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삶과 죽음은 하느님의 뜻… 그 뜻대로 살았을 뿐입니다”
스물여섯, 한 남자는 결심했다. 하느님 안에서 살고자 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래서 선택한 길…수도자의 길. 청빈과 정결을 온몸으로 실천하며 예수고난회 수도자의 삶을 평생 살아온 박용철 수사(64세).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느닷없이 닥친 불행은 혹독했다. 이름도 생소했다. 악성 구강세포암이라고 했다. 결코 낙관적이지 못한 상황! 뇌로 전이되면 기껏해야 1개월이고, 간으로 전이되면 3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숱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수술도, 치료도 모두 포기하고, 삶과 죽음까지도 연연해하지 않았던 그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악성 구강세포암 진단을 받은 지 3년이 지난 지금 악성 구강세포암은 없어지고, 깨알만 한 것이 임파선에 남아있다는 놀라운 결과의 주인공이 됐던 것이다. 좀체 믿어지지 않는 결과 앞에서 박용철 수사는 담담히 말한다. “암은 앎을 위한 신의 가장 위대한 선물이 됐다.”고. 그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봤다.
운명처럼 선택한 수도자의 길
‘도밍고’라는 세례명으로 더 많이 불리며 살아온 박용철 수사. 일찍부터 신앙은 그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힘이었다.
그것은 그가 충남 당진 합덕이라는 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마을 전체가 세례명으로 불릴 만큼 천주교의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었다.
그래서 마치 운명처럼 선택했던 수도자의 길! 그 선택은 그에게 최고의 기쁨이 되어주었다고 말한다. 청빈한 삶, 정결한 삶을 살며 늘 하느님의 뜻으로 사는 삶을 축복으로 여겼다. 그랬던 그의 삶에 첫 시련이 닥친 것은 파푸아뉴기니로 3년간 선교활동을 다녀온 후부터였다. 건강이 발목을 잡으면서부터였다.
3년간의 선교활동 풍토병을 얻다!
1996년 3월. 박용철 수사는 인도네시아 보루네오섬 바로 밑에 있는 파푸아뉴기니로 선교활동을 떠났다. 나이 마흔여섯에 힘들고 고통스런 체험을 해보자며 나선 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파푸아뉴기니는 가장 힘든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먹을 것도 없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최고의 위험지역으로 꼽혔다.
그래서 오히려 파푸아뉴기니를 선택했다는 박용철 수사. 이때부터 그의 삶은 하루하루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했다. 먹을 것이 없어 굶기는 다반사였고, 원주민들에게 선교활동을 하는 것도 생명을 내놓고 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3주 동안 먹을 것이 없어 굶어본 적도 있어요. 있으면 먹고 없으면 빗물 받아먹고… 그렇게 3년간의 선교활동을 마쳤을 때 몸은 많이 달라져 있었어요.”
78kg이던 몸무게는 41kg으로 줄어들었고, 뼈만 앙상하게 남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3년간의 선교활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박용철 수사가 제일 처음 들은 말은 “살아있는 게 기적입니다.”였다. 검진을 마친 의사가 한 말이었다.
몸의 기능이 전반적으로 쇠약해져 있다고 했다. 기가 빠져나갔다고 했다.
하루하루를 링거에 의지하며, 다시금 건강을 되찾기 위해 애썼지만 한 번 망가진 몸은 좀체 회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각종 이상 증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면서 그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제대로 먹지를 못한다는 거였어요. 두어 숟가락만 먹으면 위가 그득해서 더 이상 음식이 먹히지 않았으니까요.”
장 협착증이 나타났던 것이다. 너무도 오랫동안 먹다 안 먹다를 반복한 후유증 때문이기도 했다. 여기에다 손발 떨림까지 심했다. 특히 저녁만 되면 온몸에 미열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병원도 가고 한의원도 갔지만 다들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붙여진 병명은 ‘풍토병’이었어요.”
그러니 병원에서 해줄 것도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영양제와 소화제 처방이 다였다.
그런 와중에도 피정강연을 하고 설교만은 결코 게을리 하지 않았던 박용철 수사. 손발 떨림이 너무 심할 때는 소주 한 컵을 먹어가며 피정강연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3년 정도 계속됐을 때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하루하루 생명이 타들어가듯 위태로워보였고, 설상가상 알코올 중독 증상까지 나타났다. 그런 그에게 우연히 다가온 한 인연은 또 하나의 축복이 되었다.
자연요법을 알게 되면서…
밥 한 공기도 먹을 수 없는 몸. 온몸에 나는 미열과 손발 떨림…. 풍토병이라 불리는 증상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한번은 자연요법 전문가 한 분이 피정 강연을 들으러 오셨는데 저더러 단식요법을 한 번 해보라고 권하더군요.”
박용철 수사는 그 말이 그리도 반가울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를 보면 만나는 사람마다 뭘 먹으라고 했는데 먹지 말라고 하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는 것.
곧바로 단식에 돌입했다. 일주일 코스의 단식이 시작됐다. 그리고 5일째 되던 날, 박용철 수사는 환호했다.
“배가 고프기 시작했던 겁니다. 근 4년 동안 전혀 느끼지 못했던 배고픔이었어요.”
박용철 수사는 “7일간 단식을 끝내고 미음을 먹는데 그 한 공기가 하도 맛있어서 단숨에 먹어버렸다.”고 말한다. 비로소 입맛이 돌아왔던 것이다.
그 후의 일은 박용철 수사에게 지금도 불가사의하게만 느껴진다. 단식을 끝낸 후부터 현미 생채식을 시작했는데 그런 생활을 하면서 하루하루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손발 떨림이 잦아들었고, 온몸에서 나던 미열도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제대로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극적인 변화였어요.”
그런 덕분이었을까? 그로부터 7개월 후 그렇게도 요지부동 41kg이던 몸무게가 59kg까지 불어났다고 한다. 그것이 신호였다. 건강의 큰 물줄기를 바꿔놓았다.
?“비록 온몸에 나던 미열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견딜 만했고, 손발 떨림도 없어졌으니까요.”
그래서 더 열심히 더 열정적으로 피정강연을 했고, 그런 그에게 피정설교를 부탁하는 요청도 쇄도했다. 그런데 누가 시샘이라도 한 걸까? 그로부터 2년 뒤 박용철 수사는 또 한 번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
악성 구강세포암입니다!
2012년 11월은 박용철 수사에게 잊지 못할 달이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고통을 통해 더 큰 기쁨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란다. 이름도 생소한 악성 구강세포암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기쁨이라니? 이 같은 반문에 박용철 수사는 “그동안 숱한 피정지도를 하면서 암환자의 고통도 늘 가슴 한 켠 아픔으로 남아 있었다.”며 “그럴 때마다 암 환자의 고통을 제가 앓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도 많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뜻이 받아들여졌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런 때문일까? 잇몸이 아파 간 치과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을 때도, 또 대학병원에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별의별 검사를 다한 후 이름도 생소한 악성 구강세포암이라는 진단을 내렸을 때도 그는 의연했다. 검사 결과를 앞에 놓고 담당의사는 말했다.
?“수사님, 악성 세포암이어서 하루빨리 수술을 해야 합니다. 아직 전이가 안 된 상태이지만 만약 뇌로 전이가 되면 많이 살아야 1개월이고, 간으로 내려가면 3개월밖에 살지 못합니다.”
하지만 박용철 수사는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았다. 수술 일정도 잡지 않았다. 삶과 죽음은 이미 그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하느님의 뜻으로 살고 하느님의 뜻으로 죽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수술 대신 그가 선택한 방법은 자연요법이었다. 일찍이 풍토병을 자연요법으로 효과를 본 터라 망설임 없이 단식부터 돌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단식 3일째 되던 날, 귀밑에서부터 오른팔 전체에 퍼져 있던 통증이 사라졌을 때 그는 직감했다. 자연요법에서 희망을 보았다고 말한다.
자연요법은 하느님의 요법
악성 구강세포암 진단을 받았던 박용철 수사는 “자연요법이야말로 하느님의 요법”이라고 말한다. 하느님이 주신 먹거리를 먹고, 하느님이 주신 자연치유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어 주었다고 말한다. 뇌로 전이되면 1개월, 간으로 전이되면 3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병원 진단을 보기 좋게 빗나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이도 없이, 오히려 나날이 암세포를 작게 만들고, 결국에는 보이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12년 12월부터 박용철 수사가 하느님의 요법이라 철썩 같이 믿으며 실천했다는 자연요법은 과연 뭐였을까?
악성 구강 세포암 굴복시킨 자연요법은…
1. 암까지 허락한 신에게 감사함 갖기
풍토병에 이어 암까지 허락한 신의 뜻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도하면서 그 뜻이 무엇인지 그 해답을 구하고 또 구하면서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암 환자의 고통을 대신하고 싶다는 그의 기도에 대한 신의 답으로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2. 완전 채식주의자로 살기
고기, 생선은 일절 끊었다. 곡식과 풀을 하느님의 선물로 여기며 먹었다. 아침에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풀과 채소, 과일 몇 조각, 고구마, 감자 등을 채썰어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한 잔 마시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런 반면 두 끼 식사는 현미+칠곡밥을 해서 먹었다. 현미+현미찹쌀+찹쌀보리+흑미+검은콩+노란콩+ 팥 등을 섞어서 밥을 해서 먹었다. 저녁에는 밥하고 각종 풀과 채소를 반찬으로 만들어 먹었다.
3. 하루 4~5회 풍욕하기
잠자리에서 일어나 새벽기도를 마친 후 혹은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하루 4~5회 풍욕하기는 빼놓지 않은 일과였다. 옷을 모두 벗고 온몸에 공기 목욕을 하는 풍욕은 노폐물 배설과 신선한 산소 공급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심리적 면역력도 높여주고, 컨디션 조절에도 효과적이었다.
4. 매일매일 각탕·냉온욕하기
대야에 물을 담고 종아리까지 담그는 각탕요법, 또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가며 하는 냉온욕도 열심히 한 자연요법이었다.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독소 배출에 큰 도움이 되었다.
5. 일주일에 한 번씩 된장찜질하기
배에다 된장찜질을 하면 장의 독소를 빼내면서 모든 장기를 조화롭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꼭 실천했다.
박용철 수사는 “자연요법이라 이름 붙여진 방법들은 대부분은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어서 좋았다.”며 “그래서 하느님의 선물로 여기고 열심히 실천했다.”고 말한다.
그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한 달에 한 번, 3개월에 한 번, 6개월에 한 번씩 받는 정기검진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전이도 없이, 심지어 악성 구강세포암의 크기가 검사를 할 때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결과를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2013년 11월의 정기검진 결과는 의사들도 놀라게 만들었다.
“악성 구강세포암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어요. 다만 깨알만 한 것이 임파선에 남아있는 정도라고 했어요.”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여기는 박용철 수사. 자연요법은 하느님이 그에게 준 치료법으로 여기고 있다는 그는 전하는 메시지도 조금 특이하다.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말라는 당부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 삶은 기쁨은 기쁨대로, 고통은 고통대로 각자의 의미를 지닌 채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그에게 악성 구강세포암은 앎을 위한 신의 가장 위대한 선물이 되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