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이기옥 기자】
2007년 8월, 방광암 판정! 2008년 4월, 전립선암 진단! 그럼에도 시련은 또 다른 재능의 발견이었다고 말하는 사람! 명문대 출신의 성형외과 전문의에서 이제는 화가로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
서울 서초구에 사는 서석환 화백(66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두 번의 수술 후에도 재발 없이 5년을 거뜬히 이겨내고 화가로서 제2의 인생에도 성공한 그만의 노하우는 과연 뭘까?
음악과 새로운 학문을 사랑하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지금까지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쎄시봉’. 연세대 의대 2년 선배였던 윤형주 씨가 쎄시봉에서 음악을 하던 시절, 서석환 화백은 그룹사운드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했다.
“음악을 참 좋아했거든요. 제가 무언가를 한 번 시작하면 몰입하는 성격이라 그때도 그랬죠. 그렇게 음악에 푹 빠져 살다가 어느 순간 이러다 의사가 못 되면 어쩌나 싶었어요. 그래서 음악을 접고 군의관으로 입대했죠.”
의대 전공으로는 성형외과를 택했다. 당시 연세대 성형외과 주임이었던 유재덕 교수가 미국에서 자격을 취득한 국내 최초의 성형외과 전문의였을 정도로 성형외과는 새로운 학문이었고 분야였다.
“성형외과라는 새로운 분야에 호기심이 동했죠. 새로운 학문을 공부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성형외과를 전공하게 됐죠.”
종합병원을 거쳐 인천에 서석환 성형외과의원을 열었다. 능력 있는 의사, 실력을 인정받는 의사였지만, 성형외과가 점점 상업화되는 것이, 그로 인한 성형외과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안타까웠다.
“성형외과가 지나치게 상업화하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성형외과라고 하면 미용 시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전체 성형수술에서 그런 수술은 8%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
2007년 8월 25일 토요일!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의 일이지만 서석환 화백은 아직도 날짜와 요일을 정확히 기억한다. 방광암 판정을 받은 날이기 때문이다.
비뇨기과를 찾기 얼마 전부터 빈뇨와 야뇨 증상이 있었다. 전립선 비대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양승철 교수를 찾아갔다. 전립선 비대 수술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양승철 교수가 방광경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모니터를 보니 방광과 요도 사이에 뭔가 너덜너덜한 것이 있더라고요.”
검사를 마친 양승철 교수는 바로 한마디 했다.
“너 살려고 왔구나!”
그리곤 방광암 판정을 받았다.
“그때까지 20년간 꾸준히 운동했었는데도 암이 생겼더군요.”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충격은 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성당의 성체 조배실을 찾았다. 평소에는 거의 찾지 않던 곳인데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리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조배실에 한동안 망연자실 앉아 있는데 성경이 눈에 들어왔다.
“전엔 성경 한 번 안 읽었는데 그때는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처음 펼쳤을 때 눈에 들어온 구절은 예레미야서 1장 8절이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주리라.”
읽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 어떤 위로보다 든든했다. 그래서였을까? 수술실도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유관으로는 방광암이었는데 수술 후 조직검사를 하니 전암(前癌, 암으로 변하기 이전 상태)이라고 했다. 추적검사(follow-up)로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였다.
8개월 만에 두 번째 암 선고
이듬해인 2008년 4월, 평소처럼 검사를 받으러 갔다. 그런데 전립선 특이항원(PSA, 전립선암 수치 4.0ng/ml 미만이 정상) 수치가 7이 나왔다. 뭔가 심상찮은 느낌이 들었다. 조직검사를 했다. 결과는 전립선암!
방광암 수술을 한 지 8개월 만이었다. 서석환 화백은 운영 중이던 병원을 정리했다.
그리고 수술 전날까지 서울 근교의 천주교 성지를 찾아다니면서 미사를 드리고 기도를 했다. 수술 전인 5월 중 20여 일간은 매일 성당에 가서 성체조배를 했다. 마음 두고 의지할 곳이 그곳밖에 없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주리라.”
첫 번째 암 수술 때 함께 해주셨던 것처럼 이번에도 함께 해주시길 간절히 청하며 기도했다.
“입원날인 6월 10일에는 절두산 성지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입원했어요. 입원 다음날이 수술 날이라 미사를 드리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수술하는 날의 성경 말씀을 매일 미사에서 찾아봤지요. 이번에는 예레미야서가 아니었어요. 열두 제자를 파견하는 내용이었죠. 하지만 묵상하면서 그 말씀을 곱씹어보니 예레미야서와 같은 내용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크게 감동했고, 가슴이 뜨거워졌죠.”
두 번째 암 진단은 견딜 수 없을 것처럼 깊은 고통이었다. 나 홀로 세상에 버려진 것 같았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주님께서 함께하신다! 더는 고통도, 두려울 것도 없었다. 다음날 전립선을 제거했다. 전이도 없었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두 번의 시련이 가져다준 선물
수술 후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암이라는 큰 산을 두 번이나 넘고 나니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일상생활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나 봐요. 한 2년 우울하게 지냈죠.”
이런 그에게 아내는 그림을 한 번 배워보라고 권했다.
“그림을 배워본 적은 없었지만, 마음 한쪽에는 늘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어린 시절 몸이 좀 안 좋아서 집에 있을 때는 그림을 그리곤 했거든요.”
그래서 호기심에 아내가 봉사활동을 다니는 노인복지회관의 동호회 모임을 찾았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두 시간씩 수채화를 그리러 다녔다.
몇 달 후인 2010년 12월, 지인의 소개로 오세철 화백을 만나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1년 동안 하루 10시간씩 그림을 그렸어요.”
엄청난 작업량이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몰입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렇게 즐겁고 재밌을 수가 없었다. 이듬해 3월부터는 스스로 터득한, 마스킹을 활용한 기법을 활용해 야외로 나가 바위나 물에 비친 빛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뿐만 아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2011년에는 대한민국미술제(KPAM), 대한민국창작미술대전, 국제창작미술대전 등 각종 미술전에서 상도 받고 전시회도 가졌다. 화가로서의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 것이다.
“두 번의 시련이 있었지만, 그 덕분에 또 다른 선물을 받았어요. 암이 아니었다면 제게 이런 재능이 있는 줄 모르고 살았을 겁니다.”
2013년은 서석환 화백이 두 번째 암 수술을 한 지 5년이 된 해였다. 암 수술 후 재발 없이 5년이 지나면 의학적으로 완치다. 서석환 화백은 이를 기념하는 전시회를 인사동에서 열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아내와 첼리스트인 큰딸의 축하 음악회도 함께였다. 그리고 암 수술을 받은 암병원에 그림도 기증하고 싶었다.
2014년 봄, 세브란스병원 연세암센터에서 서석환 화백은 ‘세브란스 암병원 기증전’을 가졌다.
“모교 의사로서 암 투병을 하고, 새로 생긴 암병원에 제 그림이 걸렸으니 큰 영광이죠.”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
2015년 2월, 서석환 화백의 화실에는 8.5kg 배낭이 놓여 있었다.
“사람이 참 어리석은 존재인 것 같아요. 사는 데 참 많은 것이 필요한 것 같은데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 배낭 하나 정도면 되더라고요.”
서석환 화백은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4월에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이 그것이다. 그래서 매일 8.5kg 배낭을 메고 반포대교에서 암사대교, 암사대교에서 양재천을 거쳐 집까지 하루 20~30km씩 걷는 운동을 하고 있다.
“2014년 말부터 체력을 보강해서 산티아고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산티아고에 다녀오면 또 다른 그림을 그릴 에너지를 주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화가로서 더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고 앞으로 성화도 그리고 싶다는 서석환 화백. 그에게 5년 생존자로서 암 투병 중에 했던 특별한 비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렇다 할 특별한 비법은 없었어요. 암 투병 중에 깨달은 건 있죠. 어떤 시련도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것. 암은 제가 울고 싶을 때 제 뺨을 때려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암 덕분에 숨은 재능도 발견할 수 있었잖아요. 그리고 매일 묵주기도를 해요. 나를 살려주신 하느님께 최소한의 감사 표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의학이나 과학적으로 명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나와 함께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강한 믿음과 그림에의 몰입이 서석환 화백이 암을 이겨내도록 한 특별한 비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서석환 화백에게 현재 암 투병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위로의 한 마디를 부탁했다.
”의학은 과학이라기보다 통계학이에요. ‘5년 생존율이 얼마다’ 라는 것은 가능성이죠. 하지만 자신이 그 1%에 해당한다면 자신에게는 (생존율이) 100%인 거예요. 그러니 할 수 있는 의학적 치료를 적극 받으면서 그밖에 다른 것은 보조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