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기옥 기자】
“좋은 자세와 채식이?건강의 비결입니다”
아픈 곳에 바늘을 꽂는 골 때리는 의사…?제도권 의학에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이방인…?한의사가 가장 싫어하는 의사… 그러나 의사들이 인정한 명의로 전 세계 통증 치료의 흐름을 바꾼 FIMS 치료법의 창시자…
수술 없는 만성통증 치료의 세계적인 권위자 안강 박사 앞에 붙는 수식어는 많다. 그만큼? 드라마틱한 그의 삶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의료계 이단아에서 통증 권위자로 우뚝 선 안강 박사. 그의 삶은 환자를 통증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의사로서의 끊임없는 노력과 집요한 집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현재 차의과학대학교 교수이자 차의과학대학교 연구협력병원인 안강병원의 원장을 맡고 있는 안강 박사를 만나 건강한 삶을 위한 비결을 들어보았다.
진로를 고민하던 소년,?병원 불빛에 이끌리다
대입을 앞두고 수험생 안강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의대를 가야 할지, 법대를 가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사실 시를 쓰는 길을 가고 싶었지만 차마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가 없어 괴로웠다. 그렇게 가슴 가득 커다란 고민거리를 품고 하염없이 걷고 있을 때 하늘도 무심하게 갑자기 비를 뿌렸다. 쏟아지는 비를 피해 근처에 있던 건물로 후다닥 뛰어들었다. 병원이었다. 진료가 없는지 건물 안 작은 방에서만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심결에 문을 밀었는데 병원문이 열려 있었고 어느새 자신은 불이 켜진 작은 방 앞에 서 있었다.
소년을 발견한 작은 방의 주인은 소년을 안으로 초대했고, 소년은 처음 보는 낯선 의사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작은 방의 주인은 말했다. “의학은 굉장히 다양하다. 분명 네 적성에 맞는 분야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낯선 소년의 고민에 친절하게 답해주며 진심을 담아 그 어린 마음을 어루만져 줬던 의사. 소년은 의사가 되기로 했다.
만성통증 치료는 내 운명!
의사가 된 계기만큼이나 안강 박사가 만성통증 치료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도 흥미롭다. 본과 2~3학년 때 안강 박사는 발목을 다쳤다. 으레 그러하듯 엑스레이를 찍고 다친 다리에 깁스했다. 당연히 아팠다. 2주가 지났다. 다리는 훨씬 붓고 계속 아팠다. 한의원을 찾아갔다. 발가락에서 피도 뽑아봤지만 그리 좋아지진 않았다.
그런데 그때 중국에서 온 중의사가 안강 박사의 집에서 머물게 됐다. 안강 박사의 깁스한 모습을 본 중의사는 발을 만져보더니 깁스를 풀라고 했다. 다리를 이리저리 만지고 살펴본 중의사는 침을 놓으면 되겠다며 침을 놓았다. 당시 그런 치료에 별 호감이 없었던 안강 박사는 반대 의사를 표현할 틈도 없이 침을 맞았다.
그런데 다음날! 다리의 부기가 빠져있었다! 통증도 아주 좋아졌다. ‘아, 이런 게 진정한 치료다!’ 엑스레이를 보고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만져서 진단하고 그 다음에 병변이 어딘지 확인하고 거기에 맞게 바늘을 찌르는 것이 진정한 치료임을 안강 박사는 깨달았다.
그때부터 안강 박사는 제도권 의학의 관점에서는 엉뚱할 수밖에 없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그 답을 찾는 데 집요해졌다.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중국에 가서 마사지를 배운 것도 그 중 하나다. 상상을 초월한 그의 행동에 사람들은 미친놈이라며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그러한 남들의 평가와 시선이 그의 행보를 막을 순 없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까지 1년에 여권 하나씩을 바꿀 정도로, 답을 찾을 수만 있다면 미국, 영국, 캐나다, 중국 등 세계 어디라도 찾아가 배우고 또 배웠다. ‘나 자신을 속이지만 않는다면 평생 즐겁게 통증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그런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안강 박사의 치료를 받은 많은 환자가 좋은 효과를 보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동료 의사들로부터도 ‘통증 박사’라 불리며 명의로서 인정받았다.
‘어머니의 약속’을 지키다
명의라 불리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의과대병원이 생길 만큼 유명해진 안강 박사. 그의 성공은 자신의 땀과 노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기도도 빠질 수 없다. 의대 시절, 주입식 교육과정에 적응을 못하고 유급까지 당하자 어머니의 자식 걱정은 컸다.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에 아들의 사주를 보러 갔다. 점쟁이는 아들 사주가 아주 좋다며 굉장히 성공하는 의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아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어머니는 점쟁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여겼다. 졸업이나 할 수 있을지 물어보러 온 건데 대단한 의사가 된다니… 점쟁이의 말이 실없이 느껴졌다.
그래도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역시 달랐다. 허황된 말처럼 느껴지긴 해도 ‘내가 기도를 많이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절에 찾아가 정성으로 기도를 드렸다. “우리 아들이 의사가 되면 반드시 이 사회를 위해 봉사할 것이니 도와달라.”고.
아들이 명의 대열에 오르고 유명해지자 어머니는 안강 박사를 불러 그간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때부터 안강 박사는 사회에 봉사하리라는 어머니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의료봉사를 안강 박사는 지금까지도 한 달에 두 번씩 전국을 다니며 계속하고 있다.
만성통증에는 좋은 자세와 제대로 먹기가 중요!
“환자를 통증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안강 박사는 만성통증 환자들이 겪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충분히 이해한다. 안강 박사 자신도 섬유성근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무리한 업무와 스트레스 때문에 몸의 오른쪽 전체에 통증이 왔다. 생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끔찍한 통증이 끝없이 밀려왔다. 그는 “통증 치료에 적극적으로 매달린 것도 어쩌면 나 자신이 간절하게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 관리도 철저히 하고 있다.
안강 박사가 강조하는 것은 ‘좋은 자세 유지’와 ‘제대로 먹기’이다. 좋은 자세를 위해선 호흡근을 살리는 게 제일 중요하다. 안강 박사는 “배꼽 아래가 배꼽 위보다 더 들어가야 하고, 가슴은 볼록해야 한다.”고 말한다. 호흡근이 살아날 때 몸 안의 장기가 끌어올려져서 척추의 자세도 제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안강 박사는 따로 운동하는 것보다 일상생활에서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루 세끼 중 아침과 점심은 케일, 비트, 무잎과 같은 얇고 진한 색깔의 생채소만 먹고 저녁은 일반적인 식사를 한다. 이렇게 먹으면 통증이 있어도 밤에 숙면을 취할 수가 있다. 술도 좋아하지만 밤 열 시 이후에는 절대로 먹지 않고 바로 귀가해서 잠자리에 든다.
만성통증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경계를 넘나들기를 서슴지 않았던 안강 박사. 시간이 흘러 양쪽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안강 박사는 “그동안 내가 해온 모든 치료는 동양의학이라는 큰 항아리에 서양의학이라는 양질의 쌀을 채우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지금도 안강 박사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가 없는 세상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