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도움말 | 이대목동병원 대장항문외과 정순섭 교수】
【도움말 | 경희대학교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 병원장】
“우리, 방귀 틀래?”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지내자는 신조어다. 텔레비전 토크쇼에 유명 연예인들이 애인이나 친구 사이를 표현하는 친밀한 말로 ‘방귀 튼 사이’를 유행시키며 떠올랐다. 누구나 방귀를 뀌지만 감추는 것을 예의로 본다. 그만큼 대놓고 뀌기도 어렵고, 입에 올리기도 쑥스럽다. 때로는 큰 소리, 지독한 냄새로 불쑥불쑥 볼을 발그레 물들이는 방귀. ‘나만의 체취’가 건강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다.
냄새가 지독하면 먹은 음식을 의심하라
어원은 ‘방기放氣’로 공기를 내보낸다는 뜻이다. 장 내용물이 발효해 생긴 가스, 음식물과 함께 입을 통해 들어간 공기가 항문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다. 관련 연구는 2차 대전 당시 잠수함 승무원의 방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가 시작됐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1960~70년대 미국과 소련이 우주 개발 경쟁을 시작하면서 우주비행사들의 방귀 배출 문제를 고민하면서 본격화됐다. 주성분은 질소 20~90%, 수소 0~50%, 이산화탄소 10~30%, 산소 0~10%, 메탄 0~10% 정도다.
이대목동병원 대장항문외과 정순섭 교수는 “기체 자체에는 냄새가 없다.”며 “장에 질병이 있거나 장내 세균에 따라 냄새가 좌우될 수 있지만, 대부분 무엇을 먹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달걀 같이 냄새가 강한 음식을 먹으면 ‘티’가 난다는 것이다. 단백질은 방귀 냄새를 만드는 원인이 된다. 장내 세균이 소화과정에서 남은 단백질 찌꺼기를 발효하며 인돌, 활화수소, 암모니아, 휘발성 지방산, 메르캅탄 등 냄새가 강한 화합물을 만들어 낸다. 또 혐기성 세균이 방귀 냄새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인구의 약 30~50%가 결장에 혐기성 세균이 있다.
그밖에 술 먹은 다음날 냄새가 독한 것은 술과 함께 안주를 이것저것 집어먹어서 그럴 수 있다. 유독 독한 방귀 냄새는 맡아도 괜찮은 걸까?
정순섭 교수는 “괜찮다”고 말한다. 모든 성분은 공기의 구성성분이고, 먹은 음식물에서 나오기 때문에 독성은 없다는 설명이다. 속설처럼 딱히 많이 뀐다고 냄새가 독해지는 것도 아니다.
냄새 심한 방귀, 너무 걱정하지는 말되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경희대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 병원장은 “방귀와 함께 복통, 식욕부진, 체중감소, 불규칙한 배변 등의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면 대장질환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노년층에 갑자기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면 대장암 등 소화기에 종양이 생겨 대장이 막혔거나 대장 형태에 변화가 온 것일 수 있으므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통해 병변을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양이 많거나 통로 좁으면 소리 클 수도
냄새도 문제지만 조용히 뀌었다면 모를까, 누가 뀐 건지 숨길 수 없게 만드는 큰 소리는 방귀 주범을 순식간에 작게 만든다. 보통 공공장소나 밀폐된 공간에선 소리를 조절하려 애쓰지만 간혹 어려울 때가 있다.
이경섭 병원장은 “방귀 소리는 가스량이나 압력, 치질 같은 항문질환 등 가스 배출통로에 영향을 주는 항문 주위의 해부학적 이상으로 결정된다.”고 말한다. 같은 힘을 줄 때 통로가 좁을수록 소리는 크게 나게 마련이다. 공기의 양이 많아 유난히 밀어내는 힘이 크거나 치질로 통로 일부가 막힌 사람은 남보다 방귀 소리가 크게 날 수 있다.
정순섭 교수는 “소리는 나팔 같은 원리”라면서 “소리가 큰 사람은 오히려 괄약근이 잘 진동하는 건강한 사람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시원한 배출은 건강하다는 증거
냄새 독한 방귀, 소리가 큰 방귀, 조용히 퍼지는 방귀 등 어떤 게 건강하고 좋은 방귀일까? 정순섭 교수는 “일단 맹장수술이나 암수술 등으로 방귀를 못 뀌는 사람이 문제지 뀌어서 나쁜 방귀는 없다.”고 말한다. 무조건 참지 않고 공공장소나 밀폐된 곳에서 무턱대고 뀌는 것은 문제지만 너무 금기시 해 꾹꾹 참을 필요까진 없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체내 가스를 몸 밖으로 배출하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인 방귀. 일반적으로 방귀를 뀔 때 냄새가 나지 않고 속이 시원하면 소화되고 남은 노폐물이 적다는 것을 뜻하므로 소화가 잘 되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이경섭 병원장은 “방귀는 몸의 상태를 조절하는 데 큰 역할을 하므로 가능한 시원하게 배출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조언한다.
참을 경우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도 있다. 방귀를 참으면 복부가 팽창해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가스가 장에 가득 차 복통을 일으키고 소화능력까지 떨어진다. 해로운 가스가 점막과 접촉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건강에 좋지 않다. 방귀에 들어 있는 약 400종의 물질 중 벤조피렌과 나이트로자민은 발암물질이므로 발병에 극소량이지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방귀 횟수 줄이는 방법은?
인간과 자연에 큰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방귀대장’이란 별명을 달가워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평소에 소장과 대장에는 평균 200mL의 가스가 남아 있다.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중 하루에 13~20회 정도 방귀를 뀌며 전체 가스 방출량은 적게는 200mL, 많게는 1500mL에 이른다. 자신이 남보다 많이 뀌는 것 같아 신경 쓰인다면 시도해 볼 방법이 있다.
장내 가스의 약 70%는 입으로 들어가고 20%는 혈액으로, 나머지 10%는 장내 세균의 작용으로 생긴다. 정순섭 교수는 “방귀 횟수를 줄이려면 공기를 덜 삼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제대로 씹지 않고 식사를 빨리하거나 과식 하면 공기를 많이 삼키게 될 수밖에 없다. 껌을 씹거나 사탕을 먹으면 공기를 자꾸 들이마셔 장내 가스를 늘리게 된다.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도 마시지 않는 게 좋다. 뜨거운 음식을 호호 불면서 먹거나 빨대를 쓰지 않고 병째 마시는 습관, 흡연도 공기를 체내로 추가 유입하게 하므로 피한다. 치아가 좋지 않은 사람은 이가 빠지면 그 사이로 의도치 않게 공기가 많이 들어가게 되니 틀니 등으로 빠르게 메우는 것이 좋다. 평소에 한숨을 많이 쉬는 것도 방귀를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냄새를 줄이려면 어떻게 할까?
이경섭 병원장은 “음식 선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 동물성 단백질을 지나치게 섭취할 경우 방귀의 양이 늘고 냄새가 심해질 수 있다. 단백질만의 문제는 아니다. 과일ㆍ콩ㆍ양배추ㆍ양파ㆍ브로콜리ㆍ아스파라거스 등 채소에 들어있는 단당류와 밀ㆍ귀리ㆍ감자ㆍ옥수수ㆍ빵ㆍ국수 등에 들어있는 다당류는 소화가 덜 된 상태로 대장에 도착해 대장 내 세균에 의해 발효된다. 그 과정에서 가스가 다량 들어찬다. 웬만한 가공식품과 소스류에 다 들어있는 인공감미료도 좋지 않다.
요즘 많이 쓰는 비데도 조심한다. 비데의 수압이 너무 강한 경우에는 항문 괄약근이 약해져 대변이나 방귀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시로 나오기 때문이다. 항문 세척 시 항문 괄약근이 벌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수압을 높이지 말아야 한다. 항문 세척은 하루 3회 이내가 적당하다. 너무 자주 하면 항문을 보호하는 층이 약해져 피부가 건조해지고 항문 가려움증이 생길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가스가 많이 차는 자세를 피하도록 한다. 앉을 때 아랫배를 내밀고 의자에 얕게 걸터앉으면 장내 가스가 많아진다. 횡격막을 눌러 소화기를 압박해 위장운동이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의자에 앉을 때는 엉덩이를 뒤쪽에 바짝 붙이고 등을 곧게 편 자세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