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신승철(대한구강보건협회장, 단국치대 교수)】
치아를 뽑는 것은 최후의 수단
40여 년 전 미국 TV드라마 중 6백만 불의 사나이라는 연속극이 있었다. 어느 우주비행사가 우주선 발사 직후 사고로 사막에 추락했는데 다행히도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살아있어서 거금 6백만 불을 들여 인간을 첨단 의학으로 재생시켜 놓았다는, 당시로서는 공상 과학 드라마였다.
첨단 기술과 장비로 기능이 초능력으로 좋도록 재조립하였기에 다친 한쪽 눈과 귀는 10리를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한 쪽 팔은 로봇 팔과 같아 바위도 깨뜨릴 수 있고, 양 다리는 차보다도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슈퍼맨을 탄생시켰다.
더구나 그 남자 배우가 잘생겼고 사회정의나 국가 안보를 위해 여러 가지 활약을 하고 공을 세우는 장면들이 나오면서 드라마의 인기는 최고였다. 그 후 유사한 슈퍼맨, 원더우먼, 소머즈 등 초능력 인간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많이 나왔다.
그렇게 전 세계인들의 영웅이요, 우상이던 6백만 불의 사나이를 의학적, 보건학적인 관점에서 정의한다면 특급 장애인이다. 수술과 재활치료를 잘 받아 기능성은 매우 우수하나 건강이란 하느님이 만들어준 인체 장기 그대로를 지키고 유지한다는 건강의 개념으로 볼 때 어쩔 수 없이 인공 장기로 대처했던 초능력 인간들의 건강상태는 매우 낮게 평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현재 첨단과학과 가공할 만한 기술 시대에 살고 있다. 의학, 치의학 지식과 기술 수준도 이에 발맞추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전되었다. 인체 내 구석구석까지 각종 기기나 장치, 정밀 전자 장비가 들어가서 그 기능을 회복하기도 한다. 모두가 인간을 오래, 불편 없이 더 살리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다 보니 우리 인체에 대한 본래의 건강 개념이 점차 변질되어 가는 것 같아 우려가 되기도 한다. 인체 전반은 물론 구강 건강에 있어서도 실감나는 경우가 많다.
구강 건강이란 구강 내의 장기, 쉽게 말하면 주로 치아가 되겠지만 이런 치아를 잘 살리는 것이다. 우선 병이 안 생기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토록 함이 일순위이고, 혹시나 충치나 잇몸병으로 치아에 병이 생기면 가급적 조기에 치료하고, 심하다 해도 끝까지 잘 치료해서 치아를 보존하도록 함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물론 이러한 노력을 해도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 할 수 없이 마지막 수단으로 치아를 뽑게 되는 수순을 밟는 것이 구강 관리의 대원칙이다.
“웬만하면 이 뽑고 임플란트 해주세요! ”
근래에는 환자들 중 일부는 어떤 개념의 진료 철학으로 바뀌었는지 “선생님 웬만하면 아픈 이를 뽑고 임플란트로 해주세요. 요즈음 잘 나온다던데, 보험도 확대된다니까.” 라며 점차 스스로 6백만 불의 사나이화를 만들어 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TV 광고나 잘못된 혹은 지나친 대중 매체의 전문 지식 전달로 국민의 건강, 구강 건강 개념들이 점차 변질된 것 같다.
구강에서 치아를 뽑는다는 것은 생명체로 말한다면 그 생명체를 죽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치과의사나 환자는 비록 치아가 병들었더라도 그 생명체를 살려보기 위한 계획과 노력을 끝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하다가 그래도 안 된다고 판단되면 마지막 수단으로서 그 기능만이라도 되찾게 해주겠다는 개념으로 눈물을 머금고 해당 치아를 뽑아야 하는 것이 진료의 대원칙이라는 말이다.
이 개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계 모든 나라에서의 공통된 건강의 개념이다. 의료윤리이기도 하다. 모든 의료는 예방을 최우선으로 하고, 그 다음이 치료에 최선을 다하고, 그래도 안 되면 최후에 재활진료에 임하도록 함이 바람직하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진료 원칙에도 분명히 나타나 있다.
그런데 근래에 의료 기술이 발달했다고 의료와 건강의 본질을 망각하고 ‘웬만하면 치아를 뽑고 임플란트를….’이라는 생각과 판단을 일반 의료 분야보다 치과 분야에서 너무나 쉽고 자연스럽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의 양손 손가락이 모두 10개가 있다. 만약 어떤 사고나 잘못으로 어느 새끼손가락 하나에 염증도 심하고 곪았다 치자. 병원엘 갔더니 의사가 “이것 못 쓰겠으니 잘라버립시다.”라고 말했다면 아마도 그 환자는 난리 났을 것이다. 평소에 새끼손가락의 용도나 중요성도 별로 못 느끼고 살아왔으나 장기를 잘라버리자는 말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거부의사를 먼저 밝힌다.
그러나 고생하던 치아를 보고 “이것 뽑아버립시다.”라고 판단하면 조금 망설이다가 “그러세요.”라고 비교적 쉽게 응해준다. 그리고는 “이 다음에 좋은 임플란트 해 넣어 주세요.”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손가락 자른다는 외과의사에게 “이 담에 좋은 의수 손가락 해 넣어 주세요.”라고 부탁하며 손가락을 자르라고 내맡기는 환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세계 최대의 장애인 공화국 유감?
손가락이나 치아나 모두 인체의 장기이다. 장기가 없으면 장애인에 해당된다. 손가락 자르고 나면 장애인 인정받고 필요한 국가 혜택도 받는다. 그러나 같은 장기인 치아를 뽑으면 여러 개, 아니 모두 뽑아도 장애인 인정을 하지 않고 혜택도 없다.
왜 그럴까? 인체 장기의 중요도 때문일까? 아니다. 정치적·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치아 빠진 것을 장애인으로 인정한다면 내일 당장 우리나라에는 수천만 명의 장애자가 생기고 아마 세계 최대의 장애인 공화국이 될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그동안 치아 뽑는 것에 대해서 국가도 사회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할 만큼 가볍게 여기고 행하여 왔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치아를 보호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예방이 우선이고 조기에 치료토록 정기검진을 받고, 인공치아를 가급적 최후 방편으로 하기 위해서는 단골 치과를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계속 관리를 받아야 한다.
옛 중국 고사에 유명한 내과의 ‘편작’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의 의술을 칭송하는 자가 많자 그는 “사실은 나보다 더 유능하고 학식 높은 집안 형님벌 되는 의사 한 분이 있다. 난 아픈 사람의 증상을 보고 치료하지만 그분은 아프기도 전에 아플 걸 미리 알고 다 예방해 주는 매우 고도의 의학 지식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안 아팠으니까 그 고마움을 모르고 아픈 고통 후에 치료해준 나에게만 칭송을 하니 참 안타깝다.”라고 했단다.
인공장기로 가득 찬 6백만 불의 사나이보다는 태어날 때 하느님이 주신 장기를 훼손하지 말고 잘 보호하고 유지함이 건강을 지키는 일임을 명심토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