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피옥희 기자】
“나는 정말 ‘복’ 많은 사람이에요!”
그때 그 시절 많은 어머니들처럼, 정경선 씨(57) 역시 그랬다. 제 몸은 돌보지 않은 채 오직 남편과 4남매를 위해 살아온 인생. 그래서 남들은 억척스럽다고 했지만 그게 마냥 삶의 행복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직장암 발병을 계기로 난생 처음 자신을 ‘위할 줄’ 알게 되었다는 그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
“20년 동안 새벽 5시에 기상해서 밤 12시에 잠이 들었습니다. 그땐 내 몸 돌볼 생각도 않고 악착같이 일을 했어요. 너무나 자신을 혹사시켰던 거죠. 바보같이….”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았던 시절. 처음에는 ‘입에 풀칠하고 살자’며 시작한 일이 어느덧 치열한 일상이 되었다. 어쩌다가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4남매 뒷바라지 생각에 편히 쉴 수도 없었다.
동트기도 전에 시작된 하루일과. 새벽밥을 짓고 아이들 도시락을 싸며 정경선 씨의 아침은 그렇게 바삐 지나갔다. 지금은 과일 중도매업을 하고 있지만 젊은 시절 안 해본 일이 없을 만큼 힘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무엇이랴. 아무리 험한 일이라도 가족이 있다는 생각에 거칠 것이 없었다. ‘인간 정경선’ 대신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을 과감히 선택한 그녀였다.
그렇게 바삐 살아왔기 때문일까? 1년 365일 중 쉬어 본 날이라고는 고작 5일. 이 역시 두 다리 뻗고 푹 쉬어본 기억이란 없단다. 모처럼 집에서 쉬는 날에도 가족들 챙기기 바빴기에, 어쩌면 건강 적신호는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직장암 3기 선고를 받다!
그때가 2004년 여름. 참 ‘바지런히’ 살아온 정경선 씨에게 이상신호가 감지됐다. 머리를 감고 나면 한 뭉치씩 빠지는 머리카락.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피로가 몰려와 자꾸만 잠에 빠져들었다. 그해 겨울에는 대변에서조차 이상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변이 우동줄기처럼 나오더라고요. 두 달 정도 그러고 나니 이제는 대변에서 콧물 같은 점액이 묻어 나오고 방귀가 자꾸 나왔습니다. 그게 아마 이듬해 봄, 여름까지 계속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2005년 가을, 마침내 심각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그해 추석을 열흘 남겨두고 대변이 아예 나오지 않았다는 정경선 씨. 그렇게 5일이 지난 후에는 변에 피가 섞여 나오더니, 다음날에는 피가 줄줄 흘러나오더란다. 당시 과일 중도매업을 하던 그녀는 추석이 곧 대목인지라 꾹 참고 가족에게 말하지 않았다. 추석연휴를 보낸 뒤 창원에 있는 한 내과에서 대장내시경을 했고, 그때서야 직장암이란 걸 알게 되었다.
“부산에 있는 병원에서 수술을 하려고 검진을 받았더니 1기 반이라 하더군요. 하지만 더 큰 병원에서 수술 받고자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에 갔더니, 이번에는 직장암 3기라는 겁니다. 어찌나 놀라고 겁이 났던지…. 그때가 2006년 1월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일단 수술을 한 뒤 총 여섯 번의 항암치료를 받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수술을 받은 뒤 첫 번째 항암치료는 비교적 잘 견뎠는데, 두 번째에는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입술이 터서 갈라지고 식도가 부어서 물도 못 먹을 정도였으니까요.”
채식위주의 섭생 시작!
결국 여섯 번의 항암치료 중 두 번만 받고는 우연히 암 환자들이 모여 요양하고 치료를 한다는 한 병원의 ‘섭생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단다. 그때부터 채식 위주의 식사와 산행, 풍욕, 냉온욕, 기수련, 명상, 해독 등 자연인으로서 거듭나게 된 정경선 씨. 약 6개월 간 산나물이나 산야초를 캐서 먹으며 서서히 자신의 몸을 가꾸게 되었단다. 이후 지금까지 정경선 씨는 나물과 채소 위주의 식단을 고수하고 있다.
“그 당시가 저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제 스스로도 즐겁게 생활하고 싶었지만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사비를 들여 이상한 옷들을 구입해 입고는,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스스로 ‘삐에로’처럼 행동했었죠.”
직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 후 두 번의 항암치료를 받았던 정경선 씨. 하지만 자기 자신이 살아야 가족이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녀는 병 자체를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였다. 물론 가족 몰래 울기도 수십 번. 꺽꺽 목이 메여 소리내어 울 수조차 없었던 시간도 있었다. 장성한 아들, 딸에게 차마 병든 어미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기에 그녀는 더더욱 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암과 즐겁게 마주섰다.
“매일 명상을 하고 가볍게 산행을 하며 몸과 마음을 정화시켰습니다. 물론 자연 그대로의 음식을 먹는 게 참 중요하더군요. 그때그때 신선한 나물을 꼬박꼬박 챙겨먹었죠. 예로부터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도 있듯 정말 좋게 생각하면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2005년 9월 직장암 선고를 받고 2007년 4월 완치 판정을 받은 정경선 씨. 지금도 매일 새벽 5시에 기상하지만 이제는 일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여전히 헌신적이긴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한 생활도 빼놓지 않는다고. 산나물과 채식 위주의 식습관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명상까지. 그 모든 생활을 거쳐 정경선 씨는 마침내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저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 정경선 씨는 주로 나물과 채소 위주로 식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