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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생활의학] 생채식으로 간암 극복한 곽옥섭 씨

2001년 01월 건강다이제스트 신년호 98p

【건강다이제스트 | 민족생활의학 연구회 장두석 회장】

다음은 민족생활의학의 생식을 통해 치료가 불가능했던 간암을 극복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곽옥섭 주부?(서울시 강서구)의 투병기이다.

죽음으로 몰고간 간암

먼저 지금까지 나를 건강하게 살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장두석 선생님께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지금 내 나이 64세지만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58세 때 나는 엄청난 일을 겪었다. 우리 나이 정도면 누구나가 조금씩은 배고픔의 추억도 가지고 있고 특별히 몸이 이상이 있지 않더라도 가끔 뼈마디가 쑤시고 이곳저곳 결리기도 한다. 또한 누구나 가슴속에 차곡차곡 쟁여온 아픈 기억들이 있고 간혹은 이로 인해 고통을 당하기도 할 법하다.

나 역시 또래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처럼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내게는 남편이 있었고 착하게 자라온 6남매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평범하게 생의 연륜을 쌓으며 살아가는 나에게 어느 날 그 평범함이 차차 무너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91년 초가을, 가슴에 이상이 느껴져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되었다. 하루하루 병원을 찾다 보니 어느 사이 4개월이 후딱 지나갔다. 그런데 전혀 호전되지 않았고, 급기야는 동네 병원에서 종합병원으로 가라는 권유를 받았다. 나는 그저 가슴의 이상이 호전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병원을 다니며 아무 부담을 갖지 않았다.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곳은 가정의학과였다. 하지만 거기서도 3개월이 지나도록 병세는 차도가 없었다.

나는 가정의학과 박사님의 권유로 폐전문의에게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간과로 다시 옮겨졌다. 이때 비로소 정밀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직장과 학교 때문에 늘 바빴다. 가족이 모두 모이는 시간은 한밤중밖에 없었기에 나는 혼자 병원에 다녀야 했다. 나는 혼자서 입원을 하기 위해 이것저것 가볍게 준비를 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입원했을 때까지도 나에게 그런 엄청난 일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그저 평범한 검사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정밀검사를 받아 보니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였다. 게다가 검사 초기부터 간암이라는 심각한 결과가 나왔고, 검사가 진행되면서 여러 곳에서 이상이 발견되었다. 그렇게 되자 검사내용이 더 복잡해지고 가짓수도 많아져갔다. X레이, 초음파, 컴퓨터촬영, 위 내시경, 간 조직검사…… 간 조직검사를 할 때에는 전혀 마취를 하지 않고 실행했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마취를 하면 간조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였는데, 나는 간조직을 떼어낼 때 이미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발로 걸어서 입원수속을 밟았는데, 검사가 시작되면서 나는 중환자로 변해 있었고 가족들이 일으키고 눕혀야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검사는 짧게 끝나지 않고 한달 동안 계속되었다. 갑상선에서도 종양이 발견되어 마취도 없이 목 부위를 절개해 조직을 떼어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기계 속에서 검사가 이루어졌고, 수없이 많은 검사를 하다 보니 식사는 며칠 씩 거르기가 일쑤였다. 나 자신이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해가고 있을 때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딸이 시간을 내어 병원으로 찾아왔다.

딸은 나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나는 딸에게 애원했다. 제발 퇴원만 시켜달라고, 죽더라도 집에서 죽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더 이상 검사를 받느니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웠다. 도저히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퇴원하면 바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며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딸아이가 인내심을 가지고 병원 관계자들을 설득한 결과 일시적인 퇴원이 허용되었다. 병원 측에서는 조금이라도 건강이 악화되면 재 입원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나는 걸어서 들어갔던 병원을 업혀서 나왔다. 기동도 전혀 못하고 중환자가 되어 집에 누워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나를 위래 이것저것 마련해주고 음식도 특별한 것들을 먹여주려 했다. 건강식으로 알고 있던 보신탕을 가져와 내게 권했다. 평생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보신탕이었지만 남편이 권했고, 혹시라도 건강에 도움이 될까 하여 서너 차례 먹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보신탕을 먹고 난 후 복수가 차서 앉을 수도 없었고, 목이 단단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고열로 고통은 참을 수 없이 심했다. 딱한 것은, 왜 갑자기 그 증상이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나중에 장선생님을 만나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보신탕은 영양가가 높아 암성분이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라는 것을.나는 목이 굳어져 전혀 활동을 하지 못했다. 목 따로, 머리 따로 돌려뉘어야 할 정도였고 복수가 차서 앉을 수조차 없었다. 그때 다시 수녀인 딸한테서 연락이 왔다. 자연요법을 하는 장두석 선생님이 계시는데 이번에 나바위에 오셔서 교육을 한다며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너무 지쳐 있었고, 그냥 편안히 죽음을 기다리고 싶었다. 그런데 딸이 너무나 간곡히 권고하니 내칠 수도 없었다. 나는 딸이 너무 고마워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전북 익산군 나바위성지로 향했다.

간암으로부터 구원해준 생채식

장두석 선생님은 나를 촉수하여 아픈 곳을 찾아내었다. 아무 말씀 없이 열심히 하라고만 하였다. 나는 희망 따윈 가지지도 않았다. 살 수 있으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장선생님은 먼저 굳어져 있는 목부터 직접 손으로 풀어주셨다. 움직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교육에 들어가 단식을 하면서 생수와 죽염, 마그밀을 먹었다. 그러자 연일 변이 쏟아져 나왔다. 마그밀은 장운동을 도와 숙변배설을 촉진하는 식품으로, 마그밀을 먹으며 6일간 매일 관장을 하자 내 몸에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변이 매우 특이했다. 시커멓게 나오던 대변이 점점 노란빛으로 바뀌어갔다. 그러면서 복수가 빠지고 목이 부드러워졌다. 몸의 변화뿐만 아니라, 강의를 들으면서 포기했던 삶에 대한 희망이 되살아나 살고 싶다는 생각이 용솟음쳤다. 아직 결혼시키지 못한 자식들과 남편, 그리고 내가 평생 동안 진실로 살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거늘 병마에 지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생기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가 생겼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교육 중 힘이 들 때면 여기서 포기하면 죽음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11일간의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선생님이 처방해주신 대로, 독한 여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치료에 힘썼다.

생식을 하면서 엄격히 요법을 실천했다. 1주일에 1회씩 겨자찜질, 된장찜질을 실행했고 냉온욕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다. 풍욕을 매일 할 수 있는 한 많이 했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7개월 동안 오곡가루와 채소만으로 식사를 했다. 아침은 먹지 않았고 점심, 저녁만 먹었다.

이렇게 노력하는 나를 보면서 남편도 한 가지씩 도와주었다.

남편 도움을 받으며 교육받은 대로 실행하자 명현현상이 심하게 나타났다. 이게 내 몸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노폐물들이 몸밖으로 마구 빠져 나왔다. 옆구리에서 공중목욕탕에 갈 수 없을 만큼 많은 노폐물이 쏟아져 나왔다. 살이 썩어 문드러진 것처럼 보였다.

간부위에서 흐릿한 색깔로 끈적끈적한 물이 흐를 때에는 식구들 입에서 더럽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고 온 가족이 흠짓 몸을 떨기도 하였다.

노폐물이 방안에 흥건히 고이고 나중에 그 물이 마르면 누런 색깔로 변했다. 그런 증상들을 보면서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고 그렇게 1년 동안 실천하면서 몸은 나날이 좋아졌다.

가족들도 나와 함께 자연식을 시작했다. 풍욕, 냉온욕을 하고 생수를 마셨으며 죽염을 상복했다. 처음엔 잡곡밥에 익숙하지 않아 쌀밥을 달라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지금은 잡곡밥만을 선호하게 되었다.

97년이 되었다. 91년 초겨울부터 92년 여름까지 병원에서 고통을 받았던 내가 지금은 완쾌되어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다. 장선생님을 만나서 다시 찾은 생명이 더 귀하게 느껴졌고 딸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5∼6년이 지났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항상 내가 받은 교육과 생채식을 전하고 있다.

지금 병중에 고통받고 있는 분은 장선생님을 만나 뵙고 민족생활의학요법을 실천하길 권하고 싶다. 민족생활교육을 받으면 삶의 소중함,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도리를 알게 되고, 열심히 실천하면 어떠한 병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의학적 소견

곽옥섭 씨는 매우 위중한 상태에서 나를 찾아왔다. 종양이 간, 폐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그는 이미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였으므로 아무런 삶의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의 가정적 배경이나 사람이 후덕하게 정직해 보이는 됨됨이에 약간의 희망을 가졌다. 게다가 그가 이미 60세가 넘었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었다.

60세가 넘으면 일단 정신력이 강하다. 그리고 인체의 세포분열이 왕성하지 않기 때문에 종양도 발전속도가 상대적으로 늦다. 어린이나 젊은이가 종양을 가지고 있으면 소생하기가 매우 어렵다. 성장과정에 있거나 젊기 때문에 온몸에서 세포분열이 왕성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60대 이상의 세대는 성장과정에서 오염되지 않은 음식을 먹고 켰기 때문에 자연치유력이 크다. 그는 천주교 신자였으므로 나는 그 믿음에 의지하자고 마음먹었다.

가정적으로도 꼭 살아야 할 사람이었다. 그의 부친은 독립운동가 곽경렬 선생이었다. 또 그가 돌보아야 할 자녀들이 여섯 명이나 되었다. 남편과 자녀 모두 곽옥섭 씨가 살아나도록 간절히 빌었다. 자식들이 모두 효심이 깊었고 그의 딸 하나는 수녀였다. 수녀가 하나 나오려면 몇 때에 걸쳐서 기도하고 덕을 쌓지 않으면 안된다.

촉수를 해보니 발이 퉁퉁 부어 있고 복수가 차 있으며 황달이 심했다. 발은 인체의 받침대로, 발이 건강하면 온몸이 건강하고 발이 건강하지 못하면 몸 전체가 불건강한 것이다.

교육을 받는 도중 곽씨는 복수가 빠지고 황달이 덜해졌다. 한번 복수가 빠지면 쉽게 다시차지 않으므로 복수가 빠지면 치료가 되는 것으로 본다. 복수가 빠지자 숨쉬기가 편해진 곽씨는 삶의 희망을 되찾아갔다. 집에 돌아간 후 곽씨는 열심히 생식을 하며 민족생활의학요법을 실행한 결과 서서히 회복되어갔다. 어쩌면 그가 살아난 것은 가난했기 대문이 아닌가도 생각해본다. 가난하기 때문에 아무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풀과 물, 소금에 의지할 수 있었다.

곽씨는 지금 건강하게 살고 있다. 곽씨를 간호하던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곽옥섭 씨가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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