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양미경 기자】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즐겁고 기쁜 일이 있을 때 습관적으로 “엔돌핀이 분비된다”고 이야기한다. 엔돌핀이 정확히 무엇에 쓰이는 호르몬인지, 왜 분비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긍정적인 무엇이라고 여기고 있는 듯하다. 우리 몸 속의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되고 있는 엔돌핀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알아보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엔돌핀은 사실 코티졸, 엔케팔린과 함께 3대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엔돌핀은 사람이 스트레스 상황에 빠지면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뇌에서 분비되는 것으로 가장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의 2백 배에 해당하는 진통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한때는“웃으면 엔돌핀이 분비되고 건강에 좋다”는 말이 잘못된 상식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고통스러울 때 고통의 경감을 위해 분비되는 호르몬이 기쁘고 행복할 때 분비될 리 만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엔돌핀이라는 용어가 단지 하나의 호르몬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즉, 내재성 통증 조절 성분을 지닌 호르몬을 모두 총칭하는 용어가 바로 엔돌핀이라는 것이다. 이들 중 우리가 흔히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는 엔돌핀은 바로 ‘베타 엔돌핀’이다.
행복한 기분이 들게 하는 베타 엔돌핀
뇌 속에서 분비되는 베타 엔돌핀은 운동을 하거나 기분 좋은 일을 하면 분비되는 것으로 마약과 비슷한 효과를 준다.
국보한의원 양회정 원장은 “베타 엔돌핀은 기분을 좋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체 각부 기관의 노화를 막고 암세포를 파괴시키기도 하고, 기억력을 강화하기도 하고, 인내력을 강화해주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암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척수액 속에 베타 엔도르핀을 넣는 시도도 있었다. 또한 본인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 의욕에 찬 모습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무언가를 배우고자 할 때, 모르는 내용에 대한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서 야릇한 쾌감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쾌감을 느끼는 것도 뇌 속 호르몬에 베타 엔돌핀이 분비되기 때문.
베타 엔돌핀은 운동 시에 일반적으로 5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되는데 백병원 신경외과 권선주 교수는“이 같은 현상은 운동 시 생성되는 젖산 등 피로 물질의 축적과 관절의 통증을 감소시키기 위한 체내 보상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뇌가 에너지를 사용할 때는 POMC라는 단백질 분해현상이 발생한다. 기분이 좋다고 생각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에 단백질 분해 과정이 다르게 일어난다는 것이 특징.
긍정적인 생각을 할 때면 단백질은 부신피질 호르몬과 베타 엔돌핀으로 분해된다. 부신피질 호르몬은 육체적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베타 엔돌핀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작용을 한다.
가짜로라도 웃어라!
그렇다면 웃음과 엔돌핀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국내 1호 웃음치료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요셉 한국웃음연구소 소장은 “크게 웃으면 광대뼈 주위의 근육이 자극을 받아 얼굴 근육이 함께 움직이고 광대뼈 주위의 피와 신경이 뇌하수체를 자극해 엔돌핀의 분비를 촉진시킵니다. 나아가 광대뼈의 신경은 심장 위 흉선을 자극해 면역계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T 임파구를 활성화시켜 면역체계를 강화해 각종 질병으로부터 보호됩니다”라고 이야기한다.
특이한 것은 억지웃음도 실제 웃음과 똑같은 이로운 효과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잠재의식은 웃게 되었을 때 그것이 진짜 웃음인지 억지로 웃는 웃음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즉 억지로 웃을 때도 진짜로 신나게 웃을 때와 마찬가지로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억지 웃음 역시 근육과 신체가 활성화돼 엔돌핀이 나오고 면역체계가 강해지는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요셉 소장이 전하는 엔돌핀 분비 웃음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입이 ‘찢어질 만큼’ 웃어라. 크게 웃어야 눈밑의 신경을 자극해 쾌감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한다.
둘째, 날숨으로 15초 이상 웃어라. 처음엔 5초 이상을 웃기도 벅차지만,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점차 웃는 시간도 늘어나고 그만큼 쾌감호르몬의 분비도 증가한다.
셋째, 배가 출렁일 만큼 온몸으로 웃어라. 혈액순환이 촉진되고 숙변 제거와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준다.
운동중독증 등 부작용도 유발
보통 열심히 운동을 하고 나면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 혹은 달리면서 쾌감을 느낀다는 사람도 있다. 마라톤을 30분 이상 하면 최상의 행복감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느낄 수 있으며 이는 마치 마약을 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비슷한 의식 상태나 행복감에 비유된다.
하지만 베타 엔돌핀이 주는 쾌락에 중독되면 운동중독증과 같은 부작용도 유발할 수도 있다. 몇 달, 몇 년 동안 꾸준하게 운동을 해온 이들 사이에서 잘 생기는 이 운동중독증은 몸이 아파도 계속해서 하려 하는 것이 특징이다. 무릎에 물이 차고, 인대에 무리가 생겨도 계속해서 운동에 집착하는 증세를 보인다.
엔돌핀에 대한 비밀은 아직 모두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뇌 속에서 분비되는 베타 엔돌핀에는 인내력이나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성분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엔돌핀은 우리의 잠재력을 분출시킬 수 있는 최고의 열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