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박현아 기자】
【도움말 | 사람과직업연구소 정도영 소장】
만 7년간 다니던 증권사의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김정철 씨는 요즘 ‘제2의 직업’을 찾느라 분주하다. 실업급여를 타는 동안 새 일터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매일매일이 가시방석이다. 40대 후반인 김 씨는 다른 증권사로 ‘갈아타기’를 하는 것은 여건상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전업을 결정했다.
아무래도 가장 만만한 일이 창업 같아 올 들어 뜨는 프랜차이즈를 알아보러 다니지만 노심초사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창업 성공률이 15%라는 뉴스를 듣고선 더 그렇다. 기술이라도 배울까 싶어 내일배움카드를 신청했지만 공대 출신도 아닌 자신이 이제 와서 어떤 기술을 배워야 직업을 구할 수 있을지 앞이 캄캄하다.
인생2막 인생에서 ‘잡’은 필수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시대에 ‘넥스트 잡’이란 단어는 낯설지 않다. 사오정(40~50대 정년퇴직), 오륙도(50~60대에 회사를 다니면 도둑) 세대는 더욱 그렇다. 인생 2막의 직업 설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중년층의 인생 설계에서 ‘잡(Job)’은 필수다. 타의로 직장에서 나왔든 정년퇴직을 했든 100세까지 이어질 제2의 인생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잡’이다. 은퇴 설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일자리’인 것이다.
직업 컨설턴트인 사람과직업연구소 정도영 소장은 “나이 든 후 일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난다.”며 “돈이 있어도 일이 없는 삶은 무기력해지기 쉽다. 자원봉사가 생활화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그냥 아무 일 없이 나이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시니어층은 누구나 예외 없이 만나는 네 가지 고통이 있다. 가난, 질병, 외로움, 역할 상실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네 가지 고통은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된다. 최소한 고정적인 수입이 있으면 통장 잔고가 늘고, 일하는 사람이 일하지 않는 사람보다 건강할 가능성도 높다. 또 외로움과 역할 문제 역시 일을 하면서 어느 정도 해결된다는 얘기다.
직업은 인생의 한 귀퉁이를 받치고 있는 삶의 요소다. 인생 2막의 직업 설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공공기관의 무료 서비스나 전문회사의 전직지원 서비스 등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멋진 직업을 찾아 새롭게 인생 2막을 꾸려갈 수 있는 노하우를 알아봤다.
행복한 인생 2막을 여는 ‘잡테크’ 5원칙
1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직업을 찾아라
정도영 소장은 “인생 2막의 직업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얼마나 직업에서 구현할 수 있는지의 문제”라며 “신이 나서 달리는 사람과 억지로 달리는 사람이 같은 속도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직업에서 개개인이 갖고 있는 에너지의 차이는 중요하다. 정도영 소장은 “인생 2막의 직업이 이전 직업과 연결되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열정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용시장에서 견뎌낼 만한 가치를 만들기 어렵다.”며 “직업에서 에너지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만드는 결과가 같을 수 없다.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일, 더 나아가 강점을 가진 영역이 만나는 직업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미 특정분야에서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더 나답게 일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필요하다. 우리가 자신의 일을 스스로에게 맞게 만들어 갈 때 그 일을 하는 수명은 연장될 수 있고, 새로운 전기도 맞을 수 있다. 자신이 일 속에 녹아 있는, 스스로에게 맞는 일을 했다면 어려운 순간이 와도 새롭게 방법을 찾거나 견뎌내는 힘이 있다. 그러나 억지로 돈 때문에, 순간의 현실 때문에 선택하면 이런 힘이 약하다. 한 번만 흔들려도 밀려나기 쉽고 타인과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찾기 힘들다.
현실적으로 돈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년이 대다수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필요해도 자신이 담길 수 없는 일을 선택하면 돈도 따르지 않고 자신도 불행해질 가능성만 높다.
2 화려했던 과거를 잊고 자기성찰을 하라
중년층이 제2의 직업 선택에서 실패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냉정한 자기성찰의 부족 때문이다. 조직을 떠난 개인이 역량을 인정받기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조직 속의 후광을 개인의 역량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말 능력이 있는 사람들의 직업 전환을 보면 대개 별로 공백기를 가질 여유도 없이 새로운 제안을 받는다. 이미 퇴직한 시점인데도 적절한 곳에서 불러주지 않았다면 자신의 경쟁력을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성공한 인생을 살아온 이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과대평가하기 쉽다.
또 다른 인생 2막의 걸림돌은 바로 화려했던 인생 1막이다. 새로운 시작을 맞을 때 곧잘 과거의 잣대를 들이댄다. 시간이 변하고 세상이 변했으면 사람도 변해야 한다. 그런데 직업적 관성에 길들여져 쉽게 달라지지 못한다. 과거의 자존심은 간직하되 자신이 누렸던 혜택은 깨끗이 포기해야 한다. 대개 이런 기억은 당사자에게 나쁜 영향만 주기 쉽다.
3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마라
우리가 남들처럼 살려는 이유는 그것이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 안전한 직업이란 건 세상에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흔히 공무원을 부러워하지만, 공무원이 그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어떤 자기희생이나 자기억제를 해야 하는지 감안해보면 안전한 자리라고 함부로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만의 일을 찾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요즘은 남을 따라 사는 것이 훨씬 쉬운 세상이다. 남들처럼 소비하고 남들처럼 직업 찾고, 그 와중에 혼자 다른 길을 걸으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내 일을 찾고 싶다는 의지와 그 의지를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한 최소한의 자원이다.
4 나이 든 사람일수록 더 공부의 끈을 놓지 마라
정도영 소장은 “시니어의 경우 온라인 세상에 약한 것이 일반적”이라며 “나이 든 사람일수록 더 많이 공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평생 학생일 것을 강요받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세상의 절반은 이미 온라인상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반쪽에만 의지한 채 경쟁력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공부에는 묘한 아이러니가 있다. 좀 덜해도 될 사람들은 오히려 더 많이 공부하는데 정작 필요한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할 공부를 외면한다. 고용 시장이 양 극단으로 벌어지는 이유다. 나만의 업, 나만의 브랜드를 유지하기 위해선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5 영업, 기술도 큰 자산… 고정관념을 버려라
인생 2막의 직업 설계에선 전문 분야를 살리고 이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영업직을 불편해 할 필요는 없다. 창업을 꿈꾸는 사람도 영업력만 있으면 훨씬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다.
시니어라 하더라도 실적에 대한 자신만 있다면 지금도 영업직은 얼마든지 널려 있다. 문제는 자신이 원하는 급여만큼의 실적을 낼 자신이 없는 것이다. 영업에 강점이 있어 인센티브 급여 제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인생 2막에서도 눈에 띄는 결과를 낼 수 있다.
든든한 기술을 배우기 원하는 이들은 그 기술의 ‘범용성’이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잘 먹히는 기술을 익히라는 것이다. 예컨대 전기 관련 기술이나 캐드 기반의 공작기계 활용, 혹은 특수용접은 나이가 들어도 고용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정도영 소장은 라이트매니지먼트코리아 컨설턴트, 노사발전재단 인천중장년일자리센터 컨설턴트로 일했다. 현재 인덱스루트코리아 이사 겸 사람과직업연구소(blog.naver.com/gagadu) 소장으로 있다. <내게 맞는 직업 만들기> <마흔 이후 두려움과 설렘 사이>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