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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희망가] 대장암도 전화위복으로~ 김명원 교수의 사는 암 체험기

2016년 05월 건강다이제스트 생명호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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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때인 서른여섯에 느닷없이 대장암 진단을 받았던 사람!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처절한 고통의 세월을 살아내야 했던 사람!

그랬던 사람이 문학박사, 교수, 시인이 됐다. 그래서 암도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 대전대학교 인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김명원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대장암을 거뜬히 이겨내고 시인, 문학박사, 교수로 거듭나며 수많은 암 환자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는데 그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이대 나온 약사, 암초를 만나다

이대 약대를 졸업하고 일찍부터 승승장구 잘 나갔다.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 약제과에 근무하며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다. 다만 가정일과 직장 일을 병행해야 하는 워킹맘의 고단함이 종종 힘에 부치기는 했다. 그래도 별 걱정 안했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몸이 이상했다.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소화도 잘 안 됐다. 퇴근길 지하철 순환선에서 깜빡 잠이 들어 4시간이나 타고 돌았던 경험은 다소 충격이었다. ‘혹시 병적인 피곤함인가?’

“그래도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워낙 건강한 편이었고, 네 살짜리, 두 살짜리 아이 둘을 돌보면서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하루 시간을 내어 병원에 간다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았으니까요.”

더군다나 그녀의 직업은 약사였다. 몸이 아프면 손쉬운 대처법도 알았다. 스스로 약을 조제해 먹으며 그때그때 아픈 증상을 넘겼다.

그런데 이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께름칙한 증상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피곤함은 점점 심해졌고, 옆구리도 아픈 것 같고, 변도 가늘어지고, 변비도 생겼다. 그래도 ‘병원에 가봐야지.’는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차일피일 미루다 병원을 찾았던 김명원 교수는 “하늘이 조각조각 깨지는 불행과 맞닥뜨려야 했다.”고 말한다.

서른 여섯에 찾아온 불행

1994년 2월 2일은 김명원 교수가 결코 잊지 못하는 날이다. 가족과 함께 호주여행을 앞두고 시간을 내서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를 들으러 간 날이었다.

여행용 가방을 싸다가 예약 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달려갔던 그녀는 담당의사 앞에서 아연실색했다.

“보호자가 있느냐고 물어서 혼자 왔다고 하니까 대뜸 입원부터 하라는 거예요. 그것도 빨리요.”

병명을 물었지만 속 시원히 알려주지도 않았다. 구체적인 검사를 몇 가지 더하고 급히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뿐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떨리는 손으로 입원의뢰서를 받아들고 원무과로 가면서 그녀는 보았다. 소견서에 선명하게 적혀 있던 병명! 그것은 바로 ‘Colon cancer’였다. 대장암이었다.

그 후의 일은 지금도 마치 꿈속 같다. 가족들이 달려오고, 회사에도 알리고, 그날 바로 입원도 했다. 불과 하루 만에 너무도 달라져버린 삶! 불과 하루 만에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삶!

“그런 삶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누구에게 상처가 될 만한 일을 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것도 죄가 되냐고 묻고 싶었어요. 왜 이다지도 치명적인 일이 내게 일어났는지 납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어요.”

세상은 온통 설날이라고 방송마다 귀성길 특집으로 왁자지껄 시끄러웠지만 김명원 교수는 피울음을 삼키며 입원을 했다. 그때 그녀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10시간의 대수술은 잘 됐다고 했다!

서른여섯에 대장암! 너무도 억울해서, 너무도 가혹해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다는 김명원 교수! 그저 울음밖에 안 나왔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각종 검사는 날마다 이어졌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장암이었다. 정확히는 결장암이었다. 전이 여부는 개복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때의 그 절망감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입원 20일 만에 온몸의 털이란 털은 모두 깎인 채 롱카에 실려 수술실로 향하던 때의 그 막막함을 누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있겠어요.”

그동안 살아온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가슴을 후벼 팠다. 수술실의 그 섬뜩한 차가움이 주던 공포도 잊을 수가 없다. ‘다시금 눈을 뜰 수 있을까?’ 두렵고도 무서웠다.

그래서 수술 받기 하루 전날 유언도 했다. 하지만 죽을 운명은 아니었나 보다. 장장 10시간에 걸쳐 대장의 상당 부분과 비장, 췌장의 일부까지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그녀는 다시 눈을 떴다. 비록 온몸에 주렁주렁 호스를 매단 채였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비로소 살았구나 했다.

“수술하던 날, 병실을 떠나면서 침대 밑에 가지런히 벗어둔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 가슴이 미어졌는데 그 신발을 신고 퇴원을 하게 되었을 때는 정말 하늘을 나를 것 같았어요.”

비록 몸무게가 15kg이나 빠져 예전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곧바로 이어진 13개월의 항암치료는 그녀를 초주검으로 만들어버렸다.

머리는 모조리 다 빠지고, 물 한 모금만 마셔도 설사를 하고, 그래서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는 상태! 지금도 김명원 교수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항암치료의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젊어서 암세포가 더 강하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암 환자보다 강한 용량의 항암제를 써야 한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손발은 까맣게 타들어갔고, 피부도 벗겨졌다. 어지럽고 메스꺼워 아무 것도 먹지를 못했다. 설상가상 먹은 것을 저장하는 대장이 거의 사라졌으니 조금만 먹어도 설사를 했다. 물 한 모금만 마셔도 화장실에 가야 했다. 차라리 굶는 것이 편했다.

나날이 앙상하게 말라가던 몸… 뼈만 남은 골격…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 무섭고 낯설게 변해가던 어느 날, ?“그제야 친정 부모님께도 제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렸어요. 대장염이 아니라 대장암이라고… 그때부터 엄마는 전사가 되셨어요.”

전국 각지를 누비며 암에 좋다는 건 모조리 구해다 먹이기 시작했다. 느릅나무 껍질, 갈대뿌리, 뽕잎, 녹즙까지 안 먹어본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것이 암에 효험이 있고 없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의 극진한 정성이기에 이를 악물고 열심히 먹었고, 돌아서서는 설사를 하곤 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13개월의 항암치료가 드디어 끝났을 때 담당의사는 말했다. “축하한다.”고. “고생 많았다.”고. “이제부터는 삶과의 정면 대결이 시작된 것”이라며 “불치의 병은 없고 불치의 생활습관만 있을 뿐이니 정성껏 몸을 잘 돌보라.”는 충고도 함께였다.

이 말은 그녀 삶에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하고,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고통스런 항암치료를 끝내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는 김명원 교수! 이때부터 그녀는 많이 변했다. 생각도, 생활도 180도 달라졌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도 새롭게 알아가기 시작했다.

김명원 교수는 “삶과 죽음의 문제는 우리 인생을 전혀 새로운 길 위에 올려놓는 힘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때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와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던 것은 다음 3가지다.

1 수리산과 연애를 시작하다

매일매일 수리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전 10시부터 모자도 안 쓰고 선크림도 바르지 않고 산으로 향했다. 비로소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임을 알게 됐다. 때죽나무, 떡갈나무, 다람쥐, 바위를 들추면 나오는 가재까지 모든 것이 신기롭고 흥미로웠다. 이 사실을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뜻 맞는 엄마들과 함께 반디자연학교도 만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자연을 공부하고 나무부터 꽃, 식물, 동물 등을 공부했다. 지금도 환경생태학교는 그녀의 주관심사다.

2 먹거리를 바꾸다

하루 세끼 현미고구마밥을 먹기 시작했다. 현미에 서너 가지 곡류를 넣고 여기에 고구마를 깍둑 썰어 넣어서 밥을 지어 먹었다. 암에 좋은 식품 공부를 한 덕분이었다. 고구마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항암식품으로써 적극 추천되었다. 현미고구마밥을 주식으로 하면서 반찬은 가리는 것 없이 골고루 잘 먹었다. 제철채소 위주로 4~5가지 채소를 샐러드나 나물 등으로 매끼 충분히 먹었다. 생선, 고기도 가리지 않았다. 다만 먹는 방식에 변화를 줬다. 고기를 굽는 대신 물을 넣고 쪄서 먹는 방식으로 먹었다.

3 시를 쓰기 시작하다

어릴 적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문학소녀는 약사가 되었지만 마음 한 켠에 침전물처럼 고여 있던 문학에 대한 열정은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항암치료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연히 보게 된 주부백일장에 참가했고, 운 좋게 덜컥 장원까지 차지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전국마로니에 백일장에서도 장원을 했고, 그 여세를 몰아 시인으로 등단까지 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2016년 3월 현재 김명원 교수는…

항암치료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은 몸으로 시인으로 등단까지 했던 것도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사회생한 2016년 3월 현재, 김명원 교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동안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와 살면서 문학박사도 됐고, 교수도 됐어요.”

1996년 시인으로 등단한 여세를 몰아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고, 문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그러면서 대학 강의도 시작했고, 지금은 대전대학교에서 문학 강의를 하는 교수님이 됐다.

이 모두가 암이 준 선물이라고 말하는 김명원 교수! 문학박사, 시인, 교수로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이 너무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감사하는 삶을 산다. 지금은 암도 고맙게 여긴다. 삶을 점검해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또 매일매일 부활하는 삶을 산다. 죽을 듯한 고통이 있었기에 하루하루가 기적 같고, 하루하루가 날마다 새롭다. 그래서 오늘을 최대한 즐겁게 살고 행복하게 산다.

김명원 교수는 “오늘은 남아있는 날 중에서 다시 시작하는 최초의 날이고, 또 남아있는 날 중에서 가장 젊은 날임을 매일매일 상기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건강은 어떨까?

“재발의 불운 없이 너무도 건강한 몸으로 회복됐어요. 항암치료 후 지금껏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항암생활이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현미고구마밥을 먹으면서 제철식품을 골고루 먹고, 시간 나는 틈틈이 햇빛을 받으며 걷는 것을 즐긴다. 걸어서 한두 시간 거리는 무조건 걷는다. 차를 안 타고 걷는다.

오늘도 문학박사로, 시인으로, 교수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는 김명원 교수!

그런 그녀는 믿고 있다. “슬픔과 고통이 끝나는 곳에는 반드시 희망이 있다.”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암이라는 인생 최대의 복병을 만나 괴롭고 절망스럽더라도 절대 ‘좌절 금지’다. 멋지게 암을 이겨낸 감동 드라마의 주인공은 누구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적어도 포기만은 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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