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서울대 의학과(예방의학) 안윤옥 명예교수】
암은 세균처럼 외부에서 우리 몸 안으로 들어 온 것이 아니다. 우리 몸의 정상세포 하나가 어떤 이유로 하여 세포내의 유전자(DNA 서열)에 변화(=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원래의 성질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세포가 되는데, 그 세포가 죽거나 제거되지 않고 살아남게 되면 그것이 암세포가 된다. 암은 사람만이 걸리는 병이 아니고 모든 동물 및 식물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며, 인류가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생물체의 병으로 존재했다고 믿어진다.?
세포의 돌연변이는 우리 체내에서 거의 매 순간마다 일어나고 있는 매우 흔한 생체 내 자연현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생체는 돌연변이에 대하여 매우 효과적인 대응책을 가지고 있어, 쉴 새 없이 일어나는 돌연변이를 잘 통제하고 있다. 체내 대사과정을 통하여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유전자 손상물질을 무독화하든가, 또는 돌연변이가 된 유전체를 제거한다든가, 아니면 그 변형세포를 스스로 자살시키기도 하는 다각적인 통제기능이 있다. 또한 돌연변이가 꼭 나쁜 결과(예: 암 질환)만을 가져오는 돌발현상은 아니고, 때로는 진화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돌연변이의 반복 빈도가 너무 높든가 또는 통제·방어능력(대사과정)이 현저하게 떨어지면 변형세포는 살아남아 정상세포와는 확연히 다른 성질을 가지게 되고 암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정상세포는 엄격한 통제 하에서 세포분열과 증식 등이 이루어지는데 반해, 암세포는 분열과 증식이 불규칙하고 통제 불능 상태에서 증식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간의 일부를 떼어내면 남아 있는 간세포가 분열을 일으켜 활발하게 증식하는데, 간의 무게가 처음의 무게와 비슷한 만큼 불어나면 간세포의 분열 속도는 늦어지게 되고 마침내는 거의 정지한다. 그러나 암은 조절되지 않고 무한정 분열, 증식, 성장하는 비정상 세포의 덩어리인 것이다.
개인의 유전적 소인이 암 발병 원인인가?
정상세포의 돌연변이는 평소에도 아주 흔하게 있는 일이지만, 개인의 유전적 소인, 예를 들어 돌연변이가 잘 일어나는 세포 유전자가 있어서 돌연변이가 촉발되는 경우는 없다. 그런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면 태아사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다. 단지 혈액형이 A, B, O형이 있듯이 같은 유전체라도 형이 약간씩 다를 수 있는데, 그 형에 따라서 앞서 말한 방어능력(대사과정)의 특정 부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어 발암 위험성에 차이가 나타난다.
인체 발암물질이란?
세포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거의 대부분 외부로부터 들어온 물질 또는 그 물질의 체내 대사산물에 의해서 일어난다. 따라서 외부요인 중에서 사람 몸으로 들어와 암 발병과의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확인된 요인을 인체 발암물질(human carcinogen)이라고 한다. 약물과 같은 단일물질도 있고, 복합·혼합물질 또는 복합적 과정이나 환경, 그리고 특정의 행위·직종과 과거 경험 등등이 있다. 인체 발암물질 여부를 유권적으로 평가하는 국제기관이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산하 기관으로 프랑스 리용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암연구소(IARC)인데, 수시로 인체 발암물질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과학적 근거의 정도에 따라 제1군(확실한 발암물질), 제2A군(가능성이 높은 발암물질), 제2B군(가능성이 남아있는 발암물질), 제3군(발암성 있다고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제4군(발암성이 없는 것)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통상적으로 제1군과 제2A군까지를 발암물질로 인정한다. 2015년 10월 현재 총 985종류의 요인들을 검토, 평가하여 제1군 118종, 제2A군 75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193종은 일반인들이 평상시에는 쉽게 노출되지 않는 특수한?환경물질(특수 작업장 화학물질 또는 약물 등)이 대부분이다.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발암물질(제1군 및 2A군)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음주 ▶석면 ▶헬리코박터균 감염 ▶B형·C형간염 감염 ▶폐경기 치료 호르몬제 ▶HPV 감염 ▶방사선 ▶염장생선 ▶흡연 ▶자동차 배기가스(디젤) ▶뜨거운 마테차
일상생활 속에서의 암 발병요인은?
일반 인구집단에서 암이 발생하는 양상을 면밀하게 분석, 관찰하면 암의 원인이나 발병요인 등을 추정할 수 있는데, 거시적인 관점에서 암 발생 양상에는 두 가지의 큰 특징이 있다.
하나는 연령에 따라 발생수준이 크게 차이가 난다. 즉 소아, 청소년 등 30세 이전에는 암 발생이 매우 드물어 연간 발생률이 1만 명당 1명 내외이다. 이후 연령이 많아짐에 따라 발생률이 급격하게 높아져 60대 이후에서는 연간 발생률이 100명당 1~3명이 되어 30년 사이에 100배 이상 증가한다. 따라서 암 발생자의 50% 이상은 60세 이후의 노인이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발암물질에 노출되어 실제 암이 발병하기까지는 수십 년의 유도기간이 있다는 점과 단편적 또는 일시적인 발암물질 노출보다는 지속적 내지 반복적 노출이 더 위험하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특징은 같은 종류의 암이라도 지역 또는 사회문화적 생활환경에 따라 그 발생률이 10~100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암의 경우 한국인의 발생수준은 미국 백인에 비해 약 10배, LA 한인교포에 비해서는 약 2배 이상 높은 차이를 보이지만, 남녀 간의 발생수준 차이는 모든 지역에서 거의 일정하여 남자가 약 2배 높다. 이는 암의 주요한 발병요인이 개인의 생활환경 및 생활습관과 관련이 있음을 말해준다.
일상생활에서의 암 발병 3대 요인으로는 ▶흡연(전체 암 발생의 15~30% 차지) ▶식생활 요인(30~40% 차지), 그리고 ▶만성 감염증(10~25% 차지)을 들고 있다.
식생활 개선으로 40% 암 예방 가능!
전 세계적으로 암 발생의 약 1/3이 식생활 요인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에서는 식생활 요인의 원인 점유율은 약 41%로 추정된다. 위, 간, 대장·직장, 유방, 식도, 췌장, 전립선, 후두, 그리고 폐암 등등이 식생활 요인과 관련이 있는 암 부위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암 발생 양상을 보면 남자의 경우 위, 간, 폐 및 대장의 4대 암이 전체 발생의 2/3를 차지하고 있고, 여성에서는 유방, 위, 갑상선, 대장·직장 및 자궁경부의 5대 암이 약 60%, 여기에 폐와 간암이 보태지면 72%를 차지한다.
매일 매일의 식생활에서 섭취하는 음식 속에는 세포 DNA를 직접 공격하는 발암물질이 포함될 수도 있고, 또는 체내의 대사과정에서 발암물질로 전환되는 전 단계 물질이 포함될 수도 있다. 또한 반대로, 발암작용을 억제하거나 차단하는 방어물질도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식생활 요인의 암 발병과정은 매우 복잡하여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는 것은 분명 암 예방 효과가 있는데, 그 속에 포함된 특정 성분의 영양소만을 집어서 분석하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거나, 오히려 발암 전 단계 물질을 포함하거나 한다. 다시 말하면 체내의 복잡, 다양한 대사과정까지 밝힐 수가 없기 때문에 식품이나 음식의 특정 성분을 지목하여 암 발병 또는 예방 효과를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암연구재단(World Cancer Research Fund, WCRF)과 미국암연구원(American Institute for Cancer Research, AICR)은 공동으로 ‘암 예방에 관련한 식생활 및 운동요인’이라는 전문가 보고서를 1997년부터 매 10년마다 발간하고 있다. 여기서는 2007년 발간한 제2차 보고서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또한 우리나라의 관련 자료와 실태 및 연구 결과 등을 추가하여 우리나라에 적합한 암 예방 실천방향과 지침을 제시한다.
1 암을 예방하는 식이패턴 또는 식습관에 대하여
단일식품의 섭취보다는 여러 식품을 혼합하여 섭취하는 특징을 식이패턴으로 구분하여, 예를 들면 서구식 패턴(western diet: 붉은 고기, 튀긴 감자, 단 음식, 정제 곡물)과 건강 식이패턴(prudent diet: 채소, 과일, 생선 섭취), 또는 육식 위주와 채식 위주, 또는 저지방식 위주와 일반식 위주, 그리고 DASH 점수 diet(미국농무성 권장 지침에 따른 점수)와 MED 점수 diet(지중해 식이패턴에 따른 점수) 등등으로 구분하여 암(예: 대장암, 직장암, 난소암, 인후암, 유방암, 폐암 등) 예방 효과를 분석한 보고서가 있으나, 세계암연구재단(WCRF) 2007 보고서에서는 현재까지 보고된 논문에 근거해서는 식이패턴을 규명할 만한 표준화된 식단이 없고 근거자료가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식이패턴에 대한 권고사항을 결정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연구에서도 식이패턴 연구가 보고된 바 있으나 대상자의 수가 적어 충분한 증거자료로 사용되기는 미흡한 실정이다. 따라서 아직 암 예방을 위한 식이패턴 권고사항을 제시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한 실정이다.
2 염장식품 섭취에 대하여
염장식품은 음식을 장기 보관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또한 인스턴트식품이나 가공식품은 일반적으로 염분 농도가 높다. 소금 자체는 발암물질이 아니지만 고농도의 염분은 세포에 손상을 주고 주위에 있는 발암물질의 침투를 쉽게 해주는 발암보조물질(co-carcinogen)로 간주되고 있다.
세계암연구재단(WCRF) 2007 보고서에서는 짠 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식생활은 암(특히 위암) 발병 위험을 5~6배 높인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하였으며, 하루 염분 섭취량이 인구집단 평균으로는 5g, 개인으로는 6g이 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나트륨 섭취량으로는 각각 2g 및 2.4g이다.) 국내 연구에서도 장아찌, 젓갈, 생선구이 등의 염장식품 섭취가 위암 발병의 주요한 원인임을 밝힌 바 있으며, 된장찌개, 김치찌개, 생선찌개 등을 많이 섭취하는 것도 위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보고가 있는데, 심층 분석을 통하여 이는 된장 또는 김치 자체가 아니고 짠맛 때문임을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 국민건강영양조사(2008) 결과에서 보면, 우리나라 성인 1인당 하루 평균 염분 섭취량은 12.3g(남자 14.5g, 여자 10.0g)이었다.
3 고열량 식품, 고열량 음료 섭취에 대하여
세계암연구재단(WCRF) 2007 보고서는 비만이 암(대장암, 유방암 등) 발병의 요인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체중 증가 및 비만을 유발하는 고열량 식사와 음료수 섭취를 제한하는 권고를 하고 있다. 여기서 고열량 식품의 기준은 100g당 225~275kcal 이상이다.
식품 및 음료의 열량에 대한 공중보건 기준을 125kcal/100g으로 하고 있으며, 개인 권고로는 당분 음료는 마시지 말 것과 고열량 식이(패스트푸드 포함)는 ‘가끔’으로 제시하고 있다.
4 채소, 과일 섭취에 대하여
과일, 채소류의 섭취는 암 발생 위험을 낮추는 일관된 결과를 보인다. 다만 채소, 과일류 등이 함유하고 있는 영양소의 종류와 양이 각기 달라 내용이나 양을 포함하는 권고사항 제시는 어려움이 따른다. 과일보다는 채소의 항암효과가 큰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채소라 함은 감자, 고구마와 같은 탄수화물 주성분 채소는 제외한다. 또한 염장이나 피클(예: 장아찌)도 제외한다.
세계암연구재단(WCRF) 2007 보고서에서는 식물성 식품을 가급적이면 많이 섭취하라는 권고사항을 제정하였고, 공중보건(인구집단 평균 섭취) 기준 실천 지침으로는 1인당 하루 평균 600g 이상이며, 개인 섭취 기준으로는 하루 최소 400g이다.
채소, 과일 섭취량을 결정할 때는 흡연, 지방 섭취와 같은 제3의 요인을 고려하도록 한다. 흡연자는 일반적으로 채소, 과일 섭취량이 부족하며, 지방 섭취량은 채소 섭취량, 특히 과일 섭취량과 반비례한다. 채소, 과일 섭취는 구강암, 후두암, 식도암, 위암, 폐암, 전립선암 등등에 대해서 보호 효과가 분명하며, 특히 섭취량이 많을수록 보호 효과도 높아지는 용량 의존적(dose-responsive)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하루 평균 채소, 과일 섭취량은 400g(200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으로 높아 보이나 아직 세계암연구재단 권고량의 2/3 수준이다. 더구나 염장식품으로 분류되는 김치 섭취량을 감안한다면 더 부족한 형편이다. 우리나라 국민에게 권장되는 채소, 과일 섭취 지침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매끼 김치 이외에 다양한 색깔(초록, 빨강, 노랑, 보라, 하양)의 3~4종류 이상을 채소 반찬으로 먹는다.
? 채소와 과일은 되도록 가공되지 않은 신선한 것으로 한다.
? 하루 1~2컵 정도(200~400g)의 과일 섭취를 한다.
5 육류 섭취에 대하여
육류를 많이 먹으면 암(예: 대장암, 췌장암, 유방암, 방광암, 전립선암, 위암, 폐암, 식도암 등등)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오래전부터 보고된 바 있다. 특히 고온에 익히거나 직화구이 섭취를 지목하고 있는데, 육류가 불꽃에 닿았을 때 발생하는 heterocyclic amines(HCA) 등과 질소 화합물의 생성으로 인한 발암성 물질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에 발표된 연구결과에서는 육류를 섭취한 50~71세의 50만 명중 5만 3396건에서 암이 발생했으며, 육류를 가장 적게 섭취했던 사람에 비해 가장 많이 섭취했던 사람의 암 발생 위험률은 20%에서 60%가 증가했다.
이외에도 가공육을 가장 많이 섭취한 상위 20%의 사람들 또한 대장·직장암과 폐암 발병 위험이 각각 20%, 16%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육류식품 처리제로 질산염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질산염은 구강 및 위내의 환경에 따라 아질산염으로 환원되고 아질산염은 동반된 다른 음식(이차아민 또는 알킬아마이드)과 반응하여 발암물질(N-니트로소 화합물)을 생성할 수 있다.
세계암연구재단(WCRf) 2007 보고서에서는 붉은색 육류 및 가공육이 특히 대장·직장암에 대해 분명한 발병 요인으로 보고되었고, 붉은색 육류와 가공육의 섭취를 제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공중보건 기준 섭취 목표량은 1인 평균 섭취량의 경우 1주일에 300g 미만이고, 개인별 섭취 기준은 1주일에 500g 미만, 즉 하루 70g 미만이다.
우리나라 2005년 국민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의 붉은 육류 섭취량의 경우 평균이 56g으로, 섭취 빈도는 쇠고기와 돼지고기(삼겹살)가 80%를 차지하였다. 이외에도 가공육을 많이 섭취하는 대상자의 섭취량의 빈도가 높은 식품 순위는 햄구이, 소시지 볶음, 햄부침이었다.
6 음주에 대하여
암 발병 위험이 유의하게 증가하는 음주량 기준에 대한 증거는 아직 없으나, 음주가 암 발병 요인임은 부정할 수 없다. (IARC의 제1군이다.) 그러나 적당량의 음주가 심혈관계 질병(특히 심장질환)의 예방 효과도 분명하다. 세계암연구재단(WCRF) 2007 보고서에서는 남자의 경우 하루 2잔(알코올, 에탄올 양으로는 약 25g), 여자는 1잔까지를 기준으로 권고하고 있다. 술 종류에 따른 차등 효과는 없다는 증거가 확실하여 술 종류에 따른 개별적 권고는 불필요하다.
7 영양보충제에 대하여
영양보충제의 효과에 관하여 세계암연구재단(WCRF) 보고서에서 정리된 외국의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암 예방 효과가 인정되는 영양소는 흡연자에 있어 베타카로틴 보충 섭취의 경우였다. 그 외에는 아직 증거가 충분하지 못하지만, 대장암에 대한 칼슘제제 보충 섭취, 그리고 전립선암에 대한 셀레늄(selenium) 보충 섭취 정도이다.
결론적으로는 영양보충제 섭취의 암 예방 효과는 인정되지 않으며, 식이를 통한 영양소 섭취가 가장 바람직하다. 일상적인 영양보충제 섭취를 일반인에게는 권고하지 않고, 특별한 경우에(예: 특정 영양소 결핍자, 임신부, 흡연자, 과량 음주자 등)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섭취하는 것은 인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