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조아름 기자】
“모든 건강은 채식으로 통합니다”
구제역 사태 이후 채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각종 캠페인 운동은 물론 지방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을 ‘채식의 날’로 정해 아이들에게 채식 식단을 제공한다. 골고루 먹는 것이 건강 유지의 비결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고기를 먹지 말라니, 과연 채식만 하는 것이 건강에 좋을까?
그런데 여기 채식을 하는 의사들이 있다. 이들은 의료현장에서도 환자들에게 채식을 권한다. 바로 베지닥터(www.vegedoctor.com)다. 베지닥터는 채식을 실천하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들이 회원으로 활동하며 ‘채식을 기본으로 한 식단이 우리의 건강을 지킨다.’는 사실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는 베지닥터 유영재 공동대표(59세)를 만나, 그의 채식 예찬론을 들어보았다.?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채식
현재 치과의사이자 한양여대 치위생과 교수로 재직 중인 유영재 대표는 인터뷰에서 대뜸 “얼떨떨하고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채식을 시작한 17년 전만 해도 채식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데다, 이것저것 가려먹는 그를 가족들은 별나게 봤다. 그러니 외식 자리에서는 ‘왕따’나 다름없었을 정도. 그런데 점점 많은 사람들이 ‘채식’에 관심을 가지고 조언을 구하니 그의 입장에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격세지감을 느낀다니,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17년째 비건(vegan) 채식주의자인 그는 고기와 생선, 유제품과 달걀까지도 먹지 않는 완전한 채식주의자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살까 싶지만, 그에게 채식은 별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일상이다.
그가 채식을 하게 된 계기는 ‘건강’ 때문이었다. 20~30대에 술과 담배, 고기를 즐기며 체중은 90kg에 달했던 그는 과음ㆍ과식으로 지방간, 고지혈증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건강을 위해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지인이 채식을 권해 시작했다. 그런데 채식 2주 만에 7~8kg이 빠지면서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고, 채식 두 달 후 다시 받은 건강검진 결과는 놀라웠다.
“아직도 그때 검진 결과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 이상 건강할 순 없습니다. 지금의 이 상태를 유지하세요.’ 그걸 보고 제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 후로 쭉 채식을 해오며, 지인들에게도 채식을 권하고 있습니다.”
혈관질환과 암은 육식이 몰고 온 재앙
처제의 유방암과 숙부의 폐암을 지켜본 그는 암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암은 흔한 병이 아니었다. 그는 그 이유를 식습관의 변화에서 꼽았다. 60~70년대 일반 가정집 밥상에는 그야말로 풀의 에너지가 넘쳤다. 따져보면 우리가 고기를 흔하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우리나라가 한창 경제발전을 이루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려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 뇌경색, 암 등은 육식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우리 삶 깊숙이 침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베지닥터 모임을 통해 서로간의 체험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채식을 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채소의 섬유소가 혈관에 낀 기름들을 녹이고, 이로 인해 혈액순환도 원활해집니다. 또 소화기관도 부담을 덜 느끼고 피로감이 사라지니, 몸이 한결 건강해집니다. 그렇게 직접 몸으로 느끼니 다들 열렬히 채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전하더군요.”
그러나 대부분 채식이라고 하면 ‘단백질 부족’을 우려한다. 특히나 성장기 자녀를 둔 부모들의 경우 키 때문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해 그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우리는 지나친 영양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많이들 단백질 섭취를 염려하는데, 성장기 어린이라고 하더라도 현미나 콩을 통해 양질의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습니다. 저희 베지닥터 회원분들 중 아이가 셋인 원장님이 있습니다. 가족이 모두 1992년부터 채식을 했는데, 오히려 채식을 제일 빨리 시작한 막내 아이가 제일 건강합니다. 여자아이인데도 키가 171cm인데다가 지금 배드민턴 선수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기자 역시 ‘채식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30년 넘게 살아오며 길들여진 입맛이 과연 쉽게 바뀔 수 있을까? 채식을 하고 싶지만,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해 채식을 실천하는 방법을 물어 보았다.
“담배도 단칼에 끊는 사람의 금연 성공률이 더 높듯이, 고기나 생선, 달걀 등도 단번에 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이제껏 형성된 식습관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채식을 하더라도 고기가 아쉬울 때가 분명 옵니다. 그럴 경우 콩고기나 밀고기 같은 대체육을 권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 채식하기, 한 달에 열흘 채식하기처럼 서서히 기간을 늘려가는 것을 권한다. 처음부터 부담감만 가지고 무작정 시작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또 주변 사람들에게 채식하는 것을 알려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특히 채식을 하겠다는 결심이 섰으면 채식과 관련하여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고 공부하는 것이 좋다. 스스로 채식의 이로움을 공부하고 채식에 대한 생각이 정립된다면, 식사를 할 때도 의식적으로 고기나 생선, 달걀 등은 피하게 된다.
남의 살 씹으면 내 살 씹혀-
유영재 대표의 채식에는 생명 존중과 환경 보호 정신도 담겨 있다. 단순히 건강만을 위해 채식을 권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몇 해 전 한 스님에게서 뼈있는 말을 들었다. “이봐, 유 교수. 남의 살 씹으면 언젠가 내 살도 씹혀.” 당시 이 말은 그에게 꽤나 인상 깊었단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육식을 위해 다른 생명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것 자체가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잔인하게 도축당한 수많은 돼지들과 소, 닭들의 몸이 과연 인간들에게 이로워봤자 얼마나 이롭겠는가?
또한 가축 사육에서 나오는 메탄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기도 하다. 그의 딸이 채식으로 돌아서게 된 이유는 아버지의 채식 때문이 아니라, 바로 환경 때문이었다.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아름다운 섬 몰디브가 지구온난화로 가라앉고 있다는 것을 안 후 그의 딸은 채식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 내내 다양한 사례들을 들어가며 건강을 위해, 지구를 위해, 이 땅의 생명을 위해 채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바른 식습관 정립 운동 펼쳐 나갈 터
그는 앞으로 베지닥터를 통해 국민 건강을 위한 채식 운동, 올바른 식습관 정립 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또한 채식이 왜 좋은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올바른 채식을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에 힘쓸 예정이다.
“17년을 채식주의자로 살아오면서 채식에 대한 확신은 점점 공고해졌습니다. 어렸을 적 우리들의 밥상은 소박하지만 풍성했습니다. 갖은 나물과 채소들, 그리고 잡곡밥. 요즘 건강식이라고 부르는 밥상이 바로 과거 우리들의 밥상이었습니다. 아프기 전에 채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것을 섭취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이 들어서는 은퇴해서 아내와 주말농장을 꾸리며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이렇게 나서게 되었다며 멋쩍게 웃는 그의 모습은 편안하면서도 순하다. 그가 그렇게 웃을 수 있는 비결 역시 ‘채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