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절제가 몸에 배인 삶…그래도 살만해요”
이제 갓 오십을 넘긴 나이. 그러나 살아온 지난 세월 대부분을 끊임없이 이어진 병마와 끈질긴 사투를 벌여온 사람. 건강다운 건강은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채 인생의 쓴맛에 단련되고 길들여진 사람. 그래서 너무도 억울할 것 같지만 정작 본인은 절제된 행복을 예찬하는 사람. 윤철호 변호사(51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변호사라는 타이틀에 선입관부터 갖지 말자. 그는 근 20여 년 동안 사선을 넘나든 사람이다. 요절만은 면해 보려고 안간힘을 다해 살아온 주인공이다. 그랬던 그가 오늘은 웃는다. 조심조심 살면서 스스로 자기 몸을 돌보는 지혜도 터득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좀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으려는 그를 겨우겨우 설득해 지난 이야기를 들어봤다. 도대체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대에 느닷없이…
누구에게나 빛나는 인생 황금기 20대. 하지만 윤철호 씨에게는 조금 달랐다. 고통의 서막이 열린 시기다. 여수 토박이인 그가 수재들만 모인다는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 기쁨도 잠시뿐! 눈물을 머금고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건강이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대학교 2학년 때 몸이 아프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결핵이었어요. 8개월 동안 약을 먹었지만 도무지 낫지를 않았습니다.”
학교도 못 다닐 정도였다. 독한 결핵약에 몸은 하루가 다르게 망가져 갔다. 견디다 못해 휴학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갈 때의 그 절망감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게 끈질기던 결핵은 6개월 더 약을 먹었을 때 비로소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결핵은 나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몸을 추스를 수가 없었어요. 무기력하고 피곤하고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고 집중도 안 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죠.”
병원에도 가봤다. 하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몸은 아픈데 증상은 없고…. 그래서 더 억울했다.
너무도 젊은 나이, 마음은 혈기 왕성한 20대의 에너지로 꽉 차 있었지만 몸은 따라주지 않는 현실…. 나홀로 낙오자였고 나홀로 패배자였다. 그래서 하루는 화를 냈다가 또 하루는 포기를 했다.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건강공부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건강을 회복해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그 열망 하나로 건강 서적을 펴들었다.
이것저것 따라하다가 죽을 뻔하기도~
건강이 발목을 잡았으니 건강공부를 해보자 결심했던 윤철호 씨. 이때부터 그는 세상에 회자되고 있는 건강법을 하나하나 섭렵하기 시작했다. 각종 자연요법, 서식건강법, 단식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파고들었다. 눈만 뜨면 눈이 벌개서 그대로 따라 해 보기도 하고 몸에 좋다는 별별 짓에 골몰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저것 열심히 해봐도 별 효과를 보지 못했어요. 순진하게도 인쇄된 것은 다 진리처럼 느껴져 그대로 따라 하다가 죽을 뻔한 적도 숱하게 있었어요.”
세상에 좋다는 건강법은 차고 넘쳤지만 그의 건강은 좀체 회복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군대 징집령까지 받아들었다. 몸은 정상적인 활동을 못할 정도로 아팠지만 진단명이 없으니 군대는 가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머리도 깎지 않고 군대에 갔어요. 군대생활을 못해 낼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2년 6개월의 군 복무 기간을 근근이 다 채울 수 있었어요. 집에서는 거동조차 못했던 몸으로 어떻게 군대생활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하게만 느껴져요.”
하지만 군 제대를 할 무렵, 그의 몸에서는 또 하나의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통증…그것은 또 다른 시련의 전주곡이었다.
B형 간염에 만성피로증후군까지…
옆구리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을 때 윤철호 씨는 곧바로 간기능 검사부터 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이책 저책 보면서 몸 구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옆구리가 묵직한 것은 인체 구조상 아무래도 간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직감했죠. 그래서 간 기능 검사부터 했어요. B형 간염이라고 하더군요.”
또다시 시작된 투병생활. ‘어떻게 하면 B형 간염을 다스릴 수 있을까?’ 고군분투했다. “단식도 하고 녹즙도 마시고…. 때로는 집을 떠나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도 하면서 이 방법 저 방법 다해봤어요. 특히 이때 인삼에서 빼낸 성분인 아답타겐이라는 약을 10개월 정도 먹었는데 그것이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간 수치가 정상으로 회복됐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간염은 나았지만 그의 몸은 또 다른 방법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윤철호 씨는 “그 다음에 온 증상은 만성피로증후군이었다.”고 말한다.
건강의 기초를 세우다~
줄줄이 이어진 병마 속에서 요절만은 피해 보고자 팔다리에 남은 온힘을 짜내 하루하루 살고 있던 윤철호 씨에게 또다시 찾아든 만성피로증후군.
그렇게 지독한 증상을 동반할 줄 미처 몰랐었다. 침대에 묶여 있는 상태와 다름없었다. 화장실 가기도 힘들었다. 거동도 할 수 없는 피로한 상태에서 그의 하루하루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이유도 몰랐고, 해결책 또한 없었다. 답답하고 절망적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생각다 못해 산속으로 들어갔어요. 백운산 깊은 곳 민가에 방을 얻어서 혼자서 투병생활을 시작했죠.”
그동안 건강공부를 하면서 숲의 치유력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숲으로 들어가면서 그의 생활은 많이 달라졌다. 숲의 정기를 마시며 자연과 일체가 되는 그런 생활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의 생활을 지배했던 자연요법의 큰 줄기는 3가지였다.
첫째, 생식하기
현미쌀을 불린 뒤 갈아서 먹었다. 좋은 현미를 물에 2~3일 불리면 촉이 나오는데 촉이 조금 나온 상태에서 믹서기에 갈아 고운 가루로 만들어서 하루 두 끼 식사를 했다고 한다.
둘째, 녹즙 마시기
B형 간염에 걸린 뒤부터 하루에 400CC 정도의 녹즙을 꼭꼭 마셨다. 녹즙은 숱한 건강법 중에서 그를 매료시킨 건강법 중 하나였다. 간염이 좋아진 데도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녹즙 마니아가 됐다.
셋째, 단전호흡하기
숨을 깊이 잘 쉬는 것도 건강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호흡을 기본으로 하여 단전에 의식을 집중시키는 단전호흡을 실천했다.
산과 집을 오가며 이 같은 생활을 10여 년 정도 했을 때 윤철호 씨의 몸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2~3km 정도는 산책도 할 수 있는 몸이 됐고, 책도 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한 번 망가진 몸이어서 그런지 결코 정상인처럼 되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만족했다. 나이는 어느덧 40을 바라보고 있었고, 요절만은 면했으니 그것도 어디냐 싶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고시공부를 하기 위해 산속 민박으로 찾아온 후배의 한 마디는 깊은 울림을 남기게 된다. 고시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변호사가 되고
10여 년 동안 오로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윤철호 씨에게 어느 날 고시공부를 하던 후배의 말 한마디는 적잖은 파문을 던졌다.
“나이 40이 눈앞인데 이렇게 살다 죽으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고시 공부를 한 번 해보라고 권하더군요.”
그 순간 한 대 맞은 듯 흠칫했다고 한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많은 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고시공부를 시작했어요. 후배가 가끔씩 관련 서적도 보내주고 해서 파고들다보니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사실 그것은 절망적인 시도였지만 그만큼 촉각이 예민해진 탓인지 1차 시험은 어렵지 않게 붙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2차 시험이었다. 여름에 치러진다는 게 문제였다. 그의 몸 상태는 기온이 30도만 넘으면 활동을 못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2차 시험을 치러 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첫 해에는 포기를 하고 그 다음 해에 봤어요. 다행히 나흘 동안 비가 내리면서 기온이 크게 오르지 않아 시험을 볼 수 있었어요.”
시험을 볼 때도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책상에 앉을 기운도 없어 바닥에 엎드려 사법시험을 보았고, 2003년 그는 고시합격을 하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 40세였다.
건강의 핵심 드디어 만나다!
연수원 생활도 겨우겨우 마치고 변호사 일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그의 건강은 걸림돌이었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조심 살고 있던 그에게 어느 날 친한 친구가 암에 걸렸다면서 조언을 구해왔다.
“그때 제가 추천해준 방법은 채소즙을 하루에 2리터 정도 먹어보라는 거였어요.” 그동안 끈질긴 투병생활을 하면서 채소즙만큼은 그 효능을 확신하고 있던 터여서 주저없이 권해주었다.
그로부터 3~4일 뒤 그 친구가 하는 말은 놀라웠다. 당뇨기가 있어 잇몸이 부실했는데 그 증상이 개선됐다며 너무나 좋아했던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아차 했어요. 그동안 내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의 몸 상태는 암에 걸린 사람보다 더 안 좋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동안 녹즙 400cc만 먹으면서 ‘이 정도 먹는 것도 몸에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자위하고 있었던 그였다.
그것이 너무도 후회스러웠다. 그래서 시작했다. 이때부터 하루에 녹즙 1000cc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채소즙을 먹는 방법도 조금 바꿨다. 채소 찌꺼기까지 먹기 시작했다. 채소 1.5kg을 깨끗이 씻어서 즙으로 짜면 1000cc의 즙과 500g의 찌꺼기가 나왔다. 이렇게 나온 즙과 찌꺼기를 섞어서 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같은 시도는 놀라운 결과를 나타냈다. 윤철호 씨는 “이렇게 하자 몸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비로소 정상인에 가까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변호사 일도 큰 무리없이 해낼 수 있게 됐던 것이다. 그것으로 족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의 나이 45세 때의 일이다.
절제된 행복도 큰 기쁨
채소즙과 그 찌꺼기를 섞어서 먹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건강의 큰 줄기를 만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윤철호 씨.
그런 때문일까? 그는 이 건강법에 이름도 지었다. 일명 ‘채소범벅 건강법’이라고 부른다. 비록 지금도 조심조심 살고 있지만 그에게 건강의 큰 짐을 내려놓게 해준 비결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런 그가 소개하는 채소범벅의 효능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채소범벅을 먹으면 감기도 안 걸리고 기분도 요동치지 않아요. 채소범벅은 혈당이 전혀 오르지 않기 때문에 혈당 변화가 적어서 그래요.” 그런 탓에 채소범벅은 지금도 그의 건강을 지키는 핵심 노하우가 되고 있다.
오늘도 여전히 하루 30분 단전호흡을 하고, 싹 틔운 발아현미를 갈아서 먹고, 각종 채소와 산야초를 쌍기어 생즙기로 갈아서 만든 채소범벅을 점심 때 500cc, 저녁에 500cc 꼭꼭 씹어 먹으며 조심조심 살고 있는 윤철호 씨. 돌아보면 인생의 좋은 시절을 병마의 고통 속에서 보냈지만 후회는 없단다.
“인생이라는 게 각자에게 주어진 길이 있다고 믿어요. 제 인생은 어쨌든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요. 남과 비교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왕은 서민의 기쁨을 모를 것이고, 서민은 왕의 고충을 알 수 없듯이 아픈 사람이 절제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인생이라고 믿어요.”
그래서 불행하다거나 억울한 마음은 윤철호 씨에게 없다. 절제된 행복도 있다는 것, 체력이 모자라도 그런 몸과 더불어 잘 살아가는 것에도 얼마든지 행복은 존재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런 그가 최근 줄줄이 이어진 병마와 싸우면서 얻은 체험과 건강지식을 총집대성한 건강 서적 <스스로 몸을 돌보다>(상추쌈 刊)를 출판해 화제다. 이 책에는 그동안 좋다고 알려진 건강법의 허울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건강의 기초를 세울 수 있는 거대한 줄기가 소개돼 있다.
윤철호 씨는 “몸이 좋아지기 시작한 2006년부터 정리를 하기 시작해 6년이나 걸렸다.”며 “이 책을 쓰기 위해 산소측정기까지 구입해서 숲의 산소량과 집안의 산소량도 측정해가면서 하나하나 책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그런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건강법의 핵심은 싱싱한 풀을 배불리 먹고 땀 흘려 일할 것을 강조한다. 그것은 그가 긴긴 투병생활을 통해 얻게 된 귀중한 깨달음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