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기옥 기자】
“희망은 있습니다. 저도 해낸 일, 누구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한국도로공사의 공무원으로 30년 장기근속을 앞두고 있었다. 사내에서 만나 결혼한 남편 김응배(55세) 씨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 다희(27세)와 소희(20세)를 두고 정말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다. 여성이 장기 근무하기 어렵던 시절,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여성 파워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췌장암 3기! 완치율이 극히 낮은 암이었기에 좌절은 더욱 깊었다. 암 앞에서는 그 어떤 단단한 마음도 맥을 못 추었다.
그렇게 아쉽게 회사를 퇴직하고 암 투병을 시작했다. 암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것도 췌장암을?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런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던 걸까? 2016년 2월 25일, 어떤 전이와 재발도 없이 당당하게 췌장암 5년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이 있다. 바로 경기도 성남에 사는 이경숙(51세) 씨다. 5년 완치율이 8%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완치가 어렵다는 췌장암을 이겨낸 이경숙 씨의 암 극복 비결은 과연 뭘까? ?
설마 하며 모른 척했지만 결국엔…
평소와 같이 출근해 분명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사가 이경숙 씨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그렇게 졸리면 잠깐 쉬고 오라고 했다.
“제가 아침에 전혀 졸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그때 저는 분명 졸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꾸벅꾸벅 졸았다고들 하더군요.”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 그런데 그것이 시작이었다. 꾸벅꾸벅 조는 날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몸에 이상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보니 가슴 밑에 빨간 점 두 개 있었어요. 순간 암인가 싶었지만, 설마 했지요.”
이뿐만이 아니었다. 양치하는 데 피가 나고, 왼쪽 옆구리가 너무 아파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뭔가 문제가 생긴 듯했고, 암은 아닌지 의심스러웠지만, 차마 병원을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왼쪽 옆구리가 너무 아파서 더는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근처의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는 옆구리 근육이 늘어난 것 같다며 통증 치료를 해주었다.
“그때 이미 췌장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무심하게 또 1년이 흘렀다. 그리고 2011년 2월 어느 날, 새벽 2시에 극심한 복통에 잠이 깼다. 엄청난 통증에 119를 부를 생각조차 못하고 근처에 사는 지인에게 간신히 연락해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갔다.
췌장암 3기 진단, 그리고 3개월 시한부 선고…
의료진은 췌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검사를 좀 해보자고 했다.
“췌장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1년 전에 회사에서 했던 건강검진에서 췌장이 늘어났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췌장이 뭔지도 잘 몰랐고, 특별한 주의도 없었기에 무심히 넘겼었는데 말이죠….”
검사에 검사가 이어졌고, 2011년 2월 25일, 이경숙 씨는 췌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암 크기가 커서 1년간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받아본 후에 수술을 생각해보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1년간 항암치료 27회, 방사선치료 33번을 받았다. 이 기간에 이경숙 씨는 강원도 춘천에 펜션을 얻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머물면서 자연식을 하기 위해서였다.
“펜션 근처에 사는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고기와 술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암이 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항암치료 하면서, 자연 속에서 1년 동안 살면서 민물매운탕이나 다슬기 넣은 된장국을 끓여 먹고, 전에는 거의 먹지 않던 채소 쌈에 가지도 구워서 먹고 하면서 식성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고기는 냄새도 싫어졌습니다. (웃음)”
그렇게 1년간 받은 치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의료진조차 놀라 오진이 아니었나 했을 정도로 예후가 좋았다.
“방사선 치료를 7~8번쯤 받았을 때 얼굴에 여드름 같은 것이 잔뜩 났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방사선의 독성이 표출되는 거라면서 이런 경우는 예후가 좋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 말씀대로였어요.”
덕분에 수술도 가능해졌다. 2012년 3월 7일, 이경숙 씨는 췌십이지장절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5월 21일에 퇴원할 수 있었다.
“제가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158cm에 78.8kg이었어요. 그런데 1년간 치료받고, 수술 후 퇴원할 땐 41kg이었어요.”
항암치료가 너무 힘들어 음식은 넘기지도 못하고 영양제로만 버텨야 했다. 너무 힘들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했다는 이경숙 씨.
하지만 그 모든 고통을 꿋꿋이 이겨낸? 지금, 이경숙 씨는 암 투병 덕분에 그토록 빠지지 않던 살이 빠졌다고, 덕분에 더 건강해졌다며 환히 웃는다.
그랬던 이경숙 씨는 2016년 2월이면 완치 판정을 받는다. 그러면서 자신만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됐다.
“사실 아내는 암 진단과 함께 3개월 시한부 선고도 함께 받았습니다.”
남편 김응배 씨의 말이다.
의료진은 남편에게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 남았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치료 방법이 있지만, 그렇다 해도 1년일 거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잘못 살지 않았는데 왜 아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아야 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1년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때부터였다. 김응배 씨는 아내의 의료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 아내의 기분, 상태, 치료 과정 등을 적어나갔다. 언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나하나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아내가 하고 싶다는 것은 모두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갖고 싶은 것이 있는지를 물어보고 아내가 밍크코트를 원하면 밍크코트를, 명품가방을 원하면 명품가방을, 그것이 무엇이든 아내를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했다.
“아내가 없다면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살 수만 있다면, 아내가 기쁘기만 하다면 그보다 더 귀하고 값진 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다. 아내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은 것은 무엇이든 구해서 아내가 먹도록 했다. 이경숙 씨는 말한다.
“시댁에서 유기농 채소를 꼬박꼬박 보내주셨어요. 그리고 차가버섯, 꾸지뽕, 상황버섯, 민들레 등도 말려서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먹었습니다. 특히 상황버섯 달인 물이 제게 맞았는데, 남편이 해외에 나가서도 상황버섯이 보이면 아무리 고가라도 사오곤 했어요.”
?
2015년 12월 현재 이경숙 씨는…
2016년 2월에 5년 완치 판정을 맞게 되는 이경숙 씨는 현재 재발이나 전이 없이, 그 어떤 약도 먹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의사 선생님께서 1년 전후로 전이나 사망의 확률이 나온다며 제 경우는 1년 반 이상을 살면 이미 암은 극복하고 사는 거라고 하셨는데 벌써 5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으면 되지만, 이경숙 씨는 2개월에 한 번씩 진료를 받는다. 자주 찾아가 그간의 자기 상태를 알리고 진료받는 것이 중요한 암 관리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이경숙 씨가 췌장암을 극복한 것이 분당서울대병원의 암 환자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많은 암 환우가 이경숙 씨에게 암 투병에 관해 물어온다. 이에 응해 개인적으로 암 환자의 멘토링 활동을 했던 이경숙 씨는 지금 분당서울대병원의 공식 멘토로서 멘토링 활동을 하고 있다.
“희망을 그토록 갈구했던 제가 이제는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게 매우 기쁩니다. 저도 이겨냈듯이 다른 분들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행복한 기운이 넘쳐나는 이경숙 씨가 앞으로도 희망을 주는 멘토로서 그 기쁨을 이어나가길 응원한다.
?Doctor’s note?
이경숙 님의 주치의?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센터 소화기내과 황진혁 교수
“조기 발견 어렵고, 완치율 낮은 췌장암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습니다”
췌장암 5년 생존율, 8%에 불과
췌장암의 경우 전체 췌장암 환자의 약 15~20%만이 수술 가능합니다. 췌장암을 완전절제를 받았더라도 약 70~80%의 환자는 재발하기 때문에 완치율이 낮습니다. 또한, 췌장암은 항암치료 및 방사선 치료 효과도 낮습니다. 우리나라 췌장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약 8%에 지나지 않습니다.
췌장암 5년 완치 판정, 이경숙 님의 완치 비결은…
이경숙 님은 주변 혈관 침범이 있는 3기 췌장암으로 진단받았습니다. 이 경우 완전절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경숙 님의 경우 조직검사 후 약 1년 동안 항암치료 및 방사선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치료 반응이 좋으셨기 때문에 2012년 겨울 췌장암센터 다학제팀 교수님들과 상의한 끝에 이경숙 님은 췌십이지장절제술을 받았습니다.
이경숙 님이 저희 병원 및 의료진을 믿고 힘든 치료 과정을 잘 따라와 주신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의료진을 믿고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에 의지하지 않고 힘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등을 잘 견뎌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우리 병원의 다학제팀처럼 췌장암과 같은 어려운 질환일수록 혼자가 아닌 팀이 치료과정에 함께 참여할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췌장암 투병 중이신 분들께
췌장암은 조기발견이 어렵고 완치도 힘든 암종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의료진과 충분한 상담을 하고 최신의 치료과정을 이겨낸다면 이경숙 님처럼 암 절제가 가능하고 완치에도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