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김진경 기자】
“암 선고 후 19년…오늘도 건강하게 살고 있어요!”
가지만 앙상한 겨울나무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것과 동시에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한겨울 눈밭 속에서 피어나는 봄꽃은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며 탄성을 지르게 만든다. 그러나 이처럼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의 힘을 보여주는 것은 비단 겨울나무와 봄꽃만은 아니다. 간경화와 간암을 극복하고 20여 년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하장리에 살고 있는 이연순 씨(64세). 그녀가 가진 생명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바보죽 요법으로 간경화·간암을 고쳤다는 그녀의 투병담을 들어본다.
올해가 암 선고를 받은 지 꼭 19년째 된다는 이연순 씨. 전라북도 고창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올들어 서울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눈발이 굵게 날려 사방이 온통 하얀색 천지였다.
언 발과 언 손을 호호 녹이며 방안으로 들어선 기자를 맞으며 마치 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수줍게 미소짓던 그녀. 이미 19년 전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울먹이며 말을 차마 잇지 못하던 그녀가 하나하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아파도 참고 또 참고
이연순 씨는 평소에는 농사를 짓고, 끼니 때면 가족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며, 주말이면 교회를 다니는 평범한 주부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몸이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들과 같이 일을 하다가도 혼자서 추위를 너무 많이 타서 옷을 껴입곤 했었어요.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물어도 그냥 모른다고 그랬지요. 사람들이 장난으로 이제 죽으려나보다 했다니까요.”
그래도 그녀는 병원 한 번 찾질 않았단다.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었다. 급기야 자리를 펴고 눕게 되어버린 것이다. 심한 오한과 통증으로 일도 못하고 거동도 불편해졌다.
“근처에 살던 동생이 와서 밥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면서 지냈어요. 그러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시골에 실력 좋은 의사가 있었겠어요? 오히려 병원을 다니니까 더 힘들기만 했지요.”
그래서 광주에 있는 큰 병원을 소개받아 갔다고 한다. 그런데 초음파 검사를 하려고 하니까 이미 몸에 복수가 너무 많이 차서 검사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교회 목사인 조카에게 부랴부랴 전화를 걸어 다른 병원을 찾아 초음파 검사와 동위원소 촬영을 한 결과 그녀는 간경화·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남편 김춘권 씨(67세)는 아내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자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모시고 가서 먹고 싶은 거 다 먹이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그러더군요. 그래도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한테는 간암 말기라는 사실을 숨겼습니다.”
바보죽 요법으로 건강 되찾아
아내가 간경화·간암 말기라는 사실에 황망해 있던 김춘권 씨는 오래오래 슬퍼하고 있을 처지도 못되었다. 어떻게든 아내를 살려내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기쁜 소식이 찾아들었다. 한 약사가 가르쳐준 방법으로 간암을 고친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길로 그는 병원 구급차를 타고 그 약사를 만나러 갔다. 그리곤 매달렸다. 제발 아내를 좀 살려달라고.
결국 그렇게 해서 정신적·육체적인 절대 안정 등 이것저것 도움말을 받아왔다. 특히 반드시 실천해야 될 식이요법을 너무도 강조하셔서 그것을 새기고 또 새겼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바보죽 요법이었다.
그날부터 이연순 씨의 바보죽 요법이 시작되었다. 밥 대신에 현미찹쌀과 현미멥쌀, 검은깨가루, 검은콩가루, 율무가루 등을 섞어 죽을 쑤어먹었다. 반찬은커녕 김치도 먹지 않고 바보죽 외에는 어떤 음식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양배추와 사과, 오이, 미나리를 갈아서 음료수처럼 마셨다.
죽을 쑤고 녹즙을 갈아주는 가족들의 정성에 감사하며 열심히 바보죽 요법을 실천했다고 한다.
“이렇게 한 5~6개월 정도 제 시간에 꼭 맞춰서 약을 먹고 바보죽 요법을 실천했습니다. 그랬더니 몸의 부기도 빠지고 제법 움직일만 해지더라구요.”
그러나 죽과 녹즙만을 먹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이연순 씨는 바보죽 요법을 하면서 몸이 점점 나아지자 음식이 당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밥과 반찬을 먹고 싶다고 가족들에게 요구했지만 가족들이 극구 만류했다.
“그제서야 혹시 몹쓸 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벼운 병이었다면 분명 가족들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테니까요. 제가 하도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니까 식구들이 할 수 없이 병명을 가르쳐 주더군요.”
이때 비로소 이연순 씨는 자신이 간경화·간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믿을 수 없었다. 병원에 가서 다시 한 번 더 초음파 검사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녀의 고집에 진 식구들은 그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고, 초음파 검사를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간암 말기여서 수술조차 할 수 없다던 의사로부터 들은 얘기는 “간경화니까 약을 잘 먹고 관리를 잘하라.”는 것이었다. 실로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가족들의 헌신적인 사랑이 최고의 약
그녀가 이렇게 건강을 회복하게 된 데에는 가족들의 노력이 컸다. 특히 큰딸과 남편은 헌신적이었다. 학교 졸업 후 서울로 갔던 큰딸은 엄마의 병세를 돌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고, 남편은 사람들이 집에 와서 담배를 피우고 스트레스를 줄까봐 집에 오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큰딸이 참 많이 고생했어요. 행여 이웃집에 놀러가 있으면 시간 맞춰서 약을 가지고 뛰어올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거동을 못할 당시에는 직접 대소변까지 다 치워줬어요.”
뿐만 아니라 그녀가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실컷 한 번 먹어보고나 죽겠다고 고집을 피울 때에도 가족들이 인내심을 갖고 열심히 해야 산다고 그녀를 설득시켰다고 한다.
“가족들 전체가 냉장고 문도 못 열게 했다니까요.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다 가족들 덕분이에요. 안 그랬으면 참지 못하고 이것저것 먹고 병이 심해져 죽었을지도 모르죠.”
바보죽 요법을 실천한지 1년여만에 다 나았다는 판정을 받고 뛸 듯이 기뻤다는 이연순 씨.
지금은 정상인과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녀는 “알아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만 못해요. 늘 먹는 것에 조심하고, 매사 긍정적인 생각, 좋은 생각을 하며, 항상 싱글벙글 웃으면서 생활하면 건강은 절로 옵니다. 그러면 간경화나 암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