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은혜 기자】
“암 발생은 오히려 전화위복… 더 건강해졌어요”
2009년 7월 느닷없이~ 암선고
일흔을 넘어선 나이… 이 나이쯤 되면 허리 아프고, 관절 안 좋고… 다들 한두 군데 아픈 곳은 있기 마련이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사는 변일남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혈압이 높아 10여 년 동안 혈압약을 먹어왔고 고지혈증도 있었다. 회사에서 매년 하는 건강검진을 해보면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게 나왔고 동맥경화도 있었다. 그래도 나이 탓이려니 참으며 살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꾸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 있었다. 부쩍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이었다. 친구들은 “나이 들면 다 그렇다.”며 “별 일 아니다.”고 했지만 하루에 20회 이상 소변을 보게 되자 덜컥 겁이 났다.??
“안 되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동네에 있는 비뇨기과에 가서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받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검사 결과는 “별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의사는 소변이 덜 나오게 하는 약을 처방해줬다.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여전히 화장실 가는 횟수는 줄어들지 않았고, 하루 20회 넘게 소변을 봐야 하는 고통은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다른 병원에 갔어요. 또다시 혈액검사, 소변검사를 하더군요.”
결과는 일주일 뒤에 나왔다. 그런데 의사가 하는 말이 영 심상찮았다. “혈액 수치가 높다.”면서 “전립샘비대나 전립샘암일 가능성이 있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던 것이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온가족의 걱정 속에서 여러 가지 검사가 진행됐다. 조직검사, 혈액검사, MRI, CT촬영 등 일일이 다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가지 검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일주일 뒤, 온가족이 있는 자리에서 의사는 말했다. “전립샘의 12군데를 조직검사 했는데 4군데서 암세포가 발견되었습니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암이라니… 그 무서운 암이라니… 말문이 막혔다. 머릿속은 백지상태가 되었다. 온가족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의사가 말했다. 치료법은 수술법과 항암제, 방사선치료가 있는데 수술을 하는 게 좋겠다고.
“의사가 그러라고 하니 수술을 해야 되나보다 했어요. 그런데 그때 옆에 있던 딸이 수술을 하면 후유증 같은 없느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러자 의사가 말하길 후유증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평생 기저귀를 차고 살아야 되는 일이었다. 또 소변줄기도 새로이 만들어야 하는 일이었다.
이 말을 들은 변일남 씨는 등골이 오싹해지더라고 말한다.
그는 결국 수술이 여의치 않으면 항암치료라도 꼭 받으라는 의사의 말을 뒤로 하고 병원문을 나섰다고 한다. 그것은 지난 2009년 7월 21일의 일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한 의외의 선택
평생을 기저귀 차고 살아야 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그래도 의사의 말은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안 해서 돌이킬 수 없게 되면 어쩌지.’ 변일남 씨의 고민은 깊어갔다. 가족들도 쉽사리 의견을 내놓지 못했다. 그것은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그런데 그때 딸이 말하길 칠십이 넘으면 암도 잘 안 큰다면서 수술해서 그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보다 한 6개월 정도 자연요법을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하더군요.”
자연요법? 조금 낯선 단어였다. 하지만 딸이 권하는 거라 믿음이 갔다고 한다.
옆에 앉아있는 딸 변혜경 씨(43세)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사실 저도 한때 건강이 안 좋아 심한 고통을 겪은 적이 있었어요. 우리나라 1세대 IT업계에 종사하면서 몸을 혹사했더니 식욕부진, 자율신경실조증, 호르몬불균형 등으로 온몸이 망가져 회사까지 그만둬야 했으니까요. 그때 깨달은 것이 건강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이것저것 건강지식도 습득하고 건강과 관련된 정보도 눈여겨보게 되면서 어느 정도 건강의 기초는 꿰고 있는 정도는 됐어요.”
그런 그녀가 아버지 변일남 씨에게 권한 것은 신선한 야채와 과일 위주로 먹을거리부터 바꾸게 했다. 그리고 또 하나! 키토산으로 만든 건강기능성식품도 드시게 했다. 키토산올리고당을 복용하게 하고 키토산골드차를 물처럼 드시게 했다.
변혜경 씨는 자신의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처럼 키토산의 항암효과가 아버지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단식원 체험은 잊지 못할 구세주
딸의 말을 믿고 수술 대신 자연요법을 선택한 변일남 씨. 그런 그에게 평생 처음 해본 단식체험은 지금도 잊지 못할 구세주로 남아 있다.
딸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자연요법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 단식은 칼 안 대는 수술이라면 평택에 있는 단식원에 가자고 권했을 때만 해도 그는 손사래부터 쳤다고 한다.
“밥을 굶는 일은 못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말도 못 붙이게 했습니다.”
그러나 온 가족이 나서서 단식프로그램에 참가해 보자고 하자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평생 처음 해보는 단식은 쉽지 않았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죽을 맛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아내 보고 참고, 자식 보고 참고, 또 손녀 보고 참았다. 3일째 되면서부터 견딜 만했다고 한다.
이러한 단식과 함께 다양한 건강프로그램도 함께 실천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피부를 숨쉬게 하는 풍욕을 하고 된장찜질, 겨자찜질이라는 것도 해보았다.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냉탕과 온탕을 교대로 하는 냉온욕이라는 것도 했다.
그렇게 6박 7일의 프로그램을 끝냈을 때 변일남 씨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어떻게 먹고, 어떻게 생활하고… 어렴풋이나마 그 길을 찾게 되었다고 말한다.
180도 달라진 생활, 오직 한 가지 일념으로~
단식 체험 후 변일남 씨의 생활은 많이 달라졌다. 보다 철저한 자연요법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하루의 생활은 규칙적이고, 절도 있게 짜여졌다. 먹는 것, 생활방식, 삶의 태도도 바뀌었다. 전립샘암 선고를 받고 병원 치료를 포기한 그가 목숨 걸고 실천한 자연요법은 다음과 같다.
● 하루 세 끼 오곡가루 생식을 먹기 시작했다. 오곡가루를 반죽해서 김이나 상추에 싸서 먹었다고 한다.
● 철저한 생채식을 했다. 고기, 생선까지도 금했다. 채소와 과일은 반드시 유기농으로 먹었다. 야채, 과일을 씻을 때는 소금과 식초로 깨끗이 씻어서 먹었다.
● 키토산과 키토산 골드차도 꾸준히 먹었다.
● 전립샘에 좋은 것으로 알려진 토마토는 특히 많이 먹었다. 토마토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껍질을 벗긴 뒤 썰어서 올리브기름을 뿌려서 먹었다고 한다.
● 과일을 먹을 때는 효소가 많이 들어있는 사과, 키위, 감 등을 많이 먹었다.
●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풍욕을 했다. 옷을 모두 벗고 20초 있다가 이불로 온몸을 감싸고 1분 있고… 이런 식으로 시간을 늘려가는 방식이다. 풍욕은 피부호흡을 잘 되게 하여 몸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열심히 실천했다.
● 낮 시간 동안에는 주로 산을 찾았다. 소요산, 관악산에 자주 올라 산의 맑은 공기를 많이 들이마셨다.
●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반드시 냉온욕을 했다. 찬물과 더운물에 번갈아 들어가는 목욕인데 냉온욕을 하면서부터 피부가 보들보들 윤기가 나고 잠도 술술 잘왔다.
“이런 생활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속하자니 꾀도 나고 싫증도 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큰 힘이 되어 주었어요. 제가 하는 방법을 같이 하면서 힘든 것을 서로 나누어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변일남 씨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 정정순 씨(70세)가 한마디 거든다.
“나도 그 덕에 20년 동안 앓았던 천식도 많이 나았잖어유. 봄가을이면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지난 가을, 올 봄에는 병원 한 번 안 갔으니께.”
그래도 변일남 씨는 짐작한다. 많이 힘들었을 아내의 고통을. 그러나 그 고통을 참아낸 보람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이 악물고 실천했을 때 그의 몸에는 뚜렷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소변보는 횟수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그렇게 피곤하던 몸도 개운하고 가뿐해졌다.
살맛이 났다. 희망도 갖게 됐다. 이때부터는 오곡가루 대신 현미잡곡밥을 먹기 시작했고, 하루 시작을 웃음으로 열었다. 웃기 지침서를 보면서 박장대소하며 집이 떠나갈 듯 하하하~ 호호호~ 웃었다. 웃고 있는 손녀딸 사진을 안방에 붙여놓고 그 사진을 보면서 또 웃었다.
그런 덕분이었을까? 이런 생활을 한 지 8개월 정도 지났을 때 변일남 씨는 기적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전립샘암 진단을 받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자연요법도 하고 단식도 하고…. 참으로 숨가쁘게 흘러간 시간이었다.
비록 낯선 삶의 방식에 때로는 힘이 들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위안은 컸다. 소변보는 횟수가 줄어든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 기쁜 변화였다. 좋아지고 있다는 징조로 받아들였다.
“그래도 문득문득 드는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혹시 병원 치료를 안 해서 더 나빠진 건 아닐까? 수술이 싫다면 항암치료라도 받으라고 하던 의사의 말이 자꾸만 걸렸으니까요. 그래서 검사를 한 번 받아보자 결심했어요.”
검사해서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수술까지 할 각오를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2010년 3월 변일남 씨는 또다시 피를 뽑고 조직검사를 하고, 초음파검사를 했다.
결과는 일주일 뒤에 나왔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정말 기적이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검사 결과를 든 의사가 말했다. “암세포가 없습니다.”
‘혹시 잘못 들었나?’ 생각한 변일남 씨가 물었다. “예? 다시 말씀해주세요.” 믿어지지 않아서였다. 그도 놀라고 온 가족도 놀랐다.
그러자 의사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암세포가 없다는 게 아니라 없을 수도 있고 너무 작아서 안 나타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암세포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6개월 뒤에 다시 한 번 검사해보자고 했다. 암이 없어진 것이다. 전립샘 4곳에서 발견되었던 암이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결코 믿기지 않는 일, 그래도 너무나 좋은 일… 변일남 씨는 “기적은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제게도 일어날 줄은 정말 몰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더군다나 십수 년을 먹어온 혈압약을 끊게 된 것은 다시없는 축복이라고 말한다. 암 검진을 받으면서 같이 해본 건강검진 결과 그동안 고질병처럼 앓고 있었던 고혈압도, 고지혈증도, 동맥경화도 깨끗이 나아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암은 오히려 그에게 “커다란 축복이 됐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