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도움말 | 을지대 식품영양학과 방병호 교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김치찌개나 청국장에 대한 아득한 향수가 있다. 전통 발효음식은 정신적으로 그리운 맛, 포근하고 따뜻한 기운을 불어 넣어준다. 마음으로만 우리를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몸에도 보약인 것으로 유명하다. 외국 음식과 비교할 때도 우수하다. 여기저기서 “좋다, 좋다!”하는 발효식품. 그 진가를 자세히 확인해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입맛에 맞고 저장 음식이 생활화 돼서 습관적으로 된장, 고추장, 김치 등을 먹어왔다. 한식의 간을 맞추는 기본재료인 간장ㆍ된장ㆍ고추장ㆍ식초가 다 발효식품이다. 웰빙 바람과 함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발효식품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자, 이제 더 기분 좋고 의미 있게 발효식품을 먹게 됐다.
을지대 식품영양학과 방병호 교수는 “발효식품은 발효 과정에서 원재료에 없던 새로운 영양소를 만들어 낸다.”며 “맛과 향이 깊어지고, 소화율과 영양의 효율성도 높아져 건강에 좋다.”고 추천한다. 또 저명한 문화인류학자 마린야프스키는 인류가 개발한 볶고ㆍ찌고ㆍ삶고ㆍ발효시키는 조리방식 중 가장 진화한 것으로 발효를 꼽은 바 있다. ‘밥상 위의 보약’ ‘먹는 면역력’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PART 1.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인기 김치의 영양력
미국의 건강전문지 ‘헬스’가 김치를 세계 5대 건강 음식 중 하나로 선정하며 전 세계에서 관심이 높아졌다.
방병호 교수는 김치가 좋은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먼저 재료 자체가 좋다. 배추, 고추, 파, 마늘 등의 채소에 이미 항산화, 항노화, 항암, 항비만 효과가 있다. 다음으로 발효되며 더 좋은 효과를 낸다는 것이 주목할 점이다. 익어가면서 젖산균이 증식해 유기산, 비타민 B복합체, 비타민 C, 생리활성 물질인 아세틸콜린, 덱스트란 등이 나온다.
이들은 우리 몸에 이로운 균은 촉진하고, 해를 끼치는 균은 막아내는 작용을 하고, 항돌연변이와 항암작용도 해낸다. 최근 연구 결과 위염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를 자라지 못하게 돕는다고 알려져 화제다.
그뿐 아니라 난치병 중 하나인 아토피질환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지난해 영남대 생명공학부 박용하 교수팀은 김치유산균에서 피부 아토피질환에 우수한 치료효능을 지닌 미생물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김치유산균은 부작용이 없는 천연 면역 조절제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팔팔 끓이지 말고 그냥 먹어야
김치유산균은 언제 가장 많을까? 계명대 공중보건학과 김종규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김치유산균은 김치를 담그고 섭씨 10도에서 8일간 익혔을 때 가장 많다. 그 후 유산균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시간뿐 아니라 열과의 관계도 알아야 한다. 김치를 익히거나 끓이면 유산균이 대부분 죽는다. 김치찌개나 김치볶음으로 조리해서 먹으면 김치의 발효 건강 효과를 보기 어렵다. 김치를 그냥 먹을 때 유산균은 위에서 많이 죽고 30~40% 정도만 장에 도착한다. 그래도 다른 음식에 비해 김치에는 유산균이 워낙 풍부하기 때문에 살아서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익하다. 죽은 유산균도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 유산균의 먹이가 돼 유산균을 활성화시키므로 도움이 된다.
PART 2. 고약한 냄새… 몸에는 으뜸 청국장의 파워
청국장은 물에 불린 대두를 삶아 따뜻한 곳에서 발효해 만든다. 된장보다 높은 온도에서 빠른 시간 안에 발효를 시켰다는 점이 특징이다.
콩이 발효되면서 만들어진 미생물은 장내 부패세균의 생육을 막아준다. 비타민 B2, E, K2 그리고 불포화지방산, 항균제 바시트라신을 함유한다. 방병호 교수는 “비타민 K2는 칼슘과 단백질의 결합을 용이하게 해 골다공증을 예방한다.”고 설명한다. 이어서 “불포화지방산과 비타민 E는 콜레스테롤을 떨어뜨려 동맥경화나 심장병, 고혈압에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단백질 분해효소, 당질 분해효소, 지방 분해효소 등의 소화 효소도 풍부하다. 혈전 용해작용을 하는 나토키나아제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소화 분해가 되지 않고 체내에 흡수돼 혈전증 예방에 좋다. 이 외 변비 예방, 암세포 증식 억제 효과도 있는 강력한 건강식품이다.
반만 끓이고 나머지는 나중에 넣어야
청국장, 된장, 고추장 등 메주를 띄워 만드는 장류는 발효 과정에서 바실러스균이 생성된다. 이 균은 유산균과 달리 비교적 열에 강하다. 끓여 먹어도 80~90% 효과를 볼 수 있다. 물론 바실러스균도 가열을 오래 하면 죽는다. 청국장을 10분 이상 끓이지 않는 게 좋다. 남은 찌개를 다시 데워 먹으면 바실러스균이 계속 사멸하기 때문에 발효 효과는 거의 사라진다.
생청국장에는 바실러스균이 8000만 마리, 재료부터 끓인 뒤 청국장을 넣으면 100만 마리, 처음부터 청국장과 다른 재료를 모두 넣고 팔팔 끓인 찌개에는 10만 마리 남는다. 그러므로 반만 끓이고 나머지 반은 끓은 뒤에 넣는다. 역한 냄새를 줄이는 동시에 충분한 발효 효과를 볼 수 있다.
PART 3. 살은 쪽~ 영양은 풍성~ 고추장의 매력
고추장은 콩 단백질에서 나오는 구수한 맛, 찹쌀에서 얻는 단맛, 고춧가루의 매운맛, 소금의 짠맛이 어우러져 특유의 맛을 낸다. 구수하면서도 달고 매콤한 맛이 잘 어우러진 발효식품이다. 자극이 있어서 식욕을 돋우고, 개운한 뒷맛을 남기기 때문에 한국인의 입맛에 맞다.
된장 못지않게 단백질과 지방, 비타민 B2, 비타민 C, 카로틴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비타민 C와 비타민 E가 사과보다 20배나 더 많이 들어 있어 뛰어난 항산화력을 발휘한다.
고추장을 만드는 메주에 들어 있는 전분 분해 효소와 단백질 분해 효소는 음식이 잘 소화되게 도와준다.
방병호 교수는 “특히 매운맛을 내는 캅사이신이 체지방을 줄여 비만을 예방한다.”고 강조한다. 캅사이신은 항염과 항암효과도 있는데 고춧가루보다 발효시킨 고추장이 더 강력하다.
고추 선택, 명산지와 색깔을 확인
고추장은 해가 지난 것은 먹지 않는다. 매년 새로 담가 먹어야 한다. 해묵은 것은 장아찌용으로 쓰면 좋다. 이제 곧 고추장을 담글 때가 온다. 대개 날이 더워지기 전인 3~4월에 담근다.
고추장을 담글 때 원재료인 고추의 선택이 중요하다. 고추의 품질은 모양만 보아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고추 명산지로 알려진 경상도의 영양ㆍ청송ㆍ봉화, 전라도의 임실ㆍ순창ㆍ진도, 충청도의 괴산ㆍ중원ㆍ제천 등지의 제품을 추천한다.
품질은 산지뿐 아니라 건조 방법에 따라서도 다르다. 햇볕에 말린 태양초는 밝은 붉은색이 나서 좋다. 더운 열로 쪄서 말린 화건초는 검붉은 색이 나니 확인해서 구입한다.
우리 선조들은 보통 한집안에서 고추장을 2~3가지 만들어 두고 음식 용도에 따라 구별해 써 왔다. 찹쌀고추장은 귀하게 여겨 초고추장을 만들거나 색을 곱게 내야 할 때만 썼다. 밀가루로 담근 밀가루 고추장은 찌개나 된장국을 끓일 때나 채소를 고추장에 박아 장아찌를 만들 때 썼고, 보리고추장은 여름철 쌈장으로 먹을 때 썼다. 내 손으로 만들면 금상첨화겠지만 어렵다면 시중에 다양한 고추장 상품이 있으니 참고하자.
고추장을 먹을 때 주의할 점은 지나치게 맵게 먹는 것이다. 식욕을 돋우는 데 효과적이지만 너무 매우면 위장 점막을 자극한다. 소화기관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방병호 교수는 한국식품영양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대학식품영양관련학과 교수협의회 부회장, 동아시아 식생활학회 평의원이다. 2005년 부총리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표창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