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기옥 기자】
【도움말 |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웅구 교수】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라는 말이 있다. ‘육류 위주의 고지방 식사를 하는 프랑스인들의 심장병 발병률이 이유 없이 현저하게 낮은 현상’을 일컫는 말인데, 의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프랑스인들이 식사 때 마시는 적포도주 속의 레스베라톨(resveratol) 등의 항암성분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처럼 몸에 좋을 것이 하나도 없는 백해무익한 담배와는 달리 술은 적당량을 마시면 건강상의 이점이 있다. 따라서 담배는 누구나 끊어야 하지만, 술은 모든 사람이 끊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절주는 어떤 사람들이 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방법을 소개한다.
절주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
음주의 건강상 이점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술을 먹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이유는 사람들 대부분이 건강에 좋다는 그 ‘적당량’을 곧잘 넘어서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 문제는 차치해 두고 우선적으로 절주가 반드시 필요한 유형을 중심으로 그 절주법을 다루고자 한다.
절주가 필요한 사람은 알코올 의존도가 높은 사람, 즉 알코올 중독의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다. 알코올 중독의 진단 기준은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느냐가 아니다. ‘술을 얼마나 절제할 수 있느냐’이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웅구 교수는 “필요에 따라서 술을 안 먹을 수 있다면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신다 해도 알코올 중독은 아니다. 그러나 마시면 안 되는 상황에서도 절제하지 못하고 마신다면 그건 ‘알코올 중독’이라는 병”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술을 절제하기 어려운 사람이 바로 절주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절주가 필요한지를 알아보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이 있다.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대개는 두 달 정도 술을 끊어도 술 생각이 안 나고 부담 없이 술을 끊을 수 있다면 알코올 중독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절주가 필요한 두 가지 유형
● 술 체질인 타입: 술 체질인 타입은 간단히 말해 술 한 잔으로 술자리를 끝낼 수 없는 사람이다. 안 마실 때는 전혀 안 먹기도 한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두 달까지 술을 안 마실 수 있고, 그 기간에 술 생각도 안 한다. 그러나 한 잔 먹기 시작하면 절제하지 못하고 몇날 며칠 출근도 안 하고 몸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마시면서 끝장을 보는 타입이다.
● 찔끔찔끔 마시는 타입 : 찔끔찔끔 마시는 타입은 말 그대로 소량의 술을 자주, 늘 마시는 타입이다. 강웅구 교수는 “이런 타입은 한꺼번에 많은 양을 먹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중독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끼니 때 한 잔 먹는 정도’라고 가볍게 여길지 모르지만 그 양을 실제로 계산해 보면 하루에 술 한 병 이상을 매일 먹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술을 물리치는 절주법
1. 절주를 위한 주요 전략 4가지
술을 안 마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웅구 교수는 4가지 지침을 권한다.
첫째, 집에 있는 술을 다 치워라. 둘째, 귀가할 때 술집에 들르지 말고 술 외에 다른 할 일을 해라. 셋째, 만나서 술만 마시게 되는 친구는 만나지 마라. 넷째, 자신의 음주 패턴을 모니터링 하라.
대부분 친목도모나 취미생활의 일부로 술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것이 과해지면서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술로 취미생활을 시작했다면 술을 끊기 위해서는 다른 취미생활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술에 대한 집착도 덜하다.
또한, 자신의 음주 패턴을 살펴보면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음주일지를 써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간단하게는 달력에 음주한 날을 표시하는 것도 좋고, 좀 더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얼마나 먹었는지를 적으면 더욱 좋다.
2. 유형별 절주법 응용
● 술 체질인 타입일 때 : 이 타입은 알코올 중독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유형이기 때문에 주된 절주 대상이다. 소위 ‘발동’ 걸리면 몸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끝장을 보는 타입이지만 술을 접하지 않으면 술 생각도 전혀 안하기 때문에 이 타입의 유일한 치료법은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
강웅구 교수는 “알코올 중독은 감염증과 똑같아서 이런 타입이 술을 자주 접하게 되면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사람이 병에 걸리듯이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된다.”며 “이를 인식한 어떤 환자는 아예 직업을 바꿔 술을 접하기 어려운 사우디아라비아로 간 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직업을 바꿔야 할 정도로 이 타입은 알코올 중독에 취약하지만 동시에 술을 피하는 것이 가장 단순하고 확실하게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또한, 이 타입은 전문의를 찾아가 술을 마시더라도 발동이 걸리지 않도록 조절해주는 약물치료를 받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 찔끔찔끔 마시는 타입일 때 : 이 타입은 술 체질인 타입과 전혀 다르다. 이 유형의 대부분은 우울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한 기분을 없애려고 술을 마시지만 그 후에는 오히려 우울증이 더 심해지고 그래서 또 술을 찾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강웅구 교수는 “이런 타입은 술을 끊는 치료보다 우울증 치료만 해도 술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한다. 만약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면 조울증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 우울증 치료를 받도록 하자.
절주가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금단 현상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경우 혈중 알코올 농도가 일정량 유지될 때 몸이 제 기능을 하도록 세팅된다. 그래서 혈중 알코올 농도가 떨어지면 몸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어 금단현상이 생긴다. 가장 흔한 금단 증상 중 하나가 불면증이다. 잠을 자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경우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잠을 잘 수 있게 하는 약물치료를 통해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3. 절주를 도울 사회적 대안
알코올 중독에 관한 사회적 대안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강웅구 교수는 “오후 10시 이후 마트에서의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아침부터 영업하는 술집은 없지만 동네의 마트에서는 아침에도 주류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술집보다는 동네 마트에서 시행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정책은 이미 외국에서도 시행하고 있다. 10시 이후 주류 판매를 금지하면 절주가 필요한 사람들이 미리 술을 사두고 마시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시기 전에는 ‘그래도 오늘은 적게 마셔야지.’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대개 그날 마실 술을 그날 산다. 따라서 10시 이후의 주류 판매 금지가 알코올 중독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알코올 중독에 관한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그러나 거기에는 편견과 오해가 있을 수 있다. 강웅구 교수는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은 못된 성격을 개조해야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술을 마시면 끝까지 가게 되어 있는 체질을 타고난 것”이라며 “이는 고혈압 환자가 체질적으로 고혈압에 걸리는 것과 비슷하기에 알코올 중독을 방지해 줄 약물치료와 술에 노출이 되지 않는 생활방식으로의 전환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강웅구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고, 현재 서울대 의대 교수이자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와 알코올클리닉에서 진료 중이다. 알코올 의존과 약물 의존을 전문으로 진료하고 있으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한중독정신의학회 등에서 활동 중이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폭넓은 정신건강정보를 알리고 있다.
(* 서울대병원의 알코올클리닉은 외래중심으로 이뤄지며, 경우에 따라 해독치료를 위한 단기간의 입원치료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