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조아름 기자】
【도움말 | 한양대 의대 생리학교실 정승준 교수】
한밤중 가족이 아픈데 약을 구할 수 없어 낭패를 본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연 약국을 찾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설사 찾았다 하더라도 꽤 먼곳인 경우가 많다. 갑작스럽게 아플 때를 대비해 가정상비약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가정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설사 가지고 있더라도 이미 너무 오래 되어 약의 유효기간이 지났거나, 설명서가 없어 효능도 모른 채 뒹굴고 있는 약은 아닌지? 용도별 각 상비약의 올바른 사용법을 알아보고, 우리 집 서랍장 속 상비약을 꼼꼼하게 확인해 보자.
가정상비약은 증상 완화용
가정상비약은 가정에서 응급조치나 병의 예방약으로 갖추어 놓는 약품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만 갖춰 놓더라도 위급한 상황에서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한양대 의대 생리학교실 정승준 교수는 “가정상비약은 잠깐의 증상 완화 목적으로 쓰는 것이 옳다.”며 “더러 며칠씩 그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아 병원을 방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우려한다.
가정상비약은 원칙적으로 습관성 증상과 같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증상에만 써야 한다. 긴장성 두통이나 생리통이 대표적인 예다. 해열제와 소화제, 상처치료 연고,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연고, 지사제 정도로 분류하고 각 부분에서 복합적인 효능을 가진 제제들보다 하나의 증상에 효과를 가지는 단일 제제를 갖추고 있는 것이 좋다. 긴장성 두통과 생리통 등에 복용하는 진통제도 포함시키면 좋다.
우리집에 비치해두면 좋은 가정상비약 매뉴얼
타이레놀 시럽(한국얀센)_ 영유아가 38.5℃ 이상 열이 날 때 쓴다. 타이레놀은 해열작용을 하는 가장 안전한 약물이다. 단 소염작용은 없으므로 초기 미열일 때 사용하는 게 좋다.
영유아가 있는 가정이라면 해열제는 필수다. 영아들은 쉽게 열이 오르는데, 열만 금방 떨어뜨려 주면 된다. 다만 구토 증상이 있거나 그 외 이상 증상이 보인다면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타이레놀 콜드정(10정·한국얀센)_ 기침을 억제하는 성분인 덱스트로메트로판이 함유돼 있어 심한 기침을 할 때 일시적으로 사용해볼 수 있다. 다만 기침이 지속될 경우에는 전문가와 상의해야 한다. 기침을 심하게 하거나 목이 아프면서 열이 날 때 쓴다.
부루펜 시럽(90㎖·삼일제약)_ 부루펜은 6개월 이후의 아이부터 먹이는 게 좋다. 해열 작용과 함께 염증을 가라앉혀 주는 효과가 있으므로 편도선이 부으면서 열이 나거나 중이염이 의심되는 발열에 사용한다.
서스펜 좌약(한미약품)_ 약을 삼키기 어려운 영유아의 경우 좌약을 투약하는 방법이 있다. 흡수가 빨라서 삼키는 약보다 효과가 빨리 나타난다. 갑자기 고열이 나는 비상시를 대비해 챙겨둔다.
백초시럽(100㎖·녹십자상아)_ 알약 형태의 소화제는 아이가 복용하기 힘들기 때문에 먹기 쉬운 시럽 형태의 소화제가 유용하다. 단 1세 미만이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소화제를 먹이지 않는다. 1세 이상 7세 미만의 아이가 배 아플 때 복용한다.
멕시롱(동아제약)_ 돔페리돈이라는 성분으로 위 운동을 촉진시켜 정체된 음식물을 소화시켜준다. 답답하고 트림이 나면서 음식이 정체되어 얹힌 느낌이 들 때 음용한다.
큐자임(10정·유한양행)_ 담즙이 들어 있어 소화액 분비를 활성화하기 때문에 과식에 좋다. 단 고혈압 등 심장질환이 있다면 조심하는 것이 좋다. 과식으로 가스가 차고 구역이나 구토감이 있을 때 복용한다.
후시딘(동화약품)_ 유아에게는 알레르기 반응이 있을 수 있으므로 약을 발라도 상처가 낫지 않고 붉은 부위가 커지면 사용을 중단한다.
복합 마데카솔(동국제약)_ 새살이 돋게 하는 성분이 있고, 항생제와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어 심한 가려움이 동반되는 상처 치유에 좋다. 단 딱지가 앉고 난 후 바르는 게 낫다.
로페라마이드 캡슐(삼남제약)_ 지사제의 경우 그 원인이 다양할 수 있고 대부분이 세균에 의한 것일 수 있으므로 되도록이면 사용을 금하는 것이 좋으나, 긴장에 의한 대장증후군의 경우는 항생제가 포함되지 않은 장운동 억제제로 효과를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반복된 설사는 탈수와 같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으니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벌레 물린 곳에 쓰는 약도 챙겨두는 것이 좋다. 물파스를 바르는 경우가 많은데, 상처 진정 효과가 없고 오히려 피부 발진이 생길 수 있다. 진정 성분과 부은 것을 가라앉혀 주는 항히스타민제가 배합된 전용 제제가 좋다.
또 렌즈를 끼거나 눈의 피로를 많이 느끼는 경우 가벼운 안구건조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눈이 피로하거나 뻑뻑하다고 느낄 때 한두 방울 넣을 수 있는 인공눈물도 유용하다. 다만 보관법과 유통기한에 유의해야 한다. 가벼운 찰과상을 대비해 파스를 보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상비약, 잘못 쓰면 오히려 독
이렇듯 가정에 구비해 놓을 수 있는 상비약들은 다양하지만, 오히려 특정 약들은 오남용을 피하기 위해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낫다. 정승준 교수는 “복합제제는 성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므로 진료 시 환자 몸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유추하기 어렵기 때문에 상비해두지 않는 것이 좋다.”며 “종합감기약이 대표적인 예”라고 말한다.
또한 피부 관련 질환은 증상이 비슷해 보여도 원인이 확연히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피부 연고 역시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균의 감염 가능성이 있을 경우, 병원에서 처방을 받고 항생제를 쓰는 것이 안전하며, 스테로이드제 연고인 세렌스톤지나 실버설파디아진 성분의 실마진 연고처럼 비교적 잘 알려진 연고라 하더라도 전문의와 상의한 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유통기한과 복용법 확인은 필수
제일 간과하기 쉬운 것이 바로 유통기한과 복용법이다.
우리나라 약들은 대부분 약 포장지가 아닌 약 겉봉지에 유통기한을 표기하고 있기 때문에 무심코 겉봉지를 버렸다간 유통기한도 모른 채,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지는 수가 있다. ‘약이 상하는 것도 아닌데, 별 일 있겠어.’라고 생각하고 먹다간 큰 코 다친다. 먹는 약들의 경우 유통기한이 지나면 그 효과가 사라지거나 반감되는 경우가 흔하다. 또 바르는 약들의 경우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면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복용법을 제대로 알고 숙지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정승준 교수는 “약 설명서에 나와 있는 사용법만 제대로 숙지하고 사용해도 충분하다.”며 “많은 사람들이 부작용 부분을 읽은 다음 약을 먹거나 바르는데, 부작용보다도 사용법을 한 번 더 보라.”고 권한다.
정승준 교수는 현재 한양대학교 의대 생리학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며, 경제정의실천연합 보건의료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