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최성희 교수】
당뇨병 환자인 자영업자 K 씨(59세)는 혈당 검사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오자 술을 끊고 혈당 관리에 돌입했다. 며칠 뒤 K 씨는 검사를 마치고 자신 있게 담당 의사 앞에 앉았다. 의사는 공복 혈당 수치가 낮아졌다는 말과 함께 “평소에는 식사 조절 안 하시다가 검사 앞둔 며칠 동안만 음식을 가려서 드셨죠?”라며 정곡을 찔렀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K 씨. 이윽고 족집게 도사가 아닌 담당 의사가 자신의 최근 생활을 알아맞힐 수 있었던 것이 ‘당화혈색소’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화혈색소가 뭐기에 당뇨병 환자의 생활습관까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일까?
당화혈색소는 당신을 알고 있다!
당뇨병은 혈중 포도당 농도가 높은 질환이다. 당화혈색소는 이런 당뇨병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당화혈색소 수치란 적혈구에 붙어 있는 포도당의 정도를 말한다. 적혈구의 생존 기간은 2~3개월이고, 적혈구가 살아 있는 한 포도당은 계속 붙어 있다. 따라서 당화혈색소 수치는 2~3개월 동안의 평균 혈당 농도로 볼 수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최성희 교수는 “당화혈색소 수치가 높다는 것은 최근 평균적으로 혈당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뇨병 진단 검사에서는 공복 혈당 검사와 포도당 용액을 마시고 2시간 후에 혈당을 검사하는 경구 당부하 검사가 주로 쓰였다. 최근에는 이런 당뇨병 진단 검사와 더불어 당화혈색소를 확인하고 있다. 대한당뇨병학회에서도 당화혈색소 검사를 진단에 이용하기를 권고하고 있다. 아울러 건강검진 항목에도 당화혈색소 검사가 새롭게 포함되고 있다.
최성희 교수는 “공복 혈당 검사만 했을 때 혈당이 당뇨병 진단 수치보다 조금 낮으면 당뇨병을 놓칠 수 있다.”며 “당화혈색소 검사를 해서 최근 혈당을 파악하면 숨어 있는 당뇨병을 더 빠르게 발견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최근 혈당을 검사 한 번에~
말 자체는 생소하지만 당화혈색소는 새로운 검사법이 아니다. 이미 의료진이 환자의 당뇨병 치료 경과를 확인하는 데 쓰이고 있었다. 이제는 치료와 더불어 진단에도 쓰이고 있는 셈이다.
당화혈색소 수치도 기존의 당뇨병 진단 검사처럼 혈액을 통해 알 수 있다. 공복 혈당 검사와 경구 당부하 검사는 공복인 상태로 병원을 찾아야 하지만 당화혈색소 검사는 공복이 아니어도 된다. 2시간이 걸리는 경구 당부하 검사와 비교해 시간이 절약될 수도 있다.
그럼 당화혈색소가 얼마나 높아야 당뇨병인 걸까? 공복 혈당이 126mg/dL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진단하는 것과는 달리 아직 정확한 당화혈색소의 당뇨병 진단 기준은 정립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당뇨병 환자들은 6.5~7% 이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최성희 교수는 “당화혈색소가 5.9% 이상이면 현재 당뇨병일 가능성이 크고, 5.6~5.7% 이상이라면 5~7년 후 당뇨병이 진행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한다.
당화혈색소 수치가 높을수록 합병증도 증가한다. 당화혈색소 수치가 1% 높아질 때마다 당뇨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은 20%씩 증가한다. 반대로 당화혈색소 수치를 1%만 낮추면 미세혈관 합병증과 심근경색 합병증 발생 확률을 각각 37%, 14%까지 낮출 수 있다.
최성희 교수는 “혈당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식사 조절과 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3개월에 한 번씩 당화혈색소 수치를 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널뛰는 혈당 제압! 당화혈색소 관리법 5계명
1. 혈당 변동폭에 주목!
혈당 변동폭은 하루 혈당 수치의 높낮이 변화를 말한다. 혈당 수치를 그래프로 그렸을 때 공복 혈당은 정상이지만 식사할 때 음식 조절을 하지 않아서 고혈당이 됐다면 높낮이 변화는 커진다.
공복혈당 관리가 잘 되고 있더라도 식후 혈당이 높으면 당화혈색소는 쉽게 조절되지 않는다. 잊지 말자. 당화혈색소 수치는 혈당의 변동폭이 줄어야 낮아진다.
2. 눈 가리고 아웅은 금물!
혈당 검사는 ‘좋은 게 좋은 것’ 이라는 말이 안 통한다. 병원에 검사받으러 가기 전이나 혈당을 재보기 전에만 음식 조절과 운동을 철저히 하는 당뇨병 환자가 적지 않다. 괜히 속만 상할까 봐 운동을 하지 않거나 과식을 했다면 혈당 검사를 미루기도 한다.
최성희 교수는 “혈당 검사는 공복일 때, 평소처럼 식사한 후, 운동 전후, 과식을 한 후 등 여러 가지 상황에서 해야 한다.”고 밝히고 “이런 각각의 상황 모두가 정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혈당 확인을 자주 하면 자신이 어떤 음식을 얼마나 먹었을 때 혈당이 오르며, 어떤 운동을 했을 때 혈당이 잘 떨어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3. 저혈당의 탈을 쓴 고혈당 주의!
당뇨병 환자들은 대부분 저혈당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다. 그래서 저혈당 증세가 온다 싶으면 혈당을 올리기 위해서 마구 음식을 먹을 때가 잦다. 그러나 혈당이 200mg/dL 이상인 사람들은 혈당이 160mg/dL 정도만 되어도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떨리는 저혈당 증세가 올 수 있다. 혈당이 아주 높은 사람이 저혈당 증세가 왔다고 해서 무조건 혈당을 올리는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진짜 저혈당인지 혈당 검사를 해봐야 하며, 저혈당이 아닌데도 증세를 참기 어려우면 간단한 스낵을 먹고 버텨본다.
4. 식사는 골고루, 잡곡밥으로!
당뇨병 환자는 세 끼를 먹고, 잡곡밥을 주식으로 반찬을 골고루 먹는 것이 좋다. 채소 반찬 위주로 먹고 두부, 생선 등 단백질이 풍부한 반찬도 함께 먹어야 한다. 혈당이 오를까봐 밥을 너무 적게 먹으면 오히려 빵, 떡, 과일 등 간식 생각이 간절해지기 쉽다. 끼니 중간에 간식을 먹으면 혈당 수치가 자꾸 산처럼 높아지는 기회가 많아진다. 당화혈색소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혈당 수치는 뾰족뾰족한 높은 산이 아닌 낮고 평평한 뒷동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5. 2030운동법 생활화!
최성희 교수는 당뇨병 환자에게 2030운동법을 추천한다. 2030운동법이란 식사를 한 지 20~30분이 지나서 20~30분 정도 운동을 하는 것이다. 식사를 하면 혈당이 높아지는데, 그때 운동을 하면 급격히 혈당이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즉 당화혈색소 관리의 방해꾼 혈당 변동폭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공복에 운동을 심하게 하면 배가 더 고파서 먹는 양이 늘 수 있고, 혈당 조절이 잘 안 되는 사람은 저혈당이 올 수도 있다. 최성희 교수는 “평일에는 운동을 전혀 하지 않다가 주말에만 2~3시간씩 운동하는 것보다 하루에 두 번 정도 나눠서 20~30분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고 충고한다. 특히 약을 먹는 환자라면 주말만 심한 운동을 했을 때 저혈당이 오기 쉽다. 그러면 약을 먹지 않게 되고 다음날에는 다시 혈당이 오르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
운동은 하체 근육을 많이 쓰는 걷기, 등산이 좋다. 걸으면 하체 근육이 혈당을 효과적으로 흡수하기 때문이다. 가벼운 산책보다는 땀이 약간 날 정도로 빨리 걸어야 운동 효과가 크다.
최성희 교수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당뇨병, 고지혈증 등 내분비질환을 전문으로 진료하고 있다.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대한내분비학회, 대한비만학회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