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얻고도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기구독 02-702-6333

[투병체험기] 직장암 이겨낸 박금순 씨 희망가

2010년 03월 건강다이제스트 봄빛호 20p

【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하하 호호…눈만 뜨면 꼭 15초만 웃으세요”

탤런트 뺨치는 외모다. 옷차림도 결코 평범하지 않다. 얼굴에선 하하~호호~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 숨어 있는 그녀의 지난 삶은 결코 녹록찮다. 시쳇말로 소설 몇 권 분량이다. 결코 평탄하지 않았던 지난 삶, 설상가상 직장암까지….?

그래도 오늘은 웃고 사는 여자 박금순 씨(57세). 눈만 뜨면 하하~ 호호~ 15초를 웃으라고 말하는 그녀는 웃음강사다. 웃는 틈틈이 늴리리야~ 늴리리야~ 장단에 맞춰 민요도 부른다.? 문득문득 찾아드는 암에 대한 두려움을 웃음과 민요로 말끔히 걷어냈다고 말하는 그녀의 항암생활을 살짝 엿보자.

돈, 전부가 되다

201003hope01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고, 자식 낳아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는 것. 아마도 모든 여성들의 한결같은 소망일 것이다. 박금순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통의 여자들처럼 남편 사랑으로 행복한 여자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친 욕심이었을까? 스물세 살 꽃다운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7년의 결혼생활은 지금도 악몽으로 남아있다. 그 기막힌 사연이야 구구절절 말로 다할 수 없지만 맨몸으로 집을 나오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수중에 돈 한 푼 쥐지 않은 젊은 여자…. 그런 여자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장 하루 세 끼 먹고 사는 것조차 버거웠다. 비로소 돈의 무서움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돈은 그녀의 신앙이 되었다. 혼자된 몸으로 기댈 곳은 돈밖에 없다고 믿었다.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루 세 끼 먹는 것도 아까워 두 끼만 먹었다. 밥은 그저 허기를 메우면 되는 거였다. 닭이 먹고 싶을 때는 닭발로 대신하고 토큰 하나 아끼려고 다섯 정거장 걷기는 예사였다.

안 해본 일도 없다. 파출부부터 막일까지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모조리 다했다.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었다.

그랬던 덕분이었을까? 피부관리숍을 할 정도가 되면서 생활에도 숨통이 조금 트였다. 그러나 여전히 돈은 그녀 삶의 전부였다. 아침 9시 30분부터 밤 9시, 10시까지 물 만난 고기마냥 몸 안 사리고 일을 했다.

“정말 죽어라 일하고 한 번 들어온 돈은 절대 쓰지 않는 악착을 떨어가며 돈을 모았어요.? 그렇게 해서 집까지 장만했어요. 그런데 누가 시샘이라도 한 걸까요? 또 다른 시련이 제 앞길을 가로막고 나설 줄 짐작조차 못했어요.”

직장암 3기 진단을 받다!

2003년 10월 피부관리숍을 할 때였다.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암 검진을 무료로 해준다는 검진 통보서가 날아들었다. 잘됐다 싶었다. 그 즈음 마음에 조금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착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어요. 거기다가 눈은 늘 충혈돼 있기 일쑤고, 젊었을 때부터 골칫거리였던 만성변비 증상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었으니까요.”

병원에 가볼 생각은 아예 못했단다. 돈이 아까워서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그녀였다. 그런데 공짜로 해준다니…. 마음이 혹했다.

가까운 동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다. 그런데 검사를 마친 의사가 말끝을 흐렸다. 대변에 피가 섞여 있다면서 재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박금순 씨는 생각했다. 치질 때문일 거라고. 2000년도에 치질 수술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재발했나보다 여겼다.

그러나 며칠 후 대장내시경 검사를 해본 결과는 그녀의 생각과 많이 달랐다. 마취 상태에서 어렴풋이 들렸던 말은 암이었다. 의사는 말했다. 99% 암이라고. 직장암 3기라는 진단이 내려졌던 것이다. 그것은 그녀 나이 50세 때의 일이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첫 느낌은 어떠했을까? 의외의 답변이 돌아온다.

“이제 좀 쉬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암=사망선고라는 생각은 전혀 안 해봤어요. 암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거니와 워낙 살아온 지난 세월이 힘든 터여서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겼으니까요.”

수술 일정이 잡히고,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가 이어졌다. 모두들 힘들어 하는 항암치료도 거뜬히 이겨낸 그녀다.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는 게 그녀의 대답이다. “구토가 나면 구토한 걸 삼켜버렸어요. 항암주사를 맞고도 온 병원을 돌아다닐 정도로 엽기적(?)이었다고 할까요. 제가 이렇게 강하게 나오니까 암세포도 ‘이 몸은 구토를 해봐도 소용이 없구나.’ 체념한 듯 더 이상 구토가 나지 않았어요.”

그렇게 1년 정도 항암치료를 했다. 그 와중에서도 피부관리숍은 악착같이 운영했지만 그리 오래 하지 못했다. 기운 딸리고 피곤하고…손님은 나날이 줄어들면서 어쩔 수 없이 숍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녀가 새롭게 시작한 것이 있었다. 공부였다. 주부학교에 입학하여 때늦은 공부를 시작했던 것이다.

직장암, 폐로 전이되다

201003hope02

뒤늦게 시작한 공부는 큰 기쁨이었다. 한문도 배우고 수학공식도 외우고 영어 단어도 암기하면서 언제나 목말랐던 배움의 갈증을 풀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작한 김에 대학까지 가고 싶었다. 그래서 새벽 2~3시까지도 책과 씨름했다. 너무 무리한 탓이었을까?

3개월마다 하던 정기검진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왼쪽 폐 아래쪽에 암세포가 발견됐던 것이다. 직장암 수술을 한 지 꼭 19개월 만의 일이었다. 2005년 5월 또다시 수술대 위에 누워 폐의 일부를 떼어냈고, 12번의 항암치료를 했다.

“비로소 암이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확 돋더군요. 수술만 잘 되면 끝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언제든 또 다른 얼굴로 몸 이곳저곳에서 생겨날 수 있는 것이 암이었던 거예요.”

암의 무서움을 실감한 박금순 씨. 이때부터 그녀의 삶은 조금 달라졌다. 못다한 만학의 꿈을 이뤄보겠다며 시작한 주부학교도 그만두고 암 공부를 새롭게 시작했다.

암 관련 서적을 탐독하면서 브로콜리가 암에 어떤 작용을 하고 시금치를 먹으면 어떻고…. 하나하나 새롭게 알아가는 공부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암의 정체를 알아가면서 살아가는 방식도 바꾸기 시작했다. 먹는 것부터 바꾸었다.

●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체온과 같은 온도의 물을 한 잔 마셨다.

● 또 무+무잎+우엉+당근+표고버섯을 푹 고아 수프처럼 만든 야채수프를 세 끼 식사 40분 전에 꼭꼭 먹었다.

● 식단은 모든 사람들이 다 먹는 음식 위주로 먹되 중복되지 않게 먹었다. 아침에 시금치나물을 먹었다면 점심에는 무나물을 먹었다.

● 밥은 현미잡곡밥으로 바꾸었다. 그러면서 오래 씹었다.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30분을 씹을 정도로 오래 씹었다.

● 배부른 사람들의 사치로 여겼던 운동도 시작했다. 하루에 4km를 걷는 것부터 시작했다.

● 사는 곳에도 변화를 주었다. 충주, 춘천 등 공기 좋은 곳을 찾아 마치 유람을 다니듯 그렇게 살았다.

그랬던 덕분이었을까?? 폐암 수술 후 원인도 알 수 없고 마땅한 치료법도 없어서 적잖이 애를 끓이고 있던 혈변이 뚝 멈췄다.

“너무나 걱정스러웠던 혈변이었어요. 변을 볼 때마다 혈변이 나왔고 피가 모자라 피주사까지 맞아야 했으니까요. 병원에서는 원인도 알 수 없고, 마땅한 치료법도 없다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죠.”

그 혈변이 멎었던 것이다. 박금순 씨는 그때의 그 기쁨은 암이 다 나은 것처럼 여겨지더라고 말한다.

웃음과 민요 접목한 새로운 항암생활
201003hope03

그렇게 애를 끓이던 혈변이 멎고 하루하루 살만하다고 느끼던 어느 날, 어쩌다 살짝 넘어졌는데 팔이 부러졌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의 말이 골다공증이라고 했다.

골다공증? 그게 뭐야? 이제 조금 살만해지니까 또다시 골다공증? 신이 원망스러웠다. 두 번의 암 수술로도 부족했던 걸까? 1년 넘게 나오던 혈변으로도 성에 안 찼던 걸까? 신이 원망스러웠다.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것이 너무도 야속해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봇물을 이루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나 싶어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서 찾아온 것이 우울증이었다. 혹독했던 지난 세월, 두 번의 암 수술,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시련….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주부학교 다닐 때 알던 스승이 병문안을 왔다가 권해준 것이 있었다. 웃음치료였다. 살아온 인생이 너무 불쌍해서 웃고, 아픈 것 잊으려고 웃었다. 한숨 날 때도 웃고, 절망스러울 때도 허허~ 웃었다. 때로는 공허한 웃음이었고, 때로는 슬픈 웃음이었지만 그렇게 웃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이 한 번 웃고 나면 슬픔이 사라지고 마음도 어느덧 편해진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웃었어요. 특히 웃을 때는 15초를 웃어야 우리 몸의 엔도르핀이 가장 많이 나온다고 해서 하하~ 호호~ 킥킥~ 자지러지듯 웃고 또 웃었어요.”
그 여세를 몰아 웃음치료사 1급 자격증까지 땄다. 그러자 얼굴에는 서서히 핏기가 돌았고 우울증도 없어졌다. 살맛이 났다. 삶에 활력이 생겼다.

그런 그녀에게 민요는 또 하나의 삶의 즐거움이다. “한창 웃음치료를 배우고 있을 당시 우연히 동네 복지관을 지나다가 민요소리를 듣게 됐는데 그것이 그리도 좋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배우기 시작한 민요는 웃음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그녀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오늘도 웃고 살고 장구 치면서 민요를 부르는 박금순 씨. 6개월마다 한 번씩 하는 정기검진에서 그녀의 건강은 쾌청이다. 암세포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 모두가 웃고 살고 장구 치며 민요 부르며 산 덕분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탓에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이 가진 행복을 나눠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웃음강사로 활동하면서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는 웃음과 민요를 전파하는 일에 온 정성을 다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암환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다. 살고자 하는 생각은 내려놓지 말라는 것이다. 암이 머리에 있던, 허리에 있던 살고자 한다면 암세포가 제 먼저 알고 꼼짝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늘 간아 사랑한다, 장아 사랑한다, 폐야 사랑한다 그렇게 말하면 간도 장도 폐도 알아듣는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직장암에서 폐암까지 이겨낸 박금순 씨의 하루》

1. 아침 6시 20분 일어나서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신다.

2. 풍욕을 30분간 실시한다. 옷을 다 벗은 뒤 이불을 덮고 케겔운동을 한다. 케겔운동은 하루에 두 번 정도 하고 한 번 할 때는 40회 정도 한다. 나체일 때는 껄껄, 하하, 호호 웃으면서 두 손가락 맞부딪히기 운동을 한다.

3. 그런 다음 얼굴 근육 움직이기 운동을 한다. 눈동자를 굴리고 광대뼈를 실룩거려보고 입도 비틀어보고…. 하루에 한 번씩 한다. 얼굴에는 온몸 장부의 대응점이 있어 근육운동을 해주면 좋다고 믿는다.

4. 아침밥 먹기 40분 전에 야채수프를 한 잔 마신다.

5. 아침밥 먹기 전에 사과 반쪽과 고구마 반쪽을 먹는다. 중금속과 노폐물 제거에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6. 아침밥은 8시에 먹는다. 현미밥과 표고버섯, 시금치, 미역국 등 여러 가지 나물 반찬을 골고루 먹는다.

7. 오전 10시에는 뒷산에 오른다. 왕복 8km를 늘 걷는다. 이때 민요를 들으면서 장단을 맞춰가며 운동을 한다. 그리고 산꼭대기에 도착하면 소나무를 관중삼아 민요를 부른다. 마음껏, 목청껏 민요를 부르면 눈물이 난다. 기쁨의 눈물이 난다. 행복해서 눈물이 난다.

8. 점심은 아침과 다른 색깔의 채소와 과일로 메뉴를 구성한다.

9. 오후 2시에는 장구를 치면서 민요를 부른다. 혼자서 쿵짝쿵짝 신명나게 논다. 행복한 눈물이 또 난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여자가, 살기 위해 오로지 돈을 벌어야 한다고 믿었던 여자가 지금 장구 치면서 민요를 부르는 현실이 믿기지 않아서 또 운다. 울고 웃는다. 공자, 맹자, 순자의 스승은 웃자라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또 웃는다. 버리자 두려움을~ 하면서 하하 웃고, 마시자 건강을~ 하면서 호호 웃는다. 15초간 웃는다. 온몸으로 웃는다.

10. 저녁식사는 가볍게 한다. 소화가 잘 되는 브로콜리 3쪽, 양배추, 깻잎 등을 많이 먹는다. 팔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김치 양념으로 먹는다.

11. 저녁식사 후에는 족욕을 한다. 몸의 노폐물을 빼주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12. 저녁 9시 30분에는 반드시 잠자리에 든다.

<저작권자 © 건강다이제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근 기사

  • [생생투병기] ‘암 투병은 고통스럽다’는 편견을 깨다! 행복한 암 투병으로 암 극복한 2인 스토리

    2018년 06월 건강다이제스트 쉼터호 123p

    【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암과 행복. 전혀 안 어울리는 조합이 공존하는 곳이 있다. 암 환우를 위한 치료기관 암스트롱요양병원이다. 이곳에서는 암에 걸린 사람도 웃는다. 암에 굴복하지 않고 암과 맞설 방법을 스스로 찾는다. 그 길이 외롭지 않다.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가 있고, 경험 많은 의료진이 있으며, 다양한 치유 요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 투병은 고통스럽다는 편견을 깨고

  • [생생희망가] 직장암 이겨내고 10년~ 김병우 씨 별난 삶

    2018년 05월 건강다이제스트 푸름호 26p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처음에는 거절했다. 햇빛 좋은 날에는 운동을 해야 해서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끈질지게 매달리자 “그럼 비오는 날 오라.”고 했다. 비오는 날은 운동 스케줄을 잡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2018년 3월 8일, 아침부터 비가 내린 덕에 겨우겨우 만날 수 있었던 사람! 세종특별자치시에 사는 김병우 씨(75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직장암을 이겨내고 10년째 장기

  • [생생희망가] 직장암도 전화위복으로~ 홍서영 씨 체험고백

    2016년 12월 건강다이제스트 감사호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암으로 인해 더 건강해졌고,?암으로 인해 더 행복해졌어요”? ‘어쩌면 그럴 수 있었을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 든 생각이었다.? 아직은 젊은 40대 초반, 느닷없이 직장암 진단을 받았던 사람!? 대장과 항문 사이에 7cm 크기의 울퉁불퉁한 암덩어리를 보았을 때 하늘이 노랬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 번도 죽는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는 사람!?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런데 기적

  • [생생희망가] 직장암 3기 이겨낸 황재수 씨의 암 생존기

    2015년 08월 건강다이제스트 면역호

    【건강다이제스트 | 이기옥 기자】 치과 기공사로 새벽 2~3시 퇴근을 밥 먹듯 했다. 스트레스는 나날이 극심해졌다. 평소에도 무기력증이 올 정도였다. 결국 퇴직을 선택했다. 살고 싶어서. 퇴직 후 개인사업으로 치과 재료상을 시작했다. 과음은 아니었지만, 사업상 술자리가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고 거의 매일 반복됐다. 피로는 쌓여만 갔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풀 능력이 없었다. 결국 40대 초반에 직장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 [생생희망가] 직장암 3기 말에서 장기 생존의 주인공 김동곤 씨 19년 생존기

    2015년 02월 건강다이제스트 행운호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좋은 것 먹으려 하지 않고 해로운 것 먹지 말자 노력했어요” 나이 40에 느닷없이 닥친 불행! 직장암이었다. 직장암 3기 말이라고 했다.?너무도 황당하여 ‘허허~’ 웃음밖에 안 나왔다.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았다. 이때부터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한 죽음의 그림자!?그래서 독하게 결심했다. 철저한 관리에 목숨을 걸었다. 그런 덕분이었을까? 항암치료를 같이 했던 암 병동 동기들이 하나둘 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