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기옥 기자】
【도움말 | 대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지난해 말 정부는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및 보험적용 확대 추진’ 등을 포함한 ‘규제기요틴’을 발표하였다.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한의사가 엑스레이나 초음파 같은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발표 직후 이 문제는 의료계의 핫이슈로 떠올랐고, 의사와 한의사는 이를 두고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주요 쟁점과 이에 대한 의협과 한의협의 입장을 정리해보았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8일 ‘국무조정실 민관합동 회의’에서 규제 개혁의 하나로 총 114건의 규제기요틴 과제의 개선을 추진하기로 확정하고,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및 보험적용 확대 추진 등을 포함한 ‘규제기요틴’을 발표하였다.
‘민관합동 회의’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위해 2가지 세부사항을 결정했다.
1. 한·양방 이원화 체계의 특성과 국민의 요구,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지침 마련
2. 2015년 상반기까지 의료기기별 유권해석을 통해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진단·검사기기 명확화 추진
이 사실이 발표되자마자 의사협회는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고, 현재 의사, 한의사, 그리고 복지부까지 가세하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
점점 과열 양상을 띠고 있는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관한 논쟁의 주요 쟁점은 세 가지다.
첫째,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의료법 위반인가?
둘째, 한의사가 왜 의료기기를 사용하나?
셋째, 의료기기 허용 판례에 대한 해석은?
이에 대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와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의사협회 _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한의사 면허 범위를 넘어선 무면허 의료행위다.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것은 의료법상 규정된 면허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의료행위로 무면허 의료행위를 정부 스스로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건강보험 재정의 이중 낭비와 환자의 치료시기를 지연시켜 국민 건강을 더욱 악화시킬 뿐 아니라 국가 의료체계를 무너뜨리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다. 특히 의료일원화가 전제되지 않고, 의사와 한의사로 이원화된 면허체계 하에서 한의사가 의학적 원리에 근거한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은 무시한 채 무면허 의료행위를 조장하고 있다.
의협 신현영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의료인이라고 하여도 의료체계가 이원화되어 있고 그 업무영역이 구분되고 있어 의사에게 허용되는 업무영역이 단순히 동일하게 한의사에게도 허용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 한의사협회 _ 한의과대학에서 진단방사선학·진단의학 등 교육과정을 이수한다. 또한, 의료법상 아무런 제한도 없다.
한의사들은 현대과학기술의 산물인 다양한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충분히 준비된 전문 의료인이다. 한의과대학의 교육과정에서 이미 다양한 영상자료들을 활용한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임상 현장에서도 영상자료를 판독하여 치료에 임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이미 엑스레이나 초음파 영상을 보며 치료를 하고 있는데 엑스레이, 초음파 장비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한민국 의료법은 환자를 진단 치료할 수 있는 의료인인 한의사가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 어떤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아무런 제한도 두고 있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법과 의료기기법,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결핵예방법 등의 의료관계 법률에서는 의료인으로서 한의사의 국민 건강에 대한 의무를 명시하고 있을 뿐,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다.’ 또는 ‘사용할 수 없다.’라고 규정한 법률조항은 명확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 의사협회 _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한의학이 과학적이 아니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한정호 위원(충북의대 교수)은 “사실 대한한의사협회에서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것은 기존의 한방 진료기기나 진료 방법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병을 진단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조정훈 위원은 “엑스레이는 단순한 사진 촬영이 아니다. 그걸 판독하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현대의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한방은 기본적으로 음양오행, 기, 혈 등을 기초로 하는 분야인데 엑스레이는 그런 것들을 보는 기계가 아니다.”고 말한다.
● 한의사협회 _ 정확한 진단을 위해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불가피하다.
의료인으로서 한의사가 현대과학문명의 산물인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도구적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또한, 의료인으로서 한의사가 환자를 돌보고 치료하기 위해 환자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현대과학문명의 산물인 엑스레이나 초음파 등을 사용하는 것은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이기도 하다.
한의사는 의료법상 진단권을 가진 전문 의료인이다. 여러 이유로 진단서가 필요할 때, 정확한 근거를 가진 진단서 발행은 의료인의 의무다. 이를 올바로 시행하기 위해서라도 객관적 진단을 뒷받침하는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필수적이다.
● 의사협회 _ 초음파진단기, 엑스레이는 헌재가 “한의사 면허 범위 벗어난다.”고 결정했다.
한의협에서 현대 의료기기 사용 근거로 삼는 2013년도 헌재 판결은 당시 헌재가 심리과정에서 의협이나 안과학회, 안과의사회 등 전문가 단체의 의견수렴을 전혀 거치지 않아 절차적 공정성이 결여된 판결이었다.
그동안 무수한 판결을 통하여 사법부는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범위가 다르다며 초지일관 동일한 판단과 법해석을 내려왔다.
● 한의사협회 _ 청력검사기·안압측정기 등은 헌재가 허용했다.
2013년 12월 26일 헌법재판소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의료기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되어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 없이 진단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자격이 있는 의료인인 한의사에게 그 사용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결정하는 등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례와 결정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논쟁 과정을 의사와 한의사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국민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의사와 한의사는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인이다. 이들의 치열한 논쟁이 최종적으로는 국민 건강을 위한 최상의 결론을 이끌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