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윤말희 기자】
“저의 항암제는 ‘희망’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픔을 안다고…. 간암 말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강영성 씨는 암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제 2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린 간암 말기를 용기·희망·끈기라는 3가지 신조를 가지고 힘겨운 싸움에서 승리한 강영성 씨. 그가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건강을 찾고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은 인생고백을 들어본다.
강영성 씨는 오늘도 바쁘다. 그는 암환자 가족을 사랑하는 시민연대의 새로운 대표이며, 매일 아침마다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사랑의 편지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암환자와 그들 가족의 권익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그의 각오는 비장해 보인다. 또한 작년 7월에 시작된 사랑의 편지는 지금까지 많은 암환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와 그는 하루도 쉴 틈이 없다.
대기업 엘리트 사원에서 이제는 암환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사람으로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하기만 하다.
부주의가 부른 절망
96년 추석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간암 판정을 받고 시골로 내려가 2년 간 간암과의 싸움에서 기적적으로 강영성 씨는 살아났다.
”대기업 홍보실에서 일하는 동안 술자리가 잦아지고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습니다. 회사에서 받은 정기검진에서 3번 정도 ’간 요주의’라는 결과를 통보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죠.”
그러나 설마했던 그의 짧고 어리석은 생각은 그의 인생 지침을 돌려놓고 말았다. 간암 초기라는 씨앗을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믿을 수 없었다. 한창 나이에 암이라니…. 그것도 잘 낫지 않기로 악명 높은 간암이라는 선고는 그의 인생을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넣었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인 경북 영주로 내려갔다. 이때부터 약물치료와 함께 10개월 정도 요양을 했다.
하지만 다시 서울로 올라와 병원을 찾았을 때 그는 간암 말기라는 생각지도 않은 결과를 통보받아야만 했다.
“10개월 동안 자연 속에서 요양하면서 상태의 호전을 기대하고 병원을 찾았지만 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고보니 허탈하더군요.
설상가상으로 병원에서는 수술을 해도 살 가능성이 적다고 했습니다. 10개월 간 요양을 하면서 꼭 건강해져서 돌아갈 것이라고 다짐했건만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자 남는 것은 절망밖에 없더군요.”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삶을 포기했다. 참담한 현실과 절망감에 죽을 결심을 하고 인생을 막 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저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고 웃음만 나옵니다. 그 당시 제일 좋은 국내 자동차를 사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때는 삶의 희망도 미련도 전혀 없었던 때라 막무가내로 살았었죠.”
수술을 해도 나을 가능성이 없다는 선고 앞에서 수술은 아예 포기를 하고 그나마 약물요법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서 그는 자포자기한 삶을 스스로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내린 마지막 결론은 모든 것을 잊고 편안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자는 것이었다.
“악쓰지 않고 그냥 편안하게 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요양원에서 3달 정도를 잡념 없이 편히 먹고 지냈더니 몸이 조금 좋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 그가 요양원을 찾았을 때는 황달과 함께 복수가 차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점차 몸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 강영성 씨는 살고 싶다는 본능이 생겼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희망을 찾아
자신의 몸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 강영성 씨는 거처를 외삼촌이 계신 산속으로 옮겼다.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을 세상과의 연을 끊고 산속 생활을 시작했다.
“산에는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음식이며 물이며 심지어는 맑은 공기까지…. 눈, 비, 거센 바람이 불어도 굴하지 않고 산을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처음에는 구르고 넘어지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병과 싸운다는 생각에 열심히 올라갔습니다.”
이렇듯 그는 산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자연에 있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산에 나는 산도라지며, 산나물을 직접 채취해서 먹고 오염이 안 된 계곡 물을 마시며 철저한 자연인으로 살아갔다.
“나물을 캐러 오시는 할머니들에게 나물을 캐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산을 돌아다니다가 산나물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직접 캐서 먹었습니다. 산 속에 있는 모든 것들(바위, 나무, 공기…)에는 좋은 에너지가 있으니까요.”
이렇듯 그의 암 투병은 자연과 더불어 한 식이요법이었다. 모든 음식은 자연식으로 고사리나 송이버섯을 채취해서 먹었다. 즉, 채식 위주의 소식을 감행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이 원칙을 지키고 있다. 아침은 꼭 생식을 하고 나머지 2끼는 일반식을 먹는다. 그리고 틈틈이 차가버섯과 홍삼을 중간에 3번 챙겨서 먹는다.
또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의 간암의 원인은 스트레스였습니다.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가족과 나의 도시생활을 잊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건강해지는 그날까지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이를 악물었습니다.”
이렇듯 그는 무상무념으로 2년 동안 가족도 명절도 모르는 그런 생활을 감행했다. 그야말로 고독이 몸부림 치는 그런 생활이었다. 그러나 그 끝에는 기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암 덩어리가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아침마다 사랑을 전하는 전도사
기나긴 투병을 마치고 자신처럼 고생하는 암환자들을 위해서 살겠다고 다짐한 강영성 씨는 지금 학창시절부터 꿈꿔오던 목사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매일 새벽에 암환자와 그의 가족, 친구들에게 좋은 글과 암을 이기는 이야기를 메일로 보낸다. 또한 그는 암시민연대의 새로운 대표로 지난달 취임식을 마쳤다.
“아픈 동안 제 자신이 겪었던 고충과 가족들의 노고는 이만 저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누가 우리의 사정을 알겠습니까? 암환자와 그 가족을 도울 수 있는 정책을 꼭 마련하고 싶습니다.”
이렇듯 절망 끝자락에서 살아난 강영성 씨는 자신의 마지막 삶은 암환자와 함께 하길 바라고 있다. 또한 그는 암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절대 자신을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