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도움말 |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김숙기 원장】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한 초코과자 CM송 가사다. 그러나 현실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갓난아이와 종일 함께 있는 엄마라도 아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몰라서 당황하기 일쑤다. 내 뱃속에서 열 달간 키워 낳은 아이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말하지 않는 게 오히려 편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수도승이 하는 묵언수행처럼 집에서 묵언수행을 자처하는 남편과 아내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말만 하면 싸우니까 차라리 말 안 하고 사는 것이 편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한다. ‘배우자와는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말을 안 하고 살고 싶다.’고도 한다. 하지만 진짜 본심은?
누구보다 배우자와 알콩달콩 이야기하며 사는 그날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노래하는 새처럼 입을 쉬지 않게 만들어 줄 묵언부부 화해법을 소개한다.
입에 거미줄 친 아내 이야기
올해로 3년째다. 송정미 씨(가명)는 남편에게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이제 남편도 정미 씨의 이런 행동을 포기한 눈치다. 정미 씨는 원래 말이 없는 편이 아니었다. 남편은 모르겠지만 친정에 갈 때나 친구를 만날 때는 수다 떠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런데 남편에게만큼은 말을 하기 싫다.
불행의 시작은 신혼 초였다. 집들이를 마친 두 사람은 남은 술을 마시며 진실 게임을 했다. 결혼 전에 사귀던 남자가 있느냐는 말에 솔직하게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다 이해할 것 같던 남편은 결혼 전에 사귄 남자가 3명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 뒤부터는 자꾸 과거 이야기로 속을 뒤집었다. 남편이 사준 목걸이를 안 하고 나가면 “왜? 예전 그 남자들이 사준 거 보다 마음에 안 드나 보지?”라고 했다. 처음 가는 식당에서 메뉴를 거침없이 시키면 “그 남자들하고 여기 자주 왔나 보네.”라고 비꼬곤 했다. 결국 정미 씨는 폭발했고, 남편도 자신의 옹졸함을 인정했다.
그런데 그 뒤부터 평소에는 조용하다가 싸움만 했다 하면 그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냈다. 이런 일이 계속될수록 정미 씨는 남편을 믿을 수 없었다. 남편은 절대로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므로 속마음을 터놓을 수 없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말을 안 하고 사는 것이 익숙하다.
입에 자물쇠 채운 남편 이야기
성종헌 씨(가명)는 아내에게 복수 중이다. 말을 안 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아내는 종헌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한다. 거기에다 종헌 씨가 무슨 말만 하면 “그게 아니라…”, “아니야!”로 대답을 시작한다. 아내의 말은 무조건 옳고 종헌 씨의 말은 틀렸다는 식이다. 무슨 실수라도 하면 내가 “그럴 줄 알았다.”고 어김없이 혀를 찬다. 그러다 보니 말만 하면 싸움으로 번진다. 큰 소리로 누가 잘났는지 가리다 보면 자정이 훌쩍 넘어 잘 때가 많다.
그중에서 가장 싫은 것은 5살짜리 아들 앞에서도 면박을 주는 것이다. 한 번은 아들이 종헌 씨에게 아내와 똑같은 말투로 “아빠는 가만히 있어!”라고 말해서 기가 찬 적도 있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다. 말해봤자 본전도 못 찾아서 말하기 싫다. 그래서 아내에게 복수할 작정으로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답답해하는 아내를 보니 고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편하기도 하다. 할 수만 있다면 아내와의 결혼을 물리고 싶다.
우리 부부 말만 하면 싸움이 되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말을 하고 싶은 욕구는 있다.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고, 내 생각을 충분히 표현하고 싶다. 이런 욕구를 잠재우고 사는 것, 특히 사랑해서 결혼한 배우자와 말을 안 하고 사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말을 하지 않고 사는 배우자가 적지 않은 이유는 뭘까?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김숙기 원장은 “주로 말을 하면 싸움이 되거나 상처받으니까 아예 안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말을 하지 않는 남편 대부분은 “아내와 말을 해서 좋게 끝난 적이 없다.”고 토로한다. 아내가 계속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고,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오해하니까 화가 치민다.
말을 하지 않는 아내 대부분은 “남편에게 말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호소한다. 건성으로 들어서 여러 번 말해도 처음 듣는 말로 만들어 버린다. 내 말을 전혀 들을 준비가 안 된 남편 때문에 상처받으니까 말을 안 하는 것이다.
당장 말을 안 하면 싸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김숙기 원장은 “부부가 살다 보면 성격차이, 생각차이, 고부갈등, 성 문제 등 문제에 직면하게 되어 있는데, 이는 소통으로만 풀 수 있다.”고 말한다. 소통은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대화이다. 김숙기 원장은 “소통과 고통은 반비례한다.”며 “소통이 잘 되면 고통이 줄고, 소통이 안 되면 고통은 늘어난다.”고 말한다.
묵언부부 탈출법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갈등의 골이 깊다는 것이다. 그 깊은 골을 메우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어떻게,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침묵 대신 웃음이 넘치는 부부가 될 수 있다.
1. 그대로 멈춰서 들어라!
먼저 부부가 마주 앉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정한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서 배우자에게 느꼈던 서운한 감정을 털어놓는다. 듣는 사람은 끼어들지 말고 말이 끝날 때까지 집중해서 듣는다. 그리고 말이 끝나면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이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말해서 충분히 알아들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난 항상 일찍 못 들어오면 전화라도 달라고 말하는데 당신이 전화를 안 해서 화가 나. 내가 걱정하는 것에 비해 당신은 나에 대해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해.”
“당신이 나한테 항상 늦으면 전화하라고 했는데 내가 안 해서 화가 났구나. 또 내가 당신이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생각을 안 해서 자존심이 상했구나. 내가 잘 듣고 이해했어?”
“응, 잘 이해했어.”
이때 “잘 이해했어.”가 아닌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냐.”라고 말한다면 바로 이해할 때까지 다시 한다. 김숙기 원장은 “싸움이 잦아 말을 안 하는 상황까지 간 부부는 바로 ‘응, 이해했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제멋대로 해석하고, 상대방의 말을 집중해서 듣지 않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연습을 하다 보면 배우자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게 됐다는 신뢰가 싹튼다.
2. 감정을 나누는 연습을 한다
그 다음으로 할 것이 “그랬구나~”로 시작하는 감정을 나누는 연습이다.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말을 하면 된다.
“난 당신이 동서와 비교를 해서 기분이 상했어.”
“그랬구나. 내가 당신하고 동서를 비교해서 속상했구나.”
김숙기 원장은 “상대방의 말을 잘 알아듣는 훈련을 하고 감정을 나누기만 해도 대부분 부부사이가 좋아지고, 소통이 충분한 부부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내 입장을 이해하고, 내 감정을 공감해주는 것만으로 상처는 서서히 치유가 된다.
묵언부부는 없다! 상처 안 주고 안 받는 대화의 기술 3가지
1. 부부니까~ 무조건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우자가 모두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김숙기 원장은 “예를 들어 배우자에게 물을 갖다 달라고 요청할 권리는 있지만 그것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비난할 권리는 없다.”고 말한다. 대신 물을 떠 오지 않는 것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이야기할 수는 있다. 요청받은 사람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며, 물을 갖다 주면 고마워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해주면 고맙고, 아니면 서운하긴 하겠지만 상처받을 일은 아니다.
2. 반드시 화해 절차를 거쳐라!
싸웠다면 제대로 화해를 해야 가라앉은 기분이 나아져 평상심으로 돌아올 수 있다. 김숙기 원장은 “화해의 중요한 요건은 행동과 표현”이라며 “말로 하기 쑥스럽다면 메시지나 물건 등으로 확실히 화해의 신호를 보내고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왜 화가 났었는지, 왜 싸움으로 번지게 됐는지 각자 속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나눠야 한다. 진심으로 배우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이해 받았을 때 앙금 없는 완전한 화해가 가능하다.
3. 말할 때는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내라!
김숙기 원장은 “내가 아니라 네가 어떻다는 대화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비난으로 들리기 십상이다.”고 말한다. ‘네가 이렇다.’가 아닌 ‘이런 이유로 내가 이렇다.’고 나의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