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조아름 기자】
【도움말 |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신경정신과 윤대현 교수】
기업의 영업부장 오열정 씨(42세)는 매일 매일이 바쁘다. 주변에서 성실하다는 평을 듣는 그는 요즘 부쩍 마음이 허하다. 바쁘고 반복적인 일상이 계속 되면서 몸은 버틸 만하지만, 가끔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의구심이 든다. 쉬는 날에는 ‘오늘은 푹 쉬자.’ 마음먹지만, 머릿속은 해야 할 일로 더욱 더 복잡해지고 불안해진다. 최근에는 없던 편두통까지 생겼다. “내가 대체 왜 이런 거야?”라고 외치는 그, 바로 ‘뇌 휴식’이 필요한 사람이다.
빠른 변화에 헉헉대는 뇌, 휴식이 절실~
불과 70~80년대만 해도 지금과 같은 무수히 많은 정보가 쏟아지지 않았다. 물론 텔레비전, 라디오 같은 매체들은 있었지만 지금은 거기에 더해 스마트폰과 인터넷 등으로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찾고 보고 있다. 가령 지하철을 타거나 잠시의 여유가 생겼을 때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면 공감할 것이다.
그저 정보만 취득하고 곧바로 다른 정보를 찾아 이동한다. 또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굳이 기억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다양한 기기에 저장해 놓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속도가 빠른 요즘 시대에 맞춰 살아가다보니 뇌의 적응속도는 그것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헉헉댄다. 그러니 뇌가 피로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신경정신과 윤대현 교수는 “사실 전체 뇌가 피로하다기보다는 해마 중심의 일부분이 피로한 것”이라고 말한다. 윤대현 교수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대부분이 생각하고 따지는 ‘이성의 뇌’이고, 해마 중심의 일부분이 감정에 영향을 주는 이른바 ‘감성의 뇌’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을 다쳐 이 해마가 영향을 받게 되면 정신적으로 피로해지고 스트레스가 생긴다. 특히 해마는 기억력, 집중력, 자존감 등과도 연결된다.
실제로 감성의 뇌가 피로해지면서 나타나는 첫 단계는 불면, 집중력 저하, 짜증이다. 그렇다면 바로 해마, 즉 ‘감성의 뇌’를 쉬게 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윤대현 교수는 “단순히 휴식을 취하고 좋은 것을 먹는 것만으로는 ‘감성의 뇌’를 쉬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일례로 어떤 고민거리가 생겼을 때, 몸은 푹 쉬더라도 머릿속에는 그 고민거리로 가득 찬 경우를 들 수 있다. 윤대현 교수는 “감성의 뇌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우리의 뇌가 피곤하지 않다.”고 조언한다. 그 노하우를 소개한다.
관계 속 뇌 휴식 : 하루에 30분, 친구와 이야기하라
자존감(자아존중감)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을 말한다. 과연 본인 스스로에게 ‘나는 근사한가?’ 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대부분 “나는 뭐….”라며 얼버무리지 않을까?
인정하고 인정받는 행위는 자존감을 높여준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사람은 누굴까?
윤대현 교수는 “가장 이상적인 대상이 바로 친구 혹은 연인”이라고 말한다. 감성의 뇌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랑’으로, 우정 역시 사랑이 변형된 하나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즐겁고 편한 상대와 교감하고 공감할 때, 우리 뇌는 비로소 휴식을 얻는다. 퇴근 후 친구와 맥주 한 잔하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 항상 든든한 내 편인 배우자와 그날 있었던 소소한 일상 이야기하기 등은 메말라 있던 감성의 뇌에 단비와 같은 존재다.
윤대현 교수는 “자녀들과도 친구가 돼라.”고 조언한다. 잔소리와 참견보다는 ‘잘되는 것도 못되는 것도 결국 너의 문제’라고 적당히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뇌를 쉬게 한다.
마음 속 뇌 휴식 : 하루에 30분, 걱정을 정리하라
고민거리가 생기거나 걱정거리가 있을 때 사람들은 이런 다짐을 한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항상 잘 될 거라고 믿자.’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윤대현 교수는 “적당한 긍정은 좋지만, 지나친 긍정은 회피반응이 될 수 있다.”면서 “걱정되는 것을 지나치게 자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걱정은 미연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건강한 정신 활동이기 때문이다. 물론 시도 때도 없이 무엇인가를 걱정하는 것은 금물이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다. 이는 억지 긍정으로 걱정거리를 덮어두는 행동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머릿속에 두개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동시에 틀어놓은 것과도 비슷하다.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충분히 고민하고, 가능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그것이 걱정을 정리하는 법이다. 이때 주변의 좋은 친구에게 위로를 받는 것도 뇌의 피로를 덜어준다.
운동 속 뇌 휴식 : 하루에 30분, 사색하며 걸어라
윤대현 교수는 뇌를 쉬게 할 수 있는 운동법으로 ‘사색하며 걷기’를 꼽는다. ‘내일 ~을 해야 하는데….’ 식의 걱정이나 현실적인 고민보다는 ‘오늘 날씨 너무 좋다. 파란 하늘을 보니 행복하네.’ 식의 사색을 하며 걸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감성의 뇌는 자연스럽게 휴식을 얻고, 피로를 푼다.
이때만큼은 손에서 떨어질 날 없던 휴대폰과도 잠시 안녕을 고하고, ‘오늘은 몇 분을 걸어야지.’라는 식의 강박에서도 벗어나 자유롭게 걸어보자. 오로지 나만을 위한 사색의 시간으로 채우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뇌를 쉬게 하며, 더 나아가서는 치매도 예방할 수 있다.
윤대현 교수는 “너무 열심히 사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항상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적응해야만 되는 우리의 뇌는 많이 지쳐 있다. 이러한 뇌를 쉬게 하기 위해서 이것만은 꼭 지키자. 윤대현 교수는 “평소 우리의 삶에 여유를 갖고, 이성의 뇌와 감성의 뇌가 9:1, 10:0이 아닌 적어도 7:3의 비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몸과 마음은 모두 다 연결되어 있다. 행복하면 건강하고 장수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무수한 자기계발서가 쏟아지고 다양한 정보들이 우리 뇌에 끊임없이 들어오지만, 이것 자체도 스트레스가 되는 현실. 이제는 지친 우리의 뇌, 즉 감성의 뇌를 조금은 쉬게 해주자.
윤대현 교수는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에서 멘탈피트니스 클리닉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중앙일보에서 ‘윤대현의 마음아 아프지 마’ 칼럼을 연재 중이며, KBS 라디오 <유영석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통해 고장 난 청취자들의 마음을 수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