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제스트 | 정유경 기자】
서울 토박이고 도시의 빽빽한 아파트촌에 산다? 왠지 백세 장수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구색이다. 그러나 올해로 꼭 만 100세가 되는 김순업 할머니(1912년생)는 ‘산 넘고 물 건너’가 아닌 지하철만 타면 만날 수 있는 도심 한복판에 살고 있다. 만나러 가는 동안 생각했다. ‘세련된 차림의 백세 할머니를 만나겠구나!’ 그러나 사는 곳도 그랬듯 외모도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도심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안에는 분홍 저고리에 옥색 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김순업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반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강산이 열 번이나 변한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건강하고 활기찬 김순업 할머니의 하루를 공개한다.?
당신을 백세 따도녀(따뜻한 도시 여자)라 부릅니다!
세월이 비껴갔다. 김순업 할머니에게 세월은 저 어디 만치에서 멈춰 있는 듯했다. “저희 엄마 까만 머리 보이시죠? 염색하신 거 아니에요. 그리고 치아도 아직 멀쩡하세요. 틀니가 아니란 게 믿기세요?” 김순업 할머니의 막내딸 김명옥 씨가 쐐기를 박았다.
기억력도 젊은이 못지않았다. 긴 세월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물음에 김순업 할머니의 나지막한 이야기는 아주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마포 도화동에서 태어난 김순업 할머니의 아버지는 한약사였고, 85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은 한의사이자 유학자였다. 젊은 시절 약초 냄새와 함께 살았던 김 할머니는 나눔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예전에 우리 집이 버스 정류장 앞에 있었거든. 처음에는 버스 기다리는 사람들이 물 마시러 들어왔는데 나중에는 밥도 함께 먹고 그랬어. 한 달에 쌀을 3가마니씩 들이고, 김장은 200~300포기씩 했지. 집이 북적북적하고 나눠 먹으니까 얼마나 좋았겠어.” 그때를 회상하는 김 할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딸 김명옥 씨도 덩달아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저도 기억나요. 근처에 우리 집밖에 우물이 없어서 사람들이 대문까지 줄 서서 물을 퍼가기도 했어요. 또 늘 나누는 것이 익숙한 엄마 덕분에 막내인 저도 가게로 심부름 참 많이 다녔어요.”
지금도 김 할머니의 나눔은 진행 중이다. 좀 달라졌다면 집에서 해주는 밥이 아니라 식당 밥으로 바꾼 것뿐이다. 하얗게 머리가 센 노년의 아파트 경비원도, 손자까지 본 이웃들도 백세 김 할머니에게는 더 주지 못해 아쉬운 또 다른 동생이고, 자식이다.
가슴으로 낳은 자식 부자
늘 남을 위하며 살다 보니 김 할머니 댁에는 반가운 손님이 많이 찾아온다. 주로 지금보다 젊은 시절, 할머니가 교회에서 물심양면 도와준 사람들이다. 김 할머니는 6·25 전쟁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무려 60년 동안 기독교인으로 산 김 할머니는 배로 낳은 8남매보다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 훨씬 많다. 이제는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할머니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 심심할 겨를이 없다. 그들은 진짜 딸처럼 밑반찬을 가져오기도 하고 할머니 손을 잡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자녀 이야기를 하다 돌아간다.
멀어서 찾아오지 못하는 지인과는 휴대전화로 통화를 한다. 백세 할머니와 분홍색 휴대전화? 보기에는 어색할지 몰라도 사람을 좋아하는 김 할머니는 이제 휴대 전화 없이는 못산다. 아들, 딸, 며느리, 지인의 안부전화를 받기 위해 어딜 가도 휴대전화는 꼭 챙긴다. 안부가 궁금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기도 한다.
보통 낮에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이 되면 퇴근해서 돌아온 막내딸과 시간을 보내는 김 할머니. 가만히 있어도 사람이 찾아와서 외로울 틈이 없고, 이야기를 자주 하니까 웃을 일도 많이 생긴다.
소식과 콩밥으로 건강 챙겨
시계가 오후 4시를 가리키자 딸 김명옥 씨가 구운 은행 몇 알이 담긴 접시를 내온다. 김 할머니는 간식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인터뷰를 하다 보니 그 시간이 넘어버린 것이다.
식사도 정해진 시간에 같은 양을 먹는다. 식사량은 반 공기 정도로 좀 적다. 대신 오전과 오후에 두유, 은행, 연시 같은 간식을 조금씩 먹는다. 반찬은 주로 나물, 김치 같은 채소와 굴비, 옥돔 같은 생선이다. 고기는 별로 즐기지 않는다. 가끔 단백질 섭취를 위해 채소와 소고기를 함께 갈아서 만든 햄버그스테이크를 먹는다.
편식은 하지 않지만 김 할머니가 꼭 고집하는 밥은 있다. 콩밥이다. 강낭콩이 들어가는 콩밥을 좋아한다. 그래서 김 할머니의 밥에 콩이 빠지는 날은 없다. 본인의 치아로 여러 번 꼭꼭 씹어서 콩밥을 삼킨다. 귀찮을 법도 하지만 밥을 먹고 양치질도 부지런히 한다. 여기서 지금도 튼튼한 치아의 비결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아직도 이가 좋은 비결? 별다른 건 없고 잇몸에 좋은 거 쓰지. 양치질하고 소금물로도 헹구고.” 치아만큼 잇몸이 중요하므로 치약처럼 쓰는 잇몸병 예방·치료제를 오랫동안 사용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란다.
“맨손 체조 나만큼 하는 사람 나와 봐!”
김 할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맨손체조를 한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한복을 입고 항상 면으로 된 옷을 입는데, 면 소재 옷은 맨손체조 하기 제격이다. 팔을 흔들흔들, 다리도 흔들흔들, 몸통도 빙글빙글 돌리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그리고 손을 머리로 올려서 머리와 귀를 천천히 쓸어내린다. 몸을 움직여서 손바닥과 손가락이 따뜻해지면 얼굴 지압을 시작한다. 한 시간 동안 빠진 곳 없이 온몸 구석구석을 움직이고 나면 잠자는 사이 굳었던 온몸의 근육이 풀어진 느낌이 든다.
“나만큼 맨손체조 안 빠지고 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아마 없을 걸?” 농담 삼아 건네는 김 할머니의 말에는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담겨 있다.
김 할머니가 아침에 또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혈압 재기다. 대학병원 간호부장 출신 딸 김명옥 씨가 인정할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를 한다.
“엄마가 혈압이 좀 높으신데요. 그만큼 관리도 하세요. 항상 혈압을 잰 다음 기록하고 높게 나온 후에는 더 건강에 주의하세요.” 혈압 수첩에 빼곡히 적힌 날짜와 숫자가 할머니의 정성을 증명한다.
김 할머니는 손님이 찾아오지 않거나 전화통화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주로 기도를 한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부터 시작해 지인들의 기도까지 마쳐야 직성이 풀린다. 예전에는 하루에 200명의 기도를 하기도 했다.
“이제는 뭐 나이 먹어서 해줄 것이 기도밖에 없어. 기도하면 기분도 좋지, 마음도 편해지고.”
나누는 백세=건강한 백세
노인이 되어서도 팔팔하고 여유롭게 사는 일.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일이다. 이런 생활을 누리고 있는 김 할머니에게도 꿈이 있을까? “꿈? 있지! 우리 자식들이 나만큼 오래 사는 거! 또 내가 아는 사람들이 어려움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야.”
김 할머니는 ‘누가 뭐래도~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고 외치는 노래 가사처럼 사람이 왜 꽃보다 아름다운지 몸과 마음으로 보여주고 있다. 꽃보다 아름다운 김순업 할머니의 건강한 생활이 오래가길 바란다.
TIP. 김순업 할머니의 건강 규칙 7가지
1. 아침에 일어나서 꼭 맨손체조를 한다.
2. 콩을 넣어 밥을 짓는다.
3.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4. 주변을 깨끗하게 정돈한다.
5. 소식하고, 식간에 영양이 풍부한 간식을 먹는다.
6. 생선을 자주 먹는다.
7. 욕심 부리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