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움심리상담연구소 진명자 소장】
시월드. 생소한 말일 수도 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이 등 시댁식구를 칭하는 신조어다. 대한민국에서 며느리와 시댁과의 관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이 생기게 된 배경도 짐작이 갈 것이다.
아내에게 시월드가 있다면 남편에게는 처월드가 있다. 이제 예전처럼 딸에게 ‘나 죽었소.’ 하고 살라는 부모는 없다. 애지중지 키운 딸이 조금이라도 힘들다 싶으면 거침없이 사위에게 쓴소리를 한다. 물론 자식이 잘못되길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편한 행동과 상처 되는 말을 하는 배우자의 부모님 때문에 부부싸움이 나고 심지어는 이혼에 이르기도 한다. 정녕 시월드와 처월드는 정복할 수 없는 세상일까?
CASE 1. “어머니, 저에게도 사생활이 있어요!”
서울 명일동에 사는 결혼 1년 차 주부 송미영 씨는 요새 드라마 <넝쿨째 굴러 온 당신>을 보는 재미로 산다. 극중 며느리 역할인 차윤희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어쩜 그렇게 시어머니, 시누이들과 힘겨루기를 잘하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실 그녀는 요즘 시어머니 때문에 고민이다. 결혼하자마자 아파트 번호키 번호를 물어보시더니 예고도 없이 불쑥 오신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도 집에 오셨다는 시어머니의 전화에 부랴부랴 집에 오기 일쑤다. 지난주에는 샤워하고 나왔는데 시어머니가 소파에 앉아 계셔서 귀신을 본 것처럼 놀랐다. 남편인 줄 알면서도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만 들리면 시어머니일까 봐 조마조마하다. 이러다가 명대로 못 살 것 같다.
☞ 똑 소리 나는 시월드 대처법
이럴 경우에는 시어머니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물론 너무 솔직하게 “어머님 오시면 불편하니까 이제 가끔 오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면 시어머니 기분은 엉망일 것이다.
“어머니, 저희 사는 거 많이 궁금하시죠? 보러 오시는 건 좋은데 제가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주로 밖에서 볼일을 보거든요. 그때는 피해서 오시면 안 될까요? 다른 날 오시면 제가 재미있게 놀아 드릴게요.”라고 말하는 건 어떨까?
움심리상담연구소 진명자 소장은 “시어머니 방문 자체가 싫다고 하면 서로 감정만 상하게 된다.”며 “대신 피해줬으면 하는 요일, 시간대 등 조건을 정해 부드럽고 공손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혹시 이래도 섭섭해 하실까봐 걱정된다면 거울을 보고 연습해보자. 남편 앞에서 시어머니에게 할 말을 미리 연습해 보는 것도 좋다. “어머니가 예고도 없이 자꾸 오셔서 이런 말을 거울 보고 연습했어. 기분 상하시지 않을지 한 번만 들어줘.”라고 남편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무리 무심한 남편이라도 이렇게 노력하는 아내의 편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CASE 2. “장모님, 저도 돈 잘 벌고 싶어요!”
경기도 안성에 사는 이정배 씨는 처가에 가는 게 싫다. 정확히 말하면 서울 처가에 갈 때마다 자존심이 상한다. 장모님은 결혼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자네가 돈이 없어서 서울에 집을 못 구하고 안성에 집을 얻어 딸 얼굴을 자주 볼 수 없다.”고 대놓고 타박하신다.
아내가 아플 때는 전화를 걸어 “이 서방이 빨리 돈을 많이 벌어야 우리 송희가 직장에 안 나가고 편히 쉴 텐데….”라고 말씀하셔서 천하에 능력 없는 남편을 만든다. 진짜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 똑 소리 나는 처월드 대처법
장모님은 안타까워서 한 말일 수 있지만 남편 입장에서는 충분히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 이때는 아내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다. “걱정되셔서 하시는 말씀인 줄 알지만 장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때마다 자존심이 상했다.”고 말해본다. 그러면 아내가 “아니 뭘 그런 것 가지고 자존심이 상해?”라고 이해를 못해 줄 수 있다.
진명자 소장은 “‘그렇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자존심이 상하는지 모르겠어. 당신이 장모님하고 오래 살았으니까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을 좀 해줄래?’라고 아내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장모님에게 대신 전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엄마, 그 사람은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자존심이 상한대요. 저한테 어떻게 해야 할지 묻더라고요. 엄마가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라고 걱정스럽게 말하는 것이 좋다. 딸과 사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데 일부러 걱정거리를 제공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CASE 3. “어머니 잔소리는 이제 저절로 스팸처리 돼요”
전북 전주에 사는 주부 김정민 씨는 득도의 경지에 올랐다. 이제 시어머니의 잔소리가 한 귀로 흘러나가는 것에서 나아가 스팸 메시지처럼 귀까지 오기 전에 튕겨 나간다.
도무지 시어머니의 잔소리는 그칠 줄 모른다. “설거지는 제때 해야 한다.” “화장실 청소는 3일에 한 번씩은 해라.” “냉장고 문을 잘 닫아라.” “지금 딸기는 끝물이니 토마토를 사 먹어라.”등 하나부터 열까지 잔소리를 하신다. 같은 잔소리를 반복하시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는데 아이 양육법까지 간섭하신 후부터는 대답도 하기 싫다. 정말 시어머니의 잔소리가 지긋지긋하다.
☞ 똑 소리 나는 시월드 대처법
이럴 때는 ‘맞장구 전법’이 효과가 있다. 잔소리하는 시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보자. 진명자 소장은 “자신의 말을 안 듣고 있다고 느끼거나 말을 해도 바뀌지 않았다고 느끼면 잔소리를 더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어머니, 제가 살림을 못해서 많이 답답하시죠? 저도 어머니 말씀대로 해보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라고 말해 보는 것은 어떨까?
‘네.’라는 짧은 대답으로 그 상황을 모면하는 것보다 시어머니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반응을 보이면 잔소리를 덜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잔소리를 듣고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면 간섭을 덜 받을 수 있다.
CASE 4. “장모님, 저희 진짜 독립하면 안 될까요?”
서울 서초동에 사는 홍영재 씨는 장모님이 이해가 안 된다. 사위를 자식처럼 생각하시는 것은 고맙다. 아내가 외동딸이니까 자식 사랑이 남다르다고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한계에 부딪혔다.
홍 씨는 집을 처가 가까이 얻는 것부터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결혼하고 나서는 저녁을 일주일에 두세 번씩 처가에서 먹었다. 갈 때마다 맛있는 것을 해주셔서 마냥 좋았다. 그런데 장모님이 아이를 봐주신 후로는 매일 저녁 처가로 퇴근한다. 사실 홍 씨는 집에서 편하게 TV도 보고 싶고, 아내와 아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아내와 와인 한 잔 하면서 영화를 본 지도 언제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장모님은 저녁을 먹고 나면 과일을 내오시고, 과일을 먹고 나면 차를 내오셔서 도저히 집에 갈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드신다. 홍 씨가 내일은 못 오겠다고 하면 “우리 딸 저녁 하기 힘드니까 늦더라도 내가 차려줄 테니 집으로 오게.”라고 마음 약해지는 말씀을 하신다. 사위도 아들인데 잘해 드려야지 하면서도 요즘은 이런 상황에 울화통이 터진다.
똑 소리 나는 처월드 대처법
진명자 소장은 “많은 부부 갈등이 원래 가족과의 거리 조절을 잘 못해서 생긴다.”고 지적한다. 꼭 부모님께 의존하고 종속되어야 효도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는 달라졌다.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완전하게 독립을 해야 부부만의 가정을 이룰 수 있다. 불편하지만 자식 된 도리 때문에 꾹꾹 참고 불편한 처갓집에 가야 한다면 그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까?
진명자 소장은 “당장은 참고 처갓집에 갈 수 있을지 몰라도 부부싸움을 예약한 셈”이라고 말한다. 꾹꾹 눌러 놓은 화를 결국 아내에게 폭발하기 쉽다는 것이다.
꼭 멋지고 착한 100점짜리 사위가 되겠다는 생각은 접어둘 필요가 있다. 죄책감도 느낄 필요 없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면 앞으로는 장모님이 도와주지 않아도 남편 스스로 아내와 아이를 잘 챙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장모님, 이번 주말은 집에서 아내와 함께 요리도 하고 영화 구경도 가려고요. 대신 다음 주말에는 어머님 좋아하시는 매운탕 재료 사서 놀러 가겠습니다.”라는 식으로 말을 해보자. 굳이 자신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부부가 잘사는 모습을 본다면 자연스럽게 딸과 사위를 독립시킬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낮게, 천천히, 눈을 보면서!
진명자 소장은 “시댁이나 처갓집과 갈등이 생긴다면 불편하고 어려워도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혼자 꽁하고 있는다고 저절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물론 가족이라고 해도 시부모님과 장인어른, 장모님에게 안 좋은 얘기를 꺼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는 3가지를 기억하자. 진명자 소장은 “목소리는 낮게, 말은 천천히, 지그시 눈을 보면서 말하면 진심이 통하기 쉽다.”고 조언한다.
진명자 소장은 상담심리 박사이며, 한국 상담 및 심리치료학회 부부 및 가족상담 전문가와 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회 부부 및 가족상담 전문가다. 인천 YMCA 가족해체예방센터 실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