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도움말 |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권오정 교수
공포의 ‘불주사’를 기억하는가? 너나할 것 없이 고개를 돌리고 어깨를 바늘 앞에 내어 놓아야만 했던 두려운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전염병 ‘결핵’. 지금도 해마다 전 세계 2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사그라든 줄 알았던 결핵 발병률이 다시금 높아지고 있어 경각심이 높다.
결핵 사망률 1위 불명예
흔히 후진국 병으로 여기는 결핵. 1960년대 우리나라 결핵환자는 100만 명을 넘어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국가결핵관리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속적으로 줄던 결핵환자가 2000년 이후 늘었다 줄었다 반복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 결핵사망률 1위다. 2007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활동성 결핵환자는 13만 2000명으로 국민 341명당 1명이 이 질병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2001년과 2005년 사이 10.5%나 늘었다. 새로 걸리는 환자의 연령분포도, 주로 노약자 발병률이 높은 선진국과 달리 20~30대(전체 35.6%)가 가장 많은 후진국형이다. 젊은 환자는 특히 사회활동이 많아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가능성이 높고, 완치된다 하더라도 면역력이 약해지면 재발할 수 있어 문제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권오정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결핵이 없어진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며 “결핵은 10만 명당 7명꼴로, 한국인 사망원인 중 10위를 차지하는 주요 질병”이라고 밝혔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전염률 높아
결핵은 만성 소모성 질환으로,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 일단 몸에 들어온 결핵균은 인체의 저항이 약해지면 번식을 시작한다. 결핵균에 감염됐다고 모두 발병하는 것은 아니고, 감염된 사람의 5~15%가 걸린다.
몸의 모든 기관에 병을 일으킬 수 있으나 87.8% 이상이 폐결핵을 일으킨다. 그밖에 임파선염, 늑막염, 뇌막염, 척추염, 복막염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결핵균 전파는 대부분 폐결핵 환자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가래에 있는 균이 주위 사람의 호흡기내로 들어가서 일어난다. 보통 대화 중에도 옮을 수 있다. 환자가 뱉어내는 균이 많을수록, 환자와 가깝게 오래 접촉할수록 결핵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환자와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이 감염될 확률이 높다. 특히 부모가 자식에게 퍼뜨리는 경우가 많다.
권오정 교수는 “집안에 폐결핵 환자가 있으면 음식을 따로 먹고 그릇을 소독하는 경우가 많다.”며 “폐결핵은 공기로 전염 되므로 음식을 따로 먹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폐결핵에 걸리면 기침과 가래가 나오고 쉽게 피곤하다. 밤에 식은땀이 나며 심하면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올 수 있다. 식욕부진이나 7~24% 정도는 체중감소를 보인다. 후두결핵이나 기관지결핵일 경우 기도협착으로 숨소리가 거칠어 질 수 있다. 이때 천식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 증상이 없는 경우도 많다.
권오정 교수는 “당뇨나 간질환 등 면역이 떨어지는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폐결핵에 걸릴 확률이 높으므로 증상이 없더라도 규칙적으로 가슴 X선 사진을 찍어봐야 한다.”고 당부한다.
정확한 진단에 주의를 기울여야
진단을 위해서는 객담(분비물)검사에서 결핵균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객담검사에서 결핵균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고, 아예 가래가 없는 사람도 있다. 이때는 흉부 X선 사진으로 진단한다. 요즘 폐결핵은 줄어들고 폐암이 급격히 늘고 있으므로 이런 경우에는 폐결핵 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자세히 관찰해야만 폐암을 폐결핵으로 오인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권오정 교수는 “의외로 많은 사람이 건강검진에서 비활동성 폐결핵이라는 진단을 받고 걱정을 하면서 병원을 찾는다.”며 “본인의 저항력으로 병을 이겨내고 저절로 낫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이때 흉부 X선 사진에 앓고 지나간 흔적을 남긴다. 결핵이 아주 드문 선진국에서는 이때도 치료하지만, 결핵이 흔한 우리나라는 치료를 권하지 않는다. 주의할 점은 전에 찍은 흉부 X선 사진을 보관해 두는 것이 좋다. 이후 이상 판정이 나온다면 전에 찍은 사진과 비교해 간단히 결핵을 진단할 수 있다. 그밖에 CT로도 폐결핵을 진단한다. CT는 결핵이 아닐 경우도 폐암이나 기관지확장증 같은 질환을 진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완치율 높지만 내성 결핵은 치료 어려워
치료는 대개 6개월 동안 항결핵제를 복용하면 대부분 완치된다. 그러나 결핵약을 꾸준히 복용하지 않고 중단하거나, 약을 마음대로 바꿔 먹으면 결핵균이 내성이 생겨서 치료가 어렵다. 권오정 교수는 “그렇게 된다면 약을 먹지 않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항결핵제는 일차약과 이차약으로 나눈다. 일차약이 효과가 뛰어나고 독성도 적어 처음 치료에는 일차약을 사용하게 된다. 약을 자의대로 먹다가 내성이 생기거나 처음부터 내성이 있는 균에 감염이 되었을 때는 이차약을 쓴다. 이차약은 적어도 1년 6개월 이상 사용한다. 여기서 치료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권오정 교수는 “항결핵제에는 3차약이 없다.”며 “이것이 치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항결핵제 복용 시 주의사항은 간에 올 수 있는 부작용이다. 병원에서 간 기능을 점검하며 약을 복용한다. 권오정 교수는 “쓸데없이 몸에 좋다는 약을 같이 먹으면 도리어 간에 부담이 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다른 약제 복용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치료가 어려운 폐결핵은 수술로 치료하거나 인터페론 감마 같은 면역치료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면역치료 효과도 보조적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처음 치료부터 열심히 약을 복용해 완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1차 치료에 실패하는 사례나, 결핵약에 내성을 갖는 다제 내성 결핵이 늘고 있다. 이 환자들은 치료기간도 길고 잘 낫지 않는다. 치료의 고통에,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병을 전염시키면 감염된 사람은 다제 내성 결핵균 폐결핵 환자가 된다는 점이 큰 문제다. 권오정 교수는 “우리나라에 많은 다제 내성 결핵 환자가 있다.”며 “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을 시키지 않으면서 편하게 치료 받을 수 있는 제도와 시설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면역력 높여 예방, 신생아는 접종 필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결핵에 감염되기 쉬운 장소로 통풍이나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곳,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곳, 지하철 등 인구 밀집 지역, 병원이나 노숙자 수용시설 등을 꼽았다. 특히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 수도권은 결핵 전염이 용이한 조건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공기로 전염되는 폐결핵. 사실 환자와 접촉을 하지 않으면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결핵이 흔해 결핵균을 만날 확률이 높다. 권오정 교수는 “결핵은 공기로 전염되기 때문에 본인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막을 수 없다.”며 “간염이나 AIDS와는 다른 차원의 전염병으로, 정부차원의 예산 배정과 적극적 대처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개인차원에서도 주의할 점은 분명 있다. 내 몸에 들어온 결핵균을 몰아내는 비결은 내 몸의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좋게 해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평소 꾸준한 운동과 균형 있는 식사로 전반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또 하나! 최근 미국 버클리대 연구팀에 따르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피우지 않는 사람보다 결핵에 걸릴 위험과 결핵으로 사망할 확률이 최고 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흡연의 해로움이 결핵 발병과 깊은 연관성을 보여준 사례라 할 것이다.
특히 어린 아이는 면역력이 약하므로 폐결핵뿐 아니라 치명적인 결핵성 뇌막염이나 결핵성 골수염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BCG 접종을 꼭 받도록 하자. 출생 후 1회에 한해 가능한 빨리 접종한다.
삼성서울병원 호흡기 내과 전경만 교수도 “어렸을 때 BCG 접종을 했다고 커서 폐결핵이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밝히고 “다만 어린아이가 결핵에 걸려 심각한 상태로 발전하는 것은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접종 예방률은 국내 자료에 따르면 74% 정도다. 우리나라는 1997년까지 초등학교 5~6학년 아동에게 과거 BCG 접종 여부에 관계없이 투베르쿨린 검사에서 음성반응을 보이면 추가 접종했다. 그러나 그 효과가 분명하지 않고, 이미 감염된 사람은 유해할 수도 있어 현재 추가 접종은 하지 않는다.
어린 아이나 당뇨병ㆍ심부전 등 면역력이 떨어진 만성 질환자는 폐결핵에 걸린 사람과 접촉한다면? 예방을 위해 항결핵제 중 하나인 아이나(Isoniazid)를 9개월 이상 복용하는 방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