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얻고도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기구독 02-702-6333

[투병체험기] 지긋지긋~ 천식 이겨낸 정미경 씨 체험담

2010년 05월 건강다이제스트 꽃물호

【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물 먹고 소금 먹고 풀 먹어서 얼마든지 병이 낫게 할 수 있어요”

스물여덟 살 때였다. 시작은 감기였다. 처음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감기쯤이야? 그런데 복병이 있었다.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어서 감기약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임신 7개월의 몸. 버텼다. 밤새도록 기침을 해댔지만 이 악물고 3개월을 버텨냈다. 그리하여 비로소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을 때 기쁨은 실로 컸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뿐! 아이를 낳고도 여전히 계속된 기침 감기는 한 사람의 인생 지침을 돌려놓았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나날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고비도 수차례. 감기에서 시작된 기관지천식으로 20여 년 동안 참으로 모진 삶을 살아온 정미경 씨(64세)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본다.?

단순한 감기가 아니었다!
201005hope01아이를 낳으면 나을 줄 알았다. 하지만 감기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숨이? 막히면서 자지러질듯 기침을 해대는 날이 잦아졌다.
“안 되겠다 싶어 전주에 있는 제일 큰 병원을 찾아갔어요. 진찰을 마친 의사는 ‘아무 병도 아니다. 신경성이다’라면서 약을 지어줬고 그 약만 받아서 병원을 나왔어요.”

신경성 약이어서 그런지 약만 먹으면 잠이 쏟아졌다. 갓 태어난 아이가 젖 달라며 칭얼대는 소리도 듣지 못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지만 기침은 여전했다. 숨쉬기가 힘들면 약을 먹고 하루종일 잠을 잤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또 임신을 했던 것이다.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축복으로 여겼다. 그런 와중에도 기침 감기는 여전했다. 아니 날로 그 증세가 심해지고 있었다. 임신 5개월 정도 됐을 때는 누워서 잠조차 자지 못할 정도로 증세가 심해졌다. 온밤을 앉아서 꼬박 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참다못한 어느 날 처음 갔던 병원을 다시 찾았다.

“1년 만에 갔더니 담당의사가 바뀌어 있었어요. 그런데 의사는 아무런 검사도 없이 제 숨소리만 들어보더니 ‘기관지천식입니다’라고 말하더군요.”
단순한 감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병을 키웠느냐?”는 의사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병원문을 나섰던 정미경 씨. 그녀는 결코 알지 못했다. 신경성이라는 말만 믿고 방치한 1년 세월이 그녀 삶에 어떤 후환을 남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었다.

 

지긋지긋 천식은 생명을 위협하고
감기인줄 알았던 증상이 기관지천식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참으로 힘든 생활이 이어졌다. 임신 중이라 약도 함부로 먹을 수 없는 상태여서 고통의 무게는 더 컸다.
“심한 기침으로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병원에 입원을 해서 주사를 맞았어요. 그런데 그 주기가 점점 빈번해지면서 천식 증상도 날로 심해져갔어요. 임신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아예 앉아서 밤을 꼬박 새워야 했으니까요.”

누울 수조차 없었다. 한 번 기침 발작이 일어나면 ‘혹시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방에 아이와 같이 있어도 안 되었다. 산소가 부족하면 곧바로 기침 발작이 일어났다. 슬픈 생각도 금물이었다. 슬픈 생각을 하면 천식 발작이 일어나면서 숨이 콱콱 막혔다. 크게 웃지도 못했다. 기침 발작이 일어나면서 어김없이 병원에 실려 가야 했다.

밤이든 낮이든 오로지 혼자서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하룻밤에 쓰레기통 한 가득 가래를 뱉어내야 했고, 아침이 되면 얼굴은 퉁퉁 부어있기 일쑤였다.
이런 그녀는 병원에서도 기피대상 환자였다. 개인병원에 가면 큰 병원에 가라고 등 떠밀기 일쑤였고, 막상 큰 병원에 가도 마땅한 치료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든 게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심한 천식 발작이 일어나면 아쉬운 대로 기침을 멈추게 할 수는 있어도 그 고통을 끝내줄 묘약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과연 정상적으로 분만을 할 수 있을까?’였다. 의사도, 가족도 모두 걱정했다.

그런데 출산 예정일이 15일 정도 남아 있던 어느 날 밤 진통이 시작됐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 차는 끊기고 도저히 병원에 갈 상황도 아니었다.
“시어머니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어찌할 바를 몰라 했지만 어쩌겠어요? 아이를 낳을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지금 생각해도 삼신할미께 감사하고 또 감사한답니다.”
모두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천식 발작없이 너무도 가뿐하게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던 것이다. 그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천식 약 찾아 세상을 뒤지다
천식 발작 없이 기적처럼 아이를 낳았을 때 정미경 씨는 ‘혹시?’ 하는 기대를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다음날 저녁부터 더 심한 천식 발작이 일어나자 결심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 뒤져서라도 천식약을 찾아내리라!

“전국을 헤매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건 병은 한 가지인데 약은 수백 가지라는 거였어요. 한침이라고 해서 큰 침이 있었는데 이 침을 맞으면 천식이 낫는다고 해서 맞아보기도 하고, 수지침을 100일 맞으면 낫는다는 말을 듣고 그것도 해봤어요. 심지어 피부 이식수술을 해서 체질을 바꿔주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피부 이식수술까지 했지만 모두가 허사였어요.”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천식 발작은 꿈쩍도 안 했다. 여전히 앉아서 하얀 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그렇게 그녀는 나이 사십 줄에 들어서고 있었고, 어렵게 얻은 막내 아들도 10살이 되었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천식 발작이 일어날까봐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앉아 있는데 막내 아들이 방문을 열더니 ‘엄마 돈 100원만’하고 조르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해요.”

그런 아들을 향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절래절래 흔드는 그녀를 향해 ‘택시 타고 만날 병원가면서 돈 100원도 없대!’하면서 토라지는 아들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미어졌다고 말한다.

 

그래도 삶에 대한 미련은 남아

201005hope02온갖 좋다는 방법을 다해 보아도 천식 발작은 나날이 심해져 갔다. 병원에 가면 그녀의 거친 숨소리만 듣고도 돌려세우기 일쑤였다.
“생각다 못한 남편이 하루는 ‘나는 당신을 꼭 살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군산에서는 더 이상 해볼 도리가 없으니 서울에 있는 최고의 병원으로 가보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선 길, 서울에 가면 획기적인 치료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상경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당시 진찰을 마친 의사는 조용히 남편을 불러 ‘부인의 병은 절대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다. 젊은 사람이 하도 딱해 병실은 잡았지만 며칠 있다가 집에 데려가서 헤어질 연습을 하라’고 했다더군요.”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남편은 회사 일을 핑계로 집으로 내려가고 입원실이 없어 특실에 입원을 한 정미경 씨는 곧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에서도 그녀에게 해줄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존의 치료법과 별로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약과 주사, 그리고 주사를 놓아도 기침이 잦아들지 않으면 산소호흡기를 부착해줄 뿐이었다.

“그러자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제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볼 여유가 생기더군요. 그전까지는 이렇게 아파도 제가 꼭 살아 있어야 가정이 유지되는 줄 알았어요. 남편의 월급 50%를 제가 써도 살아 있어야 된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제가 염치가 없었어요. 막말로 건강한 새엄마가 들어오면 훌륭히 제 자리를 메워줄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편도 아이들도 얼마든지 더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어렵게 낳은 막내아들이 마음에 걸렸다. 아직도 과자 사먹게 100원 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였다. 그 애가 스무 살만 되었어도 아무런 미련 없이 간단히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식 발작이 일어날 때 산소호흡기를 부착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끝내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그리고 기도를 했어요. 절박한 심정으로 신을 찾았어요. 40평생을 살아오면서 늘 아프기만 했지 뭣 하나 해놓은 것 없이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고,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무작정 매달렸어요.”
신의 마음이 어떤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미경 씨는 신을 믿었다. 기회를 줄 거라고 확신했다. 그 믿음 하나에 매달려 퇴원수속을 밟고 15일치 약만 지어 집으로 내려왔다.
?
의외의 곳에서 희망을 만나다
정말로 신의 도움이 있었던 걸까? 누가 봐도 가망 없어 보였던 정미경 씨는 천식 발작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생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그렇게 4년이 흐른 어느 날, 성당에서 만난 교우가 그녀에게 권한 것이 있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 말은 “물 먹고, 소금 먹고, 풀 먹어서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안 믿었어요. 그동안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온갖 용하다는 방법을 다 써봤지만 허사였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치는 의사도 못 고친 걸 어떻게 물 먹고, 소금 먹고 풀을 먹어서 고칠 수 있겠어요?”
그래서 흘려들었다. 그런데 여름방학이 되고, 아이들과 하루종일 집에 같이 있게 되면서 그녀의 생각은 변했다.

“아이들한테 엄마의 아픈 모습 보여주기 싫어서 물 먹고 소금 먹고 풀 먹어서 병을 낫게 하는 방법을 일러준다는 건강프로그램에 참가했어요. 가장 먼저 5일 단식부터 시키더군요.”
물과 죽염, 그리고 마그밀을 주었다. 그렇게 생전 처음 단식이라는 걸 했다. 엄청난 양의 변이 나왔다. 숙변이라고들 했다. 그런데 곧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밤에도 늘 앉아서 잠을 자야 했던 정미경 씨였다. 그런데 단식을 하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 누워서 잠을 잘 수 있게 됐던 것이다. 살 것 같았다. 희망도 생겼다.

그런 그녀의 귀에 “우리 몸에 쌓여 있는 숙변만 빠지면 그 어떤 병도 다 나을 수 있다.”는 말이 들렸다.
‘그래서인가?’아무래도 좋았다.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행복했다. 그래서 5일 단식이 끝났을 때 우겨서 5일 더 단식을 감행했다. 그렇게 10일 단식이 끝났을 때 그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교육장 갈 때만 해도 숨이 차서 세 마디 이상은 하지 못했는데 10일 단식이 끝나고 나서는 오래오래 말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10일 후에 집에 돌아오니 남편 왈, ‘당신 눈망울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고 하더군요.”
이때부터 정미경 씨의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생채식을 시작했고, 자연요법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새 삶을 선물해줬다.

 

덤으로 사는 인생 24년
비로소 삶에 새희망을 품게 됐다는 정미경 씨. 10일 단식과 10일 회복식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조금 색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먹을거리를 완전히 바꾸었다.
● 생식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곡 곡식 생것을 빻아서 밥숟가락으로 두 수저를 한 끼 식사 대용으로 먹었다.
● 생채식도 시작했다. 중간 접시 하나 정도로 야채식을 실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야채는 뿌리채소 2가지, 잎채소 3가지로 해서 5가지 이상을 생채식으로 먹었다고 한다.
● 또 있다. 아침은 안 먹고 하루 두 끼식을 하되, 저녁은 최대한 적게 먹었다고 한다. 돈 안 들고, 하기도 쉬운 자연요법도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다.
● 오전에 3번, 오후에 3번 풍욕을 꼭꼭 실천했다.
● 냉온욕을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했다.
● 하루에 한 시간씩 시간 내어 동네 뒷산에도 올랐다.
● 산책 후에는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는 각탕을 20분간 꼭꼭 했다.

그렇게 4개월 정도 지났을 때 정미경 씨의 몸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하루에 천식 약을 두 번만 먹어도 괜찮아졌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어요. 5개월 정도 됐을 때는 하루에 한 번만 먹어도 되더니 8개월 정도 지났을 때는 아예 약을 안 먹어도 될 정도가 됐기 때문입니다. 제 인생에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어요.”

비로소 지긋지긋한 천식약과 이별을 고한 정미경 씨. 그것은 그녀 나이 44세 때의 일이었다. 살맛이 났다. 설사 감기에 걸렸다 해도 머리만 아플 뿐이지 천식과는 무관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내 몸을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암이나 고혈압, 당뇨 등 모두다 병명만 다를 뿐이지 내 몸에서 일어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한 가지라는 사실을 터득하게 됐던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좋은 물을 마시고, 음식을 적절히 먹고, 좋은 소금을 먹으면 된다는 깨달음이었어요.”
이 깨달음은 그녀 인생에 커다란 과제 하나를 안겨주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군산에 황토집을 짓고 단식과 생채식을 지도하는 생활관을 열었어요. 이 일은 남은? 여생에 제가 꼭 해야 될 일로 여겼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그런 탓에 정미경 씨는 오늘도 단식과 생채식을 지도하는 일로 하루해를 보낸다. 어느덧 20여 년째다. 무엇보다 그녀는 올바른 음식을 먹어야 우리 몸이 건강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 탓에 그 방법을 알려주는 일에도 열심이다.

실제로 정미경 씨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전통음식 만들기, 아이들 간식 만들어 먹이기, 텃밭 가꾸기 등 실질적으로 건강식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 그녀가 당부하는 말은 한 가지다. 현명한 주부가 되라는 것이다. 가족을 건강하게 하고, 나라를 건강하게 하는 주춧돌은 주부의 손끝에서 나오기 때문이란다.?

 

* 현재 정미경 씨는 군산에 황토집을 짓고 단식과 생채식 실천요령을 알려주고 있다. 별미 김치 담그는 법, 간장, 된장 담그는 법도 배울 수 있으므로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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