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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사는 법] 불치병으로 알려진 류머티스 관절염 이겨낸 이선기 씨 체험고백

2013년 10월 건강다이제스트 풍성호 116p

【건강다이제스트 | 전서현 기자】

“가족으로 인해 생긴 병 가족 덕분에 완치했어요”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에서 “불행과 행복은 쌍둥이 같아서 늘 붙어 다닌다.” 라는 말로 인생을 설명했다. 잊고 있다가도 불현듯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이선기 씨(49세)와의 만남이 그랬다. 셰익스피어가 살아서 온들 이선기 씨의 삶을 표현할 수 있을까? 불행과 행복이라는 쌍둥이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아니 세 번씩이나 만나고 살아온 이선기 씨의 삶은 그래서 더욱 빛나 보인다. 불행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겐 비겁한 힘을 남용하지만, 자기를 딛고 일어선 사람에겐 깨끗이 항복하고 물러서는 법이다. 불행의 항복을 받아낸 사람들은 영광의 빛이 선물처럼 드리워져 있다. 20년 동안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아 온 사람이라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미소를 지닌 이선기 씨의 찬란한 빛 속으로 들어가 보자.

“당신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올해 초 이선기 씨의 주치의는 “당신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라고 류머티스 관절염 완치를 설명했다. 이선기 씨는 주치의의 말에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의아해 한다기보다 낯설기만 했다. 오랫동안 앓아온 병을 고통스럽지만 운명이려니 하며 삶의 일부분처럼 느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 오랜 시간이 20년이다. 류머티스 관절염은 아직도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완치율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뼈가 오그라들거나 뒤틀리는 현상 때문에 외관상으로도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병이 류머티스 관절염이다.

남편과 아들의 병수발이 원인이선기 씨의 직업은 아이러니하게도 공인중개사다. 하루에 몇 번이고 찾아오는 손님들과 아파트 계단을 오르고 언덕을 오른다. 20년씩이나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아온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깨끗한 피부와 건강하게만 보이는 신체를 지닌 이선기 씨.

그녀에게 찾아온 첫 불행은 남편의 병이었다. 1994년 7월 10일 이선기 씨의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졌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링거가 병이었어요.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은 링거 병을 3개나 꽂고 있었어요. 화장실에 한번 가려면 휠체어에 남편을 부축해서 앉혀놓고, 링거 병을 들고 이동했죠.”

그 시절을 회상하는 이선기 씨의 눈이 깊어졌다.

“남편 몸무게가 90kg이에요. 여자 몸으로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히고 다시 침대로 이동하는 것이 쉬운 건 아니죠. 그때부터 무릎에 이상이 왔었어요.”

3여 년 동안 간호를 했을 때 남편의 병은 조금씩 호전이 되기 시작했지만 이선기 씨 무릎에는 이상이 생겼던 것이다. 의사는 퇴행성관절염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프다는 말 한마디 편히 못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여전히 남편은 수발이 필요한 중증 환자였고, 아이들은 너무 어렸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아프다는 소리를 안으로 안으로 깊이 밀어 넣게 했다. 안으로 들어간 고통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급격히 병세가 악화돼 급성 류머티스 관절염 판정까지 받아야 했다.

눈물 뒤에 가려진 아들의 얼굴

첫 번째 시련은 남편의 뇌출혈이라는 이름으로 왔다면, 두 번째 시련은 돌을 갓 넘긴 아들의 폐렴이었다. 우환이 겹쳤던 것이다.
하지만 이선기 씨의 무릎은 결코 힘든 상황을 이해하지 않았다. 급성으로 진행된 류머티스 관절염은 그녀의 온몸을 고통으로 치를 떨게 했다. 하지만 그 고통보다 두 돌도 안 된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고통이 더 컸다고 이선기 씨는 회상한다.

“폐렴은 수술할 때 마취가 안 되잖아요. 아들한테 수면제를 먹여 수술시키려 했는데 본능인지 수술대 위에 아들을 눕히자마자 아들이 깬 거예요.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수술실에서 저를 찾았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 보니….”

감정이 격해진 이선기 씨는 잠시 침묵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모습은 영락없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고통보다 자식의 고통을 바라보는 고통이 몇 배는 더 큰 것이 엄마라는 존재가 아닐까? 잠시 침묵을 지킨 이선기 씨는 말을 이었다.

“수술실에 들어가 보니 발버둥 치는 아이를 제지하려고 의사선생님들이 아들의 어깨며 온몸을 제압하고 있었어요. 참으라는 말을 하려고 아들한테 다가갔는데…아들과 분명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데 서로의 얼굴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랬다. 아들의 눈물은 엄마의 얼굴을 가렸고, 엄마의 눈물은 아들의 얼굴을 가렸던 것이다. 어쩌면 눈물은 불행한 풍경을 그만 보라는 신의 위로인지도 모르겠다.

소주가 유일한 약이었던 고통의 시절…

남편과 아들의 연이은 수발로 이선기 씨의 몸은 치료시기를 놓쳐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됐다. 열 손가락을 불쑥 내미는 이선기 씨는 “이 손 참 우락부락하죠. 여자의 손이 아니죠. 걸을 수가 없어서 방바닥을 손으로 밀고 긁고 다녔습니다. 정말 소주가 유일한 약이었죠. 남편과 애들이 학교 가고 나면 독한 소주를 입에 들이부어야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었습니다.”

오랜 병엔 효자 없다는 말도 있듯, 아내의 고생이 못내 안타까웠던 남편은 어느 순간, “집에 왜 이리 먼지가 많아?” 라는 불평을 시작했고, 커가는 아이들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무슨 말만 꺼내면 화부터 내는 환자였다.

그 시절 이선기 씨가 아이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 “엄마한테 목숨하고 상관없는 이야긴 하지 마.”였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서슬 퍼런 말인가.

“한 번은 아들이 샤워실에서 미끄러져 발뒤꿈치 뼈가 드러날 정도로 다쳤어요. 전 아무 것도 몰랐죠. 아들이 신발을 구겨 신고 학교에 가길래, 살짝 봤더니 치료도 받지 않고 뼈가 다 보이는 발로 다녔던 거예요.”
아들 발목에 드러난 상처는 이선기 씨에게 한 언덕이 됐다. 엄마 노릇은 하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청소년기를 벗어날 때까지만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있자.’ 이런 생각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어요.”

벌침 60대, 은물 등 안 해본 민간요법 없어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만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민간요법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일반인은 2대 맞는 벌침을 온몸에 60대를 맞기도 했다. 시아버지가 은물 복용으로 전립선암을 극복한 것을 보고 무작정 따라 마셨다가 부작용으로 얼굴이 파랗게 물들기도 했다. 고가의 건강보조식품을 먹을 땐 잠시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았지만, 경제적 부담 때문에 계속 먹을 수가 없었다. 본인 체질도 모르고 무작정 따라 해선 안 되는 것이 민간요법이라는 것을 깨달은 과정이었다.

집에서 만든 발효식품 먹고 수건 스트레칭도 하고

어느 날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말했다. “엄마, 난 엄마의 자랑이 될래요.”

학부모 모임에 한 번도 참석한 적도 없고 도시락 한 번 제대로 싸주지 못한 엄마에게 아들의 그 소리는 고맙다 못해 서러웠다. 아들의 이 서러운 말은 이선기 씨에게 한 번 더 삶의 애착을 불러일으켰다.

누가 좋다고 하면 따라하는 방법을 버리고 이선기 씨가 선택한 방법은 부담 없이 늘 생활화 할 수 있는 식품이었다.

매사 긍정의 마음, 감사하는 마음, 고마운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긍정의 마음이 암세포를 이기는 NK세포까지 활성화시킨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좌우명도 조금 독특하다. 사소한 것에 연연해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류머티스 관절염을 이겨내기 위해 집에서 실천한 건강습관은 다음과 같다.

1. 매실차와 허브차 등을 집에서 손수 만들어 늘 물처럼 마셨다.

2. 집에서 직접 만든 발효식품을 늘 식탁에 올렸다.

3. 특히 항산화 성분이 많이 들어있다고 해서 베리 종류도 열심히 먹었다.

4. 여기에다 틈틈이 스트레칭도 열심히 했다. 비록 상체만 할 수 있었지만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운동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하체운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해서 앉은 자세에서 수건을 이용해 스트레칭을 주로 했습니다.”
잠시 시범을 보이는 이선기 씨의 몸은 의외로 유연했다.

이런 노력들 덕분이었을까? 이선기 씨는 올 초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병원에서 류머티스 관절염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이 가족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고 있는 이선기 씨. 가족은 언제나 그녀 삶의 지표가 된다고 말한다. 그런 그녀에게 가족이 있는 한 어떤 불행이 찾아와도 쌍둥이처럼 붙어있는 행복은 늘 그녀의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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