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호경 교수】
그동안 한국이 화병공화국이었다면 이제는 분노의 왕국이 된 것 같다. 모르는 타인에게 분노나 공격성을 표출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혹시 가족들에게 툭하면 화를 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자.
가족은 화풀이 대상이 아니다!
알고 보면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집에 가서 배우자나 자녀에게 화를 내거나 혹은 나이 드신 부모님에게 화를 퍼붓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족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우선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나 분노를 밖에서 풀지 못하고 집에서 터트리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편하고 ‘만만해서’ 그런 것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속담처럼 업무상 이유로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해도 웃으며 참고 억누르며 겉으로 표현을 하지 못하다가 집에 와서 ‘만만한’ 가족에게 터트리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전치’라는 방어기제가 바로 이것이다. 전치라는 방어기제는 상당히 성숙하지 못한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가족 간의 관계나 집안 분위기를 망쳐 사이가 더 악화되고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수 있다.
이런 전치를 예방하려면 우선 스스로 엉뚱한 사람한테 눈을 흘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 냉정히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자신도 밖에서 나를 화나게 했던 그 사람처럼 집에서 하는 것이 아닌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화’가 아닌 ‘화목’을 만드는 존중
일단 분노나 화부터 풀어보자. 밖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재미있는 활동을 하면서 풀어도 좋고 집에 가서 내 마음을 잘 이해해 줄 수 있고 대화가 잘 통하는 가족이 있다면 그와 함께 잘 풀어본다. 술로 푸는 것은 과음과 술주정이라는 변수가 있으므로 주의한다.
세상사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고 화를 푸는 것도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해서 쉽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평상시에 가족끼리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존중하는 대상에게는 화를 내기 힘들다. 말로만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구체적인 표현이나 태도로 존중해야 한다.
상대방을 낮추는 말투를 자제하고 서로 존대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며 말하기 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먼저 들으려 하는 태도 등이 좋은 예다. ‘야!’와 같은 호칭이나 ‘네가 뭘 알아?’와 같은 말들은 말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을 무시하는 느낌을 줄 수가 있으므로 피하자.
가족이 서로 공감하고 대화를 통해 마음을 맞춰나간다면 가족은 더는 화풀이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은 결국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이며 이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윤호경 교수는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불안장애, 공황장애, 수면장애, 기분장애(양극성장애) 등을 전문으로 진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