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인정하고 수용하면 그 순간부터 행복해집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어쩐지 불행해질 것 같아서다. 어쩐지 그렇게 사는 사람이 부러웠다. ‘긍정’을 말하는 거다. 우리는 긍정적으로 살자는 말을 많이 한다. 이것이 좌우명인 사람도 흔하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긍정이 진짜 긍정이 아니란다. 더구나 그게 우리를 불행하게 한단다. 이 땅의 수많은 ‘긍정주의자’의 어안을 벙벙하게 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다. 긍정을 가르치는 긍정학교 교장이기도 한 채정호 교수는 우리가 아는 긍정의 의미를 새롭게 바꿔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쩐지 행복해 보이는 채정호 교수에게 언제나 행복해지는 방법을 들어봤다.
긍정의 진짜 의미
우리는 지금까지 안 좋은 것도 좋아하고, 괜찮을 걸로 생각하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았다. 긍정적으로 살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안 좋은 것은 잘 좋아지지 않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지 못해 실패자가 된다.
“사전에서 긍정의 뜻을 찾아보세요. 긍정이란 안 좋은 것을 좋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옳다고, 그러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나옵니다. 그래서 진짜 긍정적으로 사는 것은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나를 긍정적으로 보지 못한다는 것은 나를 좋게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긍정이란 어떠한 상황도 받아들이는 수용적 태도다. 특히 나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너무 오래 남에게 인정받으려고만 아등바등 살았다. 살다 보면 기쁘고 행복할 때도 있고 고통스럽고 버거울 때가 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걸 알면서도 나 역시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은 어렵다.
내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아닌 나의 강점을 인정하고 그 강점들로 살아가는 법을 찾는 것이 제대로 된 긍정이다. 나다운 긍정을 찾고 실천하며 성장하면 된다. 그리고 긍정의 완성은 행동이다.
“예를 들어 똥밭에 빠졌을 때 비관주의자는 똥을 뿌린 사람을 탓하고 똥을 발견 못 한 자신을 탓합니다. 하지만 진짜 긍정주의자는 삽을 들고 똥을 퍼냅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퍼내고 못 퍼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말만 하는 것,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닌 행동으로 긍정하는 긍정주의자만이 진짜 긍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원하는 결과가 일어나도록 노력하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더라도 삶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도 채정호 교수가 말하는 진짜 긍정이다.
인생을 바꾸는 트라우마
채정호 교수는 의사라는 본업 외에도 ‘벌여놓은 일’이 많다. 앞서 이야기한 긍정학교,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옵티미스트클럽 등이 그것이다.
많은 이가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광주 5·18 민주화 운동, 대구 지하철 화재, 세월호 침몰, 포항 지진 등 끝없는 사고와 재난을 겪었다. 채정호 교수는 오래전부터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예방하는 일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 결실이 채정호 교수를 비롯한 의사,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간호사 등이 의기투합해 만든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만들어지고 트라우마 문제가 관심을 받으면서 최근에는 국가트라우마센터도 생겼다.
“트라우마와 일상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다릅니다. 쉽게 말해 그 사건이 있고 난 뒤 인생이 바뀌었다면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이 알려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니어도 술에 빠져 살거나 우울증이 오는 등 다양한 부작용이 뒤따릅니다. 끔찍한 사건 후 삶이 바뀌면서 힘들면 상담이나 치료를 받아보길 권합니다.”
마음의 건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아도 해결해야 한다. 마음의 병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해결하려고 행동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채정호 교수가 만든 옵티미스트클럽은 정기모임과 다양한 캠페인, 페스티벌을 통해 긍정을 말하고 실천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옵티미스트(optimist), 행동하는 긍정주의자다.
감각 올리고! 생각 줄이고!
채정호 교수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 질문의 단골 대답은 감각을 늘리고 생각을 줄이는 것이다.
우리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도 많은 생각에 잠긴다. ‘왜 이렇게 뜨겁지?’ ‘내가 왜 더운데 뜨거운 커피를 시켰을까?’ ‘커피 마시고 잠이 안 오면 어떻게 하지?’ ‘조금 남길까? 다 마실까?’ ‘커피 말고 주스를 시킬 걸 그랬나?’ 등. 이런 생각일랑 접어 두고 커피 향을 맡고, 커피의 온기를 느끼기만 해보자.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훨씬 행복해진다.
“인간은 생각이 많을 때 불행합니다. 반면 모든 감각을 이용해 스스로 편안해지도록 유도해보세요. 후각, 시각, 청각, 미각, 촉각을 활용하면 몸도 마음도 편안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감각을 올리고 생각을 줄인다? 그럼 또 생각한다. 생각을 줄일 방법을. 이 불필요한 생각의 연결을 끊어야 한다. 먼저 내가 생각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가깝게 두고 느낀다.
채정호 교수는 부드러운 촉감을 좋아한다. 안경을 닦는 부드러운 천, 부드러운 토끼모양 쿠션을 연구실에 두고 자주 만진다. 휴대폰 케이스도 만져서 느낌이 좋은 소재로 산다.
휴대폰 사진 폴더에는 ‘아름다움’이라는 폴더가 있다. 풍경, 여행지 등 좋았던 기억의 사진을 담아두는 폴더다. 이렇게 사진을 정리해두면 많은 사진 중에 좋았던 사진을 찾는 번거로움을 줄이고 바로 시각적 감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채정호 교수가 최근에 찍은 사진은 햇빛에 비친 나무의 그림자다. 그냥 보기 좋아서 찍어뒀다.
좋았던 일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감각으로 구체화 하는 것이 좋다. 좋았던 여행지를 생각하면 ‘가고 싶다.’ ‘여행가면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어떻게 휴가를 내지?’ ‘바쁘니까 가지 말까?’ 같은 불필요한 생각이 딸려 온다. 생각하기보다 그냥 사진만 눈으로 보면 좋았던 그때의 느낌만 남을 뿐이다.
생각을 멈추면 행복이 가까이
채정호 교수의 연구실에는 토끼 쿠션만큼 또 하나 낯선 장면이 있다. 서서 일하는 공간이다. 일반 책상에 작은 탁자를 놓고 그 위에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를 올렸다. 진료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앉아 있지만 혼자 있는 연구실에서는 서서 일한다. 지하철을 기다릴 때는 한발로 서 있기를 하는 등 평소 서 있는 힘을 기르려고 노력한다. 서서 일하는 것으로 몸의 건강을 채운다면 마음의 병을 치료하며 마음의 건강을 채운다.
“산부인과 의사를 오래 한다고 자궁이 건강해지지 않고 안과 의사를 오래 한다고 눈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다릅니다. 오래 일하니까 내가 치료하는 분야인 정신이 건강해집니다. 정말 좋은 직업 아닌가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모든 순간이 불행하지는 않다. 호흡이 있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0.1초, 0.5초의 순간은 행복하다. 건강해지려면 그 시간을 차츰 늘리면 된다. 생각을 멈추고 감각이 깨어날수록 우리 인생은 꽤 근사해진다. 그리고 행복해진다.
《TIP. 채정호 교수가 추천하는 오감으로 치유법》
1. 후각 이용하기
아로마 오일, 허브, 향수, 향초 등을 이용해 좋은 향기를 맡는다. 빵집이나 카페에 앉아 쉬거나 나무 향기 가득한 수목원에서 삼림욕을 즐긴다.
2. 시각 이용하기
잡지나 책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오려 벽에 붙여 놓거나 지갑에 넣어 보고 싶을 때 꺼내 본다. 아름다운 장소를 찾아간다. 휴대폰 사진첩에 기분 좋은 사진만 채운 ‘위안폴더’를 만들어 수시로 본다.
3. 청각 이용하기
음악뿐 아니라 물소리,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가 담긴 음원을 듣는다. 오디오북을 듣거나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그냥 소리만 듣는 것도 좋다.
4. 미각 이용하기
좋아하는 음식을 맛을 음미하면서 먹는다. 특히 제철과일은 기분은 물론 몸까지 건강하게 해준다.
5. 촉각 이용하기
차가운 물건, 따뜻한 물건, 부드러운 물건, 매끈한 물건 등 좋아하는 촉감의 물건을 곁에 두고 만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