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의학과 의술을 겸비한 의사가 미래의학을 열 수 있습니다”
위염, 위궤양에 관한 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사람! 그 여세를 몰아 위암, 대장암 전문의로도 톡톡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사람! 임상의사로서는 특이하게 개인 연구실을 갖추고 있는 사람! 그래서 일주일에 이틀만 환자를 보고 나머지 시간은 오로지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
분당차병원 소화기내과 함기백 교수(56세)는 조금 유별난 사람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의료인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국내 최초로 위염 신약을 개발해 공전의 히트를 시킨 주인공이고, 지금은 위암예방이 가능한 김치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환자 보는 의사보다 연구하는 의사로 더 유명한 그는 의학과 의술의 접목을 통해 새로운 미래의학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저력은 과연 뭘까?
어떤 충격
위장내과 전문의로 의료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함기백 교수. 그것은 1980년대의 시대상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당시만 해도 한국인의 병 하면 위장병이 대세였다. 못 먹고, 영양상태 나쁘고…그러다보니 위궤양 환자, 십이지장궤양 환자가 넘쳐났다. 그래서 의학의 꽃도 단연 내과였다. 소화기내과가 각광을 받았다.
함기백 교수가 위장내과를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한국인의 고질병인 위장질환을 잘 고치는 의사가 돼보자.’ 결심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행보는 1990년 일본 위장병학회에 참가하게 되면서 중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일본의 임상의사들이 하나둘 나와서 연구 실적을 발표하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환자 보는 의사가 기초의학 연구도 하고, 실험까지 한 연구실적을 발표했던 겁니다.”
충격이었다. 임상의사의 주임무는 환자를 보는 거였다. 연구하고 실험하는 의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일본 의사들은 환자를 보면서 연구도 하고 실험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충격은 그 후 미국의 대학병원을 방문하면서 극에 달했다. 일본과 미국 대학병원의 임상의사들은 일주일에 하루만 진료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연구실에서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함기백 교수는 비로소 알게 됐다고 말한다. 소화기 관련 약제의 70%가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비밀을. 소화기 관련 논문은 미국대학병원에서 주로 발표되는 이유를. 위장병이 국민병이다시피 한 우리나라에 변변한 위장약 하나 개발돼 있지 않은 이유를.
“그래서 결심했어요. ‘나도 저런 길을 가야겠다.’ ”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서 임상의사가 일주일에 하루만 진료를 본다는 건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대학병원에서조차 그랬다. 하는 수 없이 새로 생긴 신설 대학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환자는 적게 보고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연구실 운영은 전적으로 그의 몫이었다. 월급을 털고, 사비를 들여서 연구실부터 마련했다. 그리고 시작했다. 위장병 연구를 시작했다. 위궤양이나 위염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치료할 수 있는 약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그랬던 행보는 결국 하나의 쾌거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약을 개발해냈던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위염 치료제인 스티렌은 그렇게 해서 세상에 그 등장을 알렸다.
의학과 의술을 겸비한 의사, 개척자 되다
임상의사로서는 특이하게 개인 연구실을 갖추고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의 접목점을 찾아온 함기백 교수.
그런 때문일까? 그는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하고 있는 사람이다. 의학과 의술을 겸비한 의료인으로 자자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래서 일주일에 이틀은 폼 나게 의사가운 입고 환자들을 진료하지만 나머지 시간은 후줄근한 모습으로 연구실에 틀어박혀 산다.
그는 의사가 환자만 보는 기계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의사 중 40% 정도는 일주일에 진료는 하루나 이틀 정도만 보고 나머지는 연구실에서 연구를 해야 한다는 주의다.
“그래야 병원에서 손 놓은 환자도 살릴 수 있습니다. 위암을 예로 들어볼까요? 운이 좋아 초기에 가면 수술 잘하는 의사가 수술을 잘해 줍니다. 그러나 위암 환자의 30%는 진단이 늦어져서 번졌다며 병원에서 해줄 게 없다고 합니다.”
진정한 명의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게 함기백 교수의 입장이다. 대학병원이나 국립병원에서는 누구나 수술하면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치료할 게 아니라 난치성 질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실험해서 6개월 살 것을 1년 살게 해주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수술 잘하는 의사는 너무도 많지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연구하는 의사는 드물다며 안타까워하는 함기백 교수.
그래서 그가 지금껏 걸어왔고, 앞으로 가고자 하는 길도 하나다. 의학과 의술을 겸비한 의사다. 기초의학을 임상의학에 접목시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일러 우리는 ‘중개의학자’라 부르기도 한다.
위장병 대가에서 암 예방 전문가까지
편한 의사의 길을 버리고 기꺼이 선구자의 삶을 살아온 함기백 교수. 그런 노력 덕분일까? 그는 세계 의학계가 주목하는 사람이 된 지 오래다. 한국에서 위염, 위궤양 연구를 가장 많이 하는 의료인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끊임없이 쏟아내는 연구실적 때문이다. 세계 학회에 발표하는 학술논문만 해도 일 년에 20여 편이 넘는다.
그런 그가 지금 또 한 번 연구의 중요한 변곡점을 찍고 있다. 위암, 대장암 전문의로 거듭나며 탄탄한 입지를 구축 중이다.
함기백 교수는 “위염, 위궤양이 암으로 진전되는 병이고 그것을 막는 연구를 하다 보니 위암, 대장암은 자연스럽게 연구 대상이 되었다.”며 “위암과 대장암만 정복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암 역사는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남녀를 통틀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이 위암이고, 최근 들어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암이 대장암이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그의 암 연구는 전방위적이다. 차의과학대학교 차암예방연구센터에서 센터장을 맡고 있으면서 항암식품 개발에서 줄기세포 치료까지 한계점이 없다.
오메가-3가 위암·대장암을 막을 수 있나부터 김치를 담글 때 항암성분을 추가해 만든 일명 ‘항암김치’ 개발도 목전에 두고 있다. 또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대장암의 발생을 조절할 수 있는 첨단의학까지 총망라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연구를 통해 암 예방법을 찾아내고 있는 그에게 우리 모두가 하나같이 듣고 싶은 말을 물어봤다. “위암, 대장암을 미리미리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TIP. 위암 예방은 이렇게~>
1. 가족력을 잘 살펴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모든 암은 유전적 배경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가족 중에 위암 환자가 있을 경우 가족력이 없는 사람보다 3~10배 이상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위암 발생 요인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위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는 것이 좋고 식사조절도 꼭 필요하다. 반드시 싱겁게 먹어야 한다.
2. 소화불량이라고 단순히 넘기지 말자
위암은 위 염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염 상태가 암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종류인지 전문의와 꼭 상의해야 한다.
3. 가능한 한 싱겁게 먹고, 위에 좋다는 음식에 현혹되지 마라
위암 예방을 위해 중요한 것은 위암에 좋다는 어떤 특정 식품만 먹는 것은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집 음식이 저염 식사인지를 체크해야 하고, 위장기능을 돕기 위해 천천히 먹고 즐겁게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남이 좋다는 음식을 따라 먹지 말자. 위에는 어떤 식품이 좋다는 말도 잊어라. 음식의 종류보다는 싱겁게 먹고, 즐겁게 먹고, 적게 먹고, 천천히 먹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확실히 규명돼 있는 위암 예방식사다. 음식은 최대한 다양하게 골고루 먹도록 하자.
4. 술 담배는 위암을 포함한 모든 암의 근원이니 줄여라
<TIP. 대장암 예방은 이렇게~>
1. 가급적 육식을 줄여라
그러나 끊지는 마라. 채식과의 균형식단이 중요하다.
2. 대장암 역시 가족력을 살펴라
3. 50세가 되는 시점에서는 반드시 대장내시경 검사를 꼭 하라 50세부터 대장암 발생이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대장내시경 검사는 힘이 드나 검사 시 정상이라고 판정나면 10년마다 해도 되는 검사이므로 꼭 하자.
4. 뚱뚱해지지 마라
비만과 대장암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비만이 되면 암의 싹이 될 수 있는 대장 용종의 발생률이 직접적으로 늘어난다.
5. 운동하라
걷는 운동이 대장암 예방에 최고다. 설령 암이 발생될 수 있는 발암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와도 걷는 운동을 통해서 장벽과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 암은 발생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에 30분 이상은 꼭 걷자.
6. 과일, 야채 섭취를 즐겨라
과일과 야채 속에는 대장암 발생을 막을 수 있는 섬유질도 풍부하고 항산화물질도 충분히 들어있다. 따라서 과일과 야채는 암에 취약한 유전자도 능히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물질이 풍부하므로 하루 2~3접시 이상의 야채와 3~5종류의 과일 적당량을 꼭 섭취하도록 하자.
껄껄껄 하며 죽고 싶다는 사람
오늘도 실험으로 말하고 데이터로 승부하는 함기백 교수. 암을 이길 기능성 물질부터 약물 개발까지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그는 1년에 15회 국제강연을 하고, 1년에 20여 편의 연구 논문을 발표한다. 또 위염 및 대장염 연구의 세계 최고 연구학회인 국제소화성궤양학회 2018년 회장으로 추대될 예정이고, 일본 소화기 및 미국 소화기학회 국제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로 활동반경을 구축하고 있는데 그러자면 체력소비도 만만찮아 보인다. 그래서 물어봤다. “특별한 건강비결도 있어요?”
1. 새벽 5시면 일어나 운동하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운동은 절대 거르지 않는다.
2. 술, 담배 전혀 안 하기
3. 스트레스는 긍정력으로 가볍게 넘기기 시련이 닥쳐도 더 큰 시련을 줄였다고 생각한다.
4. 즐겁게 살기 연구도 즐겁게, 진료도 즐겁게, 가족과도 즐겁게 사는 것을 모토로 삼는다. 그래서 꼭 죽을 때는 껄껄껄 하고 죽겠단다. 그 속뜻이 재미있다. 더 베풀 껄, 더 즐거울 껄, 더 긍정적인 껄 하며 죽겠다는 것이다.
5. 식사는 첫째도, 둘째도 꼭 균형식으로 하기 채소, 고기를 적절한 배합으로 적정량(본인의 말로는 남보다 조금 더 먹는다고 한다. 몸집이 조금 있는 체형 유지를 위해서라고)을 먹는다. 특별한 것을 먹거나 특별한 것을 찾거나 하지 않는다. 골고루 잘 먹는 것,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여긴다.
오늘도 진료도 열심히, 연구도 열심히, 그래서 새로운 의료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함기백 교수.
비록 연구실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때워도 그것까지도 행복이라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의 바람도 하나다. 연구도 하고 임상도 하는 의사가 보다 더 많아지기를, 그래서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진정한 명의가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난치병 암의 희망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