만 지금도 몸 구석구석에 암세포가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 웃으며, 봉사하며, 즐겁게 사는 이순옥 씨. 암과 친구처럼 잘 지내는 그녀의 암 동행기를 들어보았다.
병원에 간 김에 받은?위내시경 검사
날씬한 몸매는 모든 여성들의 영원한 로망인가보다.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예순을 넘긴 이순옥 씨에게도 조금 뚱뚱해 보이는 몸매는 고민거리였다. 조금만 날씬했으면 했다.
그런데 웬일이었을까?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는데도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너무 좋았다. 저절로 살이 빠지다니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한두 달 사이에 63kg이던 몸무게가 57kg까지 줄어든 거예요. 옷을 입어도 맵시가 나고…그래서 주변에 자랑도 했어요. 살 빠졌다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느닷없이 허리가 아프고 아랫배가 당기듯이 아팠다. 하루 이틀 견뎠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했던 증상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안 되겠다 싶어 동네 산부인과병원으로 갔어요. 아랫배가 끊어질 듯 아픈 것이 자궁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으로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검사를 마친 동네 산부인과 의사는 소견서를 써주면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이순옥 씨는 조금 불안했지만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은 서울 송파구에 있는 대형종합병원 산부인과였다. 입원을 해서 검사를 받았고 검사 결과는 곧 나왔다. 자궁에 곰팡이균이 있다고 했고, 항생제 치료를 하면 쉽게 나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치료를 받자 깨끗하게 나았고, 퇴원을 앞둔 전날이었다.
“이왕 병원에 온 김에 위내시경 검사나 한 번 받아보자 생각했어요. 당시 소화도 잘 안 되고, 또 살이 빠져서 좋기는 한데 은근히 걱정도 되었거든요.”
그래서 받게 됐던 위내시경 검사. 그러나 며칠 뒤 검진 결과를 보러 간 이순옥 씨는 너무도 황당한 말을 들어야 했다.
“의사가 그러대요. 선암이라고. 기자님도 잘 모르겠죠? 저도 처음에는 암에도 착한 암이 있고 나쁜 암이 있나보다 했어요. 선암을 착한 암으로 알아들었거든요.”
하지만 아니었다. 결코 착한 암이 아니었다. 아니 고약한 암이었다. 수술도 할 수 없는 암이었다. 건드릴 수가 없다고 했다. 혈액을 따라 움직이는 암이어서 칼을 못 댄다고 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정식 명칭은 림프종양이더군요. 저의 경우는 위에서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균에 의해 생겼다고 했어요.”
너무도 황당한 암 판정, 설상가상 암 판정을 받았지만 아무 것도 할 게 없는 상황. 이순옥 씨는 2001년 12월 매서운 한파 속에서 암이라는 절망의 그림자와 그렇게 낯선 대면을 해야 했다. 그때 그녀 나이 예순셋이었다.
수술도 할 수 없고?그저 지켜보기만 하자…
이순옥 씨는 암을 평생 친구처럼 동고동락할 존재로 여긴다.
핏속을 따라 움직이는 암이어서 수술도 못하는 암 림프종양.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어떡해야 하냐고 담당의사한테 매달렸지만 별 뾰족한 방법은 없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약물 치료를 좀 하더니 나중에는 약도 안 주고 한 달에 한 번씩 위내시경 검사만 했으니까요.”
아무런 치료도 없이 약도 없이 검사만 하면서 몇 개월이 흘렀고, 그동안 의사가 해준 말도 별로 없었다. 검사를 마치고 나면 ‘진행 중’이라고만 했다. 이것이 다였다.
그러니 더 답답하고 속상했다. 수술이든 약물이든 뭔가 치료를 받으면 희망이라도 생길텐데… 검사만 받으면서 그저 지켜보기만 하자니…바짝바짝 피가 마르는 듯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우선 공기 좋은 곳으로 가서 요양을 하자.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한 요양병원으로 들어갔다.
완치의 기쁨, 재발의 슬픔
공기 좋고, 암 치료병원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어서 찾아간 요양병원은 이순옥 씨에게 마치 천국 같았다고 말한다.
“먹는 것, 생활하는 것 모두가 제게는 너무 좋았어요. 음식은 야채, 과일 중심의 건강식이었고, 비록 무염식에 가까워 간은 안 돼 있었지만 견과류로 맛을 내 고소하고 맛있었어요.”
무엇보다 이른 아침 새벽기도는 그녀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정화하는 성스런 시간이 됐다고 말한다.
“그동안 제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지난 세월을 회개했어요. 또 남을 배려하지 않고 살아온 제 자신을 반성했어요. 그리고 앞으로 주어지는 삶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결심도 함께 했죠.”
그러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암이라는 두렵고도 낯선 이방인에 대한 생각도 조금 너그러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왕 나를 찾아온 것, 이제부터는 같이 살자고 다독였어요. 내가 죽으면 너도 죽고, 내가 살면 너도 사는 것이니 친구처럼 행복한 동행을 해보자 설득 아닌 설득을 했죠.”
그런 덕분이었을까? 요양병원에 들어간 지 6개월 만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한 달에 한 번씩 받던 정기검진에서 놀라운 결과를 통보받았던 것이다.
“암세포가 없어졌다고 했어요. 위 림프종양이 사라졌다고 했어요.”
기뻤다. 꿈만 같았다. 이제 살았구나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3개월 후에는 또 다른 운명이 이순옥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재발’이라는 모습으로 실체를 드러냈다. 없어져 좋아했던 암세포가 다시금 생겼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더군다나 다시금 재발한 암은 담당의사의 손도 들게 만들었다.
“담당의사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이제는 자신의 손을 떠났다고.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그러면서 다른 데로 가라고 했어요.”
이때부터 이순옥 씨는 소화기내과 환자에서 종양내과 환자가 되었고, 암과의 본격적인 사투도 시작되었다.
몸 이곳저곳에 암의 씨앗은 뿌려지고…
다시금 암이 재발된 상태에서 마지막 관문처럼 선택한 종양내과였지만 이곳에서도 이순옥 씨에게 해주는 것은 별로 없었다. 여전히 수술도 약도 소용없는 암이라 했고, 변화만 지켜볼 뿐이었다.
“그래서 검사만 하면서 또 몇 개월이 흐른 어느 날 사타구니에 이상한 혹이 만져지는 게 아니겠어요.”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싸늘한 냉기 한 줄. 막연한 불안감이 온몸을 엄습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적중했다.
정기검진에서 담당의는 말했다. 핏속을 따라 돌아다니던 림프종양이 사타구니에 자리를 잡은 것 같다고. 이른바 전이였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겨드랑이 밑에도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재발한 암은 그녀의 몸 이곳저곳에 무차별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세력 확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암의 본거지는 그대로 있고, 계속 전이가 되면서 몸 구석구석에 암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던 거예요. 그러자 담당의사 선생님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되겠다 싶었든지 항암치료는 할 수 없고, 그 대신 방사선 치료는 해보자고 하더군요.”
2001년 위 림프종양이 발견된 후 4년 만에 비로소 병원에서 행하는 암 치료법을 받게 됐다는 이순옥 씨. 하지만 방사선 치료는 그녀를 죽음 문턱까지 이르게 할 정도로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6번의 방사선 치료, 그리고 그 후
이순옥 씨의 이웃절친 임예빈 씨는 이순옥 씨가 호평동 스타라고 말한다.
암이 여러 군데 있기 때문이었을까? 이순옥 씨는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오히려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한다.
“먹지도 못하고, 거동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사람들은 모두 저를 죽을 사람으로 여길 정도였어요.”
암 부위가 여러 군데다 보니 방사선 강도를 세게 한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세상에 이런 고통도 있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고통도 끝은 있었다. 고통스런 6회의 방사선 치료가 끝났고, 이때부터 이순옥 씨는 전국 방방곡곡 좋다는 곳을 찾아다니며 요양생활을 했다고 한다. 집도 서울 방이동에서 공기 좋은 경기도 남양주로 옮겼다. 어떻게든 암과 사이좋게 공존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런 염원 덕분이었을까?
2011년 8월, 6개월마다 한 번씩 가는 정기검진에서 이순옥 씨는 또 한 번의 기적과 만나게 된다. 암의 발원지였던 위 림프종양이 사라졌다는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방사선 치료 후에도 몇 군데 더 전이가 돼 갑상선에 2개, 겨드랑이에 2개, 사타구니에 1개 등 5개의 암세포가 몸 구석구석에 퍼져 있었는데 그것들이 성장을 멈춘 것으로 나타난 거예요.”
그것은 2013년 5월 현재까지도 그 상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 이순옥 씨.
그녀는 믿고 있다. 하나님의 쓸모에 의해 오늘의 자신이 있다고. 그래서 늘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고, 덤으로 사는 삶 봉사하며 살고 싶어한다.
“지금의 제게 있어서 암은 나와 더불어 평생 동고동락 해야 할 친구이자 동반자로 여겨요. 미워할 것도 없고, 또 몸속에 있다고 해서 크게 걱정하지도 않아요. 암도 살려면 제가 살아야 하니까 섣불리 행동하지 않으리라 믿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순옥 씨는 하루하루 마음을 비우고 오늘 하루 즐겁게 사는 데 최선을 다한다. 어제의 일은 어제의 일일 뿐이다. 그날그날 최선을 다하며 살고자 한다. 인터뷰 장소에 함께 따라나온 이웃절친 임예빈 씨(60세)는 “연세도 있으신데 몸을 사리지 않고 동네일에 발 벗고 나서서 적극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감탄스럽다.”며 “아마 그 기세에 눌려 암세포도 꼼짝 못하는 것 같다.”고 거든다.
호평동 마당발 이순옥 씨가?암과 행복하게 동행하는 노하우
1. 매사 긍정적으로 살기
배신을 당해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생각한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다음에는 좋은 일이 생기겠지 여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살아 있기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것! 오늘 살아 있다는 사실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긴다.
2. 신앙은 나의 ‘힘’
오늘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살려주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고 봉사하는 삶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다.
3. 가리지 않고 잘 먹되?감사한 마음으로 먹기
암을 고친 사람들은 무얼 먹었을까?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이지만 이순옥 씨는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라고 한다. 현미, 채식을 기본으로 하여 화학조미료 안 쓰고, 싱겁게 먹는 것 외에 특별한 건강식은 없다고. 그 대신 밥 한 톨을 먹을 때도 농부의 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