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신경정신과전문의 유상우 원장】
각종 공포증이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시크릿 가든>에서는 현빈이 폐소공포증이 있다는 설정으로 화제를 모았고, <보스를 지켜라>에서는 지성이 공황장애와 광장공포증을 극복하려는 모습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최근에는 개그맨 이경규, 배우 김하늘, 가수 김장훈, 신지까지 공황장애를 앓고 있거나 앓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배우 겸 가수 비도 폐소공포증을 극복했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드라마 소재로 쓰이거나 연예인이 고백을 했을 때 일시적으로 주목을 받지만 사실 이런 공포증으로 고통 받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불러오는 각종 불안장애들. 그중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폐소공포증, 사회공포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누가 좀 내 공포를 말려주오! 공황장애 & 광장공포증
총을 든 강도나 맹수를 만나면 무섭고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상황에서 오는 공포감을 공황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혀 위험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극심한 공포감으로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곤란해지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증상을 공황발작이라고 하며, 이런 공황발작이 계속되는 것을 공황장애라고 한다. 공황발작을 겪은 사람들은 대부분 “죽을 것 같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공황발작이 멈추면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원상태로 돌아간다.
공황발작이 심하면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한다. 응급실에 가면 내과, 신경과 등에서 검사를 받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기 때문에 ‘신경성’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 많다. 그래서 공황장애를 신경성으로 착각하고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그럼 공황발작은 왜 생기는 걸까?
유상우 원장은 “뇌 속에 있는 인체의 경보장치가 지나치게 예민해지면 사소한 자극을 받거나 아무런 원인이 없는데도 오작동을 하게 되어 공황발작을 유발한다.”며 “이러한 공황발작은 인구의 3~6% 정도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공황발작이 계속되면 또 발작을 할까 봐 자꾸 불안해진다. 후유증으로 광장공포증이 동반되기도 한다. 광장공포증이란 특정 상황이나 장소에서 공포와 불안이 생기고 이런 공포 때문에 그 장소를 피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지하철, 버스, 다리 위, 터널, 지하 공간, 엘리베이터, 비행기같이 답답하고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장소나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광장공포증이 잘 생긴다.
유상우 원장은 “공황장애를 치료하지 않으면 점점 외출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우울증이 생기기 쉽다.”고 우려한다.
몸과 마음 지칠 때 더 잘 나타나
공황장애의 치료법은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로 나눌 수 있다. 인지행동치료는 생각과 감정, 행동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을 밝혀내는 데 중점을 둔다.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교정해서 불안과 공포감을 줄이는 것이다. 일부러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 노출하고 서서히 적응하도록 훈련한다. 필요할 경우 세로토닌 활용도를 높이는 약 등을 이용한 약물치료를 할 수도 있다.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함께 하면 효과가 더 좋다. 유상우 원장은 “공황장애는 치료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공황발작의 원인이 되는 뇌의 경보장치 오작동은 건강하게 지낼 때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을 때, 만성 피로에 시달릴 때, 심한 다이어트를 했을 때 등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첫 공황발작이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평소에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몸이 피곤하다고 생각이 되면 잘 쉬고, 잠을 잘 자는 것이 중요하다.
누가 날 꺼내주오! 폐소공포증
어른 5명이 타면 꽉 찰 만한 좁은 엘리베이터 안. 좀 답답할지는 모르지만 무섭거나 불안하지는 않다. 그러나 폐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 엘리베이터는 무기만큼 무서운 존재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빨리 뛰며, 질식해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상우 원장은 “폐소공포증은 좁은 공간에 있을 때 전혀 위험한 상황이 아닌데도 극심한 불안과 공포가 오는 질환”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마다 폐소공포증이 오는 상황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장롱처럼 좁은 공간에서 나타날 수 있고, 공간이 비교적 넓어도 창문이 없다면 공포감이 밀려올 수 있다. 좁은 공간에 있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 안에 사람이 꽉 차 있을 때면 불안하고 무섭기도 하다. 넓은 엘리베이터는 괜찮고, 좁은 엘리베이터에서만 폐소공포증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다.
유상우 원장은 “폐소공포증도 뇌의 경보장치가 잘못 작동한 것이며, 좁은 장소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어릴 적 누군가가 이불로 덮어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꽉 잡고 있었다거나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던 기억이다. 그때의 끔찍한 기억이 꽉 막힌 공간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뀐 것이다.
폐소공포증도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할 수 있다. 왜 공포감을 느끼고 있는지 분석하고 생각을 교정한다. 견딜 만한 공간에서부터 시작해 점차 공간을 좁혀가는 방법으로 폐소공간 적응훈련을 한다. 유상우 원장은 “폐소공포증은 치료만 잘하면 완치율이 99%에 달하는 질환”이라며 “심해지기 전에 빨리 치료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대 앞에만 서면 왜 난 작아지는가… 사회공포증
대기업 팀장으로 승진한 김 씨는 지난달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의사에게 꺼낸 이야기는 망신을 당할까 봐 두려워서 도저히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겨우겨우 남에게 발표를 미뤄왔지만 팀장이 돼서 도저히 피할 수 없으니 이 공포증을 고치고 싶다고 했다. 김 씨의 증상은 사회공포증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유상우 원장은 “사회공포증이란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거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있어서 그것을 가능한 피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처음 본 이성, 직장 상사와 이야기할 때 긴장되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미리 피해버린다. 또 발표하는 것처럼 남이 자신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상황을 지나치게 의식해 자꾸 남에게 미루고 피한다.
피하기만 하다 보면 나중에는 두려움이 더욱 커져서 병적으로 그 상황을 거부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또 머리로는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을 알면서 덜덜 떨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 보이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사회공포증을 겪고 있는 사람 중 절반 정도가 우울증이 생긴다. 술을 마시면 자신감이 생기므로 두려운 상황이 올 때마다 술을 마셔서 알코올 중독이 올 수 있다.
사회공포증도 뇌의 경보장치가 오작동을 해서 생기지만 엄한 아버지나 형 밑에서 눈치를 보며 컸거나 발표를 못해서 놀림거리가 된 기억이 있을 때 잘 생긴다.
따라서 왜곡되고 경직된 생각을 유연하게 바꾸는 연습을 하는 치료를 하게 된다.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기 어렵다면 처음에는 3~4명 앞에서 발표해보는 등 두려운 상황에 단계적으로 접근한다. 이때도 필요할 경우에는 약물치료를 함께 한다.
유상우 원장은 “사회공포증은 소심한 성격 때문이 아닌 몸의 병”이라며 “고쳐보겠다는 본인의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유상우 원장은 공황장애, 사회공포증, 우울증을 전문으로 치료한다. 연세의대 정신과학교실 연구강사를 역임했다. 현재 연세의대, 한림의대 정신과학교실 외래교수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