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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희망가] 췌장암에도 꿋꿋하게~ 이정복 씨 리얼스토리

2013년 11월 건강다이제스트 결실호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함부로 먹지 말고, 함부로 맞지 말고, 함부로 마시지 말고, 함부로 칼 대지 마세요”

이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도 유보하자. 한 생명을 담보로 한 사투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한사코 세상에 나서고 싶지 않다는 사람을 겨우겨우 설득해 만날 수 있었던 사람 이정복 씨(57세). 그는 췌장암 환우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는 사람이다. 췌장암 진단을 받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나무를 심고 텃밭을 가꾸며 살고 있는 주인공이다. 지금부터 이정복 씨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세계를 누비던 사람

지리산 둘레길의 처음과 끝이 완성되는 전북 남원시. 이곳에서 아름다운 지리산 둘레길을 배경으로 삼아 자연인으로 살고 있는 이정복 씨는 결코 평범한 인상은 아니다. 형형한 눈빛, 선 굵은 얼굴…. 왜 모두들 그를 일컬어 ‘산신령’이라 부르는지 짐작이 간다.

그런 그가 매력적인 목소리로 지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참 멋있게 살았구나.’였다.

세계를 누비며 제조 무역업에 종사했던 그는 누가 뭐래도 입지적인 인물이다. 글로벌 컴퍼니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오대양 육대주는 그의 삶의 주무대였다.?

그런 덕분이었을까? 자수성가한 사업가의 반열에도 올라섰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보이는 삶.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 사업은 번창했고, 명성도 얻었다.
그런데 누가 시샘이라도 한 걸까? 승승장구하던 그의 삶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2008년, 그의 나이 52세 때의 일이다.

극심한 스트레스의 위력?

2008년은 이정복 씨 인생에서 참 많은 것을 내려놓게 한 해였다. 욕심을 버리게 했고, 지나친 집착도 끊어내게 했다.?

너무도 가난하여 항상 학교를 제대로 못 다녔던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을 가고 영국 유학도 마쳤지만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자식들에게는 경제적으로 힘들게 하지 말자.’고.
그래서 더 열심히 일했고,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두 아들은 잘 자라주었고 공부도 잘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엇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캐나다를 거쳐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는데 세계적인 명문대학에 합격을 하고도 등록을 안 해버린 거예요.”?

아들과 날선 대립이 이어지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몇 개월을 보냈을 때 몸이 이상했다. 옆구리가 시큰거렸다. 칼로 베는 듯 사각사각 하는 시큰함이 느껴졌다. 트림이 자주 나왔다.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은 트림이 나오는 걸 느낄 수조차 없었다. 허리도 아프고 10kg 가까이 몸무게도 빠졌다.

“그래서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치료도 받아보았어요.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는 2009년 10월경의 일이다. 잇몸에 염증이 생겨 치아를 뽑았는데 지혈이 안 됐다. 6시간 동안 지혈이 되지 않았다.

“119에 전화를 걸었더니 한 시간만 더 기다려 보고 지혈이 안 되면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30분 정도 지나니 지혈에 되대요.”
나중에 알았다. 이 모든 증상이 췌장암의 전형적인 병변 증상이었던 것을. 이정복 씨는 2010년 2월, 충격적인 통보를 들어야 했다.

2010년 2월, 세상에 이런 일이…

이정복

2010년 2월, 이정복 씨가 향한 곳은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이었다. 종합검진을 한 번 받아볼 생각이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도 좀체 없어지지 않는 몸의 이상 증상 때문이었다.

그래서 찍어본 CT. 그러나 CT 결과를 알려주던 의사의 말에는 별 것 없었다. “운동이나 하세요.”였다.
이상했다. 아무 이상이 없다니…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상세히 살펴봐 달라고 부탁하고 중국으로 향했다. 그 당시 사업의 주무대가 중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직접 전화를 걸었더니 ‘지금 논의 중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더군요.”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싸늘한 냉기 한 줄. ‘뭔가 잘못됐구나.’ 직감했다. 과별로 검토를 한다 해도 2~3일이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3일 후, 그는 결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3일 후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병원 관계자가 하는 말이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그 부분은 위중한 곳이고, 수술을 하다가 잘못될 수도 있고, 선생님 사이즈도 있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운동만 하라고 해놓고 지금 와서 무슨 사이즈 타령이냐고.”

그 후의 일은 지금도 생각조차 하기 싫다. 어이없는 병원의 실수 앞에서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찍었던 CT의 판독서를 받아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

“CT 판독서를 보니까 췌장에 1.5cm 암이 있고, 양쪽 신장에 2개, 1개의 시스트(종양)가 있으며, 간의 #7 돔에 1cm 크기의 시스트(종양)가 있다고 표기돼 있었어요.”

당혹, 충격, 절망, 슬픔… 온갖 감정의 뒤엉킴 속에서 겨우 빠져나왔을 때 이정복 씨가 한 일은 전 세계 유명하다는 병원의 홈페이지와 문헌을 샅샅이 훑는 일이었다. 미국의 존스홉킨스병원, MD앤더슨 병원을 필두로 캐나다, 브라질, 멕시코,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스칸디나비아, 덴마크, 인도, 일본 그리고 한국의 메이저병원과 준종합병원까지 모두 훑었다.

카페란 카페도 모조리 가입했다. 암 카페, 식품카페, 기공·운동카페 등등 가리지 않았다. 병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카페는 모두 가입해 닥치는 대로 정보를 수집했다.

“그러자 어렴풋이 잡히는 게 있었어요. 손을 대면 안 되겠구나 하는 거였어요. 손을 대면 댈수록 빨리 가겠구나 하는 거였어요.”

그의 몸에는 이미 한 군데에만 암이 있는 게 아니었다. 몸 여기저기 곳곳에 있는 암. 세계 각국의 병원을 서핑하면서 알게 된 정보도 그에게 이런 결심을 하도록 만들었다. 암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 개복을 해봐야 비로소 그 실체를 알 수 있다는 것, CT상에 나와있는 암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였다. CT상에 나타나지 않은 자잘한 암세포가 무수히 있을 수도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결심했어요. 손을 대지는 말자고.”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2010년 3월30일, 생살여탈권을 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이정복 씨는 귀국길에 올랐다고 한다.

문병을 다니고 문상을 다니다?

너무도 병원에 실망이 컸던 이정복 씨는 귀국해서도 수술도 안 하고 조직검사도 안 했다. CT 와 PET를 찍어본 게 전부다.

“이미 제 상태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수술을 한다고 될 것도 아니었고 항암치료는 더더욱 아니었죠.”

그런 그가 병원 치료 대신 선택한 방법은 전국 각지를 돌며 암 걸린 사람들을 무조건 만나는 일이었다. 문병을 다니고 문상을 다니기 시작했다. 텐트와 침낭, 자질구레한 생활도구 일체를 차에 싣고 전국을 누비기 시작했다.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안 가본 데가 없었다. 암환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갔다.

그러면서 그는 그 사람들이 하는 걸 보았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사는지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 사람들 모두는 그에게 훌륭한 스승이 돼 주었다고 말한다.

“투병하다 돌아가신 분도 스승이었고, 투병 중인 사람도 훌륭한 스승이었어요. 문상을 갔을 때는 가족들의 표정을 보면서 죽으면 안 되겠다 생각했고, 문병을 갔을 때는 저보다 좋으면 왜 좋은지 그 사람의 생활과 상태를 보면서 멘토로 삼았으니까요.”

그렇게 전국을 누비며 하나하나 얻은 정보를 타산지석으로 삼고 역지사지를 했다는 이정복 씨. 그해 봄 어느 정도 투병의 밑그림이 그려졌을 때 지리산에 텐트를 치고 산속 생활을 시작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진리를 믿으며 지리산 품안에 자리를 잡았다.

공부하며, 터득하며, 깨달으며?

이정복

그로부터 3년 6개월이 지난 2013년 9월 현재, 이정복 씨는 암 환자들 사이에서는 유명인사로 통한다. 열렬한 지지와 응원을 한몸에 받는 사람이 됐다. 췌장암 진단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는 강단 있는 사람…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다.

그러나 지난 3년 6개월의 세월이 그에게 그리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건 치열한 사투를 벌여왔다.

“듣도 보도 못한 갖가지 증상이 하루가 멀다하고 나타났으니까요. 특히 병든 췌장은 구강과 항문에 직격탄이 된다는 걸 원없이 경험했어요.”

2010년 당시에는 혀에서 침도 제대로 안 나왔다. 설암 증상처럼 혀에 곰팡이가 하얗게 피고 혀돌기마저 모조리 없어져 혓바닥이 마치 시멘트 바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한다.

?2011년 들어서면서는 당뇨 합병증까지 나타나 다리의 감각을 전혀 느낄 수도 없게 됐다. 그것이 당뇨성 말초신경병증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안 사실이었다.

또 전날까지도 잘나오던 대변이 다음날 돌덩이가 되어버려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하는 사투가 5시간 이상 계속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구강 작열감이었다. 세상에 그런 통증이 있을 줄 몰랐다고 한다. 말도 잘 못했다. 말을 할 때 입안으로 바람이 들어가면 시리고 통증이 심해 말을 못했다. 물도 잘 못 마셨다.

“병원에 가봐도 병명조차 모르니 치료법이 있을 리 만무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TV를 보다가 치과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그 증상이 구강 작열감이라는 것, 그리고 통증 중 최고의 통증으로 손꼽히는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런 증상과 싸우면서도 문상을 다니고, 문병을 다니고, 해부학 공부를 했다는 이정복 씨.

그러면서 그는 자신만의 투병 플랜을 짤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뭘 먹어야 하고, 어떤 마음으로 생활해야 하는지 그 뼈대를 세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이때 투병 밑그림으로 삼았던 생활신조는 크게 세 가지였다.

1. 마음 다스리기와 공부하기?

충격, 공포, 회한, 증오, 화, 슬픔, 비통 등등. 멘탈 붕괴에서 빨리 탈출하려고 노력했다. 세포는 마음의 영향을 받고 마음의 에너지에 따라 움직이기에 마음 다스림이 치유·치병의 근본이 된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래서 배려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런 그에게 해부학 책은 훌륭한 스승이 돼주었다고 말한다. 온몸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면서 통증이 나타나는 이유도 알 수 있게 됐고, 그 대책을 세우는 것도 비로소 가능해졌다.?

그런 때문일까? 그는 만나는 암환우들에게 꼭 당부하는 말도 공부하라는 주문이다. 자기 세포에 맞는 공부를 해야만 자기 생명을 관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의사보다 더 나은 지식이 있어야 의사가 제대로 치료하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CT, MRI 등 영상기기 보는 법도 익히고, 효소학·면역학·종양학·미생물학 등 임상병리도 알아야 제대로 된 치료도 받을 수 있고, 제대로 된 몸 관리도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2. 하나하나 체험하며 몸에 맞는 식품 찾아내기?

문상을 가고 문병을 다니면서 소위 암에 좋다는 음식, 단방약처럼 추천되는 음식은 수없이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따라해 보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암에 좋다고 추천해준 건강보조식품과 여러 식품을 먹었다가 황달과 여러 증세를 겪으며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남이 했던 방법은 남의 세포에 맞는 것이고, 남의 유전자에 맞는 방법이라는 거였다. 또 투병 기간에 따라 먹는 것도, 투병 환경도 달라져야 한다는 거였다.

특히 자신에게 맞는 테라피를 서양의학, 한의학, 대체의학, 자연의학, 양자의학, 민방 등에서 직접 경험을 통해 엑기스를 뽑아내고, 그것을 자신에게 접목시켜야 자신의 병든 세포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거였다.

이때부터 그의 관심은 주위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산야초채소, 텃밭채소에 모아졌다. 산야초채소를 채취하고 혹은 텃밭에서 가꿔서 먹어본 뒤 속이 편하고 대변이 잘 나오면 식단 레시피로 삼았다고 한다. 씀바귀, 쑥, 질경이, 개망초, 망초, 민들레, 쇠비름, 뽕잎 등은 그렇게 해서 선택된 산야초채소들이었고, 감자, 고구마, 당근, 토마토 등도 그렇게 선택된 텃밭채소들이었다. 하나하나 먹어보고 몸이 받아들이는 채소들로 구성된 하루 세 끼 식단표는 지금도 그의 건강을 지키는 든든한 우군으로 활용되고 있다.

3. 늘 움직이기?

텃밭을 가꾸고 나무도 심고 암자에 오르고 둘레길도 걷고 지리산 주봉들도 항상 오르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이정복 씨의 일상이다.

아무리 공기 좋은 산과 시골이라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항상 움직이고 흙냄새도 맡고 산야초채소도 뜯고…부단히 몸을 움직였다고 한다.

이런 생활 덕분이었을까? 2012년 6월 들어서면서 이정복 씨는 본능이 전하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아, 내 몸이 좋아지고 있구나.’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2012년 8월 찍어본 CT에서 그는 자신이 해온 방법에 확신도 생겼다고 말한다.

?“30개월 만에 찍어본 CT를 보고 담당의사도 깜짝 놀라더군요. 암세포가 그대로 정체돼 있다는 거였어요. 변동사항이 전혀 없다면서 정말 잘하고 있다고 칭찬까지 하더라고요.”

그래도 이정복 씨는 안다. 암은 완치가 없다는 걸. 내 몸의 면역력이 암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성실하게 하루하루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살려는 집착도 버려야 한다는 걸. 마음을 다스리면서 죽음을 초월하고 남은 인생 봉사하고 배려하고 헌신하면 자기도 모르게 좋아진다는 것을.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 내 몸은 내가 살린다는 의지를 갖고, 즐겁게 암을 알아가고 있다. 그런 그가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암 환자가 되면 뭘 먹어야 하고, 뭘 마셔야 하고, 뭘 맞아야 하고, 뭘 잘라내야 하고, 이래야 되는 줄 알고, 이래야 사는 줄 압니다. 저 또한 그랬어요. 하지만 신중해야 합니다. 함부로 먹지 말고, 함부로 마시지 말고, 함부로 맞지 말고, 함부로 칼을 대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하면 안 좋은 결과가 더 빨리 올 수 있으니까요. 지난 기간 셀 수 없이 목격한 것이기에 무엇을 행하기 전에는 반드시 공부를 해서 스스로 암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합니다.”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정복 씨는 전국을 누비며 강의도 한다. 췌장암환우협회카페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자기 생명은 자기가 관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하고, 의사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며 10시간 11시간 사투를 건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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