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정희 기자】
【도움말 | 서울특별시 시립은평병원 민성길 병원장(정신과 전문의)】
“꼴도 보기 싫어.” “내 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 생각만 해도 싫은 사람, 얼굴만 봐도 미운 사람이 있는가? 어떤 이를 미워하다가 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깜짝 놀란 경험, 누구나 있을 것이다. 마음을 병들게 하고 남을 멍들게 하는 무기인 미움부터 심해지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증오까지. 지혜롭게 이기는 방법, 뭐가 있을까?
사람의 손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따뜻하게 포옹하고, 반갑게 마주잡는가 하면 거칠게 뿌리치고 딱딱하게 밀어내기도 한다. 말도 그렇다. 달콤하고 황홀한 미사여구가 있는가 하면 뾰족하고 예리한 날 선 말이 상처를 내기도 한다.
왜 그럴까? 그 열쇠는 바로 감정이다. 사랑하는 감정은 부드러운 풍요를 낳지만 미워하는 감정은 날카로운 황폐를 낳는다. 미움은 동정과 연민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포용력을 차단한다. 그것이 심해지면 증오가 된다. 증오의 힘은 ‘마음 속 핵폭탄’이라고 할 만큼 위력적이다. 작은 복수부터 끔찍한 테러까지. 전 세계에서 발생한 전쟁과 학살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병들게 만들었다. 그 속에 증오가 똬리를 틀고 있다.
서울특별시 시립은평병원 민성길 병원장은 “증오는 남을 죽일 수도 있고, 실패했을 때는 내가 죽을 수도 있는 무서운 불씨”라며 “인간이라면 누구나 노력으로 증오심을 극복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공격당할 때, 사랑받지 못할 때 미워해
파괴적인 두려운 감정 ‘미움’. 그 실체가 무엇일까? 정신분석학에서 “미움은 누군가가 갖고 있는 열등감을 자신과 공통점이 많은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민성길 병원장은 “미움은 분노의 인간적 표현”이라고 덧붙인다.
모든 동물은 일단 공격을 받으면 분노한다. 분노는 공격에 대한 제일 원초적인 반응이다. 왜 공격을 할까? 간단하다. 생존법칙이다. 살기 위해 공격하고 공격 받은 사람은 반격한다. 이때 상대방은 자신에게 적이 된다.
물론 이것은 폭넓게 봤을 때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다르다. 사람은 될 수 있는 한 세련되게 비판하려 애쓴다. 논리적이고 고상해 보여도 그 속에 미움과 질투가 깔린 경우가 많다. 물론 이렇게 세련되게 비판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표현하지 못하고 꾹 참을 때 생기는 감정이 열등감이다. 열등감이 지나치게 쌓이면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원초적으로 공격을 받았을 때 생명의 위협을 느껴 미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또 하나 다른 중요한 경우가 있다. 민성길 병원장은 “사람은 사랑받지 못하면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말한다.
자신이 무능하다는 생각에 빠지고 자기 방어 본능을 자극해 쉽게 화를 내게 된다. 사랑을 주었는데 받지 못할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낄 때 화가 나고 복수심이 움튼다. 미워하고 집착하다 피해를 주기도 한다. 이는 사람의 상상력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사랑과 미움이 한 끝 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체적ㆍ정신적으로 각종 질병 유발
미움이 깊어지면 우리 몸이 어떻게 반응할까? 민성길 병원장은 “미움은 한 마디로 몸과 마음을 전투태세로 만든다.”고 설명한다. 적의 공격에 대한 대응 방어로 몸이 각성상태에 돌입한다. 스트레스호르몬이 증가하고 긴장, 불안, 공포 상태가 계속된다. 이에 따라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근육이 긴장돼 각종 통증이 온다. 혈압과 혈당이 올라 몸을 피곤하게 만들고 고혈압과 당뇨병을 유발한다. 식이장애도 오는데 식욕감퇴로 살이 빠지거나 반대로 과식을 불러 비만해질 수 있다.
정신적으로는 자기혐오에 빠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스스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다. 삶의 즐거움을 앗아가 불면증부터 화병, 우울증, 불안장애와 피해의식을 돋워 자살에 이르게 한다. 우리 건강을 좀먹는 셈이다.
문제는 미움의 치명적 결과가 자신에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움은 더 큰 미움을 낳기 마련이다. 미움 받은 다른 사람이 쉽게 옮는다. 개인이 개인을 미워하다 집단이 되고, 그것이 결국 집단적 미움을 낳는다. 세대에 걸쳐 반복되면 핵무기 못지않은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인종 증오, 민족 증오, 종교 증오 등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동정심을 느낄 때는 면역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또 걱정을 줄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기분이 좋아질 뿐 아니라 심장병 발병 위험도 낮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미국 콜롬비아대 연구진은 최근 건강한 성인남녀 1739명을 대상으로 심장병 발병 위험이 긍정적 또는 부정적 정서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부정적인 사람은 긍정적인 사람보다 심근경색이나 협심증 등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이 22%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긍정적인 정서를 가지면 스트레스를 받아도 빨리 잊는다. 다시 떠올리는 시간도 짧아 심장에 미치는 생리적 위험도 줄어들게 된다.
미움을 극복하는 방법 5가지
미움을 품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민성길 병원장은 “우리 마음 속 짐승을 다스리는 해법 또한 우리 안에 있다.”고 충고한다. 민성길 병원장이 추천하는 미움 극복법은 다음과 같다.
? 미움이 싹틀 때 일단 멈춘다
표현하지 말고 왜 미운 마음이 들었는지 돌아보는 상황판단이 먼저다. 감정에 몰입해 미움을 날것 그대로 표출했다간 금세 후회하게 된다.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자신을 살핀다. 미운 상대방 잘못 이전에 내 잘못은 없는가, 잘못하는 상대가 나와 닮은 점은 무엇인가.
? 다른 사람과 대화한다
마음 속에 꾹꾹 눌러 담으면 병만 키우게 된다. 분노를 느끼거나 두려워하는 점을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감정이 줄어든다. 단순한 심정 토로를 넘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면 더 좋다.
? 꾸준히 운동을 한다
체력을 단련해 심폐기능을 높이면 덜 예민해진다. 몸이 건강하면 마음 건강도 따라온다.
? 유머감각을 기른다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세련된 문화적 방법이다. 웃으면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풀리고 혈액순환도 잘 된다. 때로는 미운 감정이 한 번에 눈 녹듯 사라지기도 한다.
? 도저히 용서가 안 되면 차라리 포기한다
신경 끄고 상관하지 않는다. 미운 상대와 만남을 피한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흐르면 대개 흥분도 가라앉는다. 상황과 가치관이 달라지기 때문에 세상에 얼마든지 더 큰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해와 용서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민성길 병원장은 대한임상독성학회 회장, 대한사회정신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공로상과 대한정신약물학회 공로상을 수상했고, 현재 연세대 정신의학 명예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