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기옥 기자】
치과 기공사로 새벽 2~3시 퇴근을 밥 먹듯 했다. 스트레스는 나날이 극심해졌다. 평소에도 무기력증이 올 정도였다. 결국 퇴직을 선택했다. 살고 싶어서.
퇴직 후 개인사업으로 치과 재료상을 시작했다. 과음은 아니었지만, 사업상 술자리가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고 거의 매일 반복됐다. 피로는 쌓여만 갔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풀 능력이 없었다. 결국 40대 초반에 직장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오히려 제대로 살게 됐다는 사람! 경남 양산의 황재수(60세) 씨다. 직장암 3기 판정을 받고 5년 생존자로 새 삶을 사는 황재수 씨의 암 극복비결을 들어보았다.?
치질인 줄 알았는데…
종종 의자에 앉아있는 게 불편했다. 항문이 아파서 의자에 앉아 있기가 어려워졌다. 하루에 3~4번씩 화장실을 가고, 변을 보아도 개운치가 않았다. 볼일 한 번 보고 나면 몸의 힘이 쫙 빠졌다. 변에는 피가 섞여서 나왔고, 몸무게는 큰 변화가 없는데 허리둘레는 자꾸 커지는 것 같았다. 변 색깔도 짙은 쑥색이 됐고, 냄새도 예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엇보다 변의 굵기가 아기들처럼 가늘었다. 의자에 앉아있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참다못해 병원을 찾았다.
“치질인 줄 알고 동네병원엘 찾아갔습니다. 치질 내력이 있었거든요. 병원에 도착해서 치질 수술하러 왔다고 했죠.”
검사 도중에 설사를 자주 하던 생각이 나서 대장내시경도 하고 싶다고 했다. 검사가 끝난 후 의사가 말했다.
“치질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서 큰 병원으로 가세요.”
무슨 병이라는 말도 없이 그 말뿐이었다.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들어 서둘러 부산대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받은 진단은 ‘직장암 3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제 나도 죽는구나!’였습니다. 믿기지가 않았고, 충격 그 자체였죠.”
1999년 7월, 황재수 씨는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그의 나이 44세였다.? 당시에는 암에 걸리면 대부분이 사망했다. 암 진단 후 황재수 씨는 3일간 방에 처박혀 있었다. 불안과 공포 사이로 작은 싹이 하나 솟아났다. 많은 사람이 죽는다는데 나라도 보란 듯이 살아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때 ‘그래, 맞다!’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암으로 일찍 죽는데 나라도 보란 듯이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마음을 잡고 공부했죠. ‘멋지게 살아내 보자.’라는 생각이 투병 계기가 됐습니다.”
거부하고 거부했던 수술
의사는 방사선 치료를 한 달간 받은 후에 수술하고, 인공항문을 달아야 한다고 했다. 항암치료는 상황을 봐가면서 수술 후에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수술은 S결장과 직장을 모두 다 떼고 인공항문을 다는 수술이었다. 절차에 따라 수술날도 정했다. 하지만 정해진 수술날 병원에 가지 않았다.
“인공항문을 달기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계속 연기했죠.”
두 차례 수술이 연기되자 의사가 말했다. 세 번째까지 미루면 죽을 수 있다고. 영원히 죽을 수도 있고, 영원히 인공항문을 달고 살 수도 있는 거라고. 겁이 덜컥 났다. 죽는 건 겁나고 인공항문은 달기 싫었다. 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었다. 그래서 의사에게 물었다. 인공항문을 안 달고 살 확률은 얼마나 되느냐고. 한참을 고민하던 의사가 겨우 입을 뗐다. “60~70%입니다.”
황재수 씨는 이 확률을 선택했고, 1999년 10월 1일 직장암 수술을 받았다. S결장과 직장을 모두 다 뗐지만, 인공항문은 달지 않고 대장과 직장을 바로 연결하는 수술을 받았다. 황재수 씨는 나중에야 깨달았다고 한다. 그 선택이 13년간의 고된 고통을 선택했던 것임을.
13년간의 후유증, 결국 인공항문을 달다
수술 후 하루에 50~60번씩 화장실을 다녀야 했다. 볼일 볼 때마다 항문을 불로 지지는 듯한 심한 통증을 겪었다. 무엇보다 인공항문을 거부한 대가는 컸다. 장 유착으로 간질 환자처럼 온몸이 꼬이는 마비 증세가 오면서 창자가 끊어질 듯 아팠다. 그럴 때마다 119에 실려갔다.
그렇게 병원에 입원하면 20~30일씩 굶어야 했다. 굶어서 스스로 장이 펴지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다. 장이 펴지면 항문으로 호스를 넣어서 인위적으로 항문을 벌려야 했다. 마취도 할 수 없었다. 마취하면 기계가 창자를 벌릴 때 고통을 못 느껴 창자가 터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고통에 고함을 질러야 기계로 벌리는 걸 멈추었다. 이 끔찍한 고통은 1년에 1~3번씩 13년간 반복됐고, 2012년 인공항문을 달고서야 잦아들었다. 인공항문을 달면 대개 정상항문을 폐쇄한다. 하지만 방사선 치료를 했던 황재수 씨는 정상 항문을 폐쇄하지 못했다. 방사선 치료를 했던 부분에 메스를 대면 사망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었다.
“13년 동안 직장암 환자가 겪어야 할 것을 다 겪었습니다. 지금은 인공항문과 정상항문을 다 관리해야 하는 불편함만 남았습니다.”
자연생활요법(New Start)과 마음공부를 실천하며…
병원치료를 끝내고는 자연식을 기반으로 한 보완통합 자연치유요법을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자연치유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암 환자는 채식한다는 말을 들어서 채식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죠. 또 수술 안 하고도 나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도 했었죠(웃음).”
황재수 씨가 실천하는 자연생활요법(New Start)은 1800년대부터 미국의 로마린다주에서 행해지던 요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이상구 박사가 많이 전파했다. 황재수 씨는 2000년에 이상구 박사를 직접 만나서 그 요법을 8일간 배웠다고 한다.
자연생활요법(New Start)은 ▶Nutrition(올바른 식사) ▶Exercise(적당한 운동) ▶Water(물 사용) ▶Sunshine(적절한 햇빛의 이용) ▶Temperance(절제) ▶Air(맑은 공기 속에서의 생활) ▶Rest(적당한 휴식) ▶Trust(올바른 믿음)를 의미한다.
“너무 단순하지만 대단한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초가 없다면 좋은 음식을 먹어도 효과가 없다고 생각해요. 100%에 가깝게 실천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트를 만나서 흔들리지 않고 재발 없이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암 투병에는 심리적인 안정과 암을 무시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느꼈다는 황재수 씨.
“암을 만나고 난 뒤에 먹는 것에만 관심을 많이 뒀습니다. 대개 암 환자들처럼요. 근데 마음은 불안하고 두렵고 절망적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단어가 떠나지 않았죠. 그런 마음으로 좋은 음식을 먹어도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고 마음이 항상 공허했습니다.”
밤엔 죽는 꿈을 꾸고, 새벽에 홀로 깨서 외로움과 괴로움을 느꼈다. 이런 불안한 심리를 다스려야 내가 살겠구나 싶었다. 그때부터였다. 심리치료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체계화된 곳은 없었다. 암 환우 심리치료는 아예 없었다. 마음수련, 명상, 요가 등 마음공부를 하는 곳을 찾아다녔다. 불안한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기 위해서, 죽음에 좀 더 초연해지기 위해서 그 방법을 찾고 또 찾았다. 그러다 2009년 상담심리학 석사까지 취득하게 됐고, 죽음교육지도사 자격도 취득했다.? “제가 불안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저와 같은 암 환우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 욕심에서 공부를 하게 된 거죠. 정서·심리치료를 병행하면서 심리적으로 안정됐고, 투병생활도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도 해소됐죠.”
2015년 5월 현재 황재수 씨는…
암을 극복하는 데 아내의 내조와 형제·친구들 도움, 웃음치료와 마인드 조절법, 웰다잉 교육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황재수 씨.
2015년 5월 현재 그는 영양 상태나 건강은 아주 좋은 편이며, 2차 암이나 재발 징후 없이 건강하게 몸 관리를 잘하고 있다. 또한, 건강심리를 비롯해 웃음심리, 미술심리, 웰다잉 교육 강사로 적극 활동하며 자신만의 건강 비결을 꾸준히 실천하면서 재발의 위험 없이 하루하루를 꾸려가고 있다. 그런 그가 5년 생존을 넘어 지금도 건강 지키는 비결로 목숨 걸고 실천하고 있는 항암생활은 다음과 같다.
황재수 씨가 지금도 실천하고 있는 항암생활은…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하는 것들
● 기상해서 물 2잔 : 아침에 일어나서 체온과 비슷한 온도의 물 2잔을 마신다.
● 아침 요가 : 30~40분간 요가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을 다잡는다.
● 식전 물 2잔 : 세끼 식사 30분 전에 체온과 비슷한 온도의 물 2잔을 마신다.
● 운동 : 매일 아침마다 30~40분간 요가, 1주일에 4번 1시간씩 걷기, 1주일 1회 1시간 정도 가벼운 등산. 단, 운동은 몸 상태에 따라 맞춰 무리가 되지 않도록 한다.
* 삼시 세끼 식단은…
● 매 끼니 물, 과일, 견과류, 채소를 먹는다.
● 현미잡곡밥을 기본으로 한다. ?
● 과일: 식사 때 과일을 가장 먼저 먹는다. 과일과 밥은 장으로 내려가는 속도가 다르다. 그래서 과일을 나중에 먹으면 과일이 내려가지 못해 부패한다. 과일을 먼저 먹으면 위가 밥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암 환자는 면역력이 낮고 가래가 많으니 과일을 먼저 먹어야 한다.
● 견과류: 견과류(호두, 호박씨. 해바라기씨, 아몬드, 피스타치오) 중 아침에는 호두와 해바라기 씨를 먹고 점심때는 다른 것 두 가지를, 저녁때는 또 다른 것 2가지를 먹는다. 채식할 때 견과류를 꼭 챙겨 먹어야 한다.
● 콩 반찬과 콩 요리: 아침과 점심에 두부 4분의 1모나 대두와 흑콩을 반반 섞어 튀겨놓은 것을 먹는다(두부를 먹으면 콩 튀긴 것을 안 먹고, 콩 튀긴 것을 먹으면 두부를 안 먹는다). 콩 수프와 두유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므로 콩을 활용해 단백질을 신경 써서 먹는다. 단, 저녁때는 단백질을 안 먹는다.
● 통밀 식빵: 저녁때는 현미잡곡밥 대신 통밀 식빵을 먹는다.
● 채소: 14종의 채소를 직접 재배해 매끼 먹는다. 단, 저녁때는 살짝 익힌 채소를 먹는다. 소화·흡수에 좋다.
● 달걀: 우유는 먹지 않지만, 달걀은 먹는다. 달걀은 행복달걀(유정란 중에서도 햇볕을 받으며 자유롭게 자란 닭이 낳은 달걀)을 먹는다.
● 일반음식: 특별한 경우에는 일반 음식도 먹는다. 단 가능한 한 특별한 경우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