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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당신이 받는 CT, MRI, PET… 꼭 필요할까?

2014년 04월 건강다이제스트 초록호

【건강다이제스트 | 서의규 기자】

【도움말 | 대한정형외과학회, 순천향대병원, 서울아산병원, 건국대학교의학전문대학원, 식품의약품관리처】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권하는 의학검사나 시술이 모두 꼭 필요한 걸까? 이런 의문은 환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의사 입장에서 불필요한 시술이나 검진을 지시했음을 인정하는 것은 무척 껄끄러운 일이다. 가볍게 머리를 다쳐 응급실에 온 소아환자의 CT 검사를 예로 들어보자. 이 경우 대부분 환자 가족은 마음이 불편해 검사를 요구하는 편이다.

병원도 환자 가족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또 병원의 수익 보전 차원에서 검사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의 소아과 전문의들은 이런 CT 검사를 불필요한 검사로 규정하고 소비자들에게도 적극 알리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환자들이 불필요한 시술과 검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으며, 그만큼 환자의 선택권도 취약하다.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될 검사가 남발되고 있다면 국민 의료비 역시 낭비되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에겐 불필요한 의료서비스가 무엇인지 알 권리가 있다.

불필요한 진단방사선 검사 남발

서울 중구에 사는 회사원 S씨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기침이 2~3주 멈추지 않아 대학병원에 갔더니 천식 등 여러 가지 위험이 있으니 당장 입원해 관련된 10여 가지 검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S씨는 동네병원으로 옮겨 진찰을 받은 결과 기침감기약을 처방 받고 얼마 뒤 증상이 호전됐다. 결국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됐던 것이다.

이처럼 일부 병원들이 수익을 높이기 위해 불필요한 검사나 입원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X선 및 CT 검사의 남발이다. 실제로 X선, CT 촬영 등 방사선 검사 건수는 최근 4년 새 6000만 건이나 늘었다. 특히 CT 촬영은 방사능 피폭에 취약해 신체 조직을 쉽게 손상시킬 뿐 아니라 암 발생 위험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CT, X선 등 진단용 방사선 노출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방사선 피폭을 합리적으로 최소화하기 위해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국민 개인별 맞춤형 방사선 안전관리’를 실시할 정도다.

PET 검사도 무리하게 요구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09년 국제적인 핵의학학회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서울의 한 병원에서 1336명의 종합검진 수검자를 대상으로 조사해 봤더니 암 환자로 밝혀진 11명 중 4명은 CT와 초음파로도 확인이 됐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위암은 PET로 단 한 건도 찾아내지 못했다.

미국은 ‘현명한 선택’ 캠페인 중

문제는 불필요한 검사를 피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우리나라에는 전무하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이런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면 환자가 훨씬 안전하고 현명하게 의료서비스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우리보다 진료 수가가 높은 미국은 불필요한 검사나 시술을 최소화하고 환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데 상당히 적극적이다. 최근 2~3년 간 미국 전문의 단체들은 소비자들과 동료 의료진을 위해 불필요하거나 삼가야 할 검진 및 시술 90가지를 정리해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미국 내과의학회(ABIM) 재단이 미국 소비자연맹의 비영리 잡지 ‘컨슈머리포트’와 공동으로 벌이는 ‘현명한 선택(Choosing Wisely)’ 캠페인의 일환으로 재단은 의료 전문가들이 직접 선정한 ‘하지 말아야 할’ 검진 및 시술 리스트를 내놨다. 미국소아과학회(AAP)·미국산부인과학회(ACOG)·미국노인병학회(AGS) 등 17개 전문의학회가 ‘의사와 환자들이 의문시해야 할 5가지’라는 이름으로 각기 5개씩 권고를 추렸다.

이 캠페인은 환자들에게 해가 될 수 있거나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만 가져올 수 있는 의료행위를 현명하게 가려내자는 취지다.
대니얼 울프슨 ABIM 재단 부이사장은 “전문의들이 제시한 권고안은 ‘때로는 덜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ABIMF 회장인 크리스틴 K. 카셀(의사)은 “의사와 환자 간의 대화를 통해 지침들을 활용하면 의료서비스에 있어 선택의 폭을 넓히고 의료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영상의학회가 채택한 리스트를 보면 ▲사소한 두통 환자의 CT, MRI를 찍지 말아라 ▲피검사 같은 기초검사를 하지 않은 폐색전증이 의심되는 환자의 CT, MRI를 찍지 말아라 ▲뚜렷한 병력이 없고 보행 가능한 환자에 흉부X-ray를 남발하지 말아라 등이다.

특히 방사능 위해 가능성이 어른보다 큰 어린이들을 위한 지침이나, 흔한 증상인데 추적검사를 남발하는 것을 자제하자는 등의 권고는 영상검사의 남용을 막자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국서 가이드라인 제정이 어려운 이유

그렇다면 국내 의사들은 미국 학회들이 제시한 지침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대부분은 한국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반응이다. 고대구로병원 용석환 교수(대한영상의학회 가이드라인위원회 위원)는 “대부분의 지침들이 한국에서도 해당되는 상식적인 수준”이라며 “이 정도 권고안은 우리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지침에 나온 일부 검사는 의사도 고민하는 부분이 많다.”고 털어놨다.

반면 국가마다 의료 환경과 질환별 유병률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입장도 보였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자궁경부암 질병 관련 검사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유병률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여성은 매년 자궁경부 세포진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는 주장이다.

다만 소비자단체에서는 국내에도 과잉진료 방지를 위한 지침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과잉진료가 많기 때문에 의료 확실성이나 부작용의 우려는 항상 존재한다.”며 “환자와 의사가 함께 이를 논의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 의료계 각 학회 차원에서 권고안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국내 의료계에서는 미국과 달리 전문의학단체가 현명한 선택 운동을 이끌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 의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전문의학단체가 불필요한 검사나 시술의 가이드라인을 정했을 때 정부가 건강보험수가의 기준으로 활용해 수가를 더 깎지 않겠냐는 우려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우선돼야 하는 것은 환자 안전이다. 무리한 검사가 환자의 건강을 위협한다면 의학전문가들이 나서서 막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전문의학단체들도 불필요하고 해가 될 수 있는 과도한 의료서비스의 사용을 막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TIP. 미국 전문의학단체에서 정한 불필요한 시술 및 검사 리스트>

● 맹장이 의심되더라도 어린이들은 CT를 찍지 말아라.

● 여성 난소의 물혹 정도의 흔한 증상 때문에 추적검사 용도로 CT, MRI를 권하지 말아라.

● 사소한 두통 환자의 CT, MRI를 찍지 말아라.

● 피검사 같은 기초검사를 하지 않은 폐색전증이 의심되는 환자의 CT, MRI를 찍지 말아라.

● 뚜렷한 병력이 없고 보행 가능한 환자에 흉부X선 검사를 남발하지 말아라.

● 알레르기 검사에 있어서 면역글로불린G 검사(IgG)나 면역글로불린 E의 무분별한 묶음 검사를 자제하라.

● 급성 비염 및 축농증에 CT나 무분별한 항생제 처방을 자제하라.

● 저위험도 환자에게 EKG 또는 다른 심장 선별 검사 오더를 내지 말아라.

● 21세 이하 여성 또는 암이 아닌 질환으로 자궁적출술을 받은 여성에게 자궁경부도말검사를 시행하지 말아라.

● 심혈관계 고위험군들이 보이지 않는 환자의 초기 평가 시 스트레스 부하 심장 영상 검사나 상위 단계의 비침습적 영상 검사를 자제하라.

● 혈압, 맥박, 호흡횟수에 이상이 없는 ST-분절 상승 심근경색 환자의 경우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 시술(PCI)을 시행할 때 문제를 일으킨 병변이 아닌 곳에 스텐트를 설치하지 말아라.

● 심한 치매 환자에게 영양튜브를 사용하지 말아라.

● 임신 39주 전엔 비의학적 판단에 따른 유도분만·제왕절개 수술을 삼가라.

● 어린이가 가볍게 머리를 다쳤을 때 컴퓨터단층촬영(CT)부터 하지는 마라.

● 유아가 위산역류 증상이 있을 경우 위산분비 억제제 투여를 자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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