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백경미 기자】
“암을 다스리는 비결은 먹는 음식이 좌우해요”
스스로가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김병용 씨(62세)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과 암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간암에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술도 담배도 멀리하고 살았던 자신이 왜, 암에 걸리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당당히 암을 이겨냈다. 그것이 벌써 10년 전 얘기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젊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김병용 씨의 투병 체험기를 들어보자.
잔병치레 하나 없이 누구보다도 건강했던 김병용 씨. 사업을 하면서 종종 받는 스트레스만 빼면 그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97년, 사업차 부산에 내려가던 그는 휴게소에 들러 뭔가를 먹은 뒤부터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체한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죠.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약을 먹었습니다. 체할 때마다 늘 먹던 약이었는데 이상하게 체한 것이 내려가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평소에 혈압이 좀 높아서 다니던 내과를 찾았습니다.”
소변검사와 피검사를 하고 엑스레이까지 찍었다. 의사는 엑스레이 결과 간에 작은 무언가가 보이는 데 심각한 것 같지 않다며, 경과를 지켜보자고 말을 했다. 그렇게 지켜본 결과가 2개월이었다. 전혀 나아지지 않아 결국에는 다른 병원을 찾게 되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의사가 눈에 황달기가 있다면서 간이 많이 안 좋은 것 같다고 하더군요. 심각성을 느꼈는지 종합병원에 가서 CT를 찍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그 길로 큰 병원으로 가서 CT를 찍고 이것저것 검사를 받았죠.”
답답함의 원인은 결국 5.5cm의 간암 종양으로 밝혀졌다. 암이라니…. 어안이 벙벙했다. ‘왜 내가 암에….’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김병용 씨는 20일간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계속 이것저것 검사를 받았다. 처음에는 청천벽력 같은 암 선고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현대과학이 많이 발달 됐으니 꼭 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입원하고서 평소 70kg 나가던 몸무게가 점점 줄어 58kg 정도가 되자 긍정적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때 그는 조금 특별한 선택을 하게 된다. 수술 3일 전, 김병용 씨는 집에서 편히 쉬고 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길로 전주의 한 산속에 있는 한의원에 찾아들었다. 그것이 암을 이겨내기 위한 그의 첫 시작이었다.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하다. 그저 암은 한 번 칼을 대면 재발하고 재발하면 고치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어떤 힘에 이끌리듯 그런 선택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암을 이기기 위해 먹고 또 먹고…
“솔직히 말해서 한편으로는 하늘에서 부르면 그만 가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딱 하나 있었죠. 당시 6살이었던 늦둥이 아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 죽는다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없더군요.” 그런 그에게 한의사는 “병이 있으면 반드시 약도 있다.”라는 말을 하며 희망을 심어 주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암에 걸린 후로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희망을 점점 되찾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체질 검사를 했다. 본인 체질에 맞는 식단을 짜서 실천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태음인. 그에 맞는 식단과 한약으로 암 치료를 시작했다.
모든 음식을 조리할 때는 일반 소금은 쓰지 않았고, 무조건 죽염을 넣었다. 김치는 발효된 것으로 먹었으며, 물도 약차를 끓여 마셨다. 끓인 물은 마시면 안 되었기 때문에 물이 정 먹고 싶으면 생수를 마셔야 했다. 매일 마늘을 5~6쪽씩 씹고 다녔으며, 다슬기도 직접 잡아서 식탁에 많이 올렸다고. 이렇게 수많은 먹을거리 중에서도 김병용 씨의 암 치료에 가장 도움이 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유황오리였다.
“치료를 하는 일 년 동안, 유황 오리를 일주일에 3마리 정도 먹었습니다. 나중에는 너무 물려서 오리를 쳐다보고 싶지도 않더군요. 또 오리 머리를 고아서 달인 탕을 하루 세끼 빠지지 않고 먹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먹을 수 있었나 싶어요.”
음식점에서 얻어온 오리 120마리의 머리를 손질하는 아내의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는 자신의 고생보다 억지로 참고 먹어준 남편이 너무 대견하고 고마웠다고. “먹는 게 엄청 곤욕스럽긴 했지만 오리 머리가 항암효과에 탁월하다는 얘기를 듣고, 나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먹었습니다. 나중에는 질리다시피해서 따로 고아 한약처럼 팩에 만들어 먹었죠.”
또한 김병용 씨는 암 치료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식단 중 하나가 생즙이라고 말한다. 하루 세끼 다 먹고 난 다음에는 생즙을 한 잔씩 마셔줬다며, 외국에서도 암 환자의 식단에 생즙이 꼭 올라올 정도로 중요하단다.
그런 생활을 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먹고 또 먹는 생활을 반복했던 김병용 씨는 경과가 궁금해 6개월만에 서울을 찾았다.
10년이 지나고…
“병원에 바로 가서 CT를 찍어봤는데 너무 놀랐습니다. 검사 결과 암세포가 점조차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간이 깨끗해져 있는 게 아닙니까? 의사는 항암주사를 맞은 것이 아니냐면서 의심까지 하더군요.” 암세포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지만 재발이 될 위험이 있었으므로 전주에서 더 생활하기로 했다.
그렇게 6개월을 더 고생한 끝에 그는 1년 간의 투병 생활을 마치고 건강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10년 전의 일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김병용 씨는 어떻게 변했을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건강에 해가 되는 음식은 되도록 자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되돌아보면 치료하는 동안 하루종일 먹을 것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는 그. 하지만 잘 먹은 덕분에 암이 나았다고 믿는다. 암은 먹는 것으로 다스려야 하는 병이기 때문에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고.
“무엇보다도 제가 암을 치료하는 동안에 고생한 가족들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전주에서 1년 간 저와 함께 생활을 하셨던 어머니와, 주말마다 내려와 수발을 하고 지금까지 계속 뒷바라지 해주고 있는 아내에게 얼마나 고맙고 또 고마운지….”
그런 그가 암 환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스트레스를 가능한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트레스는 암을 유발하는 가장 위험한 요소니까요. 용기와 희망을 잃지 마시구요, 늘 재밌게 웃으면서 사세요!” 나이에 비해 훨씬 젊고, 건강한 모습의 김병용 씨. 그 모습이 앞으로 10년, 또 10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