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신과 전문의 하나현 원장】
요즘은 육체노동도, 지식노동도 아닌 감정노동의 시대이다. 2014년도에 ‘땅콩회항 사건’이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대한항공 회장의 딸인 조현아 씨가 시킨 땅콩을 승무원이 비닐껍질을 까지 않고 통째로 건네주자 조현아 씨가 이게 매뉴얼에 맞는 거냐며 승무원에게 소리치고 심지어 항공책자로 때리기까지 했다. 이 사건을 통해 고객들의 갑질에도 미소로 견뎌야 하는 승무원의 감정적 스트레스가 대두되면서 ‘감정노동’이 이슈화되었다.
주먹으로 맞은 것도 아닌데…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은 배우가 연기를 하듯 원래 감정을 숨긴 채 직업상 다른 얼굴 표정과 몸짓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해 오는 사람들 중에도 감정노동 직군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사실 마트, 백화점 등 고객을 대하는 직종뿐 아니라 경찰관, 소방관, 선생님 심지어 의사들처럼 사람을 대하는 직업은 모두 감정노동을 한다. 그런데 감정노동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몸이 고돼서 힘든 게 아니라 감정이 소진되고 지쳐서 힘들다. 브랜드 옷 매장에서 일하는 직장인 여성이 상담하면서 한 말이다.
“안하무인인 고객들한테 심하게 시달린 날은 정말 저도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요. 집에 오면 괜히 남편이나 애들한테 짜증을 내고 예민해져요. 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겠어요.”
누군가에게 주먹으로 맞은 것도 아니고, 물건을 빼앗긴 것도 아닌데 이렇게 힘들다니…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우울에서 자살까지… 감정노동의 덫
우리는 몸이 힘들면 좋은 음식을 먹게 해주고 쉬어주면서 몸을 회복시킬 줄 안다. 하지만 감정이 소진되어버리고 마음이 지쳐버릴 때는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 그러다 보면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무례한 고객이 던진 눈빛 하나, 말 한마디가 스트레스가 되고 상처받게 된다. 분노, 불안, 우울, 자괴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찌꺼기처럼 남게 되고 이 감정들은 더욱더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더 심하면 우울증, 공황장애, 분노조절장애까지 이르게 만들고 심지어 자살까지 몰고 간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서비스업에 근무하는 종사자 중 49%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중 11.9%는 자살이 우려되는 심각한 고도 우울증으로 밝혀졌다. 이런 문제는 심각해지기 전 여러 방면에서 해결책이 필요하다. 우선 감정노동자의 경우 감정노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의 효과적인 관리와 해소가 필요하다.
1 감정에 이름을 붙이자
가트맨 박사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감정이라는 문에 손잡이를 만들어주는 것과 같다.”고 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면 손잡이가 있는 문처럼 감정의 문을 열고 닫기가 쉬워진다. 화가 나면 화만 내고 있을 게 아니라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 ‘지금 정말 짜증이 올라오는구나.’ 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2 부정적 감정을 정화하자
‘호흡’은 감정을 정화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3-5-7방법’이 있다.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거나 억제하기 전 3초 잠시 멈추고 여유를 가진다. 그리고 5초 천천히 깊이 들이쉬고, 7초 동안 길게 천천히 내쉰다. 그리고 이것을 몇 차례 반복한다. 그러면 우리 몸을 이완시킬 수 있는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긴장이 풀리고 감정이 안정된다.
3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이지 말자
고객과의 관계에서 마음 상하는 말을 들었다고 해도 이것을 다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말아야겠다. 우리가 자아경계를 명확하게 세우지 않으면 어떤 부정적인 발언이나 행동, 또는 과도하게 긍정적인 발언이나 행동에도 쉽게 영향을 받게 된다. 우리를 참담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개인적으로 받아들였을 때뿐이다.
4 우리의 소중함은 훼손될 수 없다는 걸 기억하자
누군가 하소연했다. “고객한테 욕을 먹으니 무시당하는 것 같고 제가 하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생각해보자. 만일 욕을 먹는 순간 우리의 소중함이 사라져버린다면 인간은 태어나서 언제까지 소중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까? 욕 한 번 듣지 않고 살아온 사람은 소중하고 수없이 욕을 먹은 사람은 존엄하지 않은 인간이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 누군가의 대접과는 상관없이 모두 소중하고 존엄하다.
서로가 서로를 힐링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자
감정노동자의 이슈는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만 조심하고 관리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가 고객인 동시에 감정노동자이다. 그래서 한 쪽만 조심하면 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서로에게 힐링이 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친절을 베풀어주고 있는 내 앞의 그 한 사람은 나에게 당연히 굽신거리며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고 기계는 더욱더 아니다. 그 사람도 누군가의 아들, 딸이고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2016년에 고용노동부 지원사업으로 <감정노동, 직무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심신힐링 뇌교육 프로그램>으로 전국 병원, 기업, 단체 등 800여 명에게 강의를 진행했다. 그러던 중 한 여성분이 필자를 찾아 왔었다. 강의를 듣고 자기 삶이 좀 달라졌다는 것이다.
사실은 강의를 듣던 그날 ‘오늘 죽을까 내일 죽을까?’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을 힐링하게 되었고, 집에 돌아가서 아주 오래간만에 달콤한 잠을 잤다고 한다.
“선생님, 내가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렇게 살기는 싫었다는 것, 사실은 죽고 싶은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감정노동을 하면서 사람한테 치이고 상처받고 하면서 죽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필자가 한 첫마디는 “고맙습니다….”였다. 그 사람이 필자 앞에 앉아 있는 게 정말 고마웠다.
혹시 여러분이 지치고 힘들 때 이거 하나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여러분이 “나 여기 지금 살아있어요.”라고 이야기 할 때 “아! 고맙다. 정말 고맙다.”라고 말해줄 그 누군가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나현 원장은 정신과 전문의로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부 교수로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평생교육원 <감정노동 스트레스 관리 365> 고용노동부 환급과정을 운영하고 있고 감정노동 강연으로 치유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브레인트레이닝 상담센터 압구정본점 상담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