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도움말 | 부산대학교병원 통합의학센터 김진목 교수】
2013년을 달군 또 하나의 건강 키워드는 채식이냐, 육식이냐를 두고 벌어진 뜨거운 공방전일 것이다. 신념적 이유로 혹은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 인구가 날로 늘어가고 있던 시점에서 불거진 채식 비판은 2013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것은 한 권의 책이 몰고 온 후폭풍이기도 했다. 2013년 2월 리어 키스가 쓴 <채식의 배신>이라는 책이 출판되면서 해묵은 채식, 육식 공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 책에는 20년간 고기는 물론 생선, 계란, 우유, 꿀 등도 일절 먹지 않는 극단적 채식주의자로 살아온 저자가 자기 몸에 나타난 채식의 부작용을 신랄히 비판하는 참회록 성격이 담겨 있었다.
채식 반대론자들은 “그것보라.”며 의기양양했고, 채식 예찬론자들은 “방법이 잘못됐다.”며 이에 맞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며 불꽃 튀는 공방이 이어졌는데 2013년을 뒤흔든 채식 공방,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PART 1. 채식 찬성론자들의 채식 예찬론
최근 20~30년간 음식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세계 석학들은 이구동성으로 단일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균형 있는 식사의 한 축으로 알려져 왔던 동물성 식품이 더 이상 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심지어 동물성 식품은 성인병으로 분류되던 생활습관병의 주범이라며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다.
과거 채식에 동조하지 않았던 미국 국립아카데미나 미국 영양사협회조차 이미 채식의 장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의사회원만 4천 명이 넘는 미국 ‘책임 있는 의사회(PCRM)’의 가장 중요한 활동 중 하나도 채식을 권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채식이어야 할까? 왜 육식은 건강에 나쁘다는 것일까?
육식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문헌도 많고, 아직도 많은 영양학자나 의사들은 균형 있는 식사를 강조하는데 이것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혼란스러움일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 부산대학교병원 통합의학센터 김진목 교수는 “문제는 육식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육식 속에 포함되어 있는 화학물질들에 있다.”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최근 대두되고 있는 POPs(잔류성 유기오염물질)라는 화학물질”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오늘날의 축산업이 고도로 밀집된 대량 축산, 공장식 축산이라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한정된 공간에서 풀과 목초 대신 화학물질 범벅의 사료를 먹고 자라고,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성장촉진제나 호르몬제까지 투여한다.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항생제 투여도 필수가 되었다.
이것들은 모두 화학물질들이다. 화학물질을 먹고 성장하는 육식은 우리가 예전에 먹었던 육식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화학물질의 범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화학물질들은 자연계에서 잘 분해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먹이사슬을 통해 차곡차곡 축적된다. 생명체의 지방조직에 축적되는 특징을 나타낸다. 이런 특성들을 보이는 화학물질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 ‘POPs’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DDT 같은 살충제, 다이옥신, 유기염소계 농약 등이 POPs 물질로 분류되는 것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POPs라는 물질의 대 역습에 있다. 분해도 잘 되지 않고, 먹이사슬을 통해 생명체의 지방조직에 축적돼 있다가 조금씩 조금씩 혈액으로 빠져나오면서 온몸 구석구석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세포를 파괴하고 유전형질을 변형시키고…우리 몸에 총체적인 위기를 초래한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대를 이어 유전되면서 두고두고 인류의 비극을 잉태시킨다.
김진목 교수는 “POPs의 위험성을 알게 된 후 사용을 금한 지 30~4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일반 인구집단의 지방조직이나 혈액을 검사해보면 거의 대부분에서 이 POPs 물질들이 상당량 검출되고 있다.”며 “이 POPs로부터 자유로운 식품은 지구상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는 실정이지만 가능한 한 적게 오염된 것을 찾으라면 당연히 식물성 식품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점은 비록 채식 찬성론자가 아닌 사람들도 채식에 관심을 갖게 하는 강력한 이유가 되고 있다.
PART 2. 채식 반대론자의 채식 비판론
해묵은 채식, 육식 공방에 새로운 국면을 제공한 리어 키스가 쓴 <채식의 배신>은 변심한 한 채식주의자의 참회록이다. 20년간 고기는 물론 생선, 계란, 우유, 꿀 등도 일절 먹지 않는 극단적인 채식주의자인 비건으로 살아온 저자가 자기 몸에 나타난 채식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동물을 고문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에 항거하기 위해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 키스는 16살이었다.
그러나 키스의 몸은 그 신념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비건 식사를 한 지 6주쯤 지났을 때 저혈당증을 경험했고, 3개월 만에 생리가 멈췄다. 만성피로와 감기를 달고 살았다. 피부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위 마비 증상도 찾아왔다. 우울증, 초조감 등 정신적인 문제도 겹쳤다.
그렇게 20년간을 살아온 키스는 어느 날 유명한 중국계 미국인 기공 선생을 찾았다. 기공 선생은 키스의 맥을 짚은 뒤 말했다.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군요. 기가 전혀 없어요.”
20년간 동물들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고기든 생선이든 먹지 않았던 키스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게에 들러 참치 통조림을 샀다. 그리고 통조림 참치를 입에 넣는 순간 키스는 “내 온몸의 세포, 글자 그대로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고 적었다. 이후 키스는 <채식의 배신>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이 출간되면서 채식 붐은 된서리를 맞았다. 채식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더한층 높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키스는 20년간 채식을 했는데 오히려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밝히며 자신의 사례를 들어 채식의 단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또 정제곡물이나 설탕 등을 근거로 채식이 영양학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채식을 반대하고 비난하던 사람들은 “그것보라.”며 이 책을 근거 삼아 채식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하지만 채식을 무조건 비판하는 논조에 대해서는 불편해하는 시각도 많다. 김진목 교수는 “리어 키스의 경우 잘못된 채식을 해서 고생을 많이 하고 몸이 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무조건 채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채식을 한 것이 문제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 증거로 리어 키스가 문제 삼았던 설탕, 정제 곡물 등 가공한 식물성 식품은 결코 건강한 식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공해도 식물성이면 괜찮다고 생각한 인식에는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는 곳곳에 가공식품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하자면 채식의 배신이 아니라 가공식품의 배신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PART 3. 그래도 채식이라면 … 똑똑한 실천법
김진목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건강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영양 과잉 섭취”라고 말한다. 특히 동물성 식품의 과다 섭취는 비만, 당뇨병, 고혈압 등 생활습관병의 역습을 불러왔고, 중성지방 과다, 고콜레스테롤 등에서 유발되는 여러 가지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성을 높이는 주범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 해결책의 하나로 채식의 효용성은 무시할 수 없다. 올바른 채식을 장기간 하게 되면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적정체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채식을 오랜 기간 실천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몸이 가볍다는 것이다. 이는 채식으로 인한 적정체중 유지와 함께 몸속에 불필요하게 축적돼 있는 지방이 빠져나감으로써 몸이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채식을 하게 되면 영양학적인 불균형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우리가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할 영양소 중 일부는 식물성 식품에는 미미하거나 없고, 오직 동물성 식품으로만 섭취해야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채식만 하게 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영양소의 결핍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 철분과 칼슘 부족 : 철분은 채소류에도 풍부하지만 흡수율이 떨어진다.
● 필수아미노산, 아연 결핍 : 콩, 견과류를 통해 반드시 보충해야 한다.
● 비타민 B12의 결핍 : 비타민 B12가 부족한 경우 피로물질인 젖산이 과도하게 쌓인다.
김진목 교수는 “채식을 할 때는 이들 영양소들이 결핍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올바른 채식 방법을 실천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김진목 교수가 제안하는 ‘똑똑한 채식 실천법’은 다음과 같다.
1. 현미밥을 먹어야 한다
채식을 실천하면서 현미밥을 먹지 않는 것은 앙꼬 없는 찐빵과 마찬가지다. 현미 속에는 여러 가지 비타민, 미네랄, 식물영양소와 섬유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으므로 현미밥을 먹어야 영양불균형을 줄일 수 있다.
2. 골고루 먹어야 한다
채식을 한다면서 배추나 상추만 먹는다면 심각한 영양불균형이 초래된다. 식물에는 동물과 달리 일정한 부피에 들어있는 영양소의 양인 영양밀도가 낮기 때문에 골고루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잎채소뿐 아니라 줄기, 뿌리, 열매, 과일, 해조류까지 골고루 먹어야 한다.
3.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식물은 섬유질이 많이 함유돼 있다. 특히 현미는 씨앗이기 때문에 영양성분이 단단한 껍질 속에 싸여 있다. 따라서 꼭꼭 씹어야 영양성분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다. 많은 양을 오랫동안 씹으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녹즙기나 믹서기로 갈아서 먹는 것도 바람직하다.
4. 가공식품을 먹지 않는다
채식을 지향하면서 흰밥, 흰빵, 국수, 과자, 떡, 감자튀김 등을 열심히 먹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제대로 된 채식이라고 말할 수 없다. 채식은 가능한 한 자연 그대로의 것을, 가공을 덜한 상태로, 조리를 덜한 상태로 먹는 것을 의미한다.
5. 동물 성분은 눈에 보이지 않게 숨어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고기, 생선, 달걀, 우유 등의 동물 성분이 숨어 있는 식품이 아주 많다. 빵 속에는 우유와 달걀 등이 거의 항상 들어 있다. 대부분의 가공식품에도 한 가지 이상의 동물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6. 식물은 깨끗이 씻어 먹어야 한다
동물에 비해 식물에 화학물질이 덜 함유되어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농약 등의 화학물질이 묻어 있을 확률을 생각해서 꼼꼼하게 잘 씻어 먹어야 한다. 건강을 위해 채식을 오랫동안 실천한 후에 농약 중독에 빠졌다는 우스갯소리를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