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환자는 내 몸 주치의가 되어야 합니다!”
적잖이 당황했다. 초로의 신사가 대뜸 자신의 명함을 내밀더니 기자의 명함을 한 장 달라고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기자가 만난 의사의 환자라고 했다. 명함을 받아든 신사는 우선 지금은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하니 나중에 연락을 달라고 했다. 건국대병원 의학전문대학원 최수봉 교수의 인터뷰가 끝난 후 눈 깜짝할 사이 생긴 일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 신사였다. 자신은 최수봉 교수 때문에 새로운 인생을 산다고 했다. 이 사실을 꼭 기자에게 전해주고 싶었다며 전화를 끊었다. 시키지 않아도 의사 칭찬을 하는 환자라…. 이런 따뜻한 상황을 만든 장본인, 최수봉 교수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당뇨 치료를 보는 남과 다른 눈
국민병, 침묵의 살인자,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병…. 당뇨병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만큼 당뇨병은 많은 사람이 앓고 있고, 우리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 당뇨병에 대한 남다른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는 의사가 있다. 인슐린펌프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건국대병원 의학전문대학원 최수봉 교수다.
청년 의사 시절 그는 당뇨 합병증으로 시달리는 환자를 보며 남몰래 눈시울을 붉혔다. 당뇨병은 왜 완치가 안 되는지 안타까웠다. 그리고 1979년, 당뇨병 치료법 연구에 매달린 그는 약을 먹고 인슐린 주사를 맞는 기존 치료법과 다른 방법을 내놓는다. 그것이 인슐린펌프다.
“당뇨병 환자는 정상인보다 췌장에서 인슐린이 덜 분비됩니다. 인슐린은 우리 몸속에 들어온 포도당을 온몸의 세포에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호르몬입니다. 인슐린이 부족하면 포도당이 세포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핏속에 남게 돼 혈액순환이 잘 안 되게 됩니다. 그래서 모세혈관이 막히고, 신경세포가 죽어 온몸에 합병증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이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인슐린을 보충해주면 우리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본다. 버튼만 누르면 이 인슐린을 몸속으로 넣어주는 휴대용 기계가 그가 개발한 인슐린펌프다.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분비 패턴을 파악해서 인슐린을 공급하며, 기계에 달린 미세 침을 배에 꽂아서 연결한다.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는 서류가방만 했던 것이 지금은 삐삐 크기로 작아졌다. ?
인슐린펌프로 당뇨병 완치에 도전!
최수봉 교수는 당뇨병 치료의 핵심은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의 기능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여긴다. 그는 지난 2010년 유럽당뇨병학회와 대한당뇨병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인슐린펌프 치료로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이 회복되고, 당화혈색소도 정상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 그가 개발한 인슐린펌프는 미국 FDA 승인과 유럽 CE 인증을 받고, 세계 6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인슐린펌프를 달면 혈당 조절이 정상이 되어 합병증 예방과 치료도 가능해집니다. 췌장세포가 덜 망가진 당뇨병 초기에 치료를 받으면 완치될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집니다.”
그래서일까? 그는 당뇨병 환자에게 합병증에 대한 경고보다는 치료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권위를 벗어던지고 친구처럼, 가족처럼 환자에게 다가간다.
또 언제나 환자가 우선이다. 실제로 인터뷰 도중 아직 진료를 못 받은 환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그는 양해를 구하고 환자 진료부터 봤다. 한눈에 봐도 너무 말라 보였던 환자는 그에게 치료를 받은 이후 몸무게가 늘고 몸이 한결 좋아졌다고 웃었다.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는 그의 말에 환자는 미소를 띠며 진료실을 나섰다.
당뇨병 환자, 스스로 의사 되어야
당뇨병 환자에게 절망이 아닌 희망을 주는 최수봉 교수는 환자 스스로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남을 고치는 의사가 아닌 나를 고치는 의사를 말한다. 그래서 입원 환자, 외래 환자 할 것 없이 그의 환자라면 당뇨병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당뇨병 환자는 당뇨병이 왜 생기는지, 자신에게 유리한 치료법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환자가 의사처럼 병에 대해서 잘 알아야 치료도 잘 받고,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는 당뇨병에 걸리지 않는 비결로 가장 먼저 ‘스트레스 안 받기’를 꼽는다. 당뇨병을 부르는 나쁜 습관 즉 폭음, 폭식, 흡연 등도 결국 스트레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식후 운동 생활화하세요~
언젠가 감기에 한 번 걸렸더니 주변 사람이 모두 놀랄 정도로 건강한 체력을 자랑하는 최수봉 교수. 그가 일할 때 빼고 가장 바쁜 순간은 밥을 먹은 후다. 환자들에게 식후 운동을 하라고 당부하는 그답게 식후 운동은 오래전부터 일상이 됐다.?
“밥을 먹을 때 한꺼번에 우리 몸에 포도당이 들어오는데 대부분의 포도당을 저장시키는 곳이 근육입니다. 밥을 먹은 후에 운동하면 근육에 피가 잘 돌아서 포도당 저장이 잘 됩니다. 그래서 식후 운동이 효과적이라는 거죠.”
그는 아침을 먹은 후, 이마에 땀이 날 때까지 러닝머신 위에서 빨리 걷는다. 병원에서 점심을 먹은 후면 지하에서 지상까지 계단 오르내리기를 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도 단 5분이라도 빨리 걷기를 한다. 이 밖에도 그의 특기이자 건강비결은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웃기면 박장대소를 해서 보는 사람까지 웃게 하는 그의 꿈은 ‘당뇨병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의사 최수봉이 해야 하는 일로 여기며 더 쉽게, 더 빨리 당뇨병을 완치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다.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당뇨병 치료만을 위해 살아온 그의 또 다른 도전이 기대된다.
<TIP. ?당뇨 명의 최수봉 교수의 ?당뇨 예방 건강 5계명>
1.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자~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는 당뇨병의 근원도 된다.
2. 지나친 운동 말고 적절한 운동을~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운동을 지나치게 하면 에너지 소비가 많아져 몸은 더 약해진다.
3. 세끼를 잘 챙겨 먹자~
끼니를 거르는 것은 과식·폭식의 원인이 된다. 음식을 골고루 먹고, 규칙적으로 먹는 것이 좋다.
4. 스트레스를 술이나 담배로 풀지 말자~
스트레스 해소는 몸을 살리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몸을 망치는 과음이나 담배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5. 잘 쉬고, 잘 자자~
쉬지 않고 몸을 쓰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적당한 휴식은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