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도움말 | 동남권원자력의학원 감염내과 전재현 과장】
주부 신윤희 씨(34세)는 여름이 싫다. 더운 날씨에 음식물 쓰레기를 깜빡하고 방치했다간 역한 냄새와 함께 ‘이것’이 핀다. 장마철이면 천장과 벽에도 어김없이 ‘이것’의 무늬가 생긴다. ‘이것’은 우리 몸도 못 살게 굴어 고생스럽게 하기 일쑤다. 더럽고 불결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여름 불청객 ‘이것’의 정체는 바로 ‘곰팡이’. 곰팡이에 얽힌 비밀을 풀어보자.
PART 1. 지구상의 모든 것을 분해하는 청소부 ‘곰팡이’
지구상에서 공기, 물, 흙 등 곳곳에 널리 살고 있는 미생물. 흙 1그램 속에는 무려 1억 개가량 다양한 미생물이 산다. 이중 곰팡이는 36%를 차지한다. 세포 한 개로 이루어진 단순한 모양부터 복잡한 모양의 버섯까지 약 7만 종이 있다. 그뿐 아니라 계속 새로운 종류가 발견되고 있다.
이렇게 많이 존재하는 곰팡이. 무슨 역할을 할까? 동남권원자력의학원 감염내과 전재현 과장은 “곰팡이는 원래 지구상의 모든 유기물을 분해하여 흙으로 돌아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지구의 오염을 정화한다는 말이다.
곰팡이는 조건만 맞아떨어지면 아무 데나 생기고 자란다. 빵이나 떡은 물론 집 벽이나 기둥, 벽지, 옷, 플라스틱, 유리, 렌즈 등을 가리지 않는다. 곰팡이가 피면 부식이 생긴다. 음식은 상한 맛과 냄새가 나고 종류에 따라 독성이 생기기도 한다.
곰팡이는 사람 몸도 가리지 않고 침투한다. 전재현 과장은 “곰팡이가 몸속에 생기면 의사들은 생사가 걸린 매우 위험한 상태로 판단한다.”고 말한다.
몸속에 침투해 병을 일으키면 우리 몸은 흙으로 돌아가기 전 상태, 즉 죽음에 더 가까운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폐에, 피부에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는 곰팡이. 다행히도 모두 병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우리 면역체계가 몸 속에서 곰팡이들이 자라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곰팡이가 우리 몸에 해로운 것일까?
PART 2. 곰팡이는 독인가? 무좀부터 생명까지 위태롭게
가장 위험한 경우는 곰팡이가 직접적으로 생명을 위협할 때다. 우리가 암에 걸린다거나 장기 이식을 하거나 항암치료를 받는 도중 면역이 떨어지면 곰팡이가 몸에 들어올 확률이 높아진다. 효모균의 일종인 칸디다나 크립토코쿠스, 누룩곰팡이의 일종인 아스페르길루스 등이 몸에 염증을 일으킨다. 패혈증, 뇌수막염, 폐렴 등으로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 또 혈액을 통해 들어온 칸디다균이 눈에 붙어 시력을 잃게 하기도 한다.
면역력이 정상이라 하더라도 아스페르길루스가 땅콩이나 옥수수 등에 붙어 살면서 만드는 독소(아플라톡신) 때문에 위암이 생길 수도 있다. 그 밖에 벽이나 바닥에 붙은 곰팡이가 천식을 만들고 악화시키기도 한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주로 여름철에 기승을 부리는 무좀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세계 인구의 3% 이상이 손톱의 곰팡이균 감염으로, 15%가 발의 곰팡이균 감염으로 고통 받고 있다. 무좀은 곰팡이가 피부의 각질을 녹여 영양분으로 삼아 번식하는 피부질환이다. 곰팡이가 좋아하는 곳은 각질이 풍부하고 습하며 따뜻한 곳이다. 발바닥, 발톱, 손톱, 옆구리, 사타구니 주변 등 살이 겹치는 부위를 잘 닦고 말려야 한다.
전재현 과장은 “무좀도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습게 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PART 3. 곰팡이는 약인가? 발효식품, 항생제로 활용
곰팡이가 다 나쁘기만 할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장티푸스, 매독 등 감염병에 걸린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불구가 됐다. 그러나 1928년 영국의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하면서 인류는 더는 세균 때문에 헛된 희생을 치르는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페니실린은 바로 푸른곰팡이로 불리는 페니실리움이라는 곰팡이에서 나온다. 전재현 과장은 “지금도 각종 곰팡이를 이용해 우수한 항생제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웰빙 음식의 대표로 떠오른 된장, 청국장 등은 곰팡이가 발효과정을 통해 만들어주는 작품이다. 발효된 식품은 원재료보다 소화가 잘 된다. 미생물이 이미 반쯤 소화를 시켜줬기 때문이다. 막걸리, 포도주 등 대부분의 술은 효모나 누룩곰팡이가 곡물이나 과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맛있는 부산물이다. 콩의 원료인 청국장을 청국균으로 띄우듯 막걸리나 약주는 황국균을 쓴다.
황국균은 거미줄곰팡이와 누룩곰팡이가 대표적이다. 거미줄곰팡이는 발효산물로 유기산을 만들기 때문에 신맛이 나는 대신 잡균을 살균하는 효과가 있다.
또 아침마다 빵집을 지나갈 때 풍기는 고소한 냄새를 떠올려보라. 빵을 만들 때도, 빵과 찰떡궁합인 치즈를 만들 때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곰팡이다.
또 자연식품인 버섯은 맛있고 약효도 있어 전 세계인이 두루두루 좋아한다. 이 역시 곰팡이의 일종이다.
그밖에 노화를 막고 성인병을 예방하며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한다는 황토방도 마찬가지다. 황토 속에 들어 있는 곰팡이는 활성 효모 작용을 이용한 것이다.
PART 4. 곰팡이와 지혜롭게~ 공생하는 법
지구상에서 미생물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다. 우리는 수많은 세균과 곰팡이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죽어 흙이 된 후까지도 곰팡이와는 떨어질 수 없다. 어떤 수단으로도 곰팡이는 완전히 퇴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선 곰팡이 대처법으로 알코올로 살균하고, 곰팡이 제거용 스프레이로 곰팡이를 제거한 후 방부제를 바르라는 충고가 쏟아진다. 물론 제거제를 뿌리면 금세 깨끗해진다. 그러나 닷새쯤 후에 부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도 제거제를 뿌리기 전보다 더 맹렬한 속도로 번식한다. 그 이유는 제거제가 곰팡이뿐 아니라 다른 균까지도 다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곰팡이는 다른 균이 전혀 없을 때 더 번식하기 쉽다. 게다가 제거제에 내성을 갖는 경우도 있다.
곰팡이가 좋아하는 환경은 햇빛이 들지 않고 습기가 있으며 온도가 높은 곳이다. 실내 곰팡이 대책은 통풍이 관건이다.
알루미늄 새시나 유리창, 벽에 생긴 습기가 곰팡이의 큰 원인이다. 이를 최대한 막으려면 장마철 유리와 새시 틀을 마른 수건으로 잘 닦아서 조금이라도 습기를 줄여야 한다. 통풍을 위해 실내의 문도 열어두는 것이 좋다.
전재현 과장은 “곰팡이와 공생하면서 건강에 이롭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면역력을 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운동과 규칙적인 식이로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고 덧붙인다.
《TIP. 곰팡이로부터 가족 건강 지키는 노하우》
● 오래된 벽지는 반드시 교체해준다.
● 카펫은 수시로 들춰 공기가 통하게 하고 자주 청소를 한다.
● 스프레이 형식의 곰팡이 제거제는 임신부나 어린이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는 만큼 신중히 사용한다.
● 장마철엔 2~3일에 한 번씩 보일러를 가동해 습기를 제거한다.
●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선풍기 등을 사용해 온도를 낮춰준다.
● 가족 중 무좀환자가 있으면 발 매트나 발수건, 신발 등을 함께 쓰지 않는다.
● 꽉 죄고 통풍이 안 되는 소재의 겉옷과 속옷을 피한다.
전재현 과장은 전직 분당 서울대병원과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감염내과 진료교수. 현재 동남권원자력의학원 감염내과 과장으로 진료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