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조아름 기자】
봄빛이 곱던 4월 하루, 지리산 자락 섬진강변에 위치한 홍쌍리 명인의 청매실농원을 찾았다. 그녀의 사랑을 듬뿍 먹고 자란 매화꽃들은 서로가 뽐내듯 흐드러지게 피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매실을 ‘푸른 보약’으로 세계에 널리 알리고, 국내 최초로 ‘식품명인’에 지정되기도 한 홍쌍리 명인. 올해로 칠순을 맞아서일까? “이제 칠학년 되니까, 철은 좀 드는 것 같아. 그래도 여전히 열아홉 살 바람난 가시네처럼 살지.”라고 말하는 그녀의 매실 예찬론을 들어보았다.
세 가지 독을 풀어주는 매실의 저력
홍 명인을 기다리는 기자 앞에 차양이 드리워진 밀짚모자를 쓴 작은 체구의 한 할머니가 다가온다. 끼고 있던 장갑의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앉는다. ‘설마?’ 했는데, 방금 전까지도 흙을 만지다 왔다는 홍 명인이다.
“촌사람 이야기 뭐 들을 게 있다꼬.” 말투는 투박하지만 부드럽고 남도 특유의 사람 좋은 인상이 묻어나온다.
부산에서 스물세 살 나던 해 이곳으로 시집 와 고달픈 농사일과 외로움에 매일을 눈물로 지새웠다는 홍 명인은 입버릇처럼 “매화는 내 딸, 매실은 내 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매실나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새색시 시절, 어느 비오는 날 매실 하나를 주워 먹었는데, 속이 시원하게 비워지는 느낌이 드는 기라. 그때부터 매실을 이용해 사람 몸속도 청소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지.”
그렇게 매실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47년 전이다. 당시만 해도 밤나무 천지였던 이곳에서 약용으로밖에 쓰이지 않는 매실나무를 심었으니, 남들 보기엔 영 마뜩찮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매실은 생과실로는 먹지 못한다. 하지만 숙성시키면 피로회복에도 으뜸이고, 해독과 항균작용으로 식중독이나 배탈에도 그만이다. 또 매실의 각종 성분이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 피부미용에도 좋다. 그래서 홍 명인은 매실을 ‘푸른 보약’이라고 말한다.
“매실이 세 가지 독을 풀어주는 보약이라. 예부터 음식의 독, 핏속의 독, 물의 독을 풀어준다고 했지. 그래서 예부터 아픈 배를 낫게 하고, 속을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고 약용으로 쓰였어. 매실은 뱃속 청소기야. 이걸로 뱃속 좀 씻어주고 살면 좋지.”
과거 홍 명인은 두 번의 대수술과 교통사고 후유증을 겪었다. 그리고 농사일을 하면서 툭하면 매실나무에서 떨어지기 일쑤였고, 비탈진 밭을 일구며 류머티스관절염으로 오래 고생했단다.
하지만 자연에서 얻은 경험과 일본의 유명한 환경농업가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영향으로 자연식, 매실 음식을 먹으면서 치유의 길을 걸었다고. 그리고 이런 매실을 우리 건강에 활용하게끔 가공하고 숙성하는 데 선봉장이 되었다.
도시민들아, 제발 눈 똑바로 떠라!
인터뷰 도중 홍 명인은 갑자기 기자의 손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밥은 먹었노? 아직이면, 밥 한술이라도 뜨자.”
도착한 곳은 농원 식당. 점심 식사 때는 조금 지났고,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메뉴는 매실비빔밥. 언뜻 흔한 비빔밥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저며서 다진 매실이 들어가 있다. 거기에 홍 명인이 직접 담갔다는 매실 고추장을 듬뿍 올려준다.
“이렇게 먹어도 짜지 않아. 우리 집 음식은 설탕이나 조미료는 일체 안 들어가. 이 고추장에는 손님들을 위해 다진 고기가 들어있긴 하지만, 나는 29살 이후로 고기는 안 먹어. 평소에는 내가 밭에서 키운 채소들로 나물 반찬을 해먹지. 손님이 와도 크게 달라지진 않는데, 사람들은 그게 좋은가 봐.”
홍 명인이 비벼준 비빔밥을 먹어보니 그 맛이 새콤하면서도 깔끔하다. 상큼한 매실은 아삭아삭 입안에서 씹힌다. 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뚝딱했다. 배는 부르지만, 부담은 없다. 이런 게 건강 밥상인가 싶다.
홍 명인은 도시민들의 밥상을 걱정한다.
“나는 도시민들한테 제발 눈 똑바르게 뜨라고 해. 크고 번들번들한 거 사지 마라, 향긋하고 기름진 것 먹으면 오래 못 산다, 혀가 좋아하는 음식보다 몸을 챙기는 음식을 먹어라. 신선한 채소는 꺾으면 질긴 섬유질이 드러나고 금방 시들어. 그런데 도시채소는 시들지도 않고, 뭘 쳤는지 모르겠어. 도시민들이 말하는 유기농, 웰빙이 뭐야? 번들번들하고 모양 좋은 거? 좀 작고 비뚤어지고, 벌레 먹은 거, 시들시들한 거를 먹어야 돼. 도시민들은 겉치레만 하니, 뱃속은 엉망진창인기라.”
특히 홍 명인의 된장에는 시간이 담기고 이야기가 담긴다.
“나는 아무리 먹어도 또 먹고 싶은 것이 ‘된장’이야. 콩을 타작해서 솥이 한숨 푹 쉴 때까지 찌고 그걸 걸어놓으면 메주가 쩍 벌어져 말라비틀어지고 주름지고 곰팡이가 피는데, 이게 우리네 삶하고 같은 기라.”
농사꾼인 것을 행복해하는 사람
홍 명인은 산비탈을 오르내리기 수 천 번, 거기에 호미질까지. 죽도록 일만 하고 산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가 휴식시간이란다. 듣고 있자니 병이라도 나지 싶어, 이제는 몸 생각도 해야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오는 사람들마다 그래. 이제는 쉬라고. 근데 나한테는 흙이 밥인 기라. 힘들 때마다 내 눈물과 괴로움 다 받아주고, 아름다운 꽃하고 보석 같은 열매로 보답하는데, 어찌 안 이쁘겠노.”
홍 명인은 일을 하다가도 꽃을 따다 꽃반지 만들어 끼고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꽃과 나무와, 바윗돌과 이야기한다. 감수성 풍부한 시인이 따로 없다.
“새벽 산에 오르면 꽃들이 나한테 ‘엄마, 나 좀 봐도.’라고 말하고, 손으로 톡 건드리면 기분 좋아서 몸을 떨어. 백합은 새벽 이슬에 조용히 눈물이 고여 있고. 새벽 안개는 솜털같이 부드럽고. 내 새끼들은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좋아해줘. ‘엄마 엄마~’하는데, 이 많은 새끼들을 뒀으니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노.”
홍 명인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빛과 건강한 낯빛에는 고단함도, 슬픔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칠순이란 나이가 무색할 만큼 얼굴도 곱고 정정하다.
홍 명인은 앞으로도 매실농원을 천국으로 만들 거라고 말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건강을 선물하고 싶단다. 그래서 홍 명인의 삶에는 은퇴가 없다. 희귀종의 야생화들도 많이 심고, 매실나무 가꾸기도 열심이다. 홍 명인은 매실나무에 평생을 바쳤다. 매화가, 매실이 인생 그 자체인 셈이다. 그런 홍 명인에게도 뜻밖의 소원은 있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해. 그런데 한평생 살아보니, ‘여자’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 기라. 호호~”
TIP. 홍 명인이 말하는 ‘뱃속 청소기 매실 원액 만들기
● 6월 6일~26일의 매실이 맛·향·약성이 제일이다. 청매실은 너무 익으면 약성이 줄어들고, 설익으면 독성이 있을 수 있다.
● 되도록 작은 것보다는 큰 걸로, 과육이 많고 씨가 안 깨지는 것으로 매실을 고른다.
1. 매실 약 35kg 정도를 사서 물에 담가두었다가 건져서 말린다.
2. 씨를 발라내고 믹서기에 간다.
3. 위의 내용물을 약불에 72시간 정도 은근하게 고면, 300g 정도(약 그릇 한 대접)의 매실 원액이 나온다. (이때 알루미늄 용기는 사용하지 말고, 스텐리스나 유리 용기를 사용한다.)
4. 병에 옮겨 담아두었다가 식후에 조금씩 타 마신다. 마신 잔도 한 번 더 헹궈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