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문종환 건강칼럼니스트】
자연은 종종 천연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사람들. 그런 그들이 마지막 비상구처럼 선택한 자연은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선물해줬다. 그 이야기를 들어본다.?
CASE 1. 절망의 끝자락에서 희망 찾은 정경옥 씨 건강 이야기
“허름한 토담집 생활 1년 만에… 우울증·불면증 없어졌어요”
새벽닭 우는 소리에 눈을 뜨면 청아한 아침이 그녀를 맞는다는 강원도 양양. 대청봉 아래 첫마을에 허름한 토담집, 이곳은 한때 11년 동안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도 회복되지 못했던 우울증과 불면증을 치료한 정경옥 씨(51세)의 집이었다. 지금은 또 다른 환자가 와서 치유를 위해서 비워내는 연습을 하고 있는 곳이지만 당시에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17년 전, 우울증과 불면증은 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한 후 더 악화되어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렀다. 의사의 권유로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귀촌. 서울 태생인 그녀가 고향인 서울과 부모님과 가족을 떠나 농촌으로 간다는 것은 당시에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살아야 했기에 70노모의 통곡소리를 뒤로 하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앞이 안 보이도록 울며 찾은 곳이었다.
마지막 희망처럼 귀촌을 선택하다
대청봉이 바라보이는 양양의 허름한 토담집은 정경옥 씨가 새로 태어난 집이라고 할 수 있다. 45년 된 이 집은 흙에 수수깡을 붙여서 만든 집으로 전형적인 강원도식 농가주택이다. 허름한 것은 물론이고 며칠간 집을 비워두면 마치 폐가를 연상시킬 정도로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최악의 주거환경이었다.
세련된 아파트에 살다가 토담집 주거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2002년 2월 가족 모두 이사를 했으나 남편과 아이는 버텨내지 못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갔고 그녀 혼자 남아 병과 싸워야 했다. 처음에는 무섭고 외로워 너무도 힘들었다. 물질에 대한 집착, 가족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끊어내지 못한 채 그녀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렇게 농촌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교직에 있었고 다행히 농촌으로 발령을 받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니 농촌으로 가려는 그녀를 주위사람들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사실 최고의 학벌과 최고의 직업을 가지고 강남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생활해온 그녀가 서울을 벗어나 농촌생활을 한다는 것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심해져만 가는 우울증과 불면증, 게다가 암 진단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화려한 서울생활을 하면서 얻은 마음의 상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도시의 환경이 문제였던가? 최첨단 현대의학이 자신의 질병을 고쳐줄 것이라 믿었지만 11년 동안의 투병 결과는 최악, 결국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귀촌과 신앙생활이었다.
우울증, 불면증 치료약을 끊다!
농촌생활 1년, 너무도 많이 변화된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새소리, 바람소리가 자연의 교향곡이 되어 그녀의 영혼에 울림을 주기 시작했다. 풀들도 그녀를 반겨 맞아 주었다. 어느 초로의 작가가 새와 풀들과 대화한다고 했을 때 그녀는 ‘무슨?’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직접 와서 살아보니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녀 역시 교정의 나무위에 앉은 아름다운 새들과 늘 대화하며 하루를 보낸다. 학교 옆 오솔길을 따라 뚝방길을 산책하며 풀들과 인사한다. 풀들과 새들은 그녀에게 말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집착에서 벗어나면 당신의 병은 치유될 수 있어요.’
그녀가 풀과 새들에게서 전해들은 이 메시지는 점점 사실이 되어갔다. 1년 만에 우울증과 불면증 치료제 복용을 모두 중단하고도 자연에 대한 설렘과 비움을 통한 변화와 성장은 그녀에게서 우울증과 불면증을 없애게 했다. 토담집은 우울증과 불면증 치료제를 복용하지 않고도 잠을 잘 자게 했으며, 자고 일어난 후에도 상쾌한 느낌을 줘 세상이 새롭게 열리는 듯, 묘한 감정을 느끼게까지 해 주었다.
건강 찾고 텃밭 일구며 제2의 삶 살아
그녀에게 세상은 이제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암, 우울증, 불면증이 그녀에게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된 셈이다.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던 그녀는 약을 먹지 않고도 숙면을 취할 수 있었고,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텃밭을 일구어 23가지 채소를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는 일도 시작했다. 농사라고는 ‘농農’자도 모르던 그녀가 직접 텃밭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 일이 그녀에게 일어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풀 한 포기에 담긴 생명의 귀함을 느꼈다. 농부들의 노고도 헤아릴 수 있었다.
유기농매장에 진열된 신선한 채소나 과일들을 즐겨 찾았지만 이런 먹을거리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몇 평 안 되는 유기농 텃밭농사가 그녀에게는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식탁에 올릴 먹을거리를 직접 생산한다는 것은 대단한 기쁨이었다. 서툴지만 그런 기쁨이 있었기에 그녀의 텃밭농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녀의 식단을 들여다보면 유기농 혼합잡곡, 생선, 게, 유기농채소가 주며, 드물게 질 좋은 육류도 먹는다. 그녀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구연산이다.
그녀는 구연산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 바나나와 현미식초, 그리고 유기농설탕을 동일한 양으로 배합하여 10일 정도 숙성시킨 후 물에 타서 음용하고 있다. 이때 하루에 한 번씩 나무 숟가락으로 저어주어야 한다. 기본적인 식사도 중요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직접 만들어 먹는 구연산이 그녀의 건강회복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토담집과 구연산, 그리고 여유로움과 넉넉함으로 평화를 주는 자연, 그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명활동들은 그녀로 하여금 제2의 삶을 선물하였다.
그녀의 토담집을 방문한 지인들은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한다. “부럽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니?”가 그것이다. 어떤 평가를 하든지 그녀는 지금 생애 최고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돈이 없어도, 좋은 집이 아니어도, 멋진 자동차가 없어도 이제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녀가 각종 난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의 소리를 들어라. 자연은 우리의 스승이다.”는 것이다.
CASE 2. 서울 버리고 삼화실 마을에 안긴 권기주·김홍중 가족 이야기
“아토피는 자연이 천연 치료제… 이제 걱정 안 해요”
사업의 전성기였던 2005년 10월, 서울을 떠난 권기주 씨(49세). 그는 늘 농촌에 대한 그리움과 농부가 되고 싶었던 꿈을 갖고 경남 하동 삼화실 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아들 혁우(19세)가 아토피로 힘들어 하고 있을 무렵, 그는 과감히 서울생활을 청산하기로 마음먹고 가족을 데리고 무작정 서울을 떠났다.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땅을 먼저 사버린 사고(?)를 쳐서 가족들은 그의 일탈에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일탈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잘 나가던 사업을 접고 농촌행을 결심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유라고 찾아봐야 아들의 건강문제. 어쩌면 그는 아들을 핑계로 농촌행을 서둘렀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적응할까? 걱정은 기우
올해로 삼화실로 들어온 지 5년째. 처음 이곳에 올 때 가장 걱정됐던 것은 두 아들이 농촌에 잘 적응을 해줄까 하는 것이었다. 생태적인 삶을 산다면 아들의 건강은 회복되겠지만 도시생활에 익숙한 두 아들이 혹시 왕따를 당하여 힘들어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자연 속에서 두 아들이 잘 적응해 줘서 정말 고마웠다. 더불어 아들 혁우의 아토피도 상당히 호전돼 생활에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아토피가 치료된 것은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먹을거리와 자연과 어우러진 삶이 아들에게 스트레스를 덜 준 덕분이라고 생각하죠. 편리성에 있어서는 서울생활이 낫겠지만 아들의 정서, 건강, 사고, 창의력 등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자연에서 생활하는 것이 낫습니다. 사고의 자유, 선택의 자유, 하고 싶은 것을 잘 하게 하는 것 등이 제가 아들에게 베풀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갖는 욕심과 기대를 버리고 비워냈다. 아들의 교육문제를 회피하거나 방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최선의 교육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이곳에서 잘 적응할까 하는 염려는 어른들의 시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었죠. 오히려 아이들의 적응능력이 훨씬 빠르고 뛰어났어요.”
자연 속에서 부르는 행복의 노래
자연은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변한다. 사람들은 자연을 돈의 논리로만 이해하려 할 뿐 우리들을 이롭게 하려는 근본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마을사람들과 나누며 살아가는 농촌의 모습이 그는 너무 좋다. 그런 모습 속에서 아이들도 건강하게 성장하여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틀을 다졌으면 좋겠다.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이 평화롭고 정겨운 마을에서 마음까지도 건강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년에 흙집도 짓고, 유기농식단으로 생활하니 건강 하나만은 자신이 있다. 생태와 건강, 그리고 자립을 위해서 열심히 농사도 짓고 있다. 고사리, 매실, 더덕, 감자, 밤, 녹차, 연, 취나물, 산나물, 돌배 등 많은 종류의 농사를 짓고 있지만 많이 힘들지는 않다.
권 씨 부부는 일을 즐기면서 한다. 욕심을 부리고 농사일을 하면 반드시 탈이 난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다치거나. 그래서 돈을 보고 농사를 짓지는 않는다. 뿌린 대로 거두고 먹고 남은 것이 있으면 잉여농산물을 판매하거나 나누어 먹고, 수입이 없으면 지출을 줄이면 된다. 근검절약하는 생활모습이 아이들의 교육이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이 말을 가장 적절할 때 실천한 그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해 본다. 하늘빛산촌은 오늘도 불을 밝혀 놓고 그의 가족의 건강과 우리 모두의 건강을 기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