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도움말 | 을지대병원 산업의학과 김수영 교수】
【도움말 | 한국산재의료원 안산중앙병원 건강관리센터 서동식 소장】
2009년을 살아가는 직장인 구보 씨의 하루. 아침에 일어나 세면 후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전기밥솥에서 밥을 퍼 대충 먹은 후 만원 전철에 몸을 싣고 출근한다. 직장에서는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한다. 점심시간이나 화장실 용무ㆍ휴대폰 통화를 빼곤 내내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구보 씨의 유일한 휴식은 TV로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시청하는 것. 전자레인지에 돌려낸 팝콘과 캔 맥주는 구보 씨의 좋은 친구다. 자기 전엔 커플요금이라 전화비가 무료인 여자 친구와 한 시간 가량 통화하고, 전기장판을 틀고 자리에 눕는다.
매일 헤어드라이기ㆍ냉장고ㆍ전기밥솥ㆍ전철ㆍ컴퓨터ㆍ휴대폰ㆍTVㆍ전자레인지ㆍ전기장판 등 전자제품을 필수적으로 끼고 살아가는 구보 씨. 언제부턴가 알 수 없는 두통과 피로가 몰려와 병원을 찾았지만 별다른 원인을 발견할 수 없어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 한데….
유해성 있다? 없다? 팽팽한 평행선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국제기구에서는 아직까지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확실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하지만, 곳곳에서 해롭다는 연구결과와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영국과 호주 정부에서는 전자파 피해 예방을 위해 청소년의 휴대폰 사용 자제 권고안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올 2월 캐나다와 네덜란드에서 당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던 국내 대기업의 휴대폰 기종이 전자파 기준치 초과로 리콜 된 사태도 있었다. 우리 정부도 전자파 위험에 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프린터ㆍ팩스ㆍ휴대폰 등 각종 전자기기 관련 법정 인증 수는 80개에 달하고, 민간 인증 수도 60개에 달한다. 올해부터는 전기 사용이 미미한 1등급을 제외한 모든 전자의료기기에도 전자파 내성시험을 전면 시행하고 있다.
전자파는 전기 발전ㆍ송전, 제품 사용 시 발생하는 것으로 전자기장이라고도 한다. 한국산재의료원 안산중앙병원 건강관리센터 서동식 소장은 “주변에 고압 송전선로가 전혀 없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 살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상생활에서 컴퓨터ㆍTV 등 가정용 전자제품을 사용하고 자동차ㆍ전철 등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모든 사람이 전자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생활 곳곳 전자파..정말 괜찮을까?
TVㆍ냉장고ㆍ헤어드라이어ㆍ전기면도기ㆍ전자레인지ㆍ진공청소기ㆍ세탁기ㆍ전기난로 등 전기를 사용하는 제품에서 공통으로 전자기장이 발생한다.
을지대병원 산업의학과 김수영 교수는 “전자파에 의한 인체의 영향 중 대표적인 것은 열작용”이라며 “몸이 전자파에 노출되면 열이 발생하는데 이때 행동 변화나 다양한 생리적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1960년대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전자레인지 내부를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전자파에 노출될 수 있는데, 안구 내 수정체 온도가 올라가 41도를 넘으면 불투명한 부분이 생기고 1~6일간 잠복기를 거쳐 백내장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계란 흰자위에 열을 가하면 투명한 부분이 불투명한 흰색으로 변하는 것과 같은 단백질 변성이다.
김수영 교수는 “전 세계 사용자가 급증한 휴대폰도 이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며 “휴대폰을 장시간 사용하면 안테나와 가까운 뇌에 0.5도 정도 온도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휴대폰의 장시간 사용으로 몸에 열이 오를 경우 나른해지고 행동이 달라지는 등 좋지 않은 영향이 생길 수 있다. 1971년엔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워트하이머와 리퍼가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력선 주변에 거주하는 소아에게서 백혈병 발생률이 높았다는 역학 연구결과를 최초로 발표했다. 그 후 진행한 동물실험에서 생쥐에게 장기간 전자기파를 노출한 결과 임파구와 백혈구가 늘고, 일부는 백혈병에 걸렸다. 지난해 이스라엘에서는 휴대폰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500명을 조사한 결과, 이하선 등 주요 침샘 내 종양 발병률이 50% 가량 높았다. 국내에서는 쥐 실험 결과 휴대폰 전자파를 많이 쏘인 쥐에게서 스트레스호르몬이 많이 발생한 것을 확인한 바 있다.
최근엔 국립환경연구원의 조사결과 ▶헤어드라이어의 전자파 발생은 64.7mG로 TV 22.6mG, 세탁기 6.9mG에 비해 높은 편이라는 게 알려졌다. 76.9mG인 전자레인지와 비슷한 수준이다. 바람을 단 시간 내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머리에 직접 대고 쐬는 제품으로 우려가 높다. 김수영 교수는 “헤어드라이어처럼 소형 모터가 달린 가전제품은 되도록 짧은 시간 사용한 후 신체에서 멀리 두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건강해지려고 운동하는 ▶러닝머신은 컴퓨터 모니터보다 47배에, TV보다는 4배 가량 방출량이 높다. 그러나 전자파는 발생원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경향이 있어 가전제품을 몸에서 떨어뜨려 사용할 때 영향이 감소한다. 예외는 전자레인지로, 거리를 떨어뜨려도 전자파 감소량이 적다. 김수영 교수는 “전자레인지는 작동 중이 아니더라도 마그네트론이 예열 상태이므로 항상 강한 자기장이 발생해 가급적 구석진 곳에 두며, 쓰지 않을 때는 플러그를 뽑아 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아ㆍ환자ㆍ고위험 직업군 각별 조심!
암도, 신종 플루도 모든 사람이 걸리는 것은 아니다. 질병은 대부분 고위험군이 있기 마련. 전자파를 각별히 조심해야 할 사람도 있다. 일본국립환경연구원 미치노리 가부토 박사는 1999년부터 3년간 ▲아동의 취침 시 머리 부위의 자기장을 30초 간격으로 일주일 동안 측정한 결과 아동 침실의 자기장이 4mG 이상일 때 아동 백혈병 위험도는 2.63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특히 임파성 백혈병은 4.74배까지 증가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의회는 아동 전자파 위해를 막고자 6세 이하의 아동에게 휴대폰 판매를 금지하고, 12세 이하에게 휴대폰 광고를 못하게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그밖에 면역력이 약한 ▲환자나 ▲노인도 조심해야 한다.
전자파 과다 노출에 위험한 ▲직업군은 방송 송출 관련 업무, 휴대폰 중계기를 설치 운용하는 업무, 송전선을 설치하고 유지 보수하는 업무, KTXㆍ지하철 등 고전압 전력선을 유지 보수하는 업무와 지하철 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김수영 교수는 “위성통신ㆍ레이더ㆍ통신망을 운용할 때에도 노출량에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전자파, 막을 순 없어도 피할 순 있습니다!
서동식 소장은 “전자파는 쉽게 차단하기가 어렵고 피부를 통과해 인체 내 전류를 형성, 호르몬 분비 체계나 면역세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일상생활에서 전자파 노출을 줄이는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1. 전자파 노출량은 전자제품과 거리가 멀수록 줄어들기에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 생활하라. 컴퓨터는 모니터에서 60cm 이상 거리를 유지하며, TV는 1.5m 이상 떨어져서 시청하는 것이 좋다. 컴퓨터를 장시간 사용할 때는 자주 휴식을 취한다.
2. 평상시 사용하지 않는 전자제품은 플러그를 뽑아놓고, 사용할 때 가급적 시간과 횟수를 줄인다.
3. 휴대폰은 가능한 10분 이내로 통화하라.
4. 전기장판은 장시간 몸과 밀착해 사용하므로 임산부는 자제하고, 되도록 전자파 차단 제품을 사용하라.
5. 침대나 침구 주위에는 전자제품을 멀리 두며, 가습기나 공기청정기는 전력 소모량이 높아 비교적 강한 전자파가 나오므로 가급적 먼 곳에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