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밝은희망 부부클리닉 신연재 부부상담사】
역사적으로 말은 인간관계를 좌지우지했다. 부부라는 인간관계도 말로 상대의 마음을 읽는다. 말로 원하는 것을 알려주고, 사랑을 확인하고, 불만을 표현하며 관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때로는 말이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생각보다 독한 말이 단숨에 쏟아져 나오고, 단순한 불만도 비아냥대는 말로 바뀌어버린다. 아차 해도 이미 엎지른 물을 담는 게 쉽지 않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배우자에게 실수라고 말도 못 하고 그냥 박박 우길 뿐이다. 이 모든 것이 너 때문이라고.
그 끝은 정해졌다. 이혼의 ‘이’자도 꺼내지 않았어도 배우자는 이혼으로 받아들인다. “이혼해!”라는 말을 끌어내는 결정적인 말을 알아본다.
CASE 1. 말 바뀐 남편에게 마음 떠난 아내 이야기
결혼 전 선주(가명) 씨와 남편은 말이 잘 통했다. 그 당시 남편은 평생 자식만 보고 희생한 어머니가 답답하다고 했다. 여자에게 결혼은 희생이 아닌 상생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남자는 없을 것 같았다. 한 가지 걸리는 가정환경이 있었지만 남편을 믿었다.
남편의 부모님은 이혼했고 아버지는 재혼해서 새 가정을 꾸렸다. 오래전부터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살았다고 했다. 재혼한 아버지와는 별로 왕래가 없다고 했지만 시어머니 두 명을 모셔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 이런 마음을 비치자 남편은 전혀 그럴 일이 없고 자신은 가정을 버린 아버지를 증오한다고 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며칠 후였다. 남편은 아버지가 신혼여행 후에 인사를 안 왔다고 노발대발했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더 화를 내기 전에 선주 씨가 새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사과하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아버지 가정은 신경 쓰지 말라고 했던 남편이 오히려 선주 씨에게 전화를 시킬 줄이야. 한 번만 봐주기로 하고 마지못해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그 이후로도 아버지가 원한다는 이유로 명절, 생신 등에는 함께 아버지댁에 인사를 가자고 했다. 자신도 싫지만 아버지가 화를 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얼굴을 익힌 남편의 새어머니는 자주 연락을 해왔고 결국 선주 씨는 시어머니를 두 명 모시게 되었다.
어머니가 두 명인 남편의 상황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남편 탓이 아니니까. 하지만 말을 바꾼 점은 두고두고 화가 났다. 남편은 처음에는 사과하다가 나중에는 이해심이 부족한 사람으로 몰고 갔다. 그러다 결국 결정타를 날렸다.
“매형은 아버지네 새어머니도 우리 어머니처럼 깍듯이 대하는데 당신은 며느리가 돼서 왜 이렇게 속이 좁아?”
숨이 턱 막히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바뀐다더니 이게 바로 사기결혼이 아닌가 싶었다.
CASE 2. 무시하는 아내에게 등 돌린 남편 이야기
벼르고 벼른 끝에 만석(가명) 씨는 아내에게 힘겨운 말을 꺼냈다. “이대로는 못 살겠으니 우리 이혼하자.”고 했다. 아내는 펄쩍 뛰었다. 자기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물었다. 만석 씨가 보기에 아내는 큰 잘못을 했다. 상처받고 산 지 15년.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했다.
17년 전 만석 씨는 빚만 남기고 하던 사업을 접은 적이 있다. 다행히 바로 재기에 성공했다. 아내의 인맥 덕분이었다. 아내의 가까운 지인 중에 같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만석 씨의 사정을 알고 지점을 하나 맡겼다. 전보다 몇 배 더 성실히 일한 만석 씨는 몇 년 안에 빚을 모두 갚았고 예전보다 더 잘 나갔다.
만석 씨가 잘 된 후로 아내는 말끝마다 그 지인을 치켜세웠다. “그릇이 크다.”, “크게 될 사람이다.” 라는 둥 칭찬에 침이 말랐다. 그런 반면 만석 씨는 은근히 무시하기 시작했다. 오직 아내 ‘빽’으로 잘 된 사람 취급이었다. 일 때문에 처가댁 행사에 참석을 못 하면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했는데 우리 집 행사에 못 오느냐?”라고 화를 냈고, 아내의 잘못을 지적하면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아내에게 심각하게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주라는 부탁을 했다. 만석 씨도 더 잘해주려고 노력하겠다고 했다. 아내는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만석 씨가 사춘기 아들을 나무라자 충격적인 말대꾸가 돌아왔다. “아빠도 옛날에 망해서 폐인처럼 살았는데 엄마가 다 해결해 줬다면서? 근데 무슨 자격으로 날 혼내?”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드디어 때가 왔다 싶었다. 아내와 헤어지지 않고서는 도저히 못 견딜 때 말이다.
말로 받은 상처 이혼 부른다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배우자의 “힘내!”라는 한 마디에 진짜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 배우자의 “사랑해!”라는 한 마디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부부라서 좋은 말만 할 필요는 없다. 불만이 있거나 생각이 다르다면 말을 해야 한다. ‘사랑하니까 말하지 않아도 달라지겠지.’, ‘오래 살았으니까 말 안 해도 내 마음을 알겠지.’라는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다.
이보다 심각한 착각은 상처받는 말을 했어도 배우자가 이해해주리라는 것이다. 과연 상처받는 말을 듣고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답은 배우자의 말 때문에 이혼을 결심한 많은 사람이 증명한다. 상처받는 말을 듣고도 참은 것이지 상처를 안 받은 것이 아니다.
남편과 아내는 과연 어떤 말로 받은 상처 때문에 결혼 생활을 포기하고 싶을까? 밝은희망 부부클리닉 신연재 부부상담사가 상담 현장에서 경험한 생생 사례를 소개한다.
아내가 화났다! 이혼을 부르는 남편의 말!말!말!
1. “이런 건 왜 장모님(장인어른)을 닮아가지고!”
아내가 스스로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부모님과 연관지어서 말하는 것은 큰 상처를 준다. 아내는 남편이 지적한 부모님의 단점을 싫어했더라도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남편에게 실망한다. 그 단점으로 평생을 상처받았던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신연재 부부상담사는 “이런 말은 남편을 평생 믿고 살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고 말한다.
2. “예전에 OOO 했잖아!”
아내가 힘들게 과거의 약점을 털어놓았는데 싸울 때마다 그것을 다시 끄집어내서 무기로 쓰는 남편이 있다. 그러면 아내는 남편이 자신의 약점을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약점을 악용하는 일이 반복되면 신뢰가 깨지고 그런 상황에서 해방되고 싶다.
3. “당신 때문에 애가 이 모양이야!”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모든 책임을 아내에게 전가하는 남편이 있다. “당신 때문에 애가 이 모양이야!”, “자식 교육을 왜 이따위로 시켰어?”, “당신 닮아서 머리가 나빠서 그래!”, “당신이 집에서 하는 게 뭐가 있어?”와 같은 말들은 남편이 자신을 무가치하게 느낀다는 말로 해석된다. 이런 말을 들으면 화를 내든, 화를 삼키든 무척 우울해진다.
4. “(자녀 앞에서) 너희 엄마 바람 피웠어!”
아내의 실수를 자녀에게 말하면 망신을 주려고 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려다가도 이렇게 자녀 앞에서 망신을 주면 미안함이 미움과 원망으로 바뀌게 된다.
5. “(아플 때) 아프면 병원에 가지 왜 사람을 귀찮게 해?”
아내가 아픈 것을 귀찮은 일로 여긴다면 아내는 자신이 가사 도우미나 하숙집 주인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결혼 생활을 이어나갈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남편이 화났다! 이혼을 부르는 아내의 말!말!말!
1. “당신이 그럼 그렇지….”
남편은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아주 하찮은 존재가 된 것처럼 느낀다. 이런 말이 반복되면 냉정하게 돌아서서 이혼을 생각하거나 아내와 거리 두기를 시작하는 남편들도 있다. 아내는 이런 말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만드는 말이라고 여긴다.
2. “어머니(아버지)처럼 왜 그래?”
남편도 부모님의 약점을 언급하거나 아내가 부모님께 할 도리를 못할 때 서운함을 느낀다.
3. “친구 남편 연봉은 얼마인 줄 알아?”
“내 친구 남편은 이번에 승진했대!”, “제부는 연봉이 얼마래!” 등의 말을 들으면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돈 버는 기계나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강요한다고 받아들인다. 이런 서운함을 쌓아두다가 아주 사소한 일을 빌미로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는 경우가 있다.
말로 받은 상처 지워내는 법
때린 사람은 발을 못 뻗고 자고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잔다는 말이 있지만 부부 관계에서는 그 반대인 경우가 흔하다. 자신의 말이 상처를 준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상처 주는 말을 미리 알고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만약 상처를 입었다면 솔직히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좋다.
신연재 부부상담사는 “배우자가 내가 한 말에 상처를 입었다고 하면 변명하거나 상황을 이야기하지 말고 일단은 ‘당신이 내가 한 말에 상처 입었구나. 미안해.’라고 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다음에 어떤 의미에서 그 말을 했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상처 난 마음을 보듬는 첫 번째 방법은 감정을 받아주는 것이다. 상대방이 부정적인 것을 이야기할 때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그냥 들어주는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마음이 어땠느냐고 묻고 배우자가 자신의 감정을 말하면 “그랬구나.”라고 말해주면 된다.
말로 주는 상처는 누구나 주고, 받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다시 똑같은 상처를 주거나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말 때문에 이혼으로 치닫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음의 ‘나 전달법’으로 말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더 성숙한 부부가 되어보자.
부부싸움 안 만드는 ‘나-전달법’
▶ 기분 나쁜 말을 들은 자신의 감정을 배우자에게 전하면 된다. “당신의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이런 감정이 들어.” 이런 식이다. 듣는 사람은 그냥 들어준다. 다 듣고 나면 “그랬구나. 미안해.”라고 말한다.
▶ 여기까지 훈련이 잘 되면 나중에 하나 더 추가한다. “그래서 당신이 이렇게 해주면 좋겠어.”
▶ 한 번 해보고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자. 우리 모두 알고 있듯 습관을 바꾸는 것은 긴 노력이 필요하다.
상처받았다고 입을 닫은 부부에게…
한편 말만 하면 싸운다고 말없이 지내는 부부도 있다. 이러한 상태가 싸우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관계 역시 말로 상처 주는 사이만큼 위험하다.
신연재 부부상담사는 “부부가 서로 감정을 나누지 않고 살다 보면 친밀감이 없어져서 낯설게 되고, 어색해진다.”며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같이 있는 시간을 피하고, 다른 일에 몰두하며, 혹은 외로움을 외도로 풀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갈등이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것을 못 보고 자란 자녀는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부모가 언제 이혼할지 몰라 불안하다. 더 나쁜 상황은 부부가 자식을 정서적 배우자로 의지하며 살게 되는 경우다. 이러한 자녀는 나중에 자신의 결혼 생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부부는 할 말은 하고 살아야 사랑을 유지하고 키우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상처받았을 때는 ‘나-전달법’을 참고해 위기를 넘긴다면 말 때문에 이혼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신연재 부부 상담사는 밝은희망 부부클리닉에서 부부대화와 이혼고민을 전문적으로 상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