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박선희 기자】
다부진 체격과 중저음의 나직한 목소리, 항상 선굵은 연기를 보여줬던 연기자 임채무. 강인함속에 부드러움이 묻어나오는 연기자 임채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죠” 그의 웃음은 호탕했다. 한 번만 만나보면 단번에 그가 대단히 화끈한 성격의 소유자란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와의 만남은 유쾌했다.
이 때문에 사실 그를 만나러 가는 동안에도 그의 다소 무거운(?)이미지에 눌려 웬지 썰렁한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라는 별스런 걱정이 언뜻 스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은 직접 그 사람을 겪어 보지 않고는 오해와 편견이 따를 수 있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와의 만남은 기자의 이같은 그간의 선입관을 순식간에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행복이 중요
1973년 MBC 공채 6기로 데뷔, 그해 ’밤길’에서 야쿠자의 부하 역을 맡은 것이 그의 연기인생의 시작이었다. 올해로 벌써 28년. 많은 화제와 선풍적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사랑과 진실’로 10년 무명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스타의 반열에 들어선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작품 ’억순이’ ’안녕하세요’ ’사랑합시다’ ’백년손님’ ’설중매’ ’임진왜란’ ’한지붕 세가족’ ’제4공화국’ 등을 비롯, 지난해 제약회사를 배경으로 그린 MBC 미니시리즈 ’나쁜 친구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각가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며 연기자 임채무를 시청자들에게 각인 시켜왔다.
한번에 한 작품 이상 출연하지 않기로 유명한 그가 최근 KBS2 TV 특별기획 드라마 ’천둥소리’와 MBC 아침 일일 드라마 ’내 마음의 보석상자’ 촬영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동시에 두 작품을 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너무 많네요∼” 사람사이의 관계나 정을 중시하는 그는 우선, 가까운 사람들의 경조사에 참석 못할때가 가장 안타깝다고 말한다. 기쁜 일은 더욱 기뻐해주고 슬픈일에는 격려와 힘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연기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이뤘고 가졌습니다. 이제는 그것들을 동료나 후배들에게 베풀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이 더 참되고 보람있는 만큼 활동을 조금 줄이더라도 주위사람들을 잘 챙기고 싶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자기 주관 뚜렷, 자긍심 높아
그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무엇을 계획하거나 이룩하기 위해 설계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지극히 현실주의라는 그는 순간 순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지 미리미리 계획을 짜놓는 성격이 못된다고.
그러고 보니 보통 급한 성격이 아니다. 무게있고 중후해 보이던 그는 의외로 말도 무지 빠르고 성격도 급했다. 물론 그만큼 행동 또한 민첩해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5분 이상이 걸리지 않는단다. 말 그대로 속전속결.
아울러 그렇게 내린 스스로의 결정에 대해 절대 후회하는 일도 없다고.
”물론 옳지 않은 결정이었을 때도 있었고 그런 것으로 인해 손해를 입기도 하지만 그래도 후회하거나 한번 내린 결정에 대해서 말을 번복하는 일 같은건 절대로 없죠”.
이렇듯 그는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도 확실하다.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 자신감이 없다면 쉽지 않은 일.
그래서 일까? 그는 자신이 뱉은 말과 행동, 약속 이세가지 만큼은 철저하게 지켜나가려고 애쓴다.
연기자이기 이전, 인간으로서 기본 갖춰야
TV프로그램이 주로 젊은 층 위주로 제작되다 보니 중년 연기자들이 설 무대는 물론 선택의 폭마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그가 참으로 안타까워 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아침드라마’
”가족들을 출근시키고 편한 마음으로 보는 아침드라마는 바로 주부들을 위한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왜 폭력, 삼각관계, 불륜 등이 주로 다뤄져야 하는지 참으로 씁슬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현실이다 보니 섭외가 오더라도 많은 연기자들이 출연을 놓고 고심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당연하죠.” 그보다는 포근한 가족애, 사회시사성 같은 프로그램이 아침시간대에 정착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냐는 것.
연기자 임채무. 그는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고 또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런 마음에서 그는 데뷔하자마자 곧 바로 스타로 떠오르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많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
”꼭대기만 보고 올라가는 것은 너무 쉽죠. 좌·우를 살피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산에 오르면 언젠가 내려가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잊고 사는 것 같아 참 안타까워요”. 집을 지을 때 기초공사가 중요하듯 연기자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기본을 갖춰야한다는 것.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위를 향해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급히 먹은 밥이 체한다고 하잖아요?”
높이 올라갈수록 모범이 되야 하고 덕망있는 사람이 되야 한다고 그는 당부한다. 자기관리에 있어 몇 배나 힘을 들이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트레이닝은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라고. 새롭게 출발하는 후배들도, 또한 자신에게도…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인생의 모든 것 군대에서 배워
중학교 시절 축구선수로 활약하면서 축구에 대한 꿈을 키워가던 그는 비록 진로가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축구를 즐기고 있고, 지금도 축구만큼 매력적인 스포츠가 없다면서 축구예찬론을 편다. 공을 차는 것에 빠져 5시간 이상을 뛴 적도 있다고.
그러나 3년전 축구를 하다가 두 다리가 완전히 부러질 정도로 큰 부상을 당한 후로는 예전처럼 할 수 없어 안타깝단다.
좀더 시간이 흐른, 고등학교 시절엔 축구선수의 꿈이 군인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잘생긴 외모와 빼어난 노래실력이 알려지면서 배우가 되라, 가수가 되는건 어떻겠냐? 라는 주변에서의 부추김이 잠자던 그의 끼를 건드렸고 지금의 그를 있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그는 선천적으로 군인이 좋단다. 실제 해병대 출신이기도 한 그는 남자라면 반드시 군대를 갔다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 그래서 내년에는 자신의 아들도 해병대로 자원해 보낼 생각이라고.
정신적·육체적 건강은 물론, 소망과 기쁨 등을 모두 군대에서 얻었다는 그는 학교나 가정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 특히, 평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 모두를 군대에서 배울수가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군인정신’으로 세상을 대처해 나가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이런 그인지라 지금도 군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그야말로 영원한 군인인 것이다.
낙천적성격, 스펙다클한 작품 하고파
오랫동안 운동으로 다져진 그의 몸은 정말 나이를 짐작케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부져 보였다. 요즘에는 상체에 비해 하체가 약해진 것 같아 운동삼아 모래주머니를 늘 발목에 달고 다닐 정도.
이런 그가 해보고 싶은 역이 있다. 바로 와일드하면서도 스펙다클함이 가득 느껴지는 그런 작품. ”전쟁이나 형사물 같은 소재를 다룬 작품에서 역동적인 연기를 펼쳐보이고 싶다”는 것이다. 조금은 심각하고 무거울 줄 알았던 그에 대한 이미지가 또 한번 바뀌는 순간이었다. 기자의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그가 말을 잇는다. ”내가 원래 굉장히 낙천적이고 활달한 성격인데, 간혹 ’폼 잡는 사람’쯤으로 오해 받기도 해요. 속을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오늘의 성공은 모두 아내 덕분
중매로 만난 지금의 아내에게 만난지 10분만에 ”결혼합시다”라고 해서 기겁을 하게 했던 그.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프로포즈는 물론, 당장 어머니께 결혼허락을 받겠다고 나서 모두를 당황시킨 그는 결국 만나지 두달만에 초스피드로 결혼에 골인했다.
삶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강한 편이라는 그는 그동안 먹고 싶은 술, 가고 싶은 여행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고 한다.
드라마 ’사랑과 진실’ 이후 많은 부와 인기를 얻었음에도 늘 계획아래 검소한 생활을 해왔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팽팽히 당겼던 줄을 조금 느슨하게 풀고 가족들과 함께 생활을 즐기고 싶단다.
지금의 그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아내 덕분으로, 그래서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시련은 또 하나의 성장
데이트 장소로 유명한 장흥. 그가 이곳에 놀이공원 ’두리랜드’를 세운지 벌써 12년이 됐다.. 드라마 촬영차 자주 왔던 산 좋고 물 좋은 장흥에 가족단위로 즐길만한 공간이 없는 것을 늘 아쉬워하다 아예 직접 놀이공원을 만들 결심을 했던 것.
사업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수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는 큰일을 진행하다보니 처음엔 시행착오도 많고 고생도 많았다. 하지만 절대 무리하게 일을 벌리지는 않았다고. 자신이 감당 할 수 있을만큼 자신의 수입에 한해서 지출을 한 결과 5∼6년 정도가 지나면서 안정궤도에 들어섰고 현재는 그가 관여하지 않아도 될 만큼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차례의 시련은 있었다.
IMF 한파와 지난 여름 장흥을 덮친 수해로 값비싼 기계들이 망가진 것.
”정말 눈앞이 캄캄하더라구요. 하지만 넋놓고 한숨만 쉴수는 없었지요. 가족과 직원들이 내 어깨위에 있는데… 단칸방에서도 시작했는데 뭐, 이 정도쯤이야… 그렇게 마음을 추스리고 나니 다시 힘이 생기더라구요.”
그렇게 직접 뛰어다니면서 고장난 기계를 하나하나 고쳤나갔고 지금은 모든 시설이 완벽하게 복구된 상태.
삶에 대해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는, 그래서 그 어떠한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오뚜기처럼 일어설 수 있는 사람. 짧은 시간의 만남에서도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내보이고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강한 흡입력을 갖고 있는 남자, 그가 바로 임채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