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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희망가] 악성 림프종에 전립선암까지 복합암 환자로 불리는 윤화숙 씨 체험고백

2014년 02월 건강다이제스트 봄빛호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가슴으로 전해지는 먹먹함…. ?‘꼭 그래야만 했을까?’ 자꾸만 반문하게 만드는 사람.?피로 이어진 인연도 스스로 끊어내고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를 나홀로 견뎌온 사람.

전남 순천의 한 요양원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난 윤화숙 씨(64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엎친 데 덮친 불행 앞에서도 결코 기죽지 않았던 사람. 어느 날 느닷없이 악성 림프종에 전립선암 진단까지 받아 복합암 환자가 되었지만 너무도 당당히 맞서온 주인공이다.

그랬던 그가 지금 하루하루 새로운 기적을 써내려가고 있다. 사는 암의 증거가 되고 있다. 죽는 암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던 용기가 사는 암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 비결은 과연 뭐였을까?

세계를 누비던 사람

윤화숙

젊은 시절 야망은 하나의 특권이다. 성공하고 출세하고 명예를 얻고…. 다들 야망 하나씩은 가슴에 품고 젊음의 열기를 발산한다. 윤화숙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곡물 유통을 하고 천연 면역제 개발에도 뜻을 두면서 늘 하루가 짧았다.?

천성적으로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격, 놀아도 열심히 놀고 일을 해도 열심히 하는 성격까지 더해지면서 그는 소위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교포’로 입지도 다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몸이 좀 이상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 시트가 흠뻑 젖어 있을 정도로 식은땀을 많이 흘렸어요. 거기에다 빈혈기도 있고, 피부소양증도 심하고…. 너무 무리해서 그런가 보다 했어요.”

그래서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1996년 46세 때까지의 그는 돈 버느라 바쁘고, 성공을 위해 불철주야 세계를 누비는 일이 더 중요했다. 그것이 인생의 정답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 뒤, 그때 나타난 증상이 불행의 전주곡이었음을 깨달았을 때는 감당 못할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산산조각 난 삶

미국에서 소위 성공이라는 것도 하고, 돈도 원 없이 벌어보고…. 그래서 1998년 귀국길에 올랐던 윤화숙 씨. 귀국 후에도 그의 삶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면역물질 개발에 성공하면서 공장도 차리고 마케팅을 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또다시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는 성격이 고개를 들었고, 오래지 않아 그는 회사 3개를 운영하는 CEO가 되었다.

“딱 거기까지였어요. 회사 3개를 운영하며 너무도 바쁘게 살던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면서 제 삶은 산산조각이 났으니까요.”

2008년 2월 초, 길을 가던 그는 갑자기 쓰러지게 된다. 그러면서 턱뼈가 두 군데나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부랴부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수술을 받았지만 쓰러진 이유는 좀체 알 수 없었다. 이것저것 검사를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밝혀진 병명! 충격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담당의사의 말은 어렵고 장황했지만 정리하면 간단했다.?

1. 암의 첫 발생 부위는 턱밑이고,

2. 림프절이 있는 데서 종양이 처음 발생했고,

3. 정식명칭은 림프절 변연부 B세포 림프종이며,

4. 지연성 비호지킨 악성 림프종의 일종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종양이 장기를 타고 내려가 이미 엉덩이 골수까지 전이가 됐다는 거였다. 골수에 있는 조혈모세포까지 암이 전이된 4기 암 환자라고 했다. 그래서 피를 만들지 못하게 되어 빈혈이 나타났다는 거였다.
믿을 수 없었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사람을 4기 암환자라니…. 이미 골수까지 전이가 돼서 치료를 안 하면 수주 내지 수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니…. 정신이 몽롱했다. 꿈결 같았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이 쉰여덟에 윤화숙 씨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오싹한 절망과 마주해야 했다.

엎친 데 덮친 불행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발견 당시 4기 암 환자…. 그런 때문이었을까? 치료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았다.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는 할 수 없고, 항암치료는 해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윤화숙 씨는 망설였다.?

항암치료를 한다 해도 거의 대부분이 2~70개월 사이에 또다시 재발하고, 진행기와 휴지기를 거듭하다 결국 불응기를 맞아 사망하는 수순을 밟는 암이었다.

“그러니 그냥 포기하자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당시 담당의사가 표적치료제가 나왔다면서 임상시험을 한 번 해보자 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그 선택은 분명 도움이 됐다는 게 윤화숙 씨 생각이다. 표적치료제의 임상시험 결과 6개월 만에 영상의학적으로 완전 관해라는 판정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완전 관해란 완치는 아니지만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의학용어다.

“그러자 한 가닥 희망이 생기더군요. 어쩌면 완치라는 의외의 선물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

그러나 그 기대는 얼마 되지 않아 무참히 깨졌다. ‘악성 림프종 완전 관해’라는 판정을 받은 지 4개월 만에 산산이 부서졌다. 2009년 1월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비록 나타난 증상은 없었고, 전립선암의 지표가 되는 PSA 수치도 5 정도로 별로 높지 않았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전립선암 진단을 받아야 했다. 설상가상 손을 써보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었다.

“악성 림프종이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전립선암 치료를 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비록 완전 관해가 되었다 하더라도 2개월에서 70개월 사이에 거의 100% 재발하는 악성 림프종의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포기했다. 전립선암은 어떤 대책도 세울 수 없었다. 그저 전이만 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윤화숙 씨는 신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인연도 끊어내고 산속으로 들어가다

윤화숙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악성 림프종, 언제 전이될 지 모르는 전립선암.

인생 오십 줄 끄트머리에서 만난 두 적수 앞에서 윤화숙 씨는 모진 결심을 하게 된다. 피로 이어진 인연의 끈을 끊어내는 일이었다. 가족들과의 인연을 정리하고 홀로 산속으로 들어갔다.

“서로가 보면 가슴 아프고 괴롭고…. 그 괴로움은 저만 감당하고 싶었어요. 저 때문에 가족들이 피해를 입는 것이 싫었어요. 그래서 가족들에게 이별을 고하고 전화번호도 바꾸고 영정사진만 들고 산속으로 들어갔어요.”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 나선 그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산속에 텐트를 쳤다. 야외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그의 삶은 평범함과는 많이 달랐다. 자연 속의 한 점으로 살았다. 이때 윤화숙 씨가 실천했다는 산속 생활은 다음과 같다.

1. 산나물을 캐서 먹을거리로 삼았다. 3~4월에 산나물을 캐서 저장해놓으면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었다.

2. 산에 오래 머물기 위해 헛수고를 많이 했다. 하루는 산길을 내고, 또 하루는 계곡물을 끌어들여 정원을 만들었다가 허물기도 하고…. 산에 있는 것이 지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헛수고도 참 많이 했다. 그러다보면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일 수가 있고, 잡념도 없어졌다.?

3. 투병일기를 꼬박꼬박 썼다. 그날그날의 감회를 썼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에세이 형식으로 썼다. 마음을 가다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렇게 써온 투병일기는 현재 1000편을 넘어선 상태다.

여기에 더해진 그만의 특별한 시도 하나 더! 그것은 재발률 높은 악성 림프종의 악명을 무력화시킨 방어군 역할을 했다고 그는 믿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천연 면역제 개발에 몰두했던 그였다. 그래서 생각했다. ‘천연물에서 유래된 성분으로 무독성 천연 항암물질을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 같은 그의 생각은 어렵지 않게 실현시킬 수 있었다. 우리 주위의 700여 종 자연물에 들어있는 천연 성분을 활용해 무독성 항암물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항암물질의 작용 기전은 암세포도 어릴 때는 세포막이 약하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만든 물질이었어요. 그때 이 약물을 쓰면 암세포의 내압이 증가하면서 자살을 하게 만드는 원리였죠.”

그런데 한 가지 결점이 있었다. 정상세포도 같이 죽일 수 있다는 거였다. 특히 조혈모세포와 소화관 점막세포도 함께 죽일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소발효액에 타서 마시고 음식에 첨가해 먹어보기도 하면서 2013년 10월까지 계속했다.
“지금은 잠시 중단한 상태입니다.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수치가 정상 이하로 내려가서 휴식기를 갖고 있지만 조혈모세포에 영향을 미치는 부작용이 나타난 것을 보면 분명? 암세포를 자살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부작용이 해소될 때까지만 중단했다가 다시 할 생각이다. 재발률 높기로 악명이 높은 악성 림프종이 5년이 지나도록 재발하지 않고 무병으로 보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차피 덤으로 사는 삶 ?하루하루 최선 다할 뿐!

높은 재발률 때문에 악명이 높은 악성 림프종을 5년 동안 잠자게 만든 윤화숙 씨. 다들 이 같은 결과에 놀라워한다. 그리고 궁금해 한다. 비결이 뭐냐고?

하지만 윤화숙 씨는 이런 반응들이 부담스럽다. 지난 5년 동안 거의 방치하다시피 해온 전립선암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전립선암은 그동안 상태가 많이 나빠졌을 거예요. 그동안 수술을 하자는 권유는 있었지만 그냥 두었거든요.”

지금의 그에게는 악성 림프종도 전립선암도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2008년 이후의 삶은 덤으로 사는 인생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가 한 노력이 효과가 있으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욕심 부려서 될 일은 아니라는 걸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그저 오늘 주어진 하루를 즐겁게 살고 최선을 다해 살 뿐이라고 말하는 윤화숙 씨. 무엇이 그에게 이 같은 깨달음을 주었을까?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다가?한 점 원소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

악성 림프종에 전립선암까지…. 비록 복합암 환자가 되었지만 너무도 의연한 행보를 보여 모두를 놀라게 하는 윤화숙 씨. 그런 의연함의 출처는 어디일까?

“암 진단을 받고 분노, 상심, 체념 등 누구나 겪는 수순을 저 또한 겪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자 우리 인생도 대나무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10년 단위로 볼 때 대부분 7마디 정도를 사는데 그 중에서 5마디 정도 잘 살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비록 2마디는 좋지 않지만? 5마디는 잘 살았고, 성공적으로 살았고, 행복하게 살았으니 그것으로 됐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생각하자 억울할 것도 없었다. 마음이 너무도 편안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은 삶과 죽음까지도 달관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복합암 진단을 받고 그 암과 더불어 살면서 예전에는 결코 생각지 못했던 걸 알게 됐던 것이다.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삶이란 시간적, 공간적으로 극히 미미한 ‘찰나’라는 것, 그래서 50년을 살든, 90년을 살든 억겁의 세월 앞에서는 한 점으로 표시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조금 더 살고, 조금 덜 사는 것이 그리 애달플 것도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런 때문일까? 윤화숙 씨는 결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삶도 그렇고, 치료도 그렇다. 욕심을 자제하고 무리없는 삶을 살고자 한다.?

오늘도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삶과 죽음까지도 달관한 채 오로지 오늘 하루의 의미를 소중히 여기는 윤화숙 씨.

그에게 조금의 행운이 있어 2020년까지 건강수명을 누리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설사 그 이전에 이 세상의 소풍이 끝난다 할지라도 한 점 미련이나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바람과 구름이 되어 기쁜 마음으로 이 우주 속의 한 줌 원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살아있음의 의미를 찾기 위해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최근 암 환자 권익연맹을 결성해 ‘암환자 장애 등급 판정 확대’를 촉구하는 활동을 시작한 것도 그 일환입니다.”

손가락이 잘려도 장애 등급을 받는데 암 환자들은 내장을 다 덜어내고도 장애 판정을 못 받는다. 그러니 일상생활 곳곳이 암초다. 갖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시급한 것이 암 환자의 장기 손상에 따른 장애등급 판정을 해달라는 것, 장애등급 인정으로 최소한의 복지 혜택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 일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낼지 알 수는 없어요. 그러나 그 결과에 상관없이 암 환우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어요.”

다른 누구를 위한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되는 일이기에 지금 이 시간에도 윤화숙 씨는 각계각층에 암환자 장애등급 판정 확대를 촉구하는 호소문도 보내고, 강연도 하면서 아낌없는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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